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저녁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오니 혼다와 니시노가 세빈과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와 있었다.
“전혀 감이 안잡히는군요 영수님.”
“그러게요. 거의 확실한 방법은 알고있지만 너무 위험해서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는것도 불가능하고 말이지요.”
표정이 안 좋은걸 보니 오늘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겠다고 나갔으나 별 소득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꿈꾸는 힘과 관련된 이야기, 함께 시공간을 건너온 암살자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렇다면 그녀석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역시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기도 하니...”
세빈은 분명 마음이 급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많은 일들을 하지도 못 한 채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고, 그런 와중에도 마땅한 방법도 찾아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깥사람과 흑영을 막아낼 계략의 목표일이 앞으로 몇 달 안 남았다... 한시가 급해...’
중요한 대화가 끝난 후 조용히 식사가 계속되는데, 유진이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열였다.
“그럼, 만나보면 되죠? 그런 다음에 원하는대로 구워삶으면 되잖아요.”
뜬금없는 강경책에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윤하는 또 위험한 짓을 사서 하려는 유진이를 말리려 했다.
“엄마 잠깐만.. 그렇잖아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세빈언니 표정 보면.”
세빈은 그녀의 그 말에 뜨끔 하고 놀란 기색을 내비치더니 이내 다시 정색했다.
“그렇다면 이럴땐 일단 부딪쳐 봐야죠. 지금은 흑영인가 뭐시깽인가 하는 악당 패거리도 없다면서요? 이쪽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셋, 저쪽은 둘. 당연히 수적으로 우리가 유리한데!”
“이녀석아 너 그러다 또 다쳐!”
“난 메카수트 입으면 무적이야 엄마~.”
[콩]
“또또, 너 그렇게 자만하다가 언제 한 번 큰코다친다고 했지!”
가만히 듣고 있던 재희가 유진이를 진정시킨 뒤 입을 열었다.
“물론.. 그 방법도 좋긴 하겠지만, 일단 유진아 진정하고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거 알잖니? 조금 더 생각해보고 움직이도록 하렴. 아빠는 일 때문에 도와주기도 쉽지 않고 말이야.”
얌전해진 유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재희는 미소를 지었다.
“유진이가 할머니를 지켜주기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특하구나.. 늘 지켜줘야만 할 것 같던 여린 아이였는데 언제 이렇게 다 컸는지.. 하하.”
“...칫.”
“아 맞다 지훈아, 부탁이 하나 있는데...”
“앗, 네 말씀하세요 아저씨.”
재희는 남자들끼리 할 얘기가 있다면서 지훈이를 데리고 잠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유진은 혹시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조금 걱정이 됐다.
‘뭐.. 별말 안하겠지.’
*
같은 시각 유진이네 집 근처 뒷산.
“큰일이군... 우리가 미래로 넘어왔다는 것을 어찌 알고 저자들이 따라붙었단 말인가... 불여우를 없애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군.”
[파스락]
“누구냐!”
“흑향입니다, 대장.”
싸늘한 겨울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지만, 이 두사람은 꽤나 얇은 옷을 걸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련을 해서인지 그렇게 추워보이지가 않았다.
“근처 주택가를 한번 수색했지만.. 닮은 녀석들도 발견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이 아닌 듯 합니다.”
“헛걸음을 했단 말인가... 그때 불여우와 똑같이 생겼던 그 여자를 잡아서 심문했다면 바로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장 티엔의 표정에 아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흑향은 그걸 보고는 아쉬운 위로의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래도 그 자, 생각보다 단련이 엄청나게 되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만만하게 보고 들어가서 그리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장.”
그러한 흑향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장 티엔은 그녀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됐으니까 그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흑향, 걱정하지는 마라. 일단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불여우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이니까. 일단 알아낸다면, 그때 보았던 닮은 자도 분명 함께 있겠지...”
어쩐지 어짜피 흑영의 이 두 암살자는 그 이후 성급하게 세빈을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성급함이 사라진데는,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는 장 티엔의 심경에도 이유가 있었다.
'알 수가 없군... 미래로 넘어오고 나서 자꾸만 내 행동이 옳은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장 티엔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유진이 사는 마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영운기계특성화고등학교 운동장 구석 벤치.
“그런 자초지종이 있었다니... 전화로 듣긴 했지만 다시 들으니 또 충격적이네요 누님.”
“하... 시벌... 어쩌다가 우리까지 이런 위험한 상황에...”
“그러니까 이 무식한 새키들아, 내가 맘에 안든다고 시비거는 것좀 작작 하라고 했잖아. 이건 다 니네들이 자초한 일이야.”
저번주 본의아니게 사건에 휘말렸던 한율과 찬웅은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암살자가 분명하고, 그들이 노리던 사람은 유진 아니면 그 옆에 있던 사람!
그렇지만 그 싸움에서 유진과 세빈이 살아남았으니, 다시 단서를 찾기 위해 자신들을 인질로 잡아낼 수 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 일로 똑똑히 배웠지? 착하게 살아 이놈들아.”
