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지금? 용산 아케이드에 있지. 그 3구역에 메카닉 전문몰이야 왜?]
“너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지금당장 갈테니까!”
[으응?? 왜?!]
스마트폰 너머로 들리는 지훈이의 목소리는 당황함이 가득했다. 뜬금없이 갈테니까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니, 누구라도 어이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
“넌 겁도 없냐. 지금 세빈 언니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우리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데. 너 돌아다니다가 니가 인질로 잡히기라도 해봐, 난리 난다고 난리.”
[무슨!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잡혀갈 사람으로 보여?]
“당연하지. 너 나 이겨?”
[... 아니 그건 불가능하잖아!!]
“그러니까 닥치고 가만히 있어 이놈자식아.”
분명 지훈이는 지금쯤 ‘아오.. 이놈의 독불장군!’ 하면서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쉴 곳을 찾고 있을 것이다. 뭐, 유진이는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쏙 집어넣었다.
“짜식이.. 요새 들어 자꾸 내 말을 안 듣네. 내가 아무리 여자로 변했기로서니 성격은 그대로건만..”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나서 다시 아래쪽을 보니, 유진이는 한숨만 나왔다. 근처 가게의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어여쁜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싫으면서도 어색하진 않은 기분?
‘여자 옷을 내가 뭘 알아야지. 그러다보니 엄마가 코디해주는 스타일에 익숙해진건가. ...그래도 뭔가 인형놀이 당하는 기분이란말이지.’
*
한편 용산에서 전화를 받은 지훈이도 묘한 기분이었다. 유진이야 그냥 소꿉친구의 안전을 위해 간다고 가는것이겠지만, 지훈이 생각은 달랐다.
‘유진이가... 날 위해 직접 여기까지 지켜주러 오다니!! 역시 유진이에게 난 소중한 사람의 부류로 들어가는구나...’
뭔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한 게 보이지만 그정도 행복감은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늘 유진이 생각만 하는 지훈이에 비해 그녀가 이렇게 지훈이의 안전을 고려해서 직접 찾아와주는 것은 다신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 어떻하지. 추우니까 따뜻한 커피라도 사들고 있어야 하나?’
마치 첫 데이트를 하는 여중생 소녀의 마음이라도 된 듯 지훈이는 안절부절 못 하고 들뜬 마음이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났다. 곧 찾아올 그녀의 모습이 어떨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무슨 대화를 나누게 될지도 기대 만발!
‘아참, 그렇지. 유진이를 위해서 용산에 왔는데 일단 하던거 마저 하고.’
지훈이는 시계를 봤다. 지금 출발했다고 했으니 대충 걸리는 시간은 20분 가량. 바삐 움직이면 금방 끝내고 다시 여기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위한 가장 큰 선물이자 지원품을 공수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
한편 유진의 집에선 세빈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럼, 만나보면 되죠? 그런 다음에 원하는대로 구워삶으면 되잖아요.」
어제 유진이가 던졌던 짧고 굵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분명 암살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세빈에게 있어 굉장히 위험한 일임은 분명했으나, 미래로 넘어온 이들 없이는 과거로 돌아가기가 힘든 것은 분명했다.
그녀가 겪고 있는 미래엔 강한 꿈꾸는 힘을 가진 사람이 없었음이 바로 그 이유였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의 힘을 모두 합친 들 과연 과거의 장 티엔 만큼 힘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양날의 검이며... 얻는 것이 큰만큼 위험부담이 크지...’
그러면서 일주일 전쯤 자신을 지켜주며 어서 도망가라던 유진이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분명 자신의 젊었을 적 모습과 너무나도 판박이인, 워낙 가녀린 모습이라 그런 당당한 모습은 절대로 보여줄 수 없을 것만 같은 유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그녀의 등은 정말 커 보였다.
‘유진이 녀석... 나의 젊었을 때와 워낙 판박이라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젊었을 때의 나의 패기넘치던 모습과도 닮아서 더욱 놀랐지...’
자신이 위협에 노출되지만,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현재의 이 행복한 미래도 없을 것은 뻔했다.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흑영의 순응의 저주로 인해 백영은 무너지게 될 것이고, 그야말로 이 미래는 흑영이 지배한 공포의 세상이 된다.
‘역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인가..?’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여보. 당신이라면 지금... 내게 어떻게 하라고 했을까요...?’
*
모자에 털이 복실복실하게 달린 코트를 입은 소녀가 인파를 헤치고 가볍게 달리고 있었다. IT천국 용산에는 역시 수많은 남성들이 있었는데, 그 사이를 헤치며 달리는 이쁘장한 소녀는 단연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어디보자... 여기가 2구역이니까. 3구역이면...”
과거에도 꽤나 큰 규모를 자랑했던 용산 전자상가는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발전한 IT기술 덕분에 그 규모는 배 이상 확장되었고, 구역도 총 5개 구역으로 나뉘어 각 구역마다 다른 기술들이 상가를 이루고 있었다.
‘으어아아아~!! 왜이렇게 쳐다보는거야 젠장~~!!’
얼굴을 붉히진 않았으나, 그녀도 계속해서 날아오는 시선들이 신경쓰이는지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애써 날아오는 시선들을 무시하며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뚜르르르~]
‘받아, 빨리! 어서! 지금이야, 빨리!’
