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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33화 (132/188)

133화

*  * *

2000년 3월 8일 흑영의 중심지 심연의 전략회의실.

"뭐라고 했소 지금. 제 3대장이 출정했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2장로님. 뭔가 문제될 것이라도?"

제2장로는 흑영의 제3대장이 무력을 행사하기 위해 백영의 본거지로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어 표정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히 기분은 나빠보였다.

"그런데 사령관님께서 이 일을 우리에게 이렇게 늦게 알려주시다니 의외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셨던 것인지.."

'혹시 흑귀가 장로 중 스파이가 있다는 걸 눈치챈건가?'

장로들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제2장로는 슬쩍 빠져나왔다.

'순응의 저주 전까지 절대로 무력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출정을 지시했다는 것은 필시 스파이를 색출해내기 위한 움직임...'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으며 그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럼.. 나도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겠군.'

*

그시간 흑귀의 비밀 처소.

"왔느냐 사령. 지시는 제대로 내리고 왔겠지?"

"예 사령관님. 탁암에게 이백을 공격하여 인질로 백영 사람을 생포해오라고 추가 명령서를 내렸습니다."

"그래, 잘 했다."

흑귀는 사령이 들어와서 내려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령관님, 어짜피 이백의 공격은 실패할 것인데 어찌하여 탁암을 보내신 것인지..."

그 말을 듣고 나서 흑귀는 세 문장을 더 읽고 나서야 책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는 피식 웃더니 대답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석달 뒤면 저주가 완성될 것이다. 그러니 백영에 심어둘 스파이는 더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예? 필요가 없다니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필요 없다. 어짜피 앞으로 우린 무력충돌을 피하면서 저주만 완성시키면 되니까 말이다. 충돌을 피하는것 쯤이야 사령 너를 믿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게다가 탁암을 통해 백영이 만든 저주를 막기 위한 장치들도 무력화 시켰겠다, 더이상 서규찬 그놈을 추적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이지."

책을 내려놓은 흑귀는 옆에 있던 찻잔을 잡았다. 코로 깊이 차의 향기를 들여마신 뒤 한 모금 마시고,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는 사령을 바라보며 그는 코웃음을 쳤다.

"게다가, 한번 배신한 놈이지 않나? 그런놈이 다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곤 장담할 수 없단 말이야."

"그건 그렇지요..."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흑귀 안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분명 이번 공격으로 바삐 움직이는 녀석들이 있을 테니 그 녀석들을 잘 감시하거라."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래 이만 물러가 보거라."

사령이 물러가고 나자 흑귀의 입가에 다분히 사악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배신한 진영의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죽는 것. 이 어찌 배신자의 무덤으로 제격이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지?'

*  * *

다시 2032년 같은날.

"좋아, 좌표값 설정까지 끝났어."

"완벽해!"

저녁 9시가 되서야 모든 준비가 마쳐졌다. 밥 안 챙겨먹고 정비에만 몰두할 것 같은 지훈이였으나 간호사가 억지로 먹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저녁은 챙겨먹은 상태였다. 한참을 메카수트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렸던 세빈은 꽤나 지쳐보였다.

'벌써 9시라니. 애들 때문에 시간도 전혀 보질 못했군.'

그제서야 시계를 본 세빈은 어느덧 예견한 시간에 거의 근접했음을 깨달았다. 분명 집에 늦게 돌아간 것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어찌하여 집가는 방향에 없는 공원쪽으로 갔단 말인가.'

이 의문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데, 유진이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와서는 말 대신 스마트폰 채팅으로 그녀에게 뭔가 말을 건넸다.

[언니, 조용하고 있어봐요.]

유진이 말대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유진이 꺼낸 반지함에서 나오는 뭔가를 발견했다. 이내 그것이 뭔지 확인한 세빈은 왜 그러는지 수긍할 수 있었다.

메카수트를 차고 있는 세빈의 팔을 걷어 공기 배출구 근처에 뭔가를 붙인 유진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세빈의 말투를 쓰는 걸로 보아 분명 다시 반대 행세를 해야 하는 게 분명했다.

"자 이제 집에 가야지 유진아."

"... 응 언니."

침대로 다시 올라가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훈이는 걱정이 가득 끼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빈의 예언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 둘 다 다치면 어떻해..."

지훈이는 자신이 다쳤던 기억이 남아서인지 유진이가 비슷하게 당하게 될까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걱정 말거라 지훈아."

유진이는 지훈이의 손을 들어올리더니, 새끼손가락으로 약속했다.

"절대 다칠 리 없다. 그리고 유진이도 절대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

"어.. 어."

그 당당한 표정이 어찌나 멋있던지, 지훈이는 또한번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저 멋진 모습이야말로 유진이의 트레이드마크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평소의 유진이 말투가 아닌 세빈의 세련된 말투를 써서 그런지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너가 만들어준 메카수트가 있잖아! 염려 말라고."

"어. 응 그렇지!"

세빈이 옆에서 유진의 말투로 지훈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셋이서 주먹을 불끈 쥐며 전의를 다지고 있는데 갑자기 병실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니시노였다. 무표정인 니시노가 들어오자 갑자기 분위기가 확 죽었고 그러자 니시노 본인도 당황했다.

"그... 저, 다름이 아니라 대장이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요."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구나. 알았다, 어서 가자."

유진이 벌떡 일어나서 니시노를 끌고 앞장섰다. 세빈은 뭔가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서둘러 유진을 따라나갔다.

