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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11화 (110/188)

111화

*

“아니야... 이건 진짜 꿈일거야...”

“...”

다음날 아침 집 앞에서 만난 유진과 지훈은 서로 다른 의미의 충격을 말아먹고 있었다. 유진은 자신이 여자 옷을 입고 모두의 앞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지훈은 그런 유진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였다.

“하... 진짜 말이 되냐 지훈아? 솔직히 세상에 어떤 병신이, ‘나 원래 여자였는데 사정이 있어서 남장하고 다녔던 거였어’라고 하는걸 믿겠냐고!! 으아!!”

“그건 그렇네... 아무리 급하셨다지만 걱정된다.”

“와 물론, 어제 엄마가 학교에 전화해서 말하긴 했지만, 우리 담탱이가 그걸 믿겠냐고! 아... 하기사 친구니까 그래도 믿어 주시려나?”

윤하가 바지 입고 나가려는 유진을 붙잡고 억지로 치마를 입히느라 아침부터 실갱이를 벌인 탓에, 폭풍같은 짜증이 입 밖으로 마구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있던 유진은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지훈이의 등짝을 때렸다.

“아파!!”

“쏘리. 아 근데 진짜 미치겠어... 다리사이가 허전해....”

“춥겠다 너. 스타킹은 따뜻해?”

“모르겠어. 바지나 이거나 그게 그건거 같은데. 뭐라더라 이게 기모 레깅스? 라고 안에 털이있어서 따뜻한거라고 엄마가 주더라구.”

아마 유진은 느끼지 못했겠으나, 지훈은 치마를 입고 있는 유진의 다리에 자꾸 시선이 가는 걸 막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정말 남자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한 다리에 약간 머리도 길어져서 새침한 듯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진의 모습은 지훈이 보기에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안돼. 참아야해... 유진이는 친구잖아!! 믿을 건 나 뿐일텐데. 내가 이러면 안 돼. 참자, 참자!!’

게다가 그녀가 입고 나온 망토 코트가 어찌나 귀여운지... 지훈은 이런 일생일대의 유혹 앞에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적운이랑 광운놈들 안보여서. 확실히 보충수업도 끝났으니 이 새끼들도 나 찾으러 오는 일은 없겠지?”

“아마도? 그런데 오늘 왜 굳이 나오려고 한거야? 아주머니한테 이런 옷까지 강제로 입혀져서는...”

손에 들고있는 종이 가방을 보여주며 유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가방 안의 보온병과 도시락을 슬쩍 보고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한테 가져다주래.. 엄마는 맨날 바쁘니까 해주고 싶었는데 못해줬다고 내가 대신 가래..”

한마디로 짬당했구나 너.

“그래서 이렇게 이쁘게 입고 나왔구나?”

[퍽]

“이쁘단 소리 하지 마 좀. 짜증나니까!”

“으억...”

어찌되었든 간에 높으신 분의 경호를 맡은 유진의 아버지 덕분에 두 사람은 난생 처음 엄청난 관저에 가게 된 셈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경호실장이라는 자리는 굉장히 바빠서인지, 오늘 이렇게 유진이 면회하러 가는 것도 꽤나 이례적인 일이라고.

“아... 차가 있으면 차를 몰고 가고 싶어.”

거리를 걸으며 유진은 계속 한숨을 쉬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엄청났기 때문이었을까, 지하철 타고 1시간은 가야 되는 거리인데, 앞으로의 시선을 어찌 더 감당할지 막막해지는 유진이었다.

“진짜 엄마는 너무하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도 아빠랑 몸이 바뀌었다며. 그럼 남자였다가 여자 된 거 아니야.”

“그렇겠지?”

“그럼 바로 이렇게 여자 옷에 적응했을 리가 없잖아. 물론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적응기간을 줘야지 너무 몰아붙인다구!”

“하하하..”

지훈은 그런 유진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주머니의 결단력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이렇게 눈이 호강하고 있으니...

[Lovin' you- is easy cause you're beautiful~]

“..엄마다.”

한참 지하철 타고 가는데 반 정도 지났을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유진은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약 30초가 지나서 슬쩍 통화를 눌렀다.

“여보세요?”

[너, 전화 빨리 안받아-?]

“전화오는줄 몰랐지. 일부러 그런거 아니에요.”

엄마의 목소리는 꽤나 들떠 있었는데, 아마도 친구분들과 같이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에서 사람 목소리들이 섞여 들리는 걸 보니 이미 밖인 모양.

[여튼, 너 입조심해. 아빠 일하는데에서 막 씨-, 개- 이런 소리 나오면 완전 망신이야.]

“... 그정도는 알아서 컨트롤 하거든요?!”

