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3. 대적>
2000년 2월 6일. 서울 강남의 한 술집.
“흐하하하하하하!!! 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만 박사장!!”
“과찬이십니다 회장님. 다 회장님 덕이지요.”
어두운 술집의 룸 안에 모여있는 수 많은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울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웃는 것을 따라 다같이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그럼 내 이번 일은 모두 박사장에게 맏길 테니, 기대해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절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회장님. 자 받으시지요. 축배를 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좋지! 모두들 잔을 들라고!!”
박사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하하 웃으면서도 계속해서 시계를 잠깐잠깐 쳐다봤다. 분명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낌새였다. 그러나 술에 취한 다른 사람들은 그것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분위기에 취해 웃고 떠드느라 바빴다.
그는 잠시 자리를 피해 화장실로 빠져나왔다. 약간 취기가 오른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한번 한 뒤, 술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그는 생각했다.
‘순응의 저주의 초석이 드디어 오늘 놓여지게 되겠군’
아마도 이 사람은 흑영의 누군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이 꾸미는 무엇인가가 이제 곧 시작되려 하고 있음도 분명했다.
“후...후후하하하!! 이제 앞으로 몇 달 뒤. 모든 것이 끝나리라...”
*
2000년 2월 7일.
백영의 다섯 번째 은거처 이백(離白)의 서쪽 기슭.
“허허.. 새벽인데도 산을 오르는 자들이 굉장히 많군요 총수님.”
동이 트기 직전인 이른 새벽에, 서규찬 총수와 또 한 사람이 산기슭에서 도시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요...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가 이토록 고생하고 있는 것을.”
“그게 다 우리의 사명 아니겠소. 사람들이 모르는 그림자 속에 숨어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그들에게 생길 위협을 제거하며... 그들이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 때문에 우린... 지금 흑영과 싸우고 있지요 총수님.”
총수는 조용히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뒤에 따르던 사람은 품 안에서 조용히 부적같은 것을 꺼내더니 그에게 건넸다. 그 자그마한 물건은 어둠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흑영 놈들이 아무래도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총수님.”
“...”
조용히 받아든 물건을 보고 있던 규찬은 그것은 손 위에 올린 뒤 손을 높이 치켜들고 눈을 감았다.
“알고 있소 청명(淸明), 가장 선두에 서서 우리 백영을 헤집고 다니던 장 티엔이 사라졌으니 흑영도 더 이상 여유롭게 기다릴 순 없는 상태라는 것이겠지.”
“... 그들이 뭔가 독한 술수를 쓸 것 같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독한 술수를 쓴다고 우리도 따라서 강경하게 나가는것도 좀 아이러니한 일이지. 그렇지만 그 부분은 걱정 마시오...”
눈을 뜬 그는 다시 손을 내리고 물건을 조용히 품 속에 집어넣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그들이 얼마 후 도착한 곳은 산의 정상이었다.
“청명, 우리도 지금 한 시가 급하오.”
“그것은... 영수님의 실종 때문이겠지요?”
총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어둡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그는 가져온 삽으로 조용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앗, 제가 하겠습니다 총수님. 이리 주시지요.”
“됐네 이 사람아. 주변에 누구 없나 잘 살피기나 하게.”
땅을 어느정도 깊이까지 파낸 뒤, 그는 아까 받았던 물건을 다시 품에서 꺼내어 땅에 잘 묻었다.
“아까 자네 말대로, 우리도 지금 매우 위급한 상황이오... 내 아내, 영수가 없다는 것 자체로 우리가 계획하고 있던 일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지.”
“...그런!”
“비록 염원몽(念願夢)을 통해 계속 그녀의 귀환을 바라곤 있으나, 차원의 균열로 빨려들어간 아내를 찾는 것은 절대 쉬운일이 아니겠지...”
슬슬 동이 트려 먼발치에서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하자, 총수는 서둘러 내려가자고 청명을 이끌었다. 빠른 속도로 기슭을 내려오면서, 총수는 나지막이 청명에게 일렀다.
“청명, 내 말 꼭 명심하시오.”
“예 총수님. 말씀만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제자리에 선 총수는, 매우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절대, 오늘 한 말은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될 것입니다.”
“친위대...에게도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그의 뒤쪽으로 해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총수의 뒤쪽에서 후광이 빛났다.
“우리 백영 내에.. 스파이가 있소.”
* * *
2032년 2월 12일.
세빈이 위협을 받았던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 뒤.
그날 뒤 유진은 매일 지훈이를 불러 메카수트를 점검하고, 항시 그와 함께 메카수트를 소지하고 다녔다. 절대 분실하면 안된다는 위험부담이 있었으나 사람을 지키는데 그게 무슨 대수랴?
