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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28화 (127/188)

128화

혼다는 어안이 벙벙했다. 영수님이라니, 설마 그럼 아까전까지 집에서 자신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 유진양 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행동이 이쪽이 유진이고 집쪽이 세빈이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목소리가... 크구나 혼다... 내, 주머니에 저..들이 도청기 같은걸 장치...했으니까... 일단 그것부터... 없...ㅇ..."

"영수님!!"

앗차 이런, 도청기가 있다고 했는데! 라고 이미 늦은 다물며 혼다는 조심스레 그녀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께를 뒤졌다. 위험할 뻔 했군! 저들이 조금만 늦게 이곳을 떳거나 지키고 있었다면 바로 우리를 습격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찾았습니다 대장."

"좋아, 이동하자 니시노.!"

니시노가 도청기를 파괴한 뒤 한참 달리면서 혼다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어찌 된 일인가. 두 분이 서로 행동까지 바꾸어가며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니... 영수님은 어느 새 메카수트의 사용법을 익히셨던 것이지...? 허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암살자 녀석들이 영수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정말 천만 다행이다.'

생각할 겨를도 잠시, 곧 니시노가 안내했던 대학 병원의 모습이 보였고 그는 오로지 세빈의 안위를 위해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영수님이 깨어난 뒤에!'

*

병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사중인 건물.

"들었느냐 흑향."

"확실히 들었습니다 대장."

부숴졌는지 치직거리는 소리만 들려오는 도청기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듣게 된 장 티엔은 기쁜 나머지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

조용히 도청 수신기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그는 흑향에게 말했다.

"준비해라 흑향, 이제 목표 달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

*  * *

2000년의 같은 날, 같은 시간, 서울 북악산.

"왔느냐."

"예 사령관님. 명을 받들고 시키신 일 완벽히 처리하고 돌아왔습니다."

동이 트기 약 3시간 전쯤이라 그런지 남산타워 근처를 제외한 모든 산속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어둠 속의 어딘가에서 두 사람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잘 했다 탁암(濁暗). 네 덕분에 이번 일도 참 수월하게 끝나겠구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서 있는 사람은 흑영의 총사령관 흑귀와, 탁암이란 이름을 가진 복면 쓴 남성이었다. 날이 어두워 복면 쓴 남성의 모습은 흡사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 숨어있었다.

"그나저나 사령관님, 서 총수가 스파이의 잠입 사실을 눈치챈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럴 수도 있지. 그 작자도 보통 인간은 아니니 말일세."

탁암이 불안한 목소리로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지만, 흑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오랫동안 준비해왔지. 긴 세월이었다... 저들의 숨통을 조르기 위해 몸 가장자리의 손가락부터 하나하나 잘라오던 우리가, 드디어 녀석들의 심장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늘에 뜬 그믐달을 바라보며 무서운 웃음을 보이던 흑귀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마치 한 명의 악귀나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네게 또다른 임무가 곧 부여될테니..."

*

같은 시간 광백의 산기슭.

"무사하군. 역시 스파이는 그 녀석이 분명하구나 귀술아."

"정말 어떻게 아셨습니까? 늘 그분과 함께 다녔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는데.."

"원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총수는 무언가가 안에서 빛을 내고 있는 단지를 다시 흙 속에 고이 묻어 두고 그 위에 가져온 백금 기둥을 세웠다. 그러자 그때까지 그믐달 옅은 빛에 은은하게 반사만 하던 기둥이 마치 하얀 불이 붙듯 성스러운 불꽃에 휩싸였다.

"아아, 여기는 귀술이다. 각자, 맡은 곳에 위치 잘 했는가!"

[여기는 건백, 위치 완료하였습니다!]

[곤백, 이상 무!]

[감백 역시 무사합니다!]

[리백, 문제 없습니다!]

무전기로 돌아오는 네 사람의 대답을 들은 귀술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 총수가 백금 기둥 앞에 무릎을 꿇었고, 곧바로 대지를 향해 머리를 대고 절을 올렸다. 그가 다시 일어서서 기둥을 잡고 나즈막히 무언가를 외기 시작하자 기둥은 부자연스럽게 흔들리며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창조신이여, 당신의 힘을 담은 부적과 우리의 기원을 모아 이렇게 기도하오니, 부디 이 세계를 수호해 주소서..."

이노우에는 생전 처음보는 이러한 광경에 잠시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잊고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빛은 기둥에서 나와 하늘로 솟구쳤고, 동시에 먼곳에서도 네 개의 빗줄기가 하늘로 쏘아져 이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날아온 네 줄기 빛은 이곳의 빛과 합쳐쳐 잠시 구 모양을 형성했다가, 가루가 되듯 흩어지며 사라져갔다.

