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 * * * *
"크헉!"
"재희야!"
겨우 일어났다. 왜 이렇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가 힘든 거야?
"헉...헉... 무슨 일이야?!"
재빨리 상황파악에 나섰다. 아빠도, 우주도 돌아와 있었고, 소이치로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크읏... 숨이 돌아오질 않아, 맥박은 어때!"
"다행히 아직 90선이지만... 자꾸 떨어지고 있어요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한동안 윤하에게 인공호흡을 한 듯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엔 심각함이 가득했고, 땀을 거칠게 닦아낸 후 다시 인공호흡에 들어갔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윤하가 숨을 안 쉬어요?"
"산소마스크가 빠져있었고... 넌 기절해 있었어. 그 사이에 일이 난 것 같아."
젠장, 내가 중간계로 넘어가면서 미처 그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지 못한 게 화근이 되었던 모양이다. 난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돌아가서 윤하 곁을 지키라 헀는데, 이렇게 윤하의 숨이 꺼져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지 않는가.
"하아... 하아... 젠장 안 간호사, 가서 빨리 레지 한명 불러-!!"
"제가 할게요!!"
맥박이 점차 떨어진다. 숨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가 돌아올 수 있게 그녀의 호흡을 정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공호흡을 하고 있던 의사선생님이 엄청나게 지친 기색을 보이며 다른 사람을 부르자, 나는 내가 하겠다며 나섰다. 그는 위급상황이라 안된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난 걱정 말라고 그를 안심시킨 뒤 재빨리 숨을 들이켰다.
"스읍..."
숨을 가볍게 들어마신 뒤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닿게 한 후 가볍게 숨을 불어넣는다. 제발, 그녀의 숨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그녀에게 숨을 다시 불어넣는다.
"80대야!"
"빨리 불러 안 간호사!!"
"네 선생님!!"
다음엔 양 손을 깍지 껴 그녀의 가슴께에 댄 후 빠르게 눌러준다. 하나, 둘, 셋, 넷... 수십 회 반복한 후 그녀의 입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제발, 눈을 떠 윤하야!!'
두 세트, 세 세트, 반복하면 반복할 수록 나는 점차 지쳐가는데, 그녀의 숨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70!!"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제발 돌아와라, 제발!! 윤하야!!
난 거칠게 다시 그녀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돌아와줘... 윤하야...!!'
안돼, 안된다고.... 안된다고!!
윤하야, 안되 이건 반칙이잖아? 응?
엄마가 분명 내가 지키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는건 반칙이잖아!!
"재희야 좀만 더 힘내라!"
"학생 다시 바꿔!!"
제발, 일어나. 내가 잘못했어 윤하야.
전부 내가 다 사과할게... 널 바람맞힌 것부터 상처입힌 것까지... 모두다 사과할게.
1년동안 빌고 또 기도했지만, 또 사과할게.
제발, 날 버리고 먼 곳으로 가지 말아줘 윤하야.
너마저 가버리면 난 희망이 없단 말야.
"제발... 일어나!!!!"
바로 그 때.
기적이라도 일어났는지, 거칠게 그녀의 가슴으로부터 숨이 터져 나왔다.
"크헉-!! 컥... 캘록 캘록"
"...!! 돌아왔다!!!"
"선생님 데려왔어요! 엄마야! 환자 깨어난거에요?!"
"세준, 잘 왔다 언능 환자 맥박 혈압 호흡 체크하고 나 올때까지 절대 방심하지 말고 있어!"
아... 아아아!!
"캘록...큭... 금... 뭐하...캑, 거야...!!"
기침을 연신 해대는 그녀는 뭐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뭐? 뭐라고 했어 윤하야.
듣고 있으니까 말해봐 윤하야!
"윤하야? 윤하야?"
* * * * *
"악!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정신을 차려보니 이게 무슨 일인지, 사신이 내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난 깜짝 놀라 강하게 싸다구를 후려쳤다.
"억! 야 너무 아프잖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니 누워있던 내 옆에 아줌마가 앉아 계셨고, 사신이 내 옆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아줌마의 몸이 빛나질 않는데? 빛나고 있는 건 내 손?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이유나."
"후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신님께는 여러 번 신세만 지네요."
그녀의 몸은 차츰 투명해져 갔고, 내 몸엔 그녀의 빛이 깃들었는지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거...? 내가 왜 이렇게...
"아무튼 네 업을 이 아이에게 덜어버렸으니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보내주지.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이 아이는 분명히 '그 분'의 눈길을 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신의 형체가 점차 일그러지더니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고맙습니다. 윤하야 고맙다. 아줌마는 이제 맘 편히 가도 되겠구나."
사신이 재희의 모습을 갖추기가 무섭게 아줌마가 하늘로 떠올랐고, 점차 몸이 투명히 변하는 와중에 내게 미소지으셨다. 그녀는 연신 내게 고맙다는 말을 쉼 없이 계속했다.
"정말 너무 고맙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긴 세월동안 너무 크나큰 도움이 되어주어서..."
그리고 꽤 오래 전 일본에서 잠결에 아저씨에게 들었던, 너무나도 내게 과분한 한 마디를 다시한 번 아줌마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정말 윤하 너는 이제 내 딸이나 다름없는 존재란다... 고맙다."
"아줌마!!"
서서히 하늘의 점으로 사라져가는 그녀를 보며 난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딸이라니.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내게 정말 과분한 말이었다.
"행복하세요!!"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난 시선을 떼지 못했고,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던 사신은 그녀가 사라진 후에 내게 말했다.
"정말, 누구의 '염원몽'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강한 건 정말 10년만이군. 아마도 지금 내 모습마저 변화시켜버린 이 녀석 짓인가?"
재희다. 재희가 지금, 날 엄청나게, 애타게 부르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아... 그래, 키스는 왜 하고 그래 너!"
"그건 이따가 내려가서 내 꼴을 하고 있는 이 자식에게 물어봐라."
사신은 당황한 듯 힘없이 주저앉았다. 정말 몸이 가누어지질 않는 모양이다... 난 미안한 마음에 양 손으로 녀석이 일어나는 걸 도와주었다.
"그런데 내 몸은 왜 이러는거야?"
"그 빛... 모두 이유나가 네게 맡겨두고 간 것이다. 그 정도로 강한 '꿈꾸는 힘'을 모두 네게 줌으로써, 아마 원래 죽어야 할 그 몸 주인의 운명마저도 거역한 채 인간계에서 널 부르는 힘에 이끌려 다시 돌아가게 되겠지."
"뭐? 그럼 나 다시 돌아가는거야? 무기한이래매!"
잔뜩 찡그린 사신의 모습이 애처로웠으나, 녀석은 이 말들을 꼭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넌 아마 모르겠지만, 니가 지금 몸에 지닌 막대한 힘과 인간계에서 날 이렇게 귀찮게 만드는 힘은 모두 창조신인 '그 분'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 우리들이 아무리 중간계를 다스리고 관할한다고 해도 '그 분'의 힘은 거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다!"
"힘...?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아무튼 이게 재희 가족 때문이란거지?"
녀석은 잘 서있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지고는 낑낑대며 다시 일어났다.
"그래, 큭, 엄청나구만!!"
엄마야, 재희 모습을 하고 갑자기 끌어안는 사신 때문에 난 혀를 깨물 뻔 했다. 이렇게 과격하게 날 안아 줄 녀석은 한 놈 뿐인데. 역시 그 녀석이 맞는 모양이었다.
[윤하야! 내 말 들려? 나, 재희야!! 정신차려!!]
"재희...? 너 맞아?"
우와아아악 안은 채로 막 흔들지 말라고 이놈아~! 어지럽다고!
* * * * *
"윤하야, 윤하야?"
"어허 학생!! 환자 그렇게 흔들지 말라니까!!"
난 자꾸 웅얼거리는 그녀를 안고 살살 흔들었다. 맥박은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그녀가 정신만 차려준다면... 그래만 준다면 순조롭게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아, 그녀가 뭔가 다시 말하려고 한다.
"정말... 재희야?"
게슴츠레 실눈을 뜨고 말하는 윤하. 그녀가 눈을 떳다, 무려 1년이라는 긴 시간만에 그녀가 눈을 떴다.
젠장, 눈물이 쏟아진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았는데... 이젠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래 실컷 쏟아져라, 아무리 눈물이 쏟아져도 난 웃음만 난다.
"응, 나야!! 나!!!"
* * * * *
"어우 젠장, 어쩔 수가 없군. 어이! 윤하!!"
사신은 비틀거리며 사신의 낫을 꺼내들었다. 화들짝 놀라는 날 진정시키며 그는 손목을 머리 위로 쭉 뻗으라 했다. 또 사신으로 돌아왔나보다.
"뭐... 뭐 하려고?!"
"하앗!"
힘차게 휘두른 낫은 내 손과 손 사이의 허공을 갈랐고, 동시에 손에 있던 구름 수갑이 '퍽'하고 사라져버렸다. 나 진짜 풀려나는구나?
"지금 다시 하계로 돌려보낸다. 재희 녀석과 그 가족들이 쌓아온 '꿈꾸는 힘'으로 인해 네게 다시 삶이 주어지겠지만, 명심해. '그 분'은 널 주시하고 계신다. 지금은 이렇게 돌아가도 나중에 어떻게 되돌려 받을지 모른단 소리야."
사신의 모습이 점차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녀석의 손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힘겹게 손을 치켜든 사신은 오른손으로 바닥에 구멍을 뚫더니 저만치 아래에 점으로 보이는 한 곳에 빛으로 표시를 해 주었다.
"이것도 네 운명이니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여튼 1년간 날 따라다니느라 고생했다. 너희 세계로 돌아가 잘 살다가 명이 다하면 그 때 보자!!"
그리고는 사신은 내 몸의 빛을 내 주변에서 아른거리게 구 형태로 만들더니 날 구멍으로 떠밀었다. 어, 엇.. 떨어진다!
"그- 일년동안 고마웠어 사신!!"
"잘 가라-!!"
"나... 정말-!!"
말을 마치지 못했는데, 난 점점 구멍 속 사신의 모습과, 구름 가득한 중간계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 가득한 빛들이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무언가게 점차 깎여나갔고, 내 몸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빛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흡사 운석 조각이 땅으로 떨어지며 대기권에서 불타는 듯 한 그런 모습이었다.
굉장한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내 앞에 이내 점으로 보이던 곳의 모습이 점차 크게 변했고, 내가 그 곳이 우리 동네라는 걸 깨닫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깎여나가던 날 둥그렇게 감싸던 빛이 점차 그 끝을 드러냈고, 지상에 도착할 때 쯤에는 거의 희미한 빛만 조금 남아 있는 정도로 다 불타 없어졌다. 속도는 점점 느려져 한 건물의 옥상에 도착할 때 쯤 아주 느려졌고, 빛이 전부 불타 없어짐과 동시에 난 가볍게 침대 위에 떨어졌다.
[쿵]
미처 사신에게 다 하지 못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고, 침대 주변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울음이 터졌다.
"나... 정말 열심히 살게..."
울고 있는 날 안은 채로 재희도 함께 울었고,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도 날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진짜 돌아왔구나'란 생각이 진하게 들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고마워... 재희야..."
<14. 그리고 365일> End.
============================ 작품 후기 ============================
+14.07.11 수정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