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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94화 (93/188)

94화

한달 뒤, 기말고사도 끝나고 난 뒤인 12월 15일에 나와 우주, 민혁이는 병실에 다같이 모여 작은 추모행사를 벌였다. 민혁이 놈의 주도로 펼쳐진 이 추모행사의 이름은 '재희를 나쁜 윤하에게 빼았긴 지 1주년을 추모하며'라나 뭐라나. 여튼 서로 몸이 바뀐 지 1년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했다.

난 도대체 이게 뭐가 중요한 일이냐며 툴툴거렸으나, 우주는 이런 것도 좋지 않느냐며 낄낄거렸다. 민혁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던 터라 나도 더 이상의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크... 기억난다, 작년 이 때. 재희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데. 다행히 정신은 차렸지만 애가 곧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구."

"그렇게 이상했냐?!"

"응, 좀 웃겼지. 연신 거울이랑 자기 몸을 막 쳐다보고 만지고 하는게 엄청 수상했다니까. 그래도 그 당시엔 설마 몸이 바뀌었다고는 생각도 못 했지. 누가 했겠어 그런 생각!"

그렇게 한 시간동안 녀석들과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나니, 둘은 슬슬 돌아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간다. 아무튼 여러 번 고맙다 윤하야."

"별 말씀을, 이제 재희라고 부르라니까 자식아. 그리고 자주자주 놀러와. 윤하도 너희 보고싶어 할 거야."

"그래그래. 아 그리고 너 잠 좀 충분히 자고 말야!"

우주 녀석은 가기 직전까지 내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알았다 알았어. 윤하도 이제 많이 안정됬으니까 그렇게 할게."

돌아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윤하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좋겠다 윤하야. 오직 널 돕기 위해 10년이나 고생한 놈도 있고, 네게 잘못한 것 하나도 마치 엄청난 죄를 지은 것처럼 걱정하는 놈도 있고... 친구들이 하나같이 진국이라서 말야."

그리고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 널 이렇게 사랑하는 나도 있고..."

*

다음 다음 주, 방학식도 끝나고 난 뒤인 크리스마스, 12월 25일이 찾아왔다. 치료가 어느정도 많이 진행되었고 윤하도 놀라운 회복속도를 보이면서 며칠 전 대부분의 깁수와 붕대는 이미 제거한 상태여서인지, 담당 의사는 나와 아빠에게 병실을 옮길 것을 권했다.

「이제 중환자실 말고 일반 개인 병실을 쓰셔도 되겠습니다. 몸은 많이 회복 되었으니 면회객이 많이 찾아오는 환자같은 분은 단독병실로 옮기는 게 좋겠군요.」

면회객이 많긴 많았다. 우리 반 친구들을 비롯해 그들의 친구들까지 자주 윤하의 병실에 들렀기 때문에 나로선 의사선생님의 이러한 배려가 참 고마웠다.

"어휴, 이건 뭐 완전 성지다 이제."

그렇게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니 면회객의 수는 배 이상으로 더 늘어났고, 어떻게 된 것인지 내가 모르는 전교생이 다 이 병실로 찾아오는 것 같았다. 어휴, 이건 정말 방금 다혜가 말한 대로 우리 학교의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 되어버린 듯 했다.

"하하... 그럼 애들은 다 순례객이고?"

게다가 오면서 다들 무슨 선물들을 그리 사오는지, 아주 약소하게 사 와도 사람이 많았던지라 그 수가 엄청났다. 하나 둘씩 쌓이던 화초는 둘 곳이 부족해서 반 이상을 집 마당의 화분으로 옮겨 심었고, 과일이나 음식들은 면회객을 계속 줘도 그 수가 쉽사리 줄질 않았다.

"뭐 덕분에 난 여기서 이렇게 요리 연구도 하고 좋은걸?"

나연이는 그 음식재료들을 그냥 깎아만 주는게 아까웠는지 그것들로 과일샐러드며 퓨젼 요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기에 이르렀고, 손님들 반응까지 봐 가면서 계속 레시피를 추가하기에 이르렀다.

"흠... 나연아. 이거 이 메뉴있잖아, 이건 빼야할 것 같아. 좀 거부하는 애들이 좀 있더라고. 대신에 이 딸기랑 시럽을 써서... 이런 건 어때?"

그런데 민혁이 녀석이 그걸 말리기는 커녕 관심을 보이면서 자기의 요리지식을 총 동원하여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병실을 마치 하나의 카페같은 분위기로 만들어버렸다. 아오 이것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윤하는 아직 환자거든?

"좋다! 그럼 그 메뉴로 내일 사람들한테 블라인드 테스트 해 보자."

"오케이~ 그럼 어디한번 만들어 볼까?"

내가 아무리 구박을 하고 그만 좀 하라고 말려도 이것들은 병실에서 장사라도 할 셈인지 하루에도 몇 개씩 신메뉴를 만들어 면회객들에게 지급하곤 했다. 게다가 두 사람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 자꾸만 신경쓰이는 것도 있었다.

"아 증말! 그만 하고 좀 접었! 이 테이블은 또 어디서 가져온거야?"