[엄마는 살면서 그렇게 입을 험하게 놀린 적이 없는데, 넌 누굴 닮아서 그렇게 입이 험하니? 하여간.]

“끙. 아무튼! 알았어요.”

[그리고 오늘 엄마 독일에서 친구 왔다고 했잖아. 그래서 좀 늦을거야, 저녁은 지훈이랑 둘이 알아서 먹으렴.]

지훈이 얘기가 나오자 유진은 슬쩍 녀석을 흘겨봤다. 키는 크지만 믿음직스럽지 않은 지훈을 보고 있자니 괜히 심통이 났는지 녀석의 볼을 꼬집었다.

“나 혼자 먹으면 안 돼?”

[얘가, 늦은시간이니까 지훈이랑 같이 있어. 여자 혼자면 위험하니까.]

“엄마도 집에 올 때 혼자 올거면서!”

[난 친구들이랑 같이 있잖니~. 그러니까 꼭 지훈이랑 같이 집에 와라? 또 자신감넘치게 혼자 걸어오지 말고. 엄마가 아침에 얘기했지만 다시 말하는데... 너 지금 완전 이쁘거든?]

크아아아악. 목구멍에서 불을 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유진이었다. 이쁘다니, 제발 이쁘단 소리좀 그만하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지하철 안이라서 참아야 했다.

“난 별로 이쁘고 싶어서 이쁜게 아닙니다만.”

[아 무 튼! 엄마 끊을테니까 알아서 해. 집 도착하면 전화하고!]

“네...”

통화가 끝나고 유진은 힘없이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넣었다. 왜이리 엄마랑 통화만 하고 나면 이렇게 진이 빠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이리저리 분석해봤는데... 아무래도 우리 엄마는 너무 말솜씨가 좋단말이야. 말로 이길 수가 없어...”

“응 맞는 것 같아. 아저씨도 진짜 대단하시더라...”

뭐 억센 유진을 통제하려면 그정도 말빨은 기본이겠지만, 유진이가 억세진 것도 두 분의 말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피장파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딱 한번 엄빠가 서로 싸우는 거 봤는데... 어떤줄 아냐.”

“? 어떤데?”

“... 대박이야. 진짜 서로 말로 한마디도 안져. 결국엔 엄마가 울어서 아빠가 달래주고 끝났지만 둘다 무서워...”

지훈은 그렇게 말하면서 실소를 짓고 있는 유진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과 비슷한 유순한 성격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

같은 시각 청와대 경호실.

“네, 여보세요? 네, 네 제가 한재희입니다. 네.”

바쁘게 일하던 와중 걸려온 전화에 유진의 아빠인 재희는 급하지 않은 전화이면 어서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제 할머니요? 무슨 장난을 하시는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시간 없으니 끊도록 하죠-”

[잠시만요! 여기 세림병원인데 환자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니까요. 분명 겉보기엔 10대처럼 보이는데, 손자 이름이 한재희라고 찾아달라고 해서 경찰분들이 직접 알아봐 주셔서 전화한거에요.]

바빠 죽겠는데 장난 전화라니. 세상에 10대인데 할머니인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재희는 어떻게든 빨리 이 통화를 끝내고 일을끝내고 싶었다.

‘유진이가 곧 올거란 말이지... 만나려면 늦었다고...’

[어찌되었든 환자분은 보호하고 있을테니까, 꼭 오늘 저녁에라도 와서 확인해주시기 바래요. 아니라도 와주셨으면 합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늘 밤에나 갈 수 있겠네요. 바빠서 이만...”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손에 일을 잡으려니 쉽게 잡히지가 않았다. 이건 뭐 장난전화인지 진짜인지 알 수도 없고... 분명 어떤 정신나간 여자가 말한 걸 잘못 알고 한 것이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꼭 집어 말했다니 의심스러운 면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어쨌든 일단 일부터 끝내고 보자.’

하지만 그는 지금 급했다. 사랑스러운 딸이 도시락을 싸 들고 이곳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호실장이 된 후 아내에게도 못 받아본 도시락 면회를 오늘이야말로 받는데, 일과 이런 장난 전화로 인해 그 기다림이 더 길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진아, 아빠가 간다!!”

============================ 작품 후기 ============================

리리플부터

자메스 : 소제목에 관련된 내용은 1장 후반에 나옵니다~ ㅜ 좀만 기다려주세요~너도변하는거닷 :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아이오나 : 94년생인데 지금 2032년이니까... 38+1 해서 39살. 아슬아슬하게 30대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네 1장은 좀만 기다리시면 끝나오니..서론이 깁니다만 양해부탁드립니다 엉엉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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