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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26화 (125/188)

126화

*

[털썩]

"정말 시끄러운 계집이로구만. 불여우와 똑같이 생겼는데 어찌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흑향이 기절한 유진을 보면서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 대장님. 혹시 이 녀석은 단순한 대역이 아닐까요? 단순한 대역이라면 그들이 절대로 우리에게 접근해오지 않을텐데요..."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내야지. 한세빈을 보호하려 한 것을 보면 분명히 이 년도 뭔가 관련이 있다. 대역이라도 아는 정보 하나쯤은 있을 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라 흑향."

"... 알겠습니다 대장."

*

한편 같은 시각 근처의 대학 병원.

"지훈이는..!! 지훈이는 괜찮은거냐 재희야?!"

먼저 소식을 듣고 집에서 온 재희 가족과 세빈, 그리고 세빈의 보디가드 두 명이 수술실 밖을 지키고 있었고, 뒤늦게 따라온 우주가 재희의 팔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게 미안하게 됐다... 아직 수술중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의사가 살 수 있는 확률은 30퍼센트 정도라고..."

"뭐...?"

우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20년 전 윤하의 일을 마지막으로 재희와 자신의 가족들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 믿었건만. 이런식으로 일이 터질 줄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미안하다 우주야... 기도하자. 분명 지훈이는 괜찮을 거야..."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그를 위로하는 재희 역시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자신의 딸인 유진이도 지금 행방불명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미리 알아서 지켰더라면!"

"아니에요... 아까 유진이 혼자서 지훈이를 찾으러 간다고 나갔을 때 말렸어야 했는데."

"그게... 사실은 사고가 있기 직전에 지훈군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혼다의 말에 재희가 고개를 돌렸고, 윤하와 세빈은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궁금해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마 그 당시 암살자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유진이는 뛰고 있었고, 재희는 업혀서 저에게 전화를 했으니까요. 분명 도망치던 와중 지훈이가 총에 맞았고...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유진이는 지훈이를 두고 그들에게 잡혀갔을 지도 모릅니다."

좋지 않은 일이었다. 지훈이도 지훈이지만 암살자들이 유진이를 데려간 이상 그녀를 절대 가볍게 풀어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세빈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유진이에게 위해를 가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혹은 유진이를 인질로 잡은 뒤 세빈을 요구하는 상황도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훈이는 반드시 살아날 거다. 그러니까 우리도 유진이를 서둘러 찾지 않으면 안돼!!"

재희는 벌떡 일어나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분명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강력한 조력자에게 연락하는 중이 분명했다.

"그럼 저희는 사건 현장으로 다시 가서 수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영수님.. 조심하십시오!!"

"전 걱정 마시고, 신속히 유진이를 구해주기 바래요 여러분."

"알겠습니다 영수님!!"

하늘의 달빛이 약간 불그스름했다. 기분나쁜 음침한 색으로..

*

"푸허억-!!"

"어서 대답해라 한세빈은 어디있냐!!!"

유진의 머리와 얼굴은 물로 젖어 후줄근한 상태였다. 머리채는 장 티엔에게 잡힌 채 한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쿨럭... 쿨럭쿨럭-!!.."

"다시한번 묻겠다. 한세빈은 어디에 있냐..."

"쿨럭... 크.. 쿨럭... 크푸우-. 멍청한 새끼들... 실컷 날 고문해봐도 소용 없-캑캑..-다니까 그러네..."

'지훈이는 괜찮을거야... 나도 여기서 살아나가기만 한다면 이 자식들을 역으로 붙잡아 세빈 언니를 원래 시공간으로 돌려보낼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든 버틴다...!'

추운 날씨 때문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코에 물이 들어차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유진이는 어떻게 된 정신력인지, 눈하나 깜짝 안하고 암살자들의 고문을 버텨내고 있었다.

"독한 계집 같으니.."

[철썩-!!]

장 티엔의 손바닥이 유진의 뺨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얼마나 강하게 쳤는지 그걸 맞은 유진이는 그대로 넘어졌다.

"흑향! 잘 감시하고 있어라, 난 저년이 착용하고 있던 이상한 기계를 조사해 볼 테니.."

"알겠습니다 대장..!"

"빌어먹을, 저 이상한 전화기는 쓰는 방법을 모르겠군... 방법만 안다면 이년을 인질로 잡아 한세빈을 끌어낼 수 있을텐데."

그가 밖으로 나가고 나서, 흑향은 조용히 의자에 걸터앉아 유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유진은 물고문이 멈춰서인지 이내 숨이 조금 편안해졌다.

'후. 메카수트는 뺏겼고... 없이 싸우자고 생각해도 지금 몸이 이 상태여서는 절대 무리다... 저녀석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있는 한은.'

불편한 자세로 누워있던 그녀는 데굴 굴러서 몸을 웅크렸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젖은 몸이 슬슬 얼어붙으며 이가 딱딱 부딪쳤다.

