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목적지가 코앞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결국 목적지에 닿기 직전 그녀의 어머니에게 끌려가고야 말았다.
거실의 테이블 주변에 둘러 앉은 가족들과 지훈이의 분위기는 갑자기 심각함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이미 터진 일은 터진 일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뒷수습은 해야겠지 않니 유진아?”
“...네.”
엄마는 웬일로 강압적인 말이 아닌 부드러운 말로 유진을 달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돌변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유진은 엄마가 이런 태도로 나오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여보, 얘기해줘도 괜찮겠죠?”
“... 이제 유진이도 다 컸으니까 말해 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두 분은 뭔가 비밀 얘기를 꺼내시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유진과 지훈이를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유진아, 그래 지훈이도 약간은 관련된 우리 과거 이야기인데 좀 들어줄래?”
“말씀하세요.”
“네.”
무엇부터 이야기할까 고민하던 엄마는 순서를 대충 정한 듯 유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는데, 어째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닌 듯 했다.
그렇다, 바로 유진의 부모는 재희와 윤하였던 것.
“엄마 말야. 사실 너희 아빠랑 몸이 바뀌었다?”
“... 하아?”
당연한 반응이었겠지만, 유진과 지훈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전혀 믿을 기세가 아니었다. 그래도 윤하는 이 얘기는 꼭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것도 딱 지금 너희 또래께야. 17살 되기 전에. 아빠랑 엄마가 너네한테 직접 얘기한 적이 없어서 아마 생소하겠지만... 엄마 사실 죽다가 살아났다구?”
“진짜? 사고라도 있었던거야?”
죽다가 살았다는 얘길 듣자마자 유진은 호기심이 솟구쳤는지 바로 질문으로 치고 들어왔다. 윤하는 옳거니 하고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하셨다.
“아마 믿기 힘들겠지만, 과거에 운명을 거스르며 살아가던 능력자들이 있었단다. 그들은 꿈을 꾸면서 자신의 염원을 실현시키고, 꿈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예지를 얻었지.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흑영(黑影)’이라는 원래 능력자들이 바라던 이상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집단이 능력자들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단다.”
마치 한편의 영화나 다름없는 스토리 전개에 유진과 지훈이는 엄청 집중해서 듣고 있었고, 재희는 윤하의 얘기 중간중간 설명이 부족한 곳을 채워주며 둘의 이해를 도왔다.
“여튼 그래서 두 집단은 전쟁에 돌입하고, 일반인들 눈에 띄지 않게 수많은 능력자들이 죽어나갔지. 그러다가 2000년에 두 세력의 강한 충돌이 있었고, 착한 능력자들의 승리로 이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단다.”
“에.. 그럼 30년 밖에 안 된 거네요?”
“그렇지. 그 승리에는 그리고 많은 희생이 따랐어. 너희 아빠 할머니의 희생이 있었고, 너의 친할머니의 희생도 있었지.”
자신의 가족이 관련되었다는 말에 유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여튼 그 큰 충돌 와중에 큰 저주가 착한 능력자들에게 내려져서, 그 저주의 여파로 아빠는 죽게 될 처지에 놓였지.”
“엑, 그래서, 어떻게 됬는데요? 지금 살아있잖아.”
“너희 아빠와 엄마가 몸이 바뀐 이유를 여기서 설명해줄게.”
윤하는 재희의 손을 잡아 끌더니 자신의 옆에 앉혔다.
“원래 엄마 몸의 주인은 아빠였어. 그런데 저주를 풀기 위해 엄마가 희생하기로 함으로써 몸이 바뀌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거야. 지훈이네 아빠가 이 과정에 우릴 도와주었단다.”
“그래서요?”
“그래서, 너희 아빠가 정말 엄청난 기도 끝에 날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끌고 왔지. 덧붙이자면, 몸이 바뀐 것은 너희 할아버지의 힘에 의해서였단다.”
그러나 너무나 장황한 얘기를 꽤나 압축해서 들려준 탓인지, 유진과 지훈이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너희 아빠에게는 ‘염원력’이라 불리는 바라는대로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거야 아주 미약하지만.”
“... 여튼 그래서 그게 영향을 줘서 내 몸이 이렇게 되었다는거지?”
“음... 그렇다고 봐야겠지?”
유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손바닥을 탁 치며 외쳤다.
“그럼 다시 날 원래대로 돌려줘 아빠!”
그러나 그녀의 부탁에 재희는 굉장히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원한다면 그렇게 염원을 해주긴 하겠지만... 언제 효과를 발휘할지는 장담 못해 유진아.”
“으에엑? 왜?!”
“이번에 네가 이렇게 된 게 정말 내 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정의 평화’를 바래온건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가니까 말야. 적어도 20년은 여자로 살아야된다는-”
“아-! 싫어!! 진짜, 절대, 네버, 젯따이 싫어. 싫어!!”
그녀는 바닥에 누워 양팔다리를 휘두르며 방정을 떨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만!”
윤하는 그런 유진이를 제지시키더니,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아까처럼 그녀의 가슴께에 손을 덥석 가져다댔다.
“히악! 안돼. 하지마 엄마...”
“그럼 어떻게 할거니. 이꼴로 남자 교복입고 남자인 척 할거야?”
“뭐, 뭐가 어때서! 얼굴이 엄청 변하거나 머리가 엄청 긴것도아닌데. 이정도는 숨기면 티도 안 날거야...”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 여자 교복 입고 학교 가지 그래?”
그러나 윤하의 제안은 절대 유진에게 먹혀들만한 것이 아니었다. 죽어도 그건 하기 싫다고 이미 머릿속에 박혀있는데 그게 인정될 리가 없지.
“그게 말이나 돼?! 난 남자야! 남자라고!!!”
“어이구.. 그렇게 남자다운 애가 맨날 남자애들 줄줄이 달고다니니? 엄마가 다 봤어. 아주 여왕폐하드만.”
“그-그건!!”
하지만 그녀보다는 역시 윤하가 한수 위. 어떻게든 그녀는 유진의 고집을 꺾고 여자로서 생활하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분고분 말을 들을 유진이 아니었기에 윤하는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너, 엄마 말 안듣지?”
“엄마같으면 듣겠어요?!”
“그래... 그렇게 나온단말이지? 그럼 엄마가 최후의 방법이 있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게 싸움으로 번질 기세가 보이자 재희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보려고 사이에 끼어봤지만, 무리였다.
“저.. 저기 여보, 진정해 자자 유진이도, 응? 싸우지 말-”
“당신은 조용히하고 있어봐요!”
“아빤 나와보세요!”
“-넹.”
그러나 커질것만 같던 다툼은 윤하의 한마디로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계속 반항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진은 의외로 윤하의 한 마디에 깨갱 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으니까.
“한유진. 똑똑히 들어? 엄마 말 안들으면 너 저 Grav-어쩌구 하는 메카수트 불태워버린다.”
“.....”
도대체 메카수트가 뭐길래 날뛰던 유진이를 한방에 잠잠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잘못했어요 엄마... 엄마말을 따르겠사옵니다...”
메카수트. 영어로 하면 Mechanic Suit.
마블사의 유명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아이언맨을 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메카수트는 그 아이언맨을 모티브로 한 기계공학계의 최고 기술력이 응집된, 거의 두꺼운 옷에 가까운 물건이다.
수많은 초정밀 플렉시블 기판과 부품, 전자회로로 구성된 이 메카수트는 착용하면 신체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엄청난 점프력이나 달리기 속도, 굉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크기와 얇기, 그리고 동력의 한계 덕분에 아이언맨 같은 전자포는 쏠 수 없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단지 타이즈 같은 옷을 하나 입는 것만으로 쓸 수 있다는건 엄청나게 매력적인 일이었다.
개발과 동시에 정부는 이 물건을 군에 가장 먼저 적용시켰고, 그 후 경찰, 특수기동대, 경호팀 등 필요로 하는 곳에 안전성 검증 후에 허가를 내어주었다.
그렇다면 보통 학생인 유진이가 이 수트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유진이가 이 메카수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호팀이나 경찰 등을 양성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학교 학생 전부가 그 학생은 아니었고, 전체 학생 300명 중 30명만이 특수 교육과정을 밟으며 나머지 학생들은 대부분 기계공학에 특화된 교육을 받아 주로 메카수트의 수리나 정비, 생산과 개발에 투입되게 된다.
여튼 그렇게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는데는 유진이 가지고 있는 메카수트가 필수적이었고, 이는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물건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분실이었다.
분실하는 순간부터 그 메카수트를 정부나 학교에서 회수하기 전까지는 그 학생은 정말 숨도 못 쉬고 살아야 한다고 하니... 분실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실제로 2032년 최저시급 10,300원 기준으로 2천만원 짜리 물건이므로 분실했다간 그대로 빚더미에 앉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그래. 착하다 우리 딸. 진즉 이렇게 나왔어야지.”
“흐엉헝...”
윤하는 유진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더니 그녀를 꼭 안았다. 얼핏보면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고 평화의 국면을 맞이한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 그녀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귓속말로 들리는 악마의 속삭임에 유진은 치를 떨 수 밖에.
“그럼... 엄마 방 가서 예쁜 옷 좀 입어볼까?”
“....!!”
그 후 엄마에게 이끌려 질질 끌려가는 유진의 모습을 본 지훈이의 증언에 의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한 마리 소’ 같았다고...
“싫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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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플
Ayumu7 : 결국.. 결국...크흐흐흑아이오나 : 혹시나가 현실입니다.
자메스 : ....ㅋㅋㅋㅋㅋㅋ무서운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