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곧 경계심은 풀렸으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소년은 재빨리 방의 불을 켰고, 곧 친구 녀석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지훈이냐...?”
친구는 굉장히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아직 정신은 건재한 듯 자신의 얼굴 앞에 나타난 소년을 보고 미소지으며 반겨주었다.
“어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너 어디 아파?”
“아... 걱정할 거 없어... 병원 갔다왔는데 의사가... 몸살감기래... 흐흐.”
지훈이라고 불리는 이 소년은 유진이라 하는 친구가 엄청 아파 보이는데도 태연히 얘기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마에 꿀밤을 한 대 먹인 뒤 부엌으로 가며 말했다.
“아오 이놈아 그럼 나한테 얘길 했어야지. 좀, 이런 일이 있으면 17년지기 친구는 그냥 병풍이냐?”
지훈이는 부엌으로 가 행주에 물을 적시며 생각했다. 하여간 걱정거리는 절대 공유해 주질 않는 나쁜 녀석이라고. 그래도 그를 향해 웃어주는 그 모습을 보니 화를 내기도 좀 뭐했다.
“자, 똑바로 누워봐.”
“... 고마워.”
사실 지훈이가 유진이를 이렇게 격하게 챙기는데는 17년지기 친구라는 명목 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꽤 있었다.
“앗 차가.”
“그럼 뜨거운 물로 적셔왔겠냐.”
소개를 좀 하자면, 지훈이와 유진이는 사이좋게 2015년에 태어난 현재 18살 고등학생으로, 둘다 건강한 소년들이다. 다만 지훈이의 경우 181cm의 훤칠한 키에 어딘가 우수에 젖은 듯한 눈을 가진 일반적인 미남이었고, 유진이의 경우 키가 163cm정도로 작고 뭔가 남자이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풍기는 새침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르기 귀찮다고 길러둔 꽤나 긴 긴 머리카락이 합쳐진 여리여리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생긴것과는 다르게 이 둘은 성격이 정반대이다. 잘생긴 지훈이는 허우대도 좋은 녀석이 성격이 좀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 있고, 아리따운 유진이는 넉살좋고 사교적이며 부끄러움도 잘 타지 않는, 한마디로 호탕한 성격이었다.
게다가 유진이의 경우 그 아담한 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싸움 실력을 가진, 학교 내의 불량아들 집단의 사실상 우두머리였다. 본인은 매일 학교가면 따라다니는 일진들에게 제발 좀 따라오지 말라고 하지만, 예하의 이 불량아들은 웬지 유진이가 자신들의 두목이 되기를 원하는지 집요하게 그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유진이의 이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일진들이 맞으면서도 쾌락을 느낀다는 변태같은 말들도 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증명할 길은 없었다. 뭐, 참고로 말하자면 지훈이가 유진이를 극진히 챙기는데에도 18년지기란 사실 외에 이런 유진이의 매력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사심 가득이다.
“하여튼 다행이네. 내가 발견 안했으면 너 내일도 낑낑대면서 학교 나왔을 거 아니야.”
“...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뭘...”
얼굴이 벌개져가지고 꿍얼거리는 유진이의 모습에 지훈이는 같은 남자이면서도 알 수 없는 욕구같은 것들을 힘겹게 뿌리치고 있었다.
“암튼 학교엔 내가 전화해줄게. 담임쌤도 내가 말하면 이해해주시겠지.”
“고마워 헤헤.”
유진이가 평소에 담임선생님한테는 신용도가 떨어지는지, 대신해서 전화한 지훈이는 내일 결석 사정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래도 유진이가 전화했으면 아예 믿질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휴, 다시 학교 가서도 사정사정해야겠네... 너 좀 평소에 그러니까- 응?”
“...”
그러나 핀잔을 주려던 지훈이는 이내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전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 잠들었는지 유진이가 행복한 얼굴로 새근새근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유.. 이런 천사같은 얼굴로 어떻게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지... 참.’
* * *
다시 32년을 거슬러 올라가 서기 2000년 서울.
“끝이다, 한세빈.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도, 널 지켜줄 사람도 이 근처엔 없다.”
“...”