“예...”
둘은 마지못해 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 석연치 못한 표정이었으나 뭐 별 수 있겠는가.
“아무튼 당분간 혼자는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둘이 같이 다니고, 밤길 조심하고.”
“네?! 이 놈이랑 계속 같이?”
“누님 이상한 소문 납니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제안한 요구에 두 사람이 반박하려 하자, 유진은 무서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아오, 그럼 어쩌라고. 내가 너새끼들 시체라도 봐야 속이 시원하겠냐?”
“그... 그건 아니지만.”
“아니면 너네 메카수트 있지. 그걸 들고 다니던가 해.”
두 번째 제안은 꽤나 신빙성이 있어보였는지 두 사람은 살짝 화색이 돋는 모양이었다. 성격 안 맞는 둘이 같이 다니느니 메카수트 입고 있다가 도주하는게 훨 났다고 생각한 모양.
“쩝... 어쨌든 그 두놈의 행방이 잡히기 전까진 조심해야 돼.”
“지금 그런 상황이죠.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
“뭐 그렇지?”
유진은 벤치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툭툭 찼다. 아무래도 며칠동안 위험하다는 이유로 집밖에 거의 못나갔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누님 심심하죠.”
“뭐, 뭣! 아냐 이 새끼들아.”
“에~이 표정에 다 쓰여 있구만~ 우리 총질하러 고고~?”
그 표정을 읽었는지 두 사람은 유진이를 억지로 피씨방으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야야~! 야! 너네 이러다가 그놈들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글고 난 언니를 지켜야 된다고!”
“어짜피 보디가드 두분 계시다면서~ 딱 두시간만 합시다 두시간. 누님 실력 본지도 너무 오래 됐고.”
“아... 그, 하아... 그래 맘대로 해라 맘대로...”
유진은 저항하려다가 힘센 두놈이 자길 잡고 질질 끌고가자 저항할 의지가 사라진 듯 그냥 포기했다. 설마 피시방 가는 길에 두 암살자에게 걸리거나 하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뭐 다행히도 이 날은 아무런 일이 없었지만, 두 암살자의 행방이 파악된 것은 바로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오늘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서 여러건의 물건들이 도난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런데 카메라에 찍힌 범인이 바로 그 두 암살자들이란다.”
“네?! 암살자주제에 도둑질까지..”
“아마도 지금 복장은 너무 눈에 띄니까 사람들 속에 숨어 우릴 공격하려는 속셈이 분명하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더욱더 주의해야 할 거야. 우린 그놈들 얼굴을 잘 모르지만 그 녀석들은 유진이와 나, 그리고 지훈이를 아니까 말이다.”
세빈의 얼굴에 근심이 보였다. 그들을 먼저 찾아내기가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 분명했다.
‘끙... 역시 이런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피시방을 가다니... 으 정신차리자 한유진!!’
그리고 낮에 두놈에게 이끌려 피시방에 끌려갔던 유진이는 자신의 그 행동을 또한번 반성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지훈이가 정비부품 사러 전자상가에 혼자 갔는데.. 아무래도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유진이 너가 좀 가서 같이 있거라.”
“엣? 혼자 갔어요? 이것이 겁도없나... 근데 언니는 괜찮겠어요?”
“아아 난 걱정 말고 갔다오렴. 어짜피 혼다랑 니시노가 근처에 있단다.”
아무데도 안 보이는데 지금 집 안이나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렸다... 역시 호위대답네. 이런 평화로운 시대에 훈련을 절대 게을리 하진 않았나보다.
유진은 어제 개조해두었던 메카수트를 팔에 잘 숨겨서 장착한 뒤 다리 파츠를 가방에 넣었다. 날이 춥기 때문에 목도리와 레깅스도 제대로 챙겨 입고 채비를 단단히 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언니, 조심하시구요.”
“그래 너야말로 지훈이 만나서 잘 돌아오고.”
나가는 길에 본 세빈의 표정이 뭔가 미안함 가득이라 되려 유진이가 미안해졌다. 걱정해서 그녀를 보내면서도, 그 걱정거리가 자신 때문에 생겨서라는 생각 때문일까.
[뚜르르르]
“얘는 왜 또 전화를 안받는대.. 어딨는지 알아야 찾아가기라도 하지 참..”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하며 바닥쪽을 보던 유진은 자신이 어느새 치마에 적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뭐지?! 나 언제 치마에 레깅스를 입고 나왔...?!’
[여보세요? 유진아 왜?]
“어헉!! 어!! 그래 야! 너 어디야!!”
갑자기 전화를 받은 지훈이 때문에 유진이는 당황해서 혀를 깨물 뻔 했다. 자신이 몇주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여자 모습에 적응해있었다는 것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지훈이를 생각하며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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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
Jongwon1999 // 코멘 갑사합니다. 오늘도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