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이후에 우주가 내게 털어놓은 말은 그만큼 충격의 여파가 컸다.
"사실 나도, '그 날'의 윤하 널 구하기 위한 작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 중 하나거든. 몰랐을 거야 아마."
"뭐라고?!"
이럴 수가, 이게 무슨 말이야. 항상 답답할 정도로 눈치 없는 모습만 보여주던 우주 녀석이 사실 나도, 윤하도 모르게 이 작전을 돕고 있었다고? 허 이건 뭐, 그럼 그 동안의 우주의 모습은 모두 연기였단 말인가?
"흠... 속인 건 미안한데, 윤하도 모르고 있었겠지만 사실 난 원래 그런 눈치없는 애가 아니걸랑. 윤하는 아마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거야, 내 성격이 포장된 겉부분이었다는 걸."
"잠깐.. 그럼 윤하는 우리 어릴때부터 속여왔단 얘기야?"
"음 그런 셈이지. 적어도 10살 이후부터 윤하가 본 나는 가짜나 다름없어."
우와, 말도 안 돼. 우주 녀석 사실 엄청난 능력자였던 게 분명하다. 그 어린 나이부터 윤하가 아무 의심 못할 정도의 연기력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기억 안 나? 10년 전에 우리 꽤 자주 봤었는데. 그 때의 나는 진짜였어. 기억하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아... 살짝 기억 나. 너 집에 자주 놀러 왔었잖아."
"그래, 기억하고 있구나."
우주는 사과를 하나 더 깎더니 모두에게 나누어주고는 얘길 계속했다.
"'꿈꾸는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관련된 이야기야."
"...!"
그건... 어떻게 그걸 우주도 알고 있는거지?
"여튼 그래서 윤하는 잘 모르고 있을거야. 그래서 지금껏 한 번도 그에 관련된 말을 하지 않았고... 너와 너희 가족에게 자기가 나서겠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방법으로 희생을 치른다는 건 지 몰랐을텐데 어떻게 저리 굳건할 수 있었는지 나는 그게 더 신기해."
"설마... 너희 집 사람들도 '꿈꾸는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인거야?"
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누워있는 윤하를 슬쩍 보고는 얘기를 계속했다.
"아니. 아무튼 그래서 윤하는 잘 모르는 얘기지만, 재희 너라면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과거 우리들 사이에 얽힌 얘기를... 10년 동안 지켜봐왔던 '조율자'의 입장에서 모두 이야기 해 주려고."
"... 그렇구나. 그래서 어떤 얘기를 해 주려는 건데? '꿈꾸는 힘'을 가진 우리 가족들에 대한 건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꿈꾸는 힘'. 난 이 말도 안 되는 힘에 대한 걸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대부분 아빠와 엄마, 그리고 가족들에게서 전해 들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능력자 집안이 아닌 일반인에게 이런 얘기를 전해 듣는 건 처음이었다.
"먼저 나와 윤하, 다시 말해 원래 재희네 집안은 '꿈꾸는 힘'을 가진 능력자 집안은 아니었지만 그들을 돕는 가문 중 하나였어. 능력자들은 우릴 '조백(助白)'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이 '꿈꾸는 힘'은 아주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일으키는 힘이었기에,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이걸 믿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겐 '꿈꾸는 힘'에 대한 얘길 꺼내는 건 아빠에게 금기라고 배웠다.
"그런 '조백'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와 재희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능력자들과 관계된 이야기는 거의 관심갖지 않고 있었어. 하지만, 10년 전 너희 부모님이 재희의 집으로 찾아와서 재희와 이야기를 나눴던 그 날, 나도 함께 있었던 탓에 모르던 능력자들의 이야길 듣게되었지."
그렇다면 우주는 이 능력과 관계된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재희는 널 위해 희생항려 하면서도 능력자에 대한 건 관심 밖이었지만 난 달랐어. 뭐 때문에 그가 이렇게 절실한지는 모르겠지만 '꿈꾸는 힘'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져서 부모님께 물었지. 처음엔 부모님도 말해주지 않으려 하셨지만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그랬더니 모든 것을 이야기 해 주기 시작하시더라."
혹시 '조백'의 사람들은 능력자들의 이야기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곧 기우였다는 걸 우주가 들려주는 얘기들로 인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엔 '그 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유일신이 등장하더라구. 난 원래 미신이나 각종 오컬트적인 이야기는 믿지 않아서 놀랄 수 밖에 없었어. 세상에나, 지금 밖에 나가서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 이야길 하며 '거기 등장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그 분'의해서 탄생한 인물이며 '그 분'은 실존합니다!'하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어, 이건 나도 못 들었던 얘기다. 우린 민족 신화에까지 관련이 있다고?
"아무튼 '그 분'은 그렇게 몇백년 간 한반도 주변을 떠돌다가 사라졌고, 그 후 우리민족 신화의 고대 국가 고조선을 잇는 한반도의, 한민족의 단일국가 조선이 건국되던 해에 다시 한반도를 찾아왔다고 해. '그 분'은 약 400여년 간 조용히 전 세계를 지켜보며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힘을 주기로 마음먹지. 1786년 그게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꿈꾸는 힘'의 시초야."
