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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03화 (102/188)

103화

날씨가 쌀쌀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날씨가 어느 새 이렇게 싸늘해 졌는지, 창문을 열었다가 1분을 못 넘기고 닫게 만드는 바람이다. 2학년 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겨울방학이다.

"아우... 춥다."

재희가 미리 가 있으라고 한 장소에서 기다린 지 어느덧 10분 째. 슬슬 추위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건물 안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하여간 이놈의 자식은 나보다 먼저 나와서 날 기다리고 있던 적이 거의 없다니까.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기다려야돼?! 나도 좀 여자 대접좀 확실하게 받고 싶은데.

[가톡!]

인상을 구기며 오지 않는 재희를 인파속에서 계속 찾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메신저로 쪽지가 왔다며 알려줬다. 엥, 누구지? 설마 재희인가?

"...뭐야?! 여기로 오라고 해 놓곤 또 이제와서 들어오래?"

갑작스럽게 장소를 변경해 버린 재희 때문에 난 결국 기다리던 빌딩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들어가 있는 건데, 왜 밖에서 벌벌 떨었지.

[가톡!]

"엥?"

그런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녀석은 또 날 움직이게 했고, 녀석의 요구대로 어둑한 건물 복도와 계단을 걸어 내가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웨딩 샵이었다. 모두 불이 꺼져 있었는데, 유일하게 이 곳에만 환히 불이 켜져 잇었다.

"서윤하 씨 되시죠?'

내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가게 주인이 불쑥 튀어나왓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진 나를 이글고 한쪽의 탈의실로 데려갔다. 내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돌려 의문을 표하자 주인 아줌마는 미소짓더니 날 탈의실로 떠밀었다. 얼떨결에 탈의실로 들어와 버린 나는 안에 걸려있던 옷 한 벌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이게 뭐야?! 얘가 드디어 미쳤나!"

걸려있던 옷은 다름아닌 웨딩드레스였다. 아니 얘가... 돈이 어디있어서 이런 걸 준비해 둔 거지? 오늘 수능시험 본 고3주제에... 쓸데없이 스케일만 크다니까!

"...아휴. 가슴쪽이랑 등 쪽은 또 왜이렇게 허전하담."

투덜투덜거리면서도 난생 처음 마주하는 웨딩드레스에 엄청나게 설렌 나는 빠른 속도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여자라면 흔히들 꿈꾸는 것 아니겠는가, 순백의 웨딩드레스! 아, 물론 내 경우는 좀 특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여자 3년차니까 어색하지 않다. 의외로 내 성격이 여자로 사는데도 큰 어려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도와드릴까요?"

"엄마야! 노, 놀랐잖아요!!"

낑낑거리며 등쪽 지퍼를 올리려는데 주인 아줌마가 갑자기 또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난 화들짝 놀라 벽에 바짝 붙었지만 이내 곧 그녀에게 등을 돌려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웨딩드레스가 아름답긴 한데 입기는 영 불편하네.

"자, 다 됐습니다. 나가실까요?"

"네...네. 그 거울 한 번만 보면 안 됄까요?"

"그러세요. 밖에 나가면 바로 있어요."

겨우겨우 드레스를 갖춰 입은 난 치맛자락을 사르륵 끌며 탈의실에서 나와 거울 앞에 섰다. 우아... 이게 정말 나란 말야? 말도 안 돼.

얼마간 주인 아주머니가 내게 메이크업을 해 주고 나서 내가 거울을 보며 멍 때리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드레스는 마음에 들어요?"

아후 놀래라... 왜 이렇게 날 자꾸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거람? 재희 너 말야, 앞으로 약속시간 꼭 지키- 엇, 턱 턱시도?!

"...아."

"얼씨구, 왜 그래? 진짜 여신같은 모습을 해 가지곤... 너도 내 모습에 반한 거야?"

이 눔 자식은 꼭 좋게 봐줄려고 하면 이런식으로 툭툭 튕긴다니까? 하여간 칭찬해 줄려고 해도 스스로 그 기회를 날려먹어요.

"그래 반했다. 너무 멋있어서. 됐어?"

"야야... 진정해! 그러는 윤하 너도 완전 이뻐 진짜. 여신같다니까."

헤헤 그렇게 말하면 또 부끄럽잖아-가 아니지, 나도모르게 또 재희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얼굴을 붉히며 행복한 표정을 지을 뻔 했네.

"참,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는데, 해도 될까?"

"네~네. 어서 하세요. 기다리기 힘드니까."

난 대충 이 녀석이 뭘 하려고 부른건지 눈치를 챘지만, 그래도 이왕 이렇게까지 무리한 거 속는 셈 치고 그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뭐... 재희가 내게 해주려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래 기다렸어 윤하야. 물론 나도 이 말을 하고싶어서 1년 넘게 기다렸지만..."

아아.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날 위해서 재희는 조심스레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지금까지 기다린 건 내가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는 순간 네게 미래를 약속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이해해 줄 수 있지 윤하야?"

