134화
* * *
2032년 같은 날 10시 30분경.
"좋다. 녀석들이 나오는군. 지금 흰 녀석 둘이 붙어 있는 저쪽이 한세빈이구나."
"좀더 이야기 하는걸 들어보고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장."
"상관 없다. 한쪽이 아니라면 양쪽 다 잡아버리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이번엔 흑향 너의 예지몽까지 우리의 승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어제 낮에 본 그녀의 예지몽의 내용은 세빈이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흑향은 좀더 자세히 마지막 순간에 있는 사람의 수까지 확인할 수 있었기에 장 티엔은 굉장히 고조되어있었다.
그녀의 예지몽에서 보였던 사람 수는 모두 세명. 그중 하나는 장 티엔이었고, 한명은 확인 불가능한 여성 한명,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한세빈 혹은 한유진이었다. 분명 이렇게 단독으로 세빈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겐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한다.'
흑향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며 다시한번 스코프를 확인했다. 그들이 있던 시대에는 총을 구하기 어려워 대장급이나 가지고 다녔지만, 지금 시대는 달랐다. 꽤나 쉽게 구할수 있었던 저격 소총을 며칠 만에 숙련자급으로 다루게 된 흑향을 보며 장 티엔은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그럼 난 움직인다. 엄호를 부탁한다 흑향."
"네, 대장!"
어릴 때부터 무기과 살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흑향을 발탁해준 장 티엔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절대 실패하지 않겠노라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
"찾았어 니시노?"
"아니요, 지금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한편 병원에서 출발하는 일행을 에스코트하는 두 사람은 굉장히 바빠졌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계속 추적이 가능했던 두 암살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사라진 건 멀리서 이동불능으로 만든 뒤 습격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미 분실된 한 정의 저격 소총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두 사람은 빠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가 어디야."
"그게... 여기요."
니시노는 스마트 패드를 보여주며 자신들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물을 가리켰다.
"분명 이번에는 확실한 보험을 가지고 두 분을 노릴거다. 이 근처 가장 높은 빌딩 중에 숨을 만한 곳... 숨을 만한곳이..."
혼다는 재빨리 입체지도로 변경하여 근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어제부터 대충 어디에 숨어서 노릴 지는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찾았군. 예상 지점은 총 세군데다."
"어떻게 할까요, 둘다 수색만 한다면 두 분이 굉장히 위험하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저격만 저지한다면, 나머지는 아까 이야기한 방법대로 유진 아가씨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일단 최대한 빨리 저격수를 처리해야 한다 니시노."
그에게는 저들이 두 사람을 죽이진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저번에 유진이가 납치당했을 때도 바로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고, 지훈이에게 굉장히 격한 방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가장 위험한 부분은 피해서 쐈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현재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다름아닌 과거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에 닥친 일들은 알 수 없지만,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면 지금의 일까지도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2000년에서 미래로 넘어온 이들의 과거로의 귀환 기록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미래에서 한세빈은 절대로 죽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해져 있는 과거... 그러니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지금 이렇게 시간이 얽혀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혼다는 니시노에게 패드에 펼쳐진 지도의 한 지점을 찍어주고, 없을 경우 두 번째 지점으로 올 것을 명령했다.
"그럼 건투를 빈다 니시노!"
"대장님도요!"
*
어느덧 시간은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팔과 다리에 불법개조 수트를 착용하고 나온 세빈은 수트에서 흘러나오는 기류가 굉장히 거슬리는모양이었다. 게다가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르는 적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세빈은 더더욱 위축되어있는 상태였다.
워낙 주변이 조용해서 들리는 소리라곤 간혹 들리는 인가의 소리, 그리고 기동되어있는 메카수트에서 들리는 작은 엔진음 뿐이었다. 유진이는 메카수트를 켜지 않은 채 나이트비전만 착용한 상태로 사주경계를 하며 조심스럽게 세빈을 이끌고 앞으로 가고 있었다.
[1개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유진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읽어."
