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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30화 (129/188)

130화

<4. 촉발>

"으~ 춥다 추워. 아직 춥구나."

몸을 으슬으슬 떨며 박으로 나온 유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준비중인 세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3월이 되었지만 아직 날씨는 입김이 보일 정도로 추웠다.

"따뜻하게 입고 가 이것아! 감기 걸려!"

"괘, 괜찮아-!"

윤하는 딸이 된 아들이 걱정이 되는지 목도리를 어디선가 가져와서는 그녀의 목에 잘 감아주었다. 신기하게도 윤하는 세빈과 유진이 바꿔서 행동하는데도 누가 누군지 알아보는 듯 했다.

"말했지, 여자아이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한다고."

"그렇게 따지면 치마를 입으면 안되그등요?!"

"이것이 또! 말 하는것마다 따박따박 되받아 친다?"

엄마의 핵꿀밤을 또 맞을까봐 유진은 머리를 감싸며 '으악'하고 아픈 시늉을 했으나 다행히 폭력은 없었다. 딸이 되고 난 뒤부터 윤하도 유진이에게 폭력은 잘 안휘두르기 시작해서인지, 모녀의 투닥투닥하던 관계도 이제는 쫑알쫑알로 바뀐 상태.

"언니, 가자. 준비 다 했어."

"늦었다구-! 개학식인데-!"

저번 사태가 있은 지 근 3주가 흘러 3월이 찾아왔고, 어느정도 날씨도 누그러지면서 봄이 슬슬 시작되고 있었다. 그 뒤로 암살자들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혼다들에게 막혀 공격이 무산됬던 것인지, 개학식이 될 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개학이군... 걱정이 태산이네."

게다가 시작된 새 학기로 인해 유진과 세빈의 걱정은 말이 아니었다. 아직 위협이 제거되지도 않은 상태로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었기 때문이엇다.

여전히 유진은 세빈 행세를 하고 있었고, 세빈은 유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서 유진은 항상 메카슈트를 착용한 상태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전에서 지훈이가 개조해준 메카슈트를 사용할 일은 없었다.

"걱정 마 유진아. 다 잘 될 거야."

세빈은 그 이후 계속해서 예언력을 써 보려고 노력했으나 쉽게 되진 않았다. 어떻게해서 겨우겨우 1시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약간 틀렸기 때문에 그녀는 큰 충격에 빠져있었다. 계속해서 집중한 덕에 어느정도는 회복했으나 아직 완벽한 수준은 아니었다.

"누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혼다, 니시노. 부탁한다."

혼다와 니시노는 좀더 눈에 띄지 않도록 어두운 계열의 수트로 옷을 갈아입었고, 덕분에 유진과 세빈조차도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지훈이가 없으니까 허전하네."

병상에 누워있는 지훈이는 아직 한 달정도 더 회복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2-3일 꼴로 유진과 세빈이 방문하고 있는 상황. 아직 좀 아파 보였지만 그래도 그간 유진이가 내준 과제 덕분에 정말 즐거웠던 모양이다.

"자, 힘내자 언니."

"그래. 꼭 돌아가야 해!"

잰걸음으로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의 눈에 머지않아 들어온 것은, 바로 두 남자였다. 윽, 유진이는 본능적으로 그들을 보더니 발이 멈췄다.

"아... 아오 저 멍청이들."

"누님-!"

*

같은 시간 근처 건물 옥상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대장."

"그래. 계속 집에 틀어박혀만 있던 쥐새끼들이 나왔으니, 사냥을 시작해야겠지?"

흑향은 조심스레 망원경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살짝 열린 그녀의 작은 백팩 안에는 많은 최신의 도구들이 있었다.

"몇주간 준비를 철저히 해두길 잘했군. 저녀석들이 완전히 마음을 놓을 때 까지 더욱 완벽히 하도록 하자 흑향."

"알겠습니다."

수상쩍은 웃음을 지으며, 장 티엔은 승리를 확신했다.

"저 어리석은 계집들이, 자신들의 작전이 완벽할 것이라 믿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군. 우리가 자신들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우리가 승리하는 순간이다."

*

"진짜 얼마만입니까 누님. 그동안 나오지도 않고."

"완전 개 실망입니다. 연락도 한번 안주시고!!"

분명 유진과 세빈만 있었을 때는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기 바빴는데, 찬웅과 한율이 합세하자 사람들이 눈을 깔기 바빴다.

"으아-! 너네 저리 안가? 빨리, 50m 밖으로 떨어져!!"

그러나 세빈의 갈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사람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유진이는 실감나게 자신을 연기하는 세빈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싫은데요. 오랜만에 뵜으니 애들한테 우리 이미지를 빡시게 각인해야 한다고요."

"그럼그럼. 팍 씨 기어오르지 마라 이런 포스로 말이지."

부들부들. 옆에서 지켜보는 유진의 속이 끓는 소리가 밖까지 들렸다. 그녀는 짜증이 잔뜩 나서는 세빈에게 나즈막히 소근거렸다.

"언니, 도망가자."

"어? 그거 쓰게?"

[삑, 삑]

곰밤탱이가 옆에서 세빈에게 신경쓰는 사이, 유진은 재빨리 세빈의 양쪽 아킬레스건 위를 두번 눌렀다. 세빈에게 있어 첫 메카수트 기동이라 그런지 오히려 유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경고,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 기동하였습니다}{모델 MS-D102-LL,MS-D102-RL 동력연결 완료}{파워스위치 온. 기동을 시작합니다}갑작스러운 알림음에 한율과 찬웅은 놀랐다. 이윽고 그들은 레깅스처럼 보였던 세빈의 메카수트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에엑? 잠깐 누님 여기서 메카수-"

"언니, 꽉 잡아!"