"...물론. 당연한 거 아냐?"

"후후, 그럴 줄 알았어. 아무튼, 그래서 오늘 이 말을 하려구 여기로 부른 거야."

응 어서 말해 줘. 난 언제든지 재희 너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1년 전, 아니 처음 봤던 그 때부터 난 네게 이 말을 듣기를 고대해 왔어.

"윤하야, 나와 결혼해 줄래?... 이건 내가 용돈 모아서 준비한 약혼반지야."

그가 품 속에서 꺼낸 물건을 슬쩍 열자, 조명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은반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밋밋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아름답고 멋진 반지가 날 보며 웃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약혼이라는 환상적인 맹약이 담겨져서.

"너무... 예뻐."

아마도 나는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재희에게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조심스레 반지를 내 약지손가락에 끼워준 재희는 그대로 날 꼬옥 안았다. 아아 포근하다, 그의 품 속은 아무리 안겨도 따뜻하다.

"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재희야."

난 문득 2년 전 그에게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그가 했던 이 말에 대해서도 꼭 이야기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난 안겨있던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그와 얼굴을 마주 봤다.

"날... 두 번째 부인이 아니라 첫 번째 부인 삼아줘서 너무 고마워."

그는 그 얘길 듣더니 옛날 생각이 났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이구 사내놈이 꼭 나랑 있을 때면 이렇게 눈물이 많아진다니까...

"아니... 아니야. 난 내가 했던 그 말을 얼마나 후회했는데..."

눈물을 슥 훔치고 난 재희는 내게 가볍게 키스했다. 달콤해. 그와의 입맞춤은 언제라도 달콤쌉싸름한 맛이 난다.

한참을 둘이 껴안고 있다가 주인 아주머니가 기념촬영을 해주신다고 해서 기쁘게 촬영했다. 빌렸던 드레스와 턱시도를 반납하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다시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 집으로 향하는데 재희가 조용히 얘길 꺼냈다. 여전히 아까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던 나였는데,

"저... 윤하야, 사실은 사과할 거 하나 더 있거든?"

"어? 뭔데?"

재희의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은 물론 온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앞날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그... 나 3월에 입대해. 빨리 갔다와야 할 것 같아서 신청해봤는데, 딱 됬더라구. 하하... 하하하."

"...?? 나... 난 어떻하구우?!"

아니 이 자식이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군대를 간다구? 하, 참, 나 이거 그럼 너 약혼반지는 왜 건네준거야? 2년을 또 기다리란 거야 너? 이게 족쇄였구나? 그치?

"아씨, 너 이리와!!"

내가 주먹으로 때리려고 시늉하자 재희는 '미안!'이러면서 내 사정거리를 빠져나갔다. 도망치는 재희를 쫓아가며 난 '왁!'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아오! 너 진짜, 2년동안 나 바람필지도 모른다?!"

"아앗, 그건 안돼!! 약혼 승낙까지 했으면서 고무신 꺼꾸로 신는게 어딨어! 그건 불륜이다 너?"

아 진짜. 그럼 이 얘길 빨리 했어야지... 너 없는 2년을 혼자 어떻게 버티라고... 이 바보 멍충이, 해삼 말미잘 멍게같은 자식.

"너 진짜 그러기만 해봐, 콱 그냥, 나 자살할 거니까."

"뭐?! 이게 진짜. 내가 어떻게 널 살렸는데 그런소릴 하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나에게 빠르게 다가와 날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는 귀에다 나즈막히 말했다.

"진짜 내가 없어도 외롭지 않게 해 줄게... 꼭 기다려줘!"

갑작스런 그의 포옹에 난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어...어, 알았어. 그, 그러니까 이것 좀 놔... 놔봐!"

그런데 진지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찰나, 그가 또다시 깜짝 놀랄 한 마디를 던지고는 집 쪽으로 뛰어가는 게 아닌가.

"휴가 때... 뜨거운 밤을, 아주 화끈하게 느끼게 해 줄테니까 말야."

".... 푸-푸핫!!!!"

난 얼굴에서 스팀을 쭉쭉 뿜어내며 도망가는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멀찌감치 도망가는 재희를 허탈하게 바라보면서 난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아... 진짜 내 운명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End.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 1부FIN.

============================ 작품 후기 ============================

네...

예정대로 충격과공포 투척!!!

했습니다.

죄송하네요 갑자기 웬지.. 크리스마스가 이틀 앞인데 ㅜㅜ하지만 걱정마세요, 저도 SOLO입니다YO!!

랄까. 쨌든 끝이네요 아, 아쉬워라.

다음 주 월요일에 번외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구요, 그것으로 1부는 모두 끝나게 되겠습니다 ㅜㅜ진짜 1부 후기는 번외편에서 하도록 할게요 하하.

또한

궁금한 점은 댓글로 달아주신다면 번외편 후기에 모두 대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흥ㅁ히ㅏㅓㅇ히허헠ㅎ컹ㅎ엏ㅇ넝.....

모두들 번외편에서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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