나지막히 유진이가 명령을 하자 스마트폰으로부터 수신된 메시지의 음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발신자 혼다 씨. 시간 2032년 3월 8일 10시 49분. 내용. 영수님 그리고 유진양, 아까 병원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적은 저격 소총으로 무장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노리진 않고 분명 두 분을 움직일 수 없도록 할 테니 부디 넓은 장소로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저격병을 제압할테니 기습에 주의하십시오.]
확실히 아무리 유진이 믿음직스러운 방어력이라곤 해도 아직 실전 경험은 거의 없는 어린애일 뿐이었고, 그와 반대로 그들을 노리는 자들은 프로였다. 게다가 저격 소총을 장비하고 있다는 말에 세빈은 아까 병원부터 긴장한 상태였다.
'경험이 부족한 유진이 대신 정황 파악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세빈은 어떻게든 공포감을 극복하고 조금씩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를, 예언력을 다시한번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제발 돌아와라... 내 힘...!'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유진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긴 지 5분여 만에 세빈은 뭔가 머리속을 스쳐감을 느꼈다. 매우 익숙한 느낌이었다.
"언니 거의다 왔어요. 아마 공원쪽으로 갈 일은 없을것같아요."
그들의 왼편에는 쫙 펼쳐진 공원이 보였다. 그렇지만 넓은 장소로 나가지 말라는 혼다의 말이 있었길래 일부러 유진은 공원을 빙 둘러 가는중이었다.
'보인다. 어제 꾸었던 예지몽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어..!'
유진도 언제 적이 습격해도 대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긴장하고 있는 상태여서 세빈은 예지몽을 보면서도 함부로 그녀에게 말을 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일은 예상치 못한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어? 얘들아!"
나이트비전때문에 사람 모습이 잘 안보였기 때문에, 유진은 재빨리 기능을 끄고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누군지 확인하기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 엄마?!'
하필이면 공원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의 어머니, 윤하였다.
* * *
2000년 이백.
"순순히 투항해라 탁암."
이노우에가 근처에 떨어져 있던 검을 발로 멀리 걷어찬 뒤 흑암에게 칼을 겨누며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백영의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서 총수는 곧장 군중 사이에서 이노우에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백의 입구 부근에서는 도망쳤던 흑영의 병사들이 잡히고 있는 듯, 비명소리와 부산스러운 소리가 가득했다. 모든 상황이 탁암에게 최악이었다.
"이봐 탁암. 아니.."
가까이 다가온 이노우에는 주변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탁암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청명(淸明). 백영의 배신자여, 그 고개를 들어라. 이미 총수님과 나는 알고 있다."
그랬다, 여태껏 백영의 정보를 흑영으로 빼돌리고 적의 제3대장으로써 백영을 괴롭히던 스파이는 얼마전까지도 서 총수의 최측근에서 백영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청명이었던 것이다.
"네 녀석이 스파이란 것을 총수님은 진즉에 의심하고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저주를 막기위한 성물을 숨기는 장소를 너에게 일부러 틀리게 알려주셨지. 아니나다를까.. 어둠 속에서 가짜 성물을 파괴하는 네녀석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청명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서 총수가 거의 그에게 근접했을 무렵, 청명은 입을 열었다.
"그래, 나였다. 대단하군... 아니지, 우리 서 총수께서 대단하신 거겠지."
아무리 스파이라지만 과거에 분명 모셨던 분에게 막말하는 것을 본 이노우에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나?"
"..."
청명은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채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어 앉았다.
"10년 전, 네 녀석이 백영 무력집단의 최고가 되기 전부터 나는 흑영의 개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우리 편으로 마음을 돌릴 생각은 없겠지?"
이노우에가 회유하는 듯한 말을 했으나 청명은 픽 하고 웃었다. 서 총수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안 되는 거다 백영 너희들은."
그 말이 끝나고 나서 청명은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들어 이노우에에게 겨눴다. 너무 찰나의 순간이라 서 총수도 그걸 보고는 놀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순식간이어서 이노우에도 미처 대처를 하지 못하고 총구의 정면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물러서 안 되는 거라고... 네 녀석들은!"
[타앙!]
============================ 작품 후기 ============================
+14.07.08 흑암이라고 되있길래 탁암으로 수정했습니다.
+14.07.14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