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97화 (96/188)

97화

「그렇게 시작한 일, 끝낼 수 있는 건 너 뿐이야.」

우주는 말했다. 오직 이 일을 결말지을 수 있는건 나 뿐이라고.

「바로 윤하 너. '종결자'가 해야하는 할 일이 남아있어.」

그리고 그를 위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너가 할 수 있는게 뭔지. 답은 너 안에 있다고 했으니까 말야.」

내가 할 수 있는게 뭔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난 그래서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일 그녀를 보살피며 깊이 생각했다. 그러나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다.

뭘까, 난 무엇을 더 해야만 그가 말한 이 작전의 '종결자'로서 1년이나 지루하게 이어진 그녀의 혼수상태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일까?

아빠는 내가 어릴 때 내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내가 '꿈꾸는 힘'을 가진 아빠와 엄마 사이에 태어나 두 분의 힘을 물려받았으며 여자로 태어난 나는 '예지몽'을 꿀 수 있다고... 실제로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힘이 실재함을 여러 번 경험했었다. 몇 안 되는 경험 중에 한 번은 엄마가 수호부적이 되기 위해 레이누나와 소이치로 가족에게 힘을 받을 때, 그 순간 엄마가 사고당하는 '그 날'의 꿈을 살짝 봤고, 사고가 난 그 때 엄마를 구해 끌고오시는 아빠를 보며 병원에서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최근에는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까. 혹시 몸이 바뀌고 난 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예지몽'이라는 능력을 잃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난 부모님처럼 의지대로 힘을 쓸 수 있는 그 정도의 능력자가 아니라 확실히 알 수도 없었다.

'차라리 아빠라면... 윤하를 '염원몽'으로 불러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고민하기에는 윤하만을 위한 날인 오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난 지금 날 충동질하는 이 행동을 꼭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녀를 안아주고...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나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오늘만 들었던 생각은 아니었던 생각. 과거 윤하와 서로 관계가 꼬여갈 때도 난 몇 번이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강제로 얻으려고 한 적이 있었고, 그 이후 사이가 좋아진 후에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난 노력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내주고, 그녀를 나만의 사람이 되도록 이렇게 애타게 노력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난 꼭 그녀에게 키스 해야만 해.'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고, 한참을 정신없이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민을 모두 떨쳐내 버렸다. 그리고는 마음과 몸이 시키는 대로 서서히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나서 아무 거리낌 없이, 그녀를 위해 늘 바래왔던 소원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잠시 그녀의 산소마스크를 입에서 살짝 치우고 부드럽게 키스했다.

아, 처음 느껴보는 그녀의 입술은, 너무나 달콤하고 황홀한 느낌이었다.

'...!'

그런데 일순간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몸이 가누어지질 않았다. 위험을 감지한 나는 윤하에게 다시 산소마스크를 씌우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돼..! 산소마스크를-!'

쿵. 순식간에 손 쓸 겨를도 없이 난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황급히 눈을 뜬 후 난 주변을 살폈다. 예전에 한 번 쯤은 와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그곳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잔뜩 구름이 끼어 사방이 깊은 안개 속에 빠져있는 언덕이 보이자 난 본능적으로 안개를 헤집고 앞으로 달렸다. 분명 이 쪽으로 가면 내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사람이 내 눈 앞에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엄마!'

10년 전 꿈 속에서 그랬던 것 처럼 안개를 헤치고 나가니 커다란 바위가 나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곳에 있어야 할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어디지? 왜 안 계신 거지...?'

여기저기 둘러보던 나는 곧 10년 전에 엄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위 위로 올라가 하늘을 보았다. 정말 고요한 하늘에서는 내게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로 누군가가 날 부르고 있었다.

'윤하야, 올라오렴.'

엄마다. 정말 작은 소리였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이 위로 올라가면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야 해, 저 구름을 뚫고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해!

'가자, 엄마가 날 부르고 있어!'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몸이 붕 떠올랐고,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향해 쏘아진 난 두꺼운 구름을 뚫고 그 위로 나올 수 있었다. 바닥에 착지하자 부드러운 구름의 느낌이 났고, 눈 앞에는 엄마가 온 몸에서 빛을 반짝이며 서 계셨다. 엄마다... 10년 만에 다시 보는 엄마의 모습에 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왔구나 재희야... 우리 딸 윤하야..."

