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그, 그래 뭐, 어?, 남들보단 왜... 왜소하긴 해도 분명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사라졌다고!! 씨발! 아, 진짜 맨날 적운(赤雲)이랑 광운(光雲)의 머저리들한테 누님, 누님 소리 듣고 다니는것도 완전 짜증났는데 이게 뭐야... 진짜 여자가 되버려서 어쩌잔거야? 하루종일 패도 꺼지란 말도 안 듣는 놈들이었는데... 이제 어떻하냐고, 아. 아아!!! 씨발!”
여기서 잠깐 설명. 적운과 광운이라 함은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에 속해있는 일진회들로써 자칭 '우리가 서울시 내 최고!'라고 자부하고 다니는 머저리들만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진이가 말하기를 ‘모조리 멍청이야’라곤 하지만 다들 한 싸움, 한 성격 하는 놈들만 모여 있어서 학교의 골칫거리나 다름없는 존재. 게다가 의외로 머리좋은 놈들도 간간이 껴있다.
“개같은 놈들. 그새끼들 분명 내가 이렇게 된 걸 알면 이전보다 더 잡아먹으려 들게 뻔해... 진짜 조용히 학교 다니고 싶은데 이게 무슨 낭패야. 아 빡쳐...”
그래도 최근에는 선생님들도 이 두 일진회를 엄청나게 안좋게 보고 있지는 않은 편이었다. 원래는 늘 문제만 일으키고 다니던 이 두 집단을 그나마 올바른 길로 돌려놓은 것이 유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유진도 입학 후 몇 달 동안은 이 거대한 두 그룹 사이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루에 최대 열 번 넘게 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기에 선생님들의 눈 밖에 낫던 과거력이 있다. 그런데 반 학기가 지나고 적운과 광운이 도저히 싸움으로 안되겠는지 유진 앞에 고개를 숙임으로써 시끄럽던 학교는 정리가 되어버렸고, 졸지에 유진은 두 골칫거리를 원하지 않게 맡아버리게 된 것이었다.
원래 싸우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유진은 자꾸 자신을 쫓아다니는 녀석들에게 ‘영운 5조’라는걸 선포했고, 만약 지켜지지 않을 시에는 형님이고 뭐고 서로 아는 척 하지 않기로 협의했다.
물론 유진은 머지않아 녀석들이 다시 사건을 일으켜서 조약파기 및 영영 모르는 사이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두 일진회는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행여나 사건이 생겨도 절대 유진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은폐를 하는지 유진은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선생님들은 아직 그렇게 탐탁치는 않은 듯 해도 유진의 공로로 인정하게 되었고, 고마움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유진은 주변을 배회하는 일진회들을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기 위해 온갖 귀찮은 봉사활동을 시켜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일진회는 그를 더욱 집중 마크했다.
“쓰발... 보충수업이 오늘까지였으니 망정이지, 진짜 좆 될 뻔 했네.”
“그... 그러게.”
유진은 어떻게든 이 집요한 거머리들을 떼어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고, 겨울방학이 시작했음에도 보충수업이라는 덜미를 잡혀 계속 보고싶지 않은 면상들을 봐야만 했다.
“아. 이게 문제가 아니지. 엄마 아빠한테는 뭐라고 말하냐.”
“그러고보니,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 아니야?”
“아... 씨바...”
그녀의 감정이 격해진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입에서는 쉴새없이 욕이 튀어나왔다. 지훈이로선 막고싶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냥 잠자코 듣기만 할 뿐이었다.
“아냐, 잘봐. 머리길이도 그대로고, 가슴도 그렇게 큰건 아니야, 속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우리 엄마 아빠빠 성격상 뭔가 의심스러워도 쿨하게 넘어갈 게 분명하다구.”
“흠...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솔직히 진짜 신경써서 보지 않는 이상 얼굴형은 잘 모를테고... 몸이야 가슴같은 델 만져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마마, 마, 만지긴 뭘 만져! 이 변태새끼야!!”