[투다다다다다]

엄청난 속도로 먼지를 일으키며 학교로 돌진해가는 세빈을 보며 두 남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들은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 누님! 같이 가요-!!"

*

"시원하네요...가 아니라 시원하네-"

"헉헉- 힘들어 죽겠다!!"

학교 10m 앞에서 질주를 멈춘 세빈은 업고 있던 유진을 내려놓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유진은 뜬금없이 언니 등에 올라타서 그런지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아직 지각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교문 앞에 선 유진이에게 또다른 문제가 생각났다.

'으아-!! 그러고보니 나 여자 교복 입고 있었잖아-!!!'

현재 그가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곰밤탱이와 담임 선생님 뿐,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겠으나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소식은 몰라도 유진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 그녀의 학교 실정이었기 때문에, 유진은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교내 모든 이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언니?"

"아- 하하! 그... 여자모습으로 학교는 처음이라."

그런 그녀를 보며 세빈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 마요, 내가 도와줄테니까."

신기하게도 그 미소를 보니 유진은 마음이 편해졌다. 유아독존으로 유명한 그녀에게 누군가가 신뢰를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역시 세빈이 가지고 있는 연륜과 내공도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학교로 걸어들어가면서 하나둘 씩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였고, 교문에 도착하니 학생주임 선생님이 유진을 알아봤다.

"엇, 유진이구나!"

"선생님."

한때 학교에서 하도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녀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았던 유진과 학생주임 선생님이었으나, 백운과 광운의 패거리를 정리한 뒤에는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진 편이었다.

"짜식, 더 이뻐졌구나. 소식 들었다."

웃으며 세빈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생님의 모습에 유진은 약간 당황했다.

'저 선생님이 이러실 분이 아닌데... 혹시 남녀 차별이라도 있었던 거냐!'

옆에서 지켜보면서 살짝 주춤 하는 그녀의 행동을 눈치챈 선생님은 황급히 손을 치우고는 두 사람을 교내로 떠밀었다.

"자자, 어서 들어가라 슬슬 교문 닫아야 되니까."

"앗, 네네."

"아 그리고."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는 듯 표정을 짓는 세빈을 들여보내고 난 뒤 잠시후, 주임선생님은 그녀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 교외에서 장비 기동했지. 이따가 교무실에서 보자잉?"

"... 아차."

뜬금없이 세빈 행세를 하는 유진이가 당황하자, 선생님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은 황급히 세빈을 데리고 교실로 가면서 유진은 여지껏 허락없이 기동한 횟수가 몇 번이었는지 생각했다. 그러자 오늘 학생주임 선생님의 연설을 몇 시간이나 들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

[스으윽]

미닫이 문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앗, 아빠."

"일어나 있엇니?"

개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지훈이는 회복이 덜 된 탓에 병실에 누워 있다.

"몸은 많이 괜찮아졌나 보구나, 스스로 일어나서 무언갈 하는걸 보니."

"네!"

우주는 조심스럽게 지훈이 옆에 앉아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사고 났을 때는 엄청 놀랐던 그였지만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난 뒤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22년 전에 윤하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그 시절 생각이 안 날수가 없었다.

"요새 많이 즐거워 보이네?'

"네. 유진이가 재미잇는 과제를 줬거든요."

"과제? 뭐길래?"

그는 씨익 웃더니 숨겨두었던 수첩을 하나 꺼내서 보여주었다. 지훈이가 워낙 메카수트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우주도 꽤 관심이 있었던지라 그는 수첩 안의 내용을 보고 대충 어떤 것인지 눈치를 챘다.

"이야... 이게 이렇게 작동이 된단 말이야? 신기하네"

"그렇죠 아빠? 유진이는 천재인가봐요. 난 메카수트 공부만 몇 년을 했는데도 이런 생각은 못했는데."

그 말을 하고 약간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을 짓자 우주가 지훈이의 어깨에 팔을 둘러 가볍게 안았다.

"아니야, 아들. 아빠는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22년 전에 윤하 아줌마랑 재희 아저씨를 구한게 아니었단다. 그만큼 오래 노력했기 때문이었지. 유진이가 비록 천재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너랑 나에겐 그만큼 노력할 수 있는 집념과 끈기가 있잖니."

지훈이는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재희 아저씨가 나한테만 몰래 얘기해준게 있었거든... 유진이가 그래도 여자니까 남자인 내가 지켜줘야 한다구 말야."

그 말하면서 상처가 약간 아팠는지 금세 표정이 찡그려졌지만, 지훈이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때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났는지, 나도모르게 유진이 대신 총 맞고... 눈떠보니 병원이더라구요."

"이자식아. 너 때문에 아빠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아니?! 너 죽으면 아빠도 죽을라그랬어 이 자식아."

볼을 꼬집는 자신의 아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며 지훈은 다시끔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도 유진이를 이렇게 도울 수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병실에 누워있어도 유진이가 내게 조언을 구한다는게 얼마나 좋았는데."

항상 유진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지훈이의 표정은 밝게 상기되어서 즐거워 보였다. 아마 눈치빠른 우주라면 아들의 마음을 진즉에 알아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빨리 나아서 유진이 곁을 지켜야해. 그 녀석 메카수트는 나 아니면 아무도 못 고치니깐!"

"그래. 이제 조금만 더 치료받고 회복하면 되니까 힘내자 아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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