'손을 묶은 것은 단순한 밧줄... 그렇게 두껍진 않지만 손의 힘만으론 절대 끊을 수 없어...! 끊을 수 있을만한 물건이라면 저 암살자들이 가진 칼 정도일까...'

생각처럼 답은 나오지 않았고,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유진은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며시 눈을 감았다.

*

한편 지훈이가 총에 맞은 사건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자들과 카메라, 그리고 경찰이 대치중이었다.

"니시노! 이쪽으로 와봐!"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길바닥에서 혼다는 무엇인가 발견했는지, 멀찌감치에서 이곳저곳을 찾아보던 니시노를 불렀다.

"뭔가 발견했습니까?"

"이걸 봐, 분명 바닥에 질질 끈 발자국 모양이야. 추정되는 발 사이즈는 현재 영수님과 거의 동일하지... 어떻게 생각하나?"

그가 발견한 것은 살짝 얼어붙은 물로 찍은 발자국이었다. 분명 근처의 눈이나 얼음을 고의로 밟아서 일부러 남겼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해 보였다.

"둘중.. 하나겠지요? 하나는 유진 아가씨가 남겼을 가능성.. 또하나는 암살자 녀석들이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함정."

"그렇지 역시?"

쉽게 생각하면 단순히 유진이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며 남긴 발자국일 수도 있으나, 좀 깊이 생각해보면 암살자들의 책략일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혼다는 몇 걸음 더 앞으로 걸어가 발자국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 두녀석이 과연 이 발자국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인가...'

"그런데 함정 치고는 굉장히 불성실하군. 이렇게 몇개 안찍어놓고서야 우리가 찾아갈 수 있을리가 만무하잖아 안그래? 아무래도 이건 역시 유진 아가씨의..."

"혹시 근처에 이어진 발자국이 더 있지 않을까요?"

"그래 일단 수색해보자. 한시가 급하니까...!"

*  * *

2000년의 같은 날. 2월 14일 새벽 1시.

백영의 수뇌부. 광백(光白)

"그게 사실이야? 오늘 그 분이 오신다는게 말야."

"사실이래. 지금 그래서 모든 병력들이 전부 광백에 모여 있잖아."

전쟁 중이며 그들의 대도시 하나가 쑥대밭이 된 것 치고는 오랜만에 은거지는 활기를 띄고 있었다. 누군가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고, '그 분'이라고 높여 부르는 이가 오기를 모두가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거리던 은거지의 한쪽으로부터 웅성거림이 멈추었고 그 적막은 움직이고 있는 누군가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오오. 유나야 왔느냐!"

"... 총수님, 이제야 뵙게 되네요.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하구나. 그간 흑영의 일로 워낙 바빴으니 말이다."

조용히 갈라진 인파 사이에 만난 두 사람은 바로, 총수 서규찬과 부(副)영수인 이유나였다. 이유나, 그녀는 백영 내에서 두 번째로 예언몽을 잘 다루는 인물이자 총수의 아들인 서 진의 아내 되는 사람으로, 영수 한세빈이 사라진 지금 불안에 떨고 있는 백영의 일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예... 가기 전에 모이신 백영의 일원들께 축복 기도를 좀 드리구요."

"허허허. 그래 마음내킬 대로 하거라. 먼저 들어가 있으마."

"네 총수님."

서 총수는 먼저 은거처 안쪽의 총무실로 들어가고, 이유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광장으로 향했다. 인파가 그대로 그녀를 따라 광장을 빙 둘러 자리를 잡았다. 마치 두꺼운 도넛 모양의 인파 가운데에 이유나가 서 있었고, 이내 그녀가 입을 떼었다.

"여러분."

살짝 웅성이던 소리도 이내 그녀의 말과 함께 사그라들었고, 공간에선 그녀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지금 백영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두들 그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계속된 흑영의 공격에 파괴된 그들의 은거지를 비롯해 잦은 암살자들의 고위 간부들 살해 위협까지. 백영은 현제 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흑영에게 굉장히 수세에 몰리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수님이 없는 지금, 원래 영수님께서 함께 하시려던 흑영을 저지하기 위한 계획은 차질이 생겼지만, 어떻게든 저희는 새로운 방법을, 이 세계를 구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유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을 탁 치며 외쳤다.

"혹여 제가 희생하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저는 꼭 이 세계와... 이 세계를 조율하는 백영의 일원 여러분들을 반드시 지켜내고 말겠습니다. 부디 다같이 힘을 모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고개 숙여 사람들에게 꾸벅 절을 하자,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그녀에게 절을 했다.

"여러분 한 명 한명의 기도가 모여, 악의 무리로부터 이 세계를 지킬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신께서 우리께 주신 힘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강대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의 관리자이자 구원자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운들 내세요."

마지막 한 마디를 끝으로 그녀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규찬 총수가 기다리고 있을 방으로 이동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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