그녀가 빠른 속도로 3구역 입구에 도착했을 즈음, 지훈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야!!! 어디야!”
지훈이는 전화를 받자마자 귀를 가까이 댄 것을 굉장히 후회했다. 엄청난 고주파가 날아와 귀가 아플 정도였다.
[-악! 귀아파!! 뭘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그래!!]
“3구역 들어왔는데 어디야!”
[아 정말..! 하여간 성질 하곤... 지금 3구역 광장에 분수 있는 곳이야 앉아 있어.]
“기다려!”
뚝.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유진이었다. 지훈이는 혹여나 고막이 찢어지진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양쪽 귀를 번갈아 막아보며 소리를 들어봤지만 다행히 아픈 것 빼곤 문제가 없어보였다.
한 2분정도 기다렸을까, 저기 인파를 헤치며 시선도 모으면서 달려오는 소녀가 한명 보였다. 멀리서 봤을 뿐이지만 그녀의 귀여운 옷차림에 지훈이는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우왓..’
“헉헉헉헉헉헉헉헉...”
“왜... 왜그렇게 뛰어오는거야...”
“다.. 당연히 걱정되서 그러지 이눔시끼야!”
유진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더 그랬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뭐 그 말 대신 걱정되서 그랬다는 말을 한 덕분이 지훈이의 심장에 화살을 꼽아버렸지만.
“저.. 정말?! 내가 걱정되서!?”
“? 그럼 내 절친이 지금 아무런 보호도 없이 혼자 나가있는데 걱정이 안되겠냐.”
“아, 아아.”
‘그렇지.. 절대 유진이가 날 좋아한다거나 해서 달려온건 아니겠지... 아우! 또 쓸데없는 생각을-!!’
지훈이는 혼자 ‘유진이가 오면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해주고 해야지~’하고 상상하던 것을 바로 가슴속에 묻어버렸다. 분명 자꾸 김칫국만 마시고 있는데도, 상상하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야 근데 왜 너 갑자기 여긴 왜 온거야? 메카수트에 필요한건 1달 전쯤에 다 샀다며.”
“아아.. 하긴 그때 반년정도는 안 와도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던가.. 근데 뭐 상황이 좀, 바뀌었잖아 그때랑은.”
“어이구 누가 메카수트 덕후 아니랄까봐. 뭐 샀는데 그래서?”
그가 씨익 웃으며 중간크기의 종이봉투에서 박스 하나를 쓰윽 꺼냈다. 일반 사람들은 봐도 뭔지 모를 물건이었으나, 유진은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어, 엇... 이건!!”
“짜잔~ 어떠냐!”
물건을 본 유진은 두 손으로 들어올리고선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격에 차 약간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
“이건...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어했던 초소형 추진-역추진 동시기동 엔진아냐...!!”
“맞습니다~! 이걸 달아주려고 내가 팔 장착용 2개랑 다리 장착용 2개, 그리고 연결 부품 및 추가적인 전력소모에 대비하기 위해 추가 전지팩까지 구매했지!!”
“우와..우..우와....”
처음 보여준 박스 말고도 다른 박스들이 다른 봉지에서 튀어나오자 유진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해서 ‘우와~’하는 감탄사만 연발하면서 물건들을 영접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야야, 근데 이거... 이렇게 많이 사면 너 돈이...”
물건도 물건이었지만, 이 많은 것을 한번에 구입한 지훈이의 금전상황이 내심 걱정이 되었던 유진은 박스들을 내려놓고 지훈이에게 물었다.
“에엣. 아 뭐.. 그거야 용돈 받던거에서 계속 모으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이번에 쓴건 70%정도밖에 안되는걸.”
“너 다른데다가 쓰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뭐.. 어짜피 난 메카수트 조종자인 너랑 항상 같이 붙어다닐거고.. 그 메카수트를 입는건 너지만 관리하고 업그레이드 하는건 내 몫이잖아. 어짜피 3학년 과정부터는 이 추진기도 꼭 필요하고 말이지? 일찍 장착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지훈아...”
급하게 달려와서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유진이는 고마움에 몸둘바를 몰랐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해야 되나 하고 생각하던 유진이는 기쁜 표정으로 서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 가볍게 안겼다.
“고마워. 이건 고마움의 표시!”
“헉-! 자, 잠깐만 이렇게 갑자기-!!”
역시나 사이즈가 사이즈라 그런지.. 181센티인 지훈이에게 163센티의 유진이가 안기니까 가슴팍에 쏙 들어갔다. 유진이 나름대로 그에게 칭찬하는 포옹이랄까.
‘해.. 행복하다....!!’
그녀를 안고 있는 지훈이의 머릿속에서 또다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고, 유진이에게 부담을 주면 안된다라는 이성은 조금씩 그의 뇌 구석탱이로 밀려나고 있었다.
“자, 됐지? 음... 아니면 이걸론 좀 부족한가..? 가서 뭐라도 마실래? 내가 살게.”
“아-. 어...”
다행히 금방 유진이가 빠져나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분명 지훈이가 폭주했을지도 모른다. 짐 한 봉지를 먼저 들어 커피숍으로 걸어가는 유진이의 뒤를 따라가며 지훈이는 아쉽지만 일단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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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won1999
TY..
// 늘 코멘과 추천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