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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98화 (97/188)

98화

*  * * * *

"....?"

난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뭐지? 분명 누군가가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왜 그래? 뭔 일이야."

사신이 저만치에서 날 보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어우 또 깜빡 잠들었나.

"아니... 누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뭐? 거 참, 저번에도 그런 환청이 들린다더니만..."

[서-윤-하!!]

깜짝! 난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한 번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아니야... 이건 환청이 아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중간계에서 날 부르고 있어.

"진짜야! 저쪽에서 계속 들린다구!"

"어, 엇 야! 잠깐, 뭔데 그래? 난 안 들린다고!"

내가 재빨리 소리가 난 쪽으로 치맛자락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하자 사신은 궁금했는지 날 뒤따라왔다.

[윤-하-야!~!]

날 부르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나한테만 들리는 모양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들리는 이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데도 사신은 아무 반응 없이 내 뒤를 쫓아왔다.

그런데 어째 아무리 달려도 이놈의 소리가 금세 가까워지진 않았다. 한참을 달려왔는데도 겨우 조금 커진 정도의 소리라 이 방향이 맞는지도 헷갈렸다.

"아... 엄청 먼가본데... 아무리 가도 안 가까워져."

"어우 거 참, 지금 마침 일이 없어서 다행인 줄 알아라."

"어, 어? 야, 자 잠깐만!"

사신 녀석은 날 공주님 안기로 번쩍 안아올리더니 힘껏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에구머니나, 이건 도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뛰어가고 있는거야?

"와아아악!! 너무 빨라~!!"

"소리나 잘 들어 봐. 어느쪽이야?"

[야!! 서- 윤- 하!!]

또 들린다, 훨씬 가까워졌는데...

"저 쪽!"

"꽉 잡아, 순식간에 접근한다."

[퍼엉-!!]

엄청난 속도로 마치 미사일이 날아가듯 달려가는 사신 때문에 오금이 저렸으나, 난 어떻게든 날 부르는 소리를 들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뺨을 후려치는 와중에도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어느 덧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아-!! 진짜!! 어디 있냐고오-!! 서윤하-!!"

"!"

굉장히 근접한 소리에 난 깜짝 놀랏다. 이 목소리, 굉장히 익숙한 이 목소리는 분명 그 녀석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그 목소리는, 잠들어있던 내 감각기관을 신경 끝까지 곤두세울 정도로 아찔하고 짜릿했다. 그 목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코끝이 시려오기 시작했으며, 눈물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이쪽!! 이쪽이야!"

"저건...!"

눈 앞의 구름으로 덮힌 숲처럼 생긴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자꾸만 날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어디서 돋아난 나무인지 구름잎을 가진 나무가 울창한 이 곳에서 그 녀석을 만날 수 잇을 거란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한재희-!! 나 여기있어!!"

*  * * * *

"방금 윤하 목소리가!"

"...!! 사신이 온다. 어서 도망쳐 재희야!!"

"하지만 지금 윤하가 왔다구요!! 진짜 왔어요!!"

내가 거칠게 반항하자 엄마는 날 강렬한 눈빛으로 제압하시고는 급하게 날 구멍으로 도망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서 가거라 재희야. 지금 가지 않으면 10년간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아!!"

"엄마!!"

"부탁이다. 엄마가 나머진 알아서 다 할테니... 넌 어서 인간계로 돌아가 윤하를 지키고 있거라. 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난 힘겹게 옮겨야만 했다. 여기 있으면 엄마와 윤하를 모두 볼 수 있지만 그랬다간 할머니로부터 이어진 의지가 담긴 작전이, 윤하를 되돌릴 작전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난 초인적인 힘으로 이 거부감을 억누르고 빨리, 도망쳐야만 했다.

"엄마, 늘 잊지 않을게요."

"그래. 나도 항상... 널 잊지 않고 있으마."

"사랑해요, 꼭... 좋은곳으로 가셔야 해요!!"

빠르게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나의 귓전을 타고, 엄마의 마지막 한 마디가 강한 여운을 남기며 내 고막으로 파고들었다.

"사랑한다 재희야... 정말 잘 했어..!"

진정 엄마는 끝까지 내 생각과 윤하 생각 뿐이셨던 모양이다.

빠른 속도로 원래의 안개가 낀 언덕으로 떨어지면서 난 생각했다.

'윤하의 목소리.. 너무 오랜만이라서 감정이 주체가 안 돼...'

엄마의 목소리와 생동감 넘치는 모습도 날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더욱 자극적이었던 것은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던 윤하의 목소리였다.

"...! 맞다, 산소마스크!"

안개가 자욱한 바위 위에 착지한 나는 잊고 있었던 게 불현 듯 떠올랐다. 큰일이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윤하의 생명이 위험할 지도 몰라!!

"젠장, 여기선 어떻게 돌아가야 하지?"

그러나 이 곳에서는 어떻게 나가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올 때 어떻게 왔더라?

"....하아, 밑져야 본전이다."

난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바위 위에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  * * * *

"여기다!... 아니?"

"아... 아줌마!"

구름을 퍽 하고 뚫고 나오자 원형으로 생긴 공간에 누군가가 빛을 머금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1년 전 꿈 속에서 내게 의지를 물었던 그 분, 바로 윤하의 어머니였다.

"이럴 수가... 번개 맞을 확률을 이런 식으로 뚫게 될 줄은...!"

금빛으로 연하게 빛나는 새하얀 천옷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채를 내는 그녀의 신체가 살포시 공중으로 살짝 떠올라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사신 님."

"10년만이군 이유나. 이제는 방랑하지 않고 이 곳에 머무르고 있는 건가?"

내가 아무 말 못하고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아줌마가 먼저 사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신은 약간 언짢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네 한 1년쯤 되었을까요. 전 아직 천국 가려면 멀어서요~"

"끙, 너인가? 이 아이를 부른 게? 그런데 어떻게 부른 거지 도대체?"

그녀의 손목엔 나와 같은 구름 수갑이 걸려 있었고, 몸의 색은 어째서인지 약간씩 투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비밀이에요... 다만 윤하가 제 바람대로 이 곳에 왔다는 게 기쁘네요. 꽤나 먼 거리를 이렇게 빨리 온 걸 보니 사신님께서 도와주셨나요?"

"그... 그런 셈이긴 하지."

사신은 안고있던 날 바닥에 내려놓고는 당황한 기색을 표했다. 그걸 보더니 아줌마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날 보며 이야기했다.

"역시, 이 아이는 너무 매력적이지 않아요? 사신마저 빠져들게 만들 정도로... 이런 아이의 사랑을 받는 우리 재희는 정말... 얼마나 행복할까요."

활짝 웃어보이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서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나지막히 내게 말했다.

"꼭 한 번 안아보고 싶었단다 윤하야... 괜찮겠니?"

"아... 네."

그녀의 몸이 가까이 다가오자 옅은 빛을 내던 내 몸이 갑자기 진한 광채를 띄기 시작했고, 그녀가 서서히 나를 껴안자 그녀와 나 사이에서 엄청난 빛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사신은 놀라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고, 아줌마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품에 안겨있던 나는 스르륵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졸립...다

============================ 작품 후기 ============================

+14.07.11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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