"이걸로 일단은 안심이구나. 하지만 저들이 준비하는 저주는 이것만으론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귀술아. 일단 모든 백영 사람을 서울로 집결시키도록 하거라."

"예 총수님!"

"결계를 쳤으나 분명 금방 무너지겠지. 저주를 쉽게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흑영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귀술아."

총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반쯤 이해됬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총수는 그의 머리를 통 치면서 다시 말했다.

"나와 이노우에가 방어에 가담할수가 없으니, 앞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충돌이나 전면적 대치 상황은 모두 그대에게 맡긴다는 뜻이네, 이제 무슨 일인지 알겠는가?"

"아. 물론입니다 총수님!!"

"아, 그리고, 그 스파이 말일세 그 건도 이노우에 대장과 빠른 시일내에 처리하길 바라네. 다시 우리 쪽으로 넘어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엔 아마 언젠가 한번은 다시 이곳에 나타날 테니까 말일세."

"알겠습니다 총수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이노우에의 어깨를 툭툭 쳤다. 힘내라는 의미와 이제부터 고생길이 훤하다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져 있는 제스쳐였다.

"그럼, 가봅세."

*  * *

2032년 2월 15일 오전. 세빈이 입원한 모 대학병원의 병실.

아직 세빈은 눈을 뜨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저나 예상외네요, 지훈이가 수술하고 있던 병원이었다니."

"설마 같은 병원에 양가 자식들이 이렇게 줄줄이 눕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세빈 옆에 앉아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윤하와 혼다, 그리고 유진이었다. 처음 세빈의 소식을 들은 유진의 표정은 무언가 얼떨떨한 표정이었으나 지금은 그냥 담담하게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후 병실의 미닫이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재희가 병실로 들어왔다.

"할머니 상태는 좀 어떠셔?"

"많이 좋아지셨대. 지훈이도 수술 잘 끝났다며?"

"어, 의사 말로는 정말 천만 다행이라더라고. 조금만 더 옆으로 지나갔으면 즉사했을 거라고 하더라... 어제 새벽에 우주 녀석 술먹으면서 '지훈이 죽으면 나도 죽을거야!' 이러던거 겨우 말렸다고.."

"용케 술먹고 출근했네. 어쨌든 둘다 무사해서 천만 다행이다."

재희는 말도 마라며 고개를 저었다. 조심스레 유진이 옆에 앉은 그는 어제부터 계속 상태가 시무룩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라 유진아, 할머니 곧 깨어나실테니까. 그나저나 말도 안하고 언제 그렇게 서로 바꿔치기를 한 거니?"

"..."

"그래 알았다.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가보구나. 여튼 아빠는 다시 일 하러 가볼테니 엄마랑 할머니 잘 지키고 있으렴. 알았지?"

그녀가 어제부터 말을 잘 안했기 때문에 재희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에 답하듯 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 여보."

"다녀와요."

재희가 방에서 나갔고, 윤하도 지훈이의 상태가 궁금했는지 그가 입원해있는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방에 남은 사람은 유진과 구석에 조용히 숨어 있던 니시노 둘 뿐이었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 니시노에다가 현재 우울한 상태로 말이 없는 유진이까지 함께하니 병실 안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몇 분 뒤 혼다가 병실로 들어오고 나서야 그 침묵은 깨졌다.

"아... 왜 이렇게 조용하죠?"

"..."

"......"

허나 침묵이 깨졌다고는 해도 말 하는 건 거의 혼다 뿐이었다.

"일단, 유진 아가씨 거듭 사과드립니다. 영수님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건 저희의 불찰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어제 밤 치료가 끝나고 세빈이 병실로 옮겨지기 전에도 두 사람은 유진의 가족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사죄를 드렸다. 하지만 역시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컸는지 그들은 거듭해서 용서를 빌었다.

"괜찮아요. 어쨌든 크게 다치지 않고 돌아왔으니까요."

이상하게 오늘따라 유진이의 목소리는 조금더 차분했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분명 용서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었지만, 뭐랄까 좀더 숨겨진 분노가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언니는 언제쯤 일어난다고 했었죠?"

"아, 아마 이제 곧..."

그녀는 혼다의 대답을 듣고 나서 곤히 자고 있는 세빈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었다.

'언제쯤 깨어나려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데...'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던 유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잠이 들었다.

"니시노, 담요 덮어드리거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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