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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05화 (104/188)

105화

<-- 2부를 읽으시기에 앞서... -->

<-- 2부는 1부와 전혀 성격이 틀립니다. 1부에서 미처 풀리지 않은 복선들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해(解) 같은 느낌입니다. 전개 시점도 틀리며 로맨스가 아닌 스릴러쪽에 가깝습니다. 이점 참고하여 읽으시거나,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

[~흑과 백의 진혼곡~]

<2부. Prologue>

굵은 싸래기눈이 폭풍과 함께 거칠게 몰아치는 2000년의 겨울, 그 엄청난 혹한 중에서도 하얀 눈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몇 명의 사람이 있었다. 혹자는 누가 이런 말도 안되는 한파 속에서 뜨거운 붉은색을 흘리느냐고 말하겠지만, 당사자에겐 굉장히 고통스런 붉은색이었다.

온통 흰색뿐인 세계에 너무나 눈에 띄는 붉은 빛의 정체는 다름아닌 사람의 흔적.

“헉... 헉....”

그랬다. 지금 온 몸에서 흘러넘치는 고통과, 추위에 마비되어버린 손끝의 감각도 잊은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쉼없이 눈 내리는 거리를 뛰어가는 한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붉은 빛.

“제길... 진혁이도... 수연이도 모두 당한건가...”

그리고 비틀비틀 뛰어가는 그녀를 뒤에서 바짝 쫓아가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워낙 강렬한 붉은 빛 때문에 추적에 전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는 듯 했다. 한 이는 피칠갑을 한 장검을 눈에 끌며 걷고 있었고, 한 이는 마찬가지로 피로 붉게 물들인 단검을 양 손에 든 채 핏방울을 눈에 뚝뚝 흘리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풀썩]

달리던 여성은 결국 힘을 잃고 주저앉아버렸고, 눈에선 고통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륵주륵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찌나 따뜻한 눈물이었는지,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것들은 눈에 구멍을 숭숭 만들어냈다. 그녀는 뭔가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하늘의 먼 곳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여보. 난... 이제 죽나봐요. 당신이 말해준 사명을 지켜야만 하는데... 그 숙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런 곳에서 죽게 되다니... 하...”

그녀가 멈춰선 지 얼마 안 되어 추적자들이 곧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사냥감이 시야에 들어오자 더욱더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마치 변태 사냥꾼이 사냥감을 베기 전 뜸을 들이듯, 그들은 차츰 차츰 여성의 숨통을 조여왔다.

“이제 반년 남았는데... 그것만 견뎌내면 되는 것이거늘... 후우...”

그리고 마침내 넋두리를 마친 여성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고, 성큼 다가온 두 추적자의 눈을 이글거릴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추적자들이 흠칫 놀랐으나,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흑영(黑影).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자들이여... 너희들이 비록 오늘은 승리하는 듯 보일수도 있으나... 어리석도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그 분’이 정해주신 섭리에 따르지 않고 세상의 종말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하느냐.”

그녀는 엄청난 기세로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을 들은 추적자들은 콧방귀를 뀌며 그녀의 말을 비웃었다.

“곧 죽을 년이 말이 많구나.”

마치 얼음과도 같은 서늘한 목소리. 여성은 온 몸을 곤두세우는 공포를 느끼며 어찌 저런 귀신같은 존재들이 이승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고뇌하기 시작했다.

“흑향.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만들어버려라..”

“네 대장님.”

곧 명령을 받은 단검의 추적자가 엄청난 속도로 여성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서서 그것을 지켜보던 추적자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며 먹잇감의 죽음을 확신했다.

“죽어라. 백영(白影)의 불여우!”

하지만,

[슈캉!!]

승리를 확신했던 그의 미소는 곧 싸늘한 표정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좋은 순간을 방해하다니. 역시 백영의 머저리들답군.”

“누가 좋은 순간이냐 이 빌어먹을 흑영의 따까리들아.”

그리고 죽음을 예상했던 여성의 얼굴엔 한줄기 희망의 빛이 피어올랐다.

“호... 혼다?”