세빈은 생각했다. 이미 진즉부터 도망칠 기력조차 없었다고. 50세가 넘은 나이로 이 추운 계절에 피까지 흘리며 뛰어다니는 것은, 목숨이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위태로울 수 밖에 없었다.
“징한 놈들. 네 친위대의 부대장 놈은 깊이 베이고도 날 안 놓아주더군. 그래서 내가 강에다가 고이 처박아줬지. 네가 백영에서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말 안해도 알 정도로구나.”
이제 남은 길은 죽음 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세빈은 갑자기 온 몸에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아까 도망칠 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극한의 공포와 한기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그녀의 몸을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잘 가라, 불여우. 네가 사라짐으로써... 세계가 우리 흑영의 것이 되는 것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 하하하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장검이 하늘높이 치솟았고, 세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도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세빈이지만, 그 순간만은 신이 있다면 제발 기도를 들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거기까지다. 암살자!”
[투쾅!!]
“...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이 진짜...”
그러나 기도를 하지도 않았지만, 신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노우에 대장...”
그녀를 지키는 영수 친위대. 그 친위대 중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최강의 전사 대장 이노우에 케이스케가 등장하며, 죽음으로 향해 있던 그녀의 운명의 화살을 돌려버린 것이었다.
“오랜만이군... 장 티엔. 여전히 그 음습한 습성은 버리지 못했나?”
“닥쳐라 이노우에... 너에게 그런 것까지 간섭받고 싶지 않다고 분명 말했을텐데?”
두 거대한 힘이 맞붙으려는 기미가 보이자, 주변의 기류가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흑영이나 백영이나 능력자들이 사용하는 힘은 모두 동일한데, 이 두 사람의 능력량은 보통 능력자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꿈꾸는 힘과 꿈꾸는 힘이 부딪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이노우에.”
그 알 수 없는 두 힘은 서서히 영향을 키워갔고, 마침내 두 힘이 부딪치기 시작하자 공간에 알 수 없는 작은 균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장 티엔. 도망치는거냐 이자식! 이런 비겁한 녀석!”
그리고 그 균열들은 차츰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차원의 균열을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전장에선, 비겁한 작전 따윈 없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차원의 틈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미리 지시를 받았던 이노우에의 부하들은 조를 나누어 단검의 자객을 막음과 동시에 세빈을 데리고 움직이려 했고, 그걸 본 단검의 자객 역시 필사적으로 세빈을 없애기 위해 달려들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영수님. 곧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두 강대한 힘의 충돌은 곧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큭, 큰일인데? 차원의 틈이 너무 커지고있어...!”
“조심해, 잘못해서 빠졌다가는... 차원의 미아가 되어버린다고!”
거대한 차원의 틈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기 시작했고, 주변은 온통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갈수록 앞길은 캄캄해져서, 도망칠 길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위험해요! 여러분, 이 이상 앞으로 갔다간 빨려들가버립니다!”
“하지만 영수님을 구해야만-!! 윽-!!”
“안돼!!”
곧 거대해진 차원의 틈은 엄청난 힘으로 세빈 주변의 부하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듯 하나둘씩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크윽... 빨려들어가고... 말아...!!’
[두근]
“악!!”
갑작스러운 심장쪽의 고통이 몰려왔고, 그것을 끝으로 세빈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은 그녀의 몸은 그대로 빠른 속도로 균열에 빨려들어가 버렸다.
End.
============================ 작품 후기 ============================
네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두 편으로 나눠놓으니 또 짧네요..
기다리셨을텐데.. ㅋㅋㅋㅋㅋㅋ
리리플>
롱웰 - 포풍 TS!!
오렌지색 하늘 - 기대하시라!
자메스 - 누구의 자식인지는 말안해도 뻔하지요Ayumu7 - 이어지는 스토리입니다 ㅋㅋ충이친구 - 네타기때문에 아직 말씀은 못드리지만 밝은 것도 많아요 ㅋ
여튼 프롤로그는 오늘로 마감!
1주 1편은 확정적이구요, 여유가 된다면 추가로 한편씩 더 올라올수도 있습니다~그럼 다음주에 뵙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