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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29화 (128/188)

129화

*

[솨아아아아]

"으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창밖에는 눈 대신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고,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비 때문인지 하늘이 어두웠다.

"일어났니 유진아?"

"아."

부시시하게 눈을 뜬 유진은 흐릿하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세빈이다, 드디어 눈을 뜬 것이다!

"다행히 방 안에 아무도 없구나. 마침 안그래도 둘이서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쉿. 다 알아요 언니. 이제 편히 말씀하셔도 되요, 다들 일부러 밖으로 내보냈으니까."

세빈은 느닷없이 유진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유진은 그때서야 지금껏 조심스레 행동했던 태도를 버려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 파직. 부스럭]

그와 동시에 뭔가 작은 물체가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 언니 행새를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날 너로 만들어버리면 어떻하니. 집에서 병원으로 움직이면서 갑자기 다들 나를 너로 대하길래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장단은 맞추어 줬다만..."

그랬다. 여태껏 유진이가 말을 하지 않고 일부러 조용히 있었던 것은, 사실은 그녀가 바로 세빈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진이 엉망진창이 되서 돌아온 것 때문에 분노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괜히 섣불리 행동했다가 세빈이라는 걸 들킬까봐서였다.

"헤헷. 미안해요 언니. 그렇지만... 이렇게 해 뒀으니 녀석들은 분명 다음에도 날 노릴 게 분명하게 됬죠 이제 녀석들을 잡는 일만 남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일까지 하려고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고 그러니!!"

세빈은 유진의 머리를 꽁 때렸다. 아직 맞은 통증이 남아있는지 살짝 때린 꿀밤이었지만 유진이는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뒹굴었다.

"아앗, 미안..."

"아이코오. 괜찮아요... 어짜피 다 제가 섣불리 행동한 탓인걸요..."

많이 아파하는 그녀를 보며 걱정이 되었는지 세빈은 어쩔 줄 몰라했다. 유진은 괜찮다며 세빈을 진정시킨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튼 당분간은 밖에선 우리 서로 바뀐대로 행동하자구요. 언니가 내 행세를 하고, 내가 언니 행세를 하고. 그럼 분명 녀석들은 날 다시 처리하러 올거에요. 이번엔 혼다, 니시노씨와 힘을 합쳐 만반의 준비를 해서 꼭 붇잡아야겠어요."

"몸이 그 상태인데 할 수 있겠니?"

"걱정 마세요! 사실 계속 자는 척 했는데 깨어난건 오늘 아침에 진즉에 일어나있었는걸요."

"뭐야? 정말?"

이 무슨 말도 안되는 회복력이란 말인가. 세빈은 그렇게 심하게 맞았는데도 금세 정신을 차린 유진이 대견할 따름이었다.

"아 그리고 할 말이 사실 더 있는데요. 이건 진짜 비밀인데. 귀좀 대봐요 언니."

"응? 무슨 이야기인데...?"

빗소리에 묻혀서 작은 이야깃소리는 더이상 주변에는 들리지 않았다.

*

며칠이 지났다. 삼일동안 내린 겨울비로 인해 바닥이 꽁꽁 얼어서, 동네는 완전 빙판길 투성이었다.

"유진이 너 또 어디가니?! 할머니까지 모시고!!"

"지훈이 보러 가는거야~! 메카수트 저번에 고장나서 고쳐야 되니깐-!"

아직 아파서 힘들게 누워있는 사람에게 메카수트 정비라니? 윤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으나 그녀가 현관으로 나와봤을 때 이미 두 사람은 사라진 뒤였다.

"얘는?! 아직 아픈 애를 괴롭히- 없어?!"

"걱정 마세요 누님, 저랑 니시노가 호위하겠습니다."

"어어- 그래 조심해! 꼭 지켜줘야 한다-!"

두 사람 따라 또 두 사람이 나가자, 집 안은 금세 텅 비어버렸다.

"에이 거참 오랜만에 집에 사람 많아서 시끌시끌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전업주부의 마음이랄까. 위험하니까 어떻게든 집에 붙잡아두려는 것도 있지만 혼자 있기 심심해서도 있었는데, 아직 유진이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게다가 원래 남자아이이기도 했고.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메카수트에 관한 이야기랑 지훈이에 관한 이야기 등등 물론 수호대 두명도 함께였으나 대화에 끼진 않았다. 저번 사건 이후로 부쩍 긴장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훈아~"

"아 유진이 왔구나~ 세빈 누나도!"

다행히 수술 5일만에 지훈이는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의사가 무리하게 움직이면 수술한 부위에서 출혈이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까 절대 주의하라고 했단다.

"자 여튼 세빈 언니가 일부러 이렇게 다섯 사람만 모이게 한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야. 언니? 설명해주실까요?"