그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생겨났다고 생각했던 '꿈꾸는 힘'의 시초에 대해 들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꿈꾸는 힘'은 아직 생겨난지 200년 정도 밖에 안 되었다는 얘기잖아?
"처음에 사람들은 이 '꿈꾸는 힘'을 잘 다루지 못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힘이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을 깨닫게 돼. 바로 '염원력'과 '예언력'의 이 두 가지를 일컫지. 그런데 특이하게도 각각의 힘은 일정한 신체 조건이 형성되어야만 발현이 되도록 구성되어 있어. 다시말해 육체와 영혼의 일정한 배합이 이루어져야 발현된다는 거야. 몇년 후에 능력자들은 그 조건에 대해서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바로 '염원력'은 남자만, '예언력'은 여자만 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거지."
실제로 우리 할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능력자 남성들과 아버지 역시도 모두 '염원력'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꿈꾸는 힘'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듯, 두 힘은 꿈 속에서 발휘되며, 염원의 꿈(염원몽)과 예언의 꿈(예언몽)을 통해 능력자들은 지금까지 세상의 운명을 변화시켜왔다.
"그런데, 영원무궁할 것이라 생각했던 능력자들의 시대는 갑작스럽게 위기를 맞게 돼. 그간 능력자들은 세계의 안보이는 곳에서 세계를 조율하고, 조정하며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즐거움으로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계가 아닌 자신의 꿈과 야욕을 채우기 위해 '꿈꾸는 힘'을 사용하는 능력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최초의 시대부터 20여년 간, 능력자들은 자신들을 '청영(淸影)'이라 불렀다. 맑을 청에 그림자 영 자를 써서, 세계의 그늘에 숨어 세계를 조율하는 맑은 그림자라고 부른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가진 자들, '흑영(黑影)'의 등장으로 능력자들의 무리는 두 부류로 갈리게 되었다.
"결국 탐욕의 '흑영(黑影)'과, 그에 맞서는 '백영(白影)'의 대립구도가 되면서 세상의 어둠 속에서는 두 세력이 일반인들을 끼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해. 현재 '암영전(暗影戰)'이라 불리우는 이 능력자들의 전쟁은 무려 162년을 끌어 서기 2000년에 종전이 된 상태야."
아, 그래. 우리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암영전은 엄마의 희생으로 2000년, 즉 10년 전에 완전히 종식되었다. 물론 어머니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수많은 희생자도 함께 발생시킨 채로 말이다.
"종전 전인 1940년 부터 서로 소극적인 국지전만 펼치던 양 세력은 전면전에 돌입했고, 전 세계적으로 5만명 가까이 되던 능력자는 몇년 뒤에 수백여명까지 줄었어. 흑영의 지도자는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고 일반인들로부터 악념(惡念)을 모아 '순응(順應)의 저주'를 모든 능력자들에게 내렸고, 그에 맞서 백영은 희생자가 되기로 나선 너희 할머니를 모든 능력자들의 원념으로 응축시킨 부적으로 만듦으로써 맞서게 되었지."
"하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저주는 완벽히 무마되지 않았잖아. 능력자들이 분명 과거엔 세상을 조율했다고 했는데, 어째서 막지 못한 거야?"
어째서 백영은 희생을 막지 못헀을까. 세계를 변화시킬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능력자들은 저주에 맞서 자신들의 운명을 지키지 못한걸까, 너무도 궁금했었다. 만약 그들이 지킬 수 있었다면 엄마도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윤하도 나 대신 희생하는 이런 일은 절대 없었을 텐데...
"말했지 1940년 부터 능력자의 수가 급속히 줄었다고. 그간 능력자들은 능력자끼리의 결혼을 통한 존속보전을 해 온 덕에 순수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의 핏줄이 이어졌지만 갑작스런 동족 수의 감소와 거세진 전쟁으로 인해 존속보존이 어려워져 버렸던 거야. 결국 그들은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과의 결혼을 통해 완전치 못한 능력자 자식을 얻게 되었고, 순수 능력자들의 힘을 1이라고 했을 때 0.5이하의 힘만 가진 채 태어난 반(半)능력자들이 또 2세를 낳음으로써 힘은 점점 더 약해졌어. 그 때문에 '저주의 날'에 아무리 많은 능력자의 힘을 합친 들 전부 막아낼 수 없었던거지."
그랬던 건가, 그래서 아빠도 힘이 약하기 때문에 날 구하기 위해 긴 시간의 노력과 윤하를 희생하기까지 한 거구나. 제길!
"아무튼, 그 과정에서 최초로 '백영'이나 '흑영'의 배우자가 된 이들이 '조백(助白)'과 '조흑(助黑)'의 일반인들이야. 그 집단은 후에 흑영의 소멸로 조백만이 남아있고 일반인과 반 능력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능력자를 지원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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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좀 어려워지죠?
누그말의 핵심설정이니 기억해두셨으면 좋겠습니다.
2부에도 이어지는 핵심내용입니다!
그래도 어려운 건 이 편에 거의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