번개같이 나타난 금발의 사나이는 고개를 돌려 여성에게 눈을 찡긋 해보이고는 당당한 말투로 외쳤다. 그의 불호령에 보이지도 않는 하얀 눈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한세빈 영수(靈首)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영수 친위대 부대장 혼다 시로, 영수님을 지키러 왔습니다.”

“혼다...”

그리고 그의 미소를 봄과 동시에 여성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그는 흠칫 놀랐으나 바로 부하들을 시켜 여성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영수님을 데려가라. 아까 말했던 작전대로 잘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해라. 절대 실수는 없다.”

“예,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부하들은 번개같은 속도로 그 장소를 이탈했고, 혼다는 부하 둘과 함께 셋이서만 자리를 지켰다.

“어이, 애송이. 내가 왜 너넬 그냥 보내주는 지 아나?”

“닥쳐라 흑영의 개. 허튼 수작 따위는 들어줄 생각도 없다.”

그리고 두 무리의 사이에 일순간 정적만이 감돌았고, 이내 엄청난 긴장감이 그 사이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이윽고 암살자의 외침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너흴 그냥 보내주는 이유는... 곧 다시 잡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송이!!”

*  * *

32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서기 2032년 서울.

“... 뭐야 이거. 한유진 이자식 설마 혼자 집에 간거야?”

교문에 덩그러니 남은 소년은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였다. 친구가 자신이 잠깐 늦는 것을 기다려줄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텅빈 교실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크으, 진짜. 오늘은 정말 내가 맛있는걸 사준다고 꼬시기까지 했건만... 그것마저도 포기한다 이거지. 그래 어짜피 니가 도망가봤자 이웃집이지 한유진.”

허나 소년은 별로 걱정이 되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 이유인 즉 그의 친구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내 친구 녀석이 집에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생각하기가 귀찮았는지 상념을 떨쳐내 버리고 곧바로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암튼 걸리기만 하면 죽었어 한유진~’

친구를 잡아서 어떻게 괴롭혀 줄지 생각하며 신이 났는지, 소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당당히 친구의 집 대문을 열고 안으로 입성했다. 어째 친구는 급하게 들어간 모양인지 대문도 제대로 닫혀있지 않았다.

“어라, 얘가 왜 문도 그냥 열어 놓고 들어갔대. 설마 현관문도 안 잠갔나.”

뭔가 수상한 기분이 들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니나다를까 현관문도 살짝 열려 있는게 아닌가. 혹시 도둑이라도 든 게 아닌가 싶어 조금은 두려웠지만, 현관에는 친구 녀석이 내팽개쳐둔 신발 한 켤레 뿐이었고, 집 안에서 수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뭐지? 얘가 뭐 급한 일이라도 있었나?”

상황이 이쯤 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지, 현관문을 잠근 뒤 소년은 친구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신발이 벗어져 있으니 사람이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유진~! 야! 유진아!”

그러나 어째 아무리 불러 봐도 집 어디에서도 반응이 오질 않았다. 소년은 너무나 수상쩍은 이 상황이 좀 불안했는지 스스로 돌아다니며 친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화장실, 부엌, 안방... 차례차례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친구. 이 집 구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소년으로써는 남은 장소는 한 군데 뿐 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친구가 있을 것이라는 작은 확신을 가지게되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캄캄한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바닥? 침대 위? 책상...?

[부스럭]

“으윽...”

“!”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만 방 밖으로 도망칠 뻔 한 소년은 이내 침대위의 이불 속에 자신의 친구가 괴로운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 한유진! 너 왜그래?!”

============================ 작품 후기 ============================

리리플:

롱웰 - 감사합니다! 2부가 시작되어버렸네요... 준비도 얼마 안되있는데 ㅋㅋㅋ자메스 - 미필이라니 ㅋㅋㅋㅋㅋ 어서다녀오십시오 ㅋㅋㅋㅋㅋㅋㅋNuclear_soul - 배아픔은 이제 끝! 이랄까.. 티격태격 로맨스의 시작입니다.

Ayumu7 - 불쌍하네요.. 저도 비슷한 처지였어서 ㅋㅋ 연말 잘 보내셨나요?

오렌지색 하늘 - 미국레슬링ㅋㅋ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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