"몸조리 잘하고 있어 지훈아!"

"어.. 꼭-"

그의 마지막 한 마디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세빈은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 무사히.. 돌아와."

*  * *

2000년 같은 날 늦은 밤 백영의 네 번째 집중구, 이백.

"다들 준비 되었나."

"예, 물론입니다!!"

탁암은 조용한 이백의 입구 근처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자신을 따라온 오십여명의 부대원과 함께 이백을 쳐서 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작전이 이제 곧 시작하려 했다.

'이번 일로... 흑귀의 신임을 조금은 더 얻을 수 있게 되었군...'

조용히 손을 들어올린 탁암은 이백을 향해 손을 꺽었다. 공격하란 신호였다.

"가장먼저 외부 방어선을 돌파한 뒤 각자 지정된 장소로 흩어진다..!"

"예!"

그들이 빠르게 입구로 들어가자 가장먼저 1차방어선의 백영 병사들이 보였다. 그러나 탁암이 재빨리 그들을 처리하려 하자, 그들은 맞서는게 아니라 안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쫓아라!! 안으로 가서 지원군을 부르면 골치아파진다!!"

서둘러 병사들을 안쪽으로 보내고 나서 탁암은 천천히 뒤따라가며 생각했다. 무전기라던가 분명 교신할 방법이 있을텐데 대치도 안 하고 퇴각이라니 뭔가 이상했다. 마치 자신들이 쳐들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거이거, 뒤를 너무 쉽게 내 주는것 아닌가? 흑영 제3대장?"

"!!"

[촤악]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탁암은 놀라 재빨리 발도술을 이용해 등 뒤를 베었다. 하지만 베는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 나타났던 자는 어느새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춘 상태였다.

"모습을 드러내라! 웬 놈이냐!"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로군 침입자!"

탁암은 점점 밝은곳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에 따라 어둠 속에 있던 누군가도 조심스레 그를 따라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사령을 통해 아무도 없을 것이라 했는데... 설마...!'

어느덧 밝은 조명 아래 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탁암은 이내 드러난 그자의 모습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이.. 이노우에..!"

분명 실력자는 없을 것이라 믿었는데, 하필이면 그의 눈 앞에 백영의 제일가는 실력자인 이노우에가 나타났던 것이다. 탁암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지금의 자신의 실력으론 이노우에를 막기만 해도 힘이 들 터, 절대로 안쪽의 부대원들을 도우러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미 알고 있었어!!'

[타앗]

"음? 잠깐 어디가는거야! 이자식!"

재빨리 등을 돌려 안쪽으로 뛰어가는 탁암을 쫓아 이노우에도 달리기 시작했다.

"가게 둘 것 같으냐!!"

[쐐액!- 깡!]

"크읏! 이자식!"

그러나 안쪽으로 달려가는 그를 이노우에가 막아섰다. 완전히 등쪽으로 들어오는 검을 차마 피할 수 없어 탁암은 어쩔수 없이 가지고 있던 검으로 막아설 수 밖에 없었다.

[채앵- 깡! 채앵!]

수차례 검을 맞댄 후에야 어느정도 거리가 벌어졌고, 탁암은 다시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놓칠 이노우에가 아니었다. 거리는 계속해서 조금씩 좁혀졌고, 탁암이 마침내 넓은 광장에 들어서자 두 사람의 거리는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허나 갑작스럽게 탁암은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옆으로 돌아섰고, 이노우에는 속도에 못 이겨 그대로 앞으로 돌진한 뒤 가까스로 그를 향해 돌아설 수 있엇다.

"젠장... 역시..."

그가 놀라 돌아선 이유는, 건네받은 정보와는 너무나 다른 안쪽 상황이었다. 방비가 적을 것이라 했던 이백의 내부는 수많은 백영의 병사들로 가득했다. 아까 외부 방어병력을 쫓아 안으로 들어갔던 그의 부하는 이미 대부분 잡혔고, 나머지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백영 병사들의 뒤쪽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백영의 총수, 서규찬이었다.

'역시 사령을 통해 일부러 날 보냈군...!!'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확률은 1%도 안 될 상황이 그의 눈 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아 나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어떻게든 이노우에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부대원들이 이백 밖으로 탈출하도록 돕는 것, 그것뿐이었다.

"모두들 퇴각해라!!"

그 말과 동시에 모든 흑영의 병사들이 대치상황을 풀며 입구쪽으로 달렸다. 아니나다를까 이노우에가 그들을 막으려 움직이려 했지만, 탁암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멈춰라. 네 상대는 나다!!"

이미 탁암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노우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봤자 시간문제다. 밖에는 이미 나의 부대원들이 대기중이고, 어찌되었든 너의 부대는 전멸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채앵!]

"웃기지 마라! 내가 데려온 병사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촤악!]

잠깐 탁암이 방심한 사이 이노우에의 검이 그의 얼굴 앞을 스쳤고, 탁암의 얼굴을 가리고있던 복면과 두건이 잘려나가 바람에 흔들렸다.

'이런, 여기서 내 얼굴을 들켰다간-!'

"생각이 너무 많군 그래."

[턱-]

"으읏!"

순식간에 이노우에의 아랫쪽 발 후리기에 탁암이 걸려 넘어졌고, 그의 검은 손에서 튕겨져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바닥에 엎어진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닥에 완전히 밀착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젠장...'

============================ 작품 후기 ============================

+14.07.14 수정완료

내일을 일요일이라 하루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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