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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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학교로 가자마자 내가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야 말았다. 내가 재희의 부축을 받으며 교문에 들어서자 마자 학생들은 무슨 연예인이라도 본 마냥 내 주변으로 접근해 사진을 찍어댔고, 우주와 재희가 건강 문제로 좀 지양해 달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그 뜨거운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우아. 나... 카메라 마사지 받아서 더 이뻐지겠다."
"이런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
난 그냥 멍하니 상황을 지켜봤고, 수습은 두 사람이 알아서 다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고작 오전 수업시간만 지났을 뿐인데 재희와 우주는 엄청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밥 먹는데 화내면 얹힌다 너?"
"윽... 그런 귀여운 표정 지으면... 깨물어주고 싶다고!"
재희는 내가 애교를 부리자 얼굴을 붉히며 먼 산을 바라봤다. 짜식, 내가 좀 매력적이어야지. 나에게 온 이상 넌 절대 날 이길 수 없쥐!
"나 음료수 좀 사 올게. 아까 깜빡했다."
"엉~ 나도 딸기우유 사 줘~."
"알았다 알았어~."
음료수 사온다며 재희가 내려가자 주변의 남학생 및 여학생들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날 이렇게 바라보는 거야?
"저... 누나."
"에- 에?"
내가 햄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우리 반 남자아이 하나가 다가오더니 수줍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애들이라 존칭을 쓰는게 여간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 소원 좀 빌게... 손 좀 잡아주시면 안될까요?"
"...? 내 손은 왜?"
난 아무 생각 없이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고, 소년은 내 손이 닿자 눈을 감고 뭐라 중얼중얼 거리더니 곧 눈을 뜨고 '감사합니다!'란 말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호오라, 이젠 남자 손 잡아도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진짜 정신질환은 사라졌나보네.
"쟤가 왜 저러지."
내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우주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누가 이런 소문을 퍼트렸는지는 모르겠는데, 윤하 너한테 신체 일부를 접촉시킨 채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루머가 지금 한창 돌고 있어."
"하아...? 그 뚱딴지 같은 얘기를 믿는거야 지금?"
뭐 그렇게 따지자면 나와 재희 사이의 일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겠다만. 난 여전히 이런 미신 따위는 잘 믿지 않는다.
"난 지금이라도 네 손 잡고, '이 여자가 절 좋아하게 해 주세요'라고 하고 싶은걸?"
"뭐라고?!"
난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는 우주에게 당황해서 주먹으로 녀석의 등을 가격했다. 그래봤자 비실이 주먹이라 아프진 않을 게 뻔했다.
"웃기지마 임마. 넌 내 영원한 친구로 남아야지."
"에이, 그럼 너 일본 여행갔을 때 쯔음엔 왜 그렇게 나한테 매달린거야?"
"와악!! 왁! 그 얘길 왜 꺼내고 그래!!"
갑작스러운 녀석의 약점공격에 난 당황한 나머지 어버버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허둥지둥 허공에서 젓가락 댄스를 추는데 우주가 폭소를 터트리더니 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웃어댔다.
"아하...하... 아이고 배야. 장난이야 장난, 나 진짜로 이제 너한테 아무 감정 없어 윤하야. 하하... 하아.."
아오, 이 얄미운 놈의 자식. 능청만 늘어가지고!
"뭐 사실을 말하자면 그때는 너한테 넘어갈 뻔 했다고 봐야겠지. 그... 그래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 무엇보다 넌 내 소꿉친구이기도 하고... 그리고..."
난 우물쭈물 거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고, 우주는 연식 '허억, 허억'거리면서 터진 웃음을 쉽게 끊어내질 못했다. 결국 내가 발끈해서 등짝에다 강 스파이크를 먹여주고 나서야 녀석은 '끄악!'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마침 교실로 들어오던 재희는 그 광경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오 내 손이 더 아프네..
"뭐하냐 너네?"
그 때의 재희 표정이 어찌나 웃겼는지, 내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힘겨운 하굣길의 학생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희는 그대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거실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오자마자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온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재희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키득거렸다.
