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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69화 (68/188)

69화

"큭... 따라온건가."

"잠시만요. 저 괴한 왠지 낯이 익어요..."

"...? 위험합니다 부인!"

난 천천히 앞을 걸어가 괴한과 마주 섰다. 온통 검은 옷과 검은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설정상 웰른 부인인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어야 했다. 분명 과거에 한 번 얽혔던 적이 있었던 게...

"움직이지 마시오 부인!"

"역시... 그 목소리, 그 체형... 변장하고 있지만 당신... 큐리올 맞죠?"

괴한은 그 얘길 듣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쓰고 있던 후드를 벗고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건을 풀어헤쳤다. 괴한의 얼굴이 공개되자 마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는 듯 한 반응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뻔 했으나 참고 연기를 계속했다.

"큐리올... 역시 당신이었군요. 어째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난 큐리올, 아니 큐리올 역의 가희를 보며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후드가 더웠는지 살짝 맺힌 땀방울들로 인해 그녀는 굉장히 섹시한 느낌을 풍겼다. 아마 탄성소리 중 남자 목소리가 컷던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웰른 부인.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휘츠먼은 우리가 아는 사이라는 것에 놀랐는지, 어리둥절 해 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계속 바라봤다.

"무슨 일 때문이죠? 어째서 이 사람을 죽이려 하는 건가요."

"그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습니다. 이미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까지 말이죠."

"설마 당신... 고용된건가요? 누가 고용했죠?"

그 찰나의 공백을 놓치지 않고 휘츠먼이 테이블 뒤로 숨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웰른 부인! 부인의 남편께선 괴한에게, 아니 이 사람에게 습격받은 게 아니에요!!"

그러자 큐리올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접근하려 했고, 난 그녀를 막아세웠다.

"서재에서 발견한 단서, 그리고 레안 백작이 가지고 있던 증거물과 조금 전에 발생한 카프 서장의 살해까지,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수사일지로부터..."

"닥치세요! 계속 말했다간 죽게 될 겁니다!"

하지만 큐리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휘츠먼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범인은 당신의 오빠 로젠 백작입니다. 저 사람은 그저 뒤를 봐 주고 있을 뿐이에요 웰른 부인!!"

"말하지 말라니까!"

큐리올은 재빨리 등에 맨 칼자루를 뽑아들고 나를 넘어가려 했다.난 황급히 옆 테이블의 노란 약품을 집어들어 뛰어오른 그녀의 착지 지점에 던졌고, 그녀는 깨진 약병 속의 물질로 인해 발이 붙어 넘어지고 말았다.

"서재에서 두꺼운 책으로 뭔가를 쓰고 있던 부인의 남편을 살해한 뒤, 레안 백작은 사건이 일어난 방으로 그를 업고 가서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한 것 처럼 위장했어요. 그리고 나서 그가 가지고 있던 뭔가를 찾으러 갔지만 이미 없어진 걸 발견하고, 살해하면서 피가 튄 