“어때 상태?”
유진이 메카수트를 착용한 채 폴짝폴짝 뛰면서 허공을 빠른 속도로 가격하는 것과 많은 단자로 연결된 스마트 탭 화면을 동시에 번갈아 보면서 지훈이는 빠르게 상태를 체크했다.
“좋네, 오른팔 왼팔 모두 개별적으로 잘 움직인다.”
여기서 메카수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처음에 잠깐 이야기 했지만 나이론맨이 입는 그런 병기의 느낌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몸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감싸 보호하면서 각종 무기들을 쓰는 그런 수트는 일단 절대 아니다.
뭐 이유라면, 나이론맨이 가진 초소형 원자로가 아닌 그것보단 훨씬 화력이 약한 초압축 전지팩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기하네. 나도 이런식의 응용은 처음 해봐. 역시 유진이는 머리가 좋다니까!”
“야야... 그렇게 너무 붕붕 띄우지 마..”
기본적으로 메카수트는 여러 파츠로 이루어져있는데, 머리를 제외한 좌우 팔, 좌우 다리, 가슴과 하체 파츠로 이루어져있다. 압축 전지팩은 가슴에 붙어있기 때문에 가슴파츠를 장착하지 않으면 기동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유진이는 이 점을 감안해서 상대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려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초압축 전지팩을 각각의 팔 파츠에 분리해 부착해서.. 입기 어려운 가슴파츠는 빼고 팔만 장착해 갑작스런 전투에 대비!”
[훅훅- 훅 후후후훅!]
지훈은 유진의 아이디어에 놀랐고, 그녀가 메카수트를 차고 엄청난 속도로 펀치를 퍼붓는 모습을 보며 또 한번 감탄했다.
“휴우...”
한참을 바쁘게 움직이던 유진이는 조금 지쳤는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녀가 입고 있던 흰 티셔츠가 슬쩍 비쳐 속옷이 보이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더헉... 무방비한 모습...’
지훈이는 실험 결과를 계속 보다가 그녀의 그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한동안 너무 정신이 없어 잠시 까먹고 있었지만.. 역시 그녀는 지훈이가 바라던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타입이 분명했다.
“야 나지훈. 어딜보냐”
“... 그, 그게.”
“하아-?”
그가 자신의 비친 속옷을 보고있었다는걸 알자 유진이는 금세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맞을 짓을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훈이는 눈을 질끈 감았으나, 그녀에게로부터 힘세고 강한 펀치는 날아오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이쁘다고 다들 난리인지 원... 속알맹이는 남잔데. 너도 볼 수 있을 때 지금 실컷 봐둬라.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에엑,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그-럼. 평생 여자로 살라고 이자식아?!!”
지금 말에는 엄청난 살기가 담겨있었기에 지훈이는 순간 자신의 입을 한탄했다.
‘하여간 이놈의 주댕이...!’
잠시 후 유진이는 씻으러 가버렸고 지훈이는 남겨진 메카수트를 점검하며 고민에 빠졌다.
‘하아... 진짜 어떻하지... 지금 유진이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제발 돌아가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역시 유진이는 날 그냥 친구로 생각할 뿐이겠지...’
멍하니 아까 유진이의 모습을 상상하던 지훈이는 문득 에전에 변하기 전의 유진이가 문득 떠올라버렸다.
‘앗차.’
항상 여리고 약하고 보호해줘야 할 것만 같았던 녀석. 소꿉친구이기도 해서 더욱 곁에서 지켜줘야할 것 같았던 녀석.
‘그런 녀석이 어느새 이렇게 컸담... 에휴, 역시 괜한 이야기는 안하는게 좋겠다. 나 혼자 속으로 삭이는게 낫지...’
지훈이는 과거를 회상하며 그렇게 수년동안 지켜왔던 그들의 우정을 얼마전 생긴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깨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야 지훈아. 밥 먹고 가래 엄마가”
“어-어? 어 그래- 푸핫!”
라는 생각도 잠시, 샤워를 마치고 티셔츠에 바지를 입지 않고 속옷 차림으로 등장한 유진이의 모습에 지훈이는 어쩔 수 없이 몸이 반응해 버렸다.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돌리려 애쓰는 지훈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진이는 당당하게 걸어들어와 지훈에 옆에 앉았다.
“어이. 친구. 왜이러시나?”
“너-너.. 옷좀 입어!!”
물론 그녀는 지훈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평소엔 하지 않던 짓을 하는 그가 재미있는 것 뿐이었지만.
“푸핫.. 바보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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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 골동품을 이제야 보셨군요 ㅎㅎ 즐감하세요Jongwon1999// 코멘감사합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