"야, 일어나 재희야. 언제까지 그러구 있을거야. 씻고 밥먹자."
"아- 피곤해... 나 그냥 이러고 있을래."
내가 한심하단 눈으로 바라보며 볼을 꼬집자 녀석은 낑낑대며 일어날 생각을 하질 않았다. 어휴 이걸 어떻게 한다.
"아 좀~ 내가 계란말이 만들ㅡ꺆!"
[와락!]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재희는 갑자기 날 낚아채서는 와락 껴안는게 아닌가. 난 깜짝 놀라 얼굴이 시뻘개져서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윽... 너무 힘이 세서 빠져나갈 수가...
"윤하야."
"아, 왜! 이것 좀- 끙. 놓구 말해~!"
아오 이놈아 너무 가까워-!! 나 진짜 이러면 가만 안둔다 너?!
"나랑... 정식으로 사귀자."
"...어?"
그 말에 난 일체 행동을 멈추고 녀석의 눈을 바라봤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재희 녀석의 시선에 붉었던 내 얼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녀석의 말에 한동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멍하니 있던 나는 녀석이 갑자기 키스하려고 달려드는 바람에 옆구리를 강하게 찌르고 재희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악, 진짜. 너 짐승처럼 자꾸 그럴거야?!"
"아 왜! 사랑해서 그러는데 왜 자꾸 피하는거야 응?"
난 볼에 홍조를 띄운 것도 모르고 양 검지손가락을 맞대 붙였다 뗏다 하면서 우물쭈물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니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방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다시 재희에게 잡혀 안기게 되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광경을 마침 돌아오신 부모님이 보고야 말았다.
"아... 이런,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보구나."
"다시 나갈까요 여보?"
"엄마, 아빠!!"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빠는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방으로 들어가시려다 잠시 멈춰서셨다. 그리고는 무슨 할 말이 떠오르셨는지 손뼉을 탁 치시더니 이런 말을 하시는게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옛날에 재희일 때 하도 윤하랑 결혼한다고 그래서 둘이 약혼이나 시킬까 했는데 마침 잘 됐구나."
"어머~ 그러네요. 옛날에 그랬었지 참."
엄마도 맞장구를 치며 호호 웃으셨고, 재희는 그 말을 듣더니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꺄악-!! 사람 살려!!"
"서~윤하. 들었지? 니 본심을 숨기지 말라고!!"
부모님은 이제 완전히 날 딸로서 대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위기에 빠진 아들... 아니 딸을 저버리다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욧!
"...끙. 암튼 좀 기다려! 마음의 정리를 할 때까지. 아직 깨어난 지 삼일 밖에 안됬다고오!"
"그래."
녀석은 내가 바둥거리자 갑자기 손을 탁 놔버렸다. 어 잠깐, 이래버리면 나...
"꺄울!"
[와당탕]
"헐, 괜찮아 윤하야?"
너같으면 괜찮겠냐 이 웬수야! 으으... 내 다리에 내가 걸려 넘어지다니.. 완전 쪽팔려!
"끙... 아파... 우엥..."
내가 다리를 부여잡고 울상을 짓자 재희는 지가 더 놀라서는 다리를 걷어보더니 파스를 뿌리고 붙이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럴 거였으면 좀 소중히 다루는게 어떻겠니 한재희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라구.
한참을 받을 필요도 없는 재희의 치료를 받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재희가 곁으로 슬쩍 다가왔다. 녀석은 또 소심해져서는 행여 내가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야 한재희."
난 깨어난 다음 날 재희에게 해 줬지만, 또 한번 이 말을 하며 그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는 내가 부르자 조심스래 고갤 들어 날 바라봤다.
"고마워 살려줘서."
내 말을 듣자 재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처음 이 말을 들은 이틀 전에는 펑펑 울기만 했는데... 그래도 이젠 꽤 괜찮아 진 듯, 내 말을 맞받아 쳤다.
"무슨 말이야, 날 살려준게 너면서..."
그는 조심스레 내 손을 잡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야 윤하야."
============================ 작품 후기 ============================
+14.07.11 수정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