"윽. 재희 또 화낸다. 너무해! 그치 민혁아?"

"맞아, 우리가 뭐 폐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어쩌다가 민혁이가 홀랑 나연이에게 넘어간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윤하가 꼬~옥 자길 바라봐주는 한 사람만 고르라고 강조했던 게 아주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연이가 힘들어하던 민혁이에게 힘이 많이 되어줬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윤하의 용서를 들은 뒤로부터 자신에게 정말 잘해주는 나연이에게 흠뻑 빠져 얼마 전 서로 사귀기로 했다나 뭐라나...

"어유, 저 둘은 언제 저렇게 된 거야 대체?"

다혜가 노트에다가 신작 소설을 끄적거리다가 민혁이와 나연이가 히히덕거리는 것이 보기 싫었는지 내게 궁시렁거렸다. 그렇게 나연이랑 함께 다니던 단짝이었는데 나연이가 사랑을 찾아 다혜를 버리고 떠나버렸으니... 속상할 만도 하겠다.

"참아 다혜야... 내가 맨날 뭐라해도 소용이 없어."

"으... 정말, 나 먼저 가야겠다. 집중이 도무지 안 되서 글을 못 쓰겠어.'

난 실소를 지으며 다혜를 말렸다. 그래도 늦은 시간이 되어가는데 깜깜한 밤길에 어디 혼자 보낼 수야 있나. 짜증나도 민혁이나 은주랑 같이 가렴 다혜야.

"어...? 다혜야 이것 봐. 윤하 면상북에 새 글 올라왔어."

늘 시끄럽다가 최근에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해서 입을 닫아버린 은주가 무려 3시간만에 입을 열었는데, 그 말을 꽤 놀라운 것이었다.

"뭐? 누구지, 최근에 윤하 면상북 방문한 사람 없는데. 내 노트북으로 확인 해 봐야겠다."

호기심이 든 나는 은주와 함께 다혜의 곁으로 다가갔고, 이리저리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다혜는 한 페이지에 도착한 뒤 소래기를 쳤다.

"뭐?! 마츠모토 준이라고?!!"

"엥? 그게 누군데 그래?"

"헉. 진짜다. 진짜 마츠모토 준이다."

그녀는 은주와 알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외쳐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그러는거야 얘들?

"정말? ... 헐 진짜다."

"...오, 이게 뭐야. 윤하 마츠모토 준이랑 아는 사이였어?"

나만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 하는데 다혜가 일본의 유명 탤런트라며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가지고 그렇게 신기해 했었던 거구만? 아니 잠깐, 그런게 그렇게 유명한 사람한테 글이 왔다고?

"에... 일본어네 이거, 누가 해석 좀..."

"나와 봐. '윤하짱, 소식 들었어! 정말 유감이다 그런 사고가 나다니...' "

나는 애들이 일본어에 막혀 글을 못 읽고 있자, 어릴 때 레이누나에게 배웠던 일본어의 도움을 받아 해석해 주기 시작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걱정이 되서 우주 군에게 물어보니 아직 의식 불명이라 하길래... 이렇게라도 안부 메시지 보내. 첨부된 건 나랑 그 때 일본에서 만났던 연예인 동료들이 함께 만든 영상 메시지야. 그럼... 쾌차하길! 마츠모토 준."

"우와, 이게 정말, 그때 윤하가 여행 갔다와서 마츠모토 준이랑 연예인 몇 명 봤었다는데 우리 거짓말인 줄 알고 안 믿었단 말야. 진짜였어?!"

"말도 안 돼... 얘는 여행가서 대체 뭘 했길래 연예인이랑 친구를 먹었지?"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친구들이 놀라자빠졌다. 그러나 별 감흥이 없었던 나는 첨부된 영상 메시지를 바로 재생시켰다. 놀랍기보다는 어째 이런 초 미남과 친하다는게 되려 질투가 나는게 참 기분이 요상했다.

"잠깐 ... 헉. 우에노 쥬리에, 기무라 타쿠야에... 히라노 아야까지?!!"

헐 잠깐. 내가 아는 여배우도 나오잖아? 아니 얘가 대체 여행갔을 때 뭔 짓을 했길래 이렇게 많은 연예인들과 친분을...

"재희야, 재희야 빨리 해석좀 해 줘봐!!"

"어, 엉. 그, 그래. 다시 처음으로 돌려줘 봐."

그러나 내가 놀라워 할 새도 없이 친구 녀석들은 날 보채기 시작했고, 난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바로 통역을 해야만 했다.

"안녕 윤하짱. 나야 우에노 쥬리에요. 이제야 소식을 듣게 되서 정말 놀랬지 뭐에요? 어쩌다가 그런 일이 났는지... 어서 일어나서 꼭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계속되는 일본 톱 스타들의 영상 메시지를 보면서 나 외엔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 했고, 영상이 끝날 때 까지 나 말고 모든 사람이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 했다.

============================ 작품 후기 ============================

윤하가 인맥이 쓸데없이 넓은건 자랑재희가 그중 한명밖에 모른다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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