이렇게 모이다니. 분명 그렇다면 혼다, 니시노 그리고 유진, 세빈, 지훈 이렇게 다섯명이서 뭔가를 꾸민다는 소리가 되는데. 한명은 환자에 유진이도 아직 타박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한다는 건지 혼다의 표정에 염려가 가득했다.

"음. 일단은 이 작전은 우리끼리만 행동해서 수행할 작전이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 안 받게 이렇게만 모인거고 말이지."

세빈은 뭔가 말하는게 조금 불편해 보였다.

"당장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 아픈 사람도 많고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매우 위기의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역시 혼다와 니시노가 있으니까 크게 걱정이 되진 않네."

"하 그래도 위험한건 매한가지인걸요 영수님. 2명이서 3명을 보호하는건 쉽지가 않습니다."

"아니다. 이번 작전은.. 너희 둘은 무조건 유진이만 보호하면 된다."

"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수님은?"

혼다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방방 뛰자 세빈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야기했다.

"혼다. 지금 누가 누군지 구분이 되느냐?"

"예...? 당연히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영수니-"

"그건... 확신할 수 있느냐?"

그런데 양 쪽에서 동시에 세빈의 말투가 튀어나오자 혼다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세빈이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도 그녀 같고 저쪽에 앉아있던 유진이도 같은 말투를 쓰자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크...크음..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완전 쌍둥이의 모습인데 남이 봐서 알수가 없을 것이란 말이지."

"그.. 그래서 지금 영수님은 어느 분이신지..."

아무리 봐도 그런데 옷 입은 스타일이나 하는 행동이나 보면 서 있는 사람은 세빈 같고 앉아 있는 사람은 유진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너무나 닮은 탓에.

"사실 앉아 있는게 세빈 언니에요."

"아아 그렇군요... ... 네?"

저번에 병실에서 둘이서만 한 대화를 기억한다면 알겠지만, 아직 두 사람은 서로 반대로 행세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로의 스타일을 바꾸고 말투를 바꾸고 행동거지를 바꿨다. 단 며칠 만에.

"지금 서서 말하고 있는건 한유진이구요."

"..."

혼다와 니시노, 그리고 지훈이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구분해내라는 건지. 예전엔 그나마 두 사람의 구분 가능한 특징이라도 있었지만, 이렇게 말을 맞춰서 행동거지까지 통일해버리면 답이 없어진다.

"아무튼 사정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바꿔 있는거란다. 알겠느냐 혼다!"

"아.. 아 네 아가씨.. 아니 영수님... 응?"

"그래 그러니까, 지금 진짜 영수님은 유진이란말이지. 저쪽에 꼭 붙어 있거라.. 저들이 유진이가 세빈이라고 완전히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세빈 행세를 하고 있는 유진이 '느냐~!' '이놈!!' 하는게 뭔가 열받는 혼다였으나 어찌됬건 작전은 작전이니 일단은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저들은 도청기로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필시 제 행세를 하고 있는 세빈 언니를 공격할 것입니다. 바로 너가 여기서 해줘야 하는 일이 있지."

"네? 제가-? 아니 내가?"

"그래. 헷갈리면 대충 불러 그리고."

"아 넵.. 아니.. 어.. 넵.."

유진이는 당황해서 누운채로 어버버버 거리고 있는 지훈이의 모습이 웃겼는지 말하다 말고 큭큭거렸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엔진, 그리고 배터리팩. 이번에 사용할거야."

"아 그거? 그거 어떻게 쓰려고?"

"어떻게 쓸거냐면.. 자, 말로 설명하는것보단 이걸 보는게 빠르겠지."

그녀는 메고 온 작은 가방에서 수첩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펼친 면에는 메카수트를 개조할 방법과 간단하게 그린 도면 등 개조할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우와... 너 언제 메카수트 분해라도 해봤어?! 이런걸 어떻게 알고있는거야?"

"이놈의자식이 내가 무슨 맨날 수트입고 굴러다니기만 한줄 아나.. 나도 공부 나름 열심히 했다고... 직접 운용하는 사람이 자기 장비에 대해 모르면 안되지."

지훈이는 한동안 유진이의 수첩을 신이 나서 바라보았고, 그녀의 방대한 지식에 대해 또한번 감탄했다. 맨날 나쁜 아이들이랑 어울리고 놀기만 하는줄 알았던 그녀가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굉장해! 이게 정말 가능할까?"

"물론..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라면 말이지. 여튼 그래서 할 수 있어 없어?"

"당연 할수 있고말고! 지시대로만 따라줘, 내가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좋아. 너밖에 없다 지훈아!"

또다시 메카수트를 이것저것 손볼 것을 생각하니 신이 난 지훈이를 진정시키고 나서야 모든 단계별 작전설명이 끝났고,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지훈이의 침대 주위에 모여 손을 한데 모았다.

"그럼. 세빈 언니를 원래 시간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다같이 힘내자고요!"

"화이팅!"

<3. 대적> END

============================ 작품 후기 ============================

+14.07.14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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