[퍽]
괜히 또 한마디 했다가 맞은 지훈이는 정말 어떻게해야 그녀의 비위를 맞춰줄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말 안해도 안한다고 맞고, 하면 뭐든 꼬투리잡혀서 맞고.
“이씨, 아무튼 당장 붕대부터 감자. 아무리 가슴이 작아도 이대로 돌아다니면 흔들거려서 들킨다고.”
“아니 잠깐, 그래도 부모님한테는 말하는게 좋지 않아? 이런 비상사태를 혼자 떠안고 가기에는 무리수가 너무 많-”
“닥쳐. 니가 엄마 방 한구석에 있는 비밀 옷장을 봐놓고도 그런 얘기가 나오냐?”
아, 지훈은 그 말을 듣고 비밀 옷장을 떠올리자마자 그녀의 반박을 수긍했다. 유진 어머니의 비밀 옷장, 그곳에는 남자인 유진에게는 정말 지옥과도 같은 귀여운 옷들이 한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진은 지금까지 보여졌던 것처럼 여자취급 받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기 때문에 그녀의 엄마가 자신에게 이런 여자애 옷들을 입히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곧 아빠의 말이고, 아빠는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나머지 엄마의 말이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켜주시는 터라 난 억지로라도 그 옷들을 가끔씩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아빠한테 반항하면 되지 않냐고 유진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호도르랑 싸워서 이기라는 미션을 주면 수행하겠어요 포기하겠어요? 우리 아빠는 나한테 호도르같은 존재라 저라면 포기하겠음.’ 이라고.
유진이 아무리 싸움을 잘하고 운동신경이 좋다 해도, 그것은 그의 아빠 앞에선 새 발의 피일 뿐이었다. 뭐 하시는 분이기에 그정도로 강하시냐고? 뭐... 높으신 분의 경호를 맡는 경호팀의 실장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저 말도 안되는 옷들을 매일 입는건 말도 안돼. 정말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난 진짜 가출할거야. 그러니까 빨리 붕대나 감자고!!”
“아, 알았어.”
지훈이는 쭈볏쭈볏 붕대를 가져와서 유진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유진은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뚱하고 띄워놓고는 ‘뭐 하자는 거야 너’라는 투로 지훈이를 째려봤다.
“...? 왜, 빨리 감아. 붕대 여기 있잖아.”
“아 니가 감아줘야지 미친놈아. 내가 웃옷도 들어올리고 붕대도 감고 동시에 어떻게 하냐? 내가 무슨 천수보살도 아니고.”
그 말을 마치고 나서는 유진이는 슥 하고 웃옷을 걷어올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고, 아름다운 그녀의 나체가 실오라기 하나 없이 지훈이 앞에 떡하고 보여졌다.
“푸- 푸학!! 자,, 잠깐만.”
살짝 흔들리는 그녀의 특정 부위를 여과 없이 보고 만 지훈이는 얼굴에서 적외선을 뿜어내면서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미처 말을 안했지만, 지훈이는 18년동안 여자 경험이 없는 순수한 청년이기에 이런 강한 자극이 엄청나게 독이 되었지 않나 싶다.
“아씨, 너 뭐해?! 맨날 야동에서 보는거잖아!!”
“그... 그래도, 그... 그 ... 취향 저격이라..."
“개소리할래 진짜. 아, 빨리 엄빠 오기전에 빨리!!”
뭐 유진이의 말도 틀린말은 아니었으나... 야동과 현실은 다를 수 밖에. 게다가 아까 유진의 가슴을 만졌던 지훈이로서는 보기만 해도 흥분되는 것을 참을 수 없는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취향저격이라고 한 걸 보면, 어쩌면 완벽한 지훈이의 스타일인 여성이 된 유진이의 나체를 보고 진짜로 이성의 강한 호감을 느껴서인지도.
“미.. 미안해 유진아!”
[몰캉]
“아, 아응! 사, 살살, 살살해 너!!”
