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
커피 한잔 하고 집에 돌아오는길, 2월도 중반인데 아직 추위는 가실 줄을 몰랐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사박사박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에쒸~ 이런 눈 정말 싫어!”
바닥에 쌓이지 않는 질척질척한 진눈깨비 같은 눈은 유진이 정말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이다. 차라리 함박눈이라도 내리지, 이렇게 날씨도 추운데 뭔 눈이 이렇게 온담.
“이상하다. 영하 5도밖에 안되는데 오늘 왜이렇게 추운거지..”
지훈이는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추웠는지 유진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째 남자는 지훈이고 여자는 유진인데, 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건 유진이인 것이 남들이 보기에 쪼금 묘한 장면이었달까.
“야야, 좀 떨어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고..”
“... 어. 어 그래.”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옆에서 슬쩍 물러났다. 그치만 추운걸 어찌하리. 목도리로 얼굴도 칭칭 감고 있는데도 이 모양이니...
“그나저나 다행이네, 혼자 갔길래 인질로 잡히기나 하는건 아닐까 했는데 무사히 잘 다니고 있었고 말야.”
“아, 맞다. 완전 있고 있었어!”
“어이어이. 자각을 좀 가지라고! 위험한 때거든?!”
거참, 메카에 정신팔려가지고 지금 누구한테 위협을 받고 있는지도 완전 까먹다니. 이럴수록 유진은 지훈이가 걱정될 수 밖에 없었다.
‘참... 언니 지키기도 바쁜 와중에, 이 녀석은 또 왜 이녀석대로 이렇게 쏘다닌담.. 갑자기 방랑벽이라도 생겼나.’
[- ! -]
“헉-!”
“왜, 왜그래 유진아?!”
실소를 지으며 지훈이의 볼을 꼬집던 유진은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살의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분명 좋지 않은 시선과 살의가 느껴진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불길한 기분이 든 유진은 서둘러 지훈이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야야, 야 왜그래?”
“쉿! 누군가가 우리 뒤를 쫓고있는 것 같아...!”
“뭐-!-읍!-”
갑자기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던 지훈이의 입을 틀어막은 뒤, 그녀는 세게 녀석을 때렸다.
“멍청아 조용히!”
“아욱-!”
빠르게 지하철로 향하면서 그녀는 힐끔힐끔 뒤를 돌아봤다. 앞을 보며 뒤도 같이 봐야하고 지훈이까지 끌고 가야해서 정신이 없었다. 급히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분명히 간간히 느껴졌다.
‘쫓아오고 있어! 설마 그녀석들인가?!’
지하철 역 개찰구를 지나면서 한번 더 뒤를 돌아본 유진이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틀림없는 그 암살자들이었다!
‘일단.. 동네로 재빨리 돌아가야겠군. 사람이 많으니까 저자들도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테니, 일단 집 근처로 가서 혼다씨나 니시노 씨를 불러야 해...!’
계단을 뛰어내려오니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유진은 내려서 출구에 가장 가까운 열차칸을 금세 떠올렸고, 서둘로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훈아, 잘 따라와!”
* * *
2000년의 같은 날 밤. 감백(坎白)의 남쪽 기슭.
서규찬 총수는 손에, 1주일 전 이백에서 들고있었던 물건과 같은 물건을 들고있었다. 조용히 산을 오르는 그의 뒤쪽으로 낙엽과 눈을 밟는 많은 소리들이 따라 들렸다.
“거참 이상하군... 오늘 내가 여기 온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거늘... 어찌 알고 흑영의 무리들이 여기까지 따라왔단 말인가.”
총수는 뒤에 따라오는 기척들을 향해 한 마디 한 뒤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50세를 넘긴 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산행속도였다.
‘설마 했는데 그녀석이 이런 짓을 벌이고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건만... 역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틀린게 아니군.’
그와 동시에 그를 쫓던 기척들이 숲에서 하나둘씩 뛰쳐나왔고, 새카만 망토로 얼굴을 가린 수많은 그림자들이 그를 쫓기 시작했다. 손에 빛이 나는 물건을 들고 있는 서규찬을 거대한 그림자가 쫓는 듯한 형상이었다.
‘거의 다 왔군.’
정상이 보이자 그는 직선으로 달리던 방향을 틀어 갑자기 나무가 우거진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기세라면 쫓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추격하는 무리들은, 그러나 얼마 뒤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달을 등지고 있는 산비탈 방향에 나무가 가득 있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버리게 된 것이었다. 아까 보였던 빛도 숨겨두었는지 지금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대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다시 기척을 숨기고 천천히 주변부터 살펴라, 이런 어둠 속에서는 녀석도 얼마 가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후 웅성이던 그림자들이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고, 비탈의 정상 쪽에서 뭔가 움직임이 보였다. 아까의 그 빛이었다.
“거기 애송이들. 거 늙은이 하나 이렇게 못잡아서 쓰겠는가? 분명 흑귀가 보내서 왔을 테지...”
“저깄다! 추격해라!!”
약간 거리가 떠 있긴 했으나, 따라잡으려거든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였는데도 총수에겐 여유가 넘쳐흘렀다.
“아참, 그냥 가긴 아쉬울테니 선물을 준비했는데. 맘에 들었음 좋겠군 친구들.”
“뭐라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꾹 하고 눌렀고, 그와 동시에 암흑이었던 산비탈이 갑자기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대장 함정입니다!!!”
“크앗!!”
바닥에서 수많은 폭죽들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기 시작했고, 총수를 향해 달려가던 흑영의 무리들은 폭죽에 맞거나 놀라서 넘어지는 등 완전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것 뿐, 폭죽 이후에 화살 세례라도 날라올 줄 알았던 무리의 우두머리는 아무것도 추가타가 들어오지 않자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거참, 정예 특공대도 생각보다 별거 아니군. 고작 폭죽 따위에 두려워그리 벌벌 떠는가! 하하하하!”
그 사이에 폭죽 트랩은 모두 날아간 뒤였고, 다시 산비틀은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이자식이!!! 곱게 못 죽을 줄 알아라!!”
“뭐, 끝이라고 생각했나본데, 사실 그게 끝이 아니었네만..”
“-뭣?!”
[피슝-!!]
하지만 그것은 모두 총수의 계략이었으며, 보기좋게 도발에 걸려든 흑영 무리들은 미처 산 위쪽에 총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너무 늦게 확인했고, 그들이 제대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건 이미 그들의 몸 가까이에 화살이 날아왔을 때였다.
“기습이다!! 모두 도망쳐라!!!”
[쐐애애액-! 푸푸푹! 푹!!]
“크악!!”
“으아악!!!”
깊은 밤 산 기슭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고, 얼마 뒤 산은 다시 고요해졌다. 총수는 아래쪽에 있던 기척이 모두 사라졌음을 느끼고, 발을 돌려 다시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상에서 저번에 이백의 산기슭에 묻었던 것처럼, 총수는 가져온 빛나는 물건을 땅을 파 묻었다.
“다 됐군. 이제 곤백과 건백만 남았구나, 이노우에.”
“예 총수님.”
그가 다 묻고 허공을 향해 호위대 대장 이노우에의 이름을 부르자, 어둠 속에서 그가 홀연히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뒤따라왔습니다.”
“아니다. 뭐 굳이 안와도 되었을 법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 이런식으로 움직이시는건 좋지 않습니다 총수님. 이러다가 기습이라도 당하신다면-”
총수를 걱정하는 이노우에였지만, 그는 말을 이어가려던 자신의 호위대 대장을 바라보며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이노우에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뭐, 이왕 온 김에 날 추격한 흑영의 무리들을 마무리를 해줬으면 하네 이노우에.”
“예 맡겨만 주십시오 총수님.”
서둘려 비탈을 내려가려던 그를 다시 부른건 서규찬 총수였다.
“참. 돌아가면, 할 말이 있네. 내일 낮에 광백의 내 방에서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긴급한 일이신지요”
“아 뭐 그렇게 급한 건 아니고, 그냥 차나 한잔 하자고 부르는거니 염려 말게나.”
그러면서 그는 몰래 이노우에의 옷자락에 접힌 종이 쪽지를 집어넣었다. 이노우에도 이렇게 두 번 꼬아서 말을 전하려는 이유는 확실히 몰랐지만, 아마도 중요한 일일 것이라 생각하며 모르는 척 산을 내려갔다.
“흐음... 그러고보니 귀술(鬼術)이 놈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하늘 위에 떠있는 둥그스름한 달을 보며 총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세빈에 대한 생각이었을까, 생각에 잠기려던 그는 놀라서 번쩍 눈을 떴다.
“뭐 잘 하고 있겠지...”
조용히 중얼거린 뒤 그는 소리 없이 산길을 내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밝은 달빛이 비추는 그 자리엔 잠시후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나타났고,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종이를 펼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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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won1999// 여깄습니다 다음편!!
TY.. // 욕구해소용으로 쓰는거라 괜찮... 아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