"엄마!!"

그러나 엄마의 품에 달려들려던 나를 피하며 그녀는 거칠게 막아세웠다. 뜻밖의 행동에 당황한 내게 엄마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중간계야 재희야. 그리고 넌 지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곳에 와 있다. 나와 접촉했다간 사신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져 너도 이곳에 갇히고 말아!!"

"하지만..."

"그래 엄마도 알고 있다... 나도 널 안아주고 싶어 미치겠는걸..."

풀죽은 내 표정을 보며 엄마는 슬픈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재희야, 네가 이 곳에 오게 된 이유가 있단다."

"뭔데요?"

"'종결자'라는 단어 들어 봤지?"

종결자. 우주가 내게 얘기해 줬던 이 작전을 끝내고 모든 것을 원상복귀 시킬 수 있다는 나의 역할. 그 단어를... 엄마가 알고 있었다.

"넌 지금 '종결자'가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을 문제없이 수행해 냈단다. 이제 남은 건 단 한가지 뿐이야... 그것만 해 주면 내가 윤하를 다시 인간계로 돌려보낼 수가 있어."

내가 그 역할의 대부분을 해 냈다고? 난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엄마에게 되물었다.

"제가요...? 전 그저 윤하 곁에서 간호를 하기만 했을 뿐인ㅡ"

그러나 되묻는 질문을 머릿속으로 곰곰히 생각하던 나는 이내 깨달았다. 아,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나의 행적들이 설마... 우주가 말했던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는 거야?

"재희 너도 깨달았지? 네가 무의식중에 했던 1년간의 윤하 간호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하... 하지만 엄마. 이제 내겐 '꿈꾸는 힘'같은 건 없잖아요. 몸이 바뀐 뒤로 한 번도 '예지몽'을 꾼 적이 없는데..."

잠깐. 설마 '예지몽'을 못 꾸는 건 '꿈꾸는 힘'이 없어진 게 아니라 내가 재희의 몸을 받으면서 남자가 되어...

"'염원몽'은 안 써봤나 보구나. 비록 미약하긴 해도 그 몸을 받은 뒤엔 쓸 수 있게 되었을 텐데... 실제로 1년간 넌 윤하에게 꾸준히 염원의 힘을 주입해 왔잖니?"

아아. 그럼 내가 1년간 윤하를 보살피며, 매일같이 빌었던 소원이 지금 축적되어 날 엄마가 있는 곳으로 오게 했다는 소리인가? 그럼 정말 내가 무의식중에 '염원몽'을 통해서 '종결자'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거야?

"그 결과 넌 이 곳에 와 있단다. 네가 윤하에게 한 키스가 기폭제가 되어 그 동안 쌓았던 염원력이 발동한 거야."

윽 그걸 어떻게 아셨지?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윤하를 부를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윤하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거에요 엄마?"

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작전 때 그녀가 날 대신 희생한 건 오로지 죽음을 피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그녀와 몸이 바뀌어 '염원의 힘'을 얻어 그녀를 다시 데려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녀와의 몸 교체가 필요했고... 그녀의 희생이 꼭 필요했다는 걸 깨닫자 갑자기 기운이 마구 샘솟았다.

"조심! 일단 네가 중간계로 올라온 구멍 옆에 가서 큰 목소리로 윤하를 불러 줄래? 혹시 사신이 올 수도 있으니, 여차하면 그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알았지?"

"네, 그렇게 할게요."

그래 마지막 한 발자국은 윤하를 부르는 거구나. 내가 젖먹던 힘까지 모두 짜 내서 이곳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그녀를 불러야겠다. 혹시 그녀가 내 목소리를 못 들으면 안 되니까. 진짜 올 때까지 목청이 터져라 부를 거야.

"후우. 서윤-하!!!!!"

내 목이 설사 오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지라도 그녀를 부를 거다.

아니, 앞으로 목소리 따위 못 내게 되어도 상관 없어.

"서-윤-하!!!!!"

난, 난 네가 필요해 윤하야.

제발... 내 목소리를 들어줘.

"윤-하야~!!!!!"

제발.

============================ 작품 후기 ============================

+14.07.11 수정완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