그런데 지훈이가 눈 딱 감고 손으로 전해져오는 강렬한 전류를 느끼며 붕대를 감아주던 찰나, 거실에서 바로 보이는 현관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유진아 엄마왔다~”
“한유진! 아빠가 너 좋아하는 그릴맥스 치킨 사왔....”
당당히 문으로 걸어들어오시는 부모님을 보며, 유진은 생각했다.
‘헐. 좆 됐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한 것은 약간의 충격과 공포 시간을 가진 뒤 곧바로 현실화되었다.
“유...진아?”
그녀의 엄마는 순식간에 마치 ‘여고괴담’에 나오는 귀신처럼 블링크를 하더니 어느새 유진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미처 유진이 올리고 있던 옷과 둘러져 있던 붕대를 숨기려고 하기도 전에 엄마의 손이 빠르게 그녀의 가슴께를 덮쳤다.
[몰캉]
“느-희앙!”
“어머나. 이게 뭐야.”
엄마는 한 손에 들고있던 장바구니도 내팽겨치고는 양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살짝살짝 스쳤을 때도 비명을 지르던 그녀였으니, 본격적으로 만져대는 엄마로 인해 그녀는 요상한 기분에 휘말려버리고 말았다.
“그...그흐응! 그만!!- 앙! 그-아항! 마느항~!! 애~!!”
그로 인해 옆에서 정신줄 놓고 지켜보고 있던 지훈이는 유진이의 신음소리와, 시각적 충격으로 돌이 되어버려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약 1분간의 강렬한 마사지에 유진이는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버렸고, 엄마는 양 손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빠에게 물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유진이의 모습은 정말 야하기 그지없었다.
“여보, 이거 혹시...”
“에흠, 어흠 흠.”
그 민망한 광경에 아빠도 부끄러웠던 듯, 얼굴이 붉었다. 물론 엄마가 무서운 눈으로 노려본 탓에 그는 곧 정색을 하고 엄마의 질문에 대답했다.
“혹시가 아니라... 이거분명 ‘꿈꾸는 힘’의 영향인 것 같은데?”
“그렇죠?”
정신이 혼미해진 유진이는 겨우겨우 옷을 추스르고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상 더 공격받았다간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기 때문이다.
“흠.. 근데, 이상하네... 최근에 누가 이런 개인적인 의도로 ‘염원몽’을 사용했다는 말은 없었는데.”
“혹시 당신이 그런 건 아니죠?”
“무, 무슨! 내가 아무리 미쳤어도 그렇지 어떻게 아들내미를 딸내미로 바꿔버릴 생각을 해!”
게다가 무슨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시는 부모님 때문에 유진은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상하네. 내가 최근에 세계의 조율 외에 한가지 ‘염원몽’을 계속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이런건 아니었어. 내가 의도한건 ‘우리 가정의 행복’이었는데... 설마 그것 때문에 유진이가 이렇게 된 건가?”
“가정의 행복... 아 그거 맞을지도 몰라 여보. 유진이가 여자가 돼서 내가 사준 귀여운 옷들을 좋아하게 되면 서로 싸울 일도 없고 가정의 행복 아닐까?”
‘말도 안되는 소리!’
유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낑낑대며 도주하다가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고지를 겨우 1m 남겨놓은 상태에서 뒤를 돌아본 게 화근이었다.
“어디가니 유진아?”
“와악!!”
============================ 작품 후기 ============================
리리플 시간
-후익ㅋ : 감사합늬다.
-자메스 : 감사합늬다.
-너도변하는거닷 : 네 이번편에 나왔습니다. 연관있는애들. 말 안해도 누군지 아시겠죠?
-오렌지색 하늘 : 영어론땡큐 중국어쎼쎼-아이오나 : 죄송합니다 기다리게해서 그래도 하루늦었어요봐주세요 뿌잉뿌잉-Ayumu7 : 설이라 바쁘셨겠지요? ㅋㅋ 설 잘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당.
ps. 다음화에 우리 부모님의 정체가 본격적으로 밝혀집니다만.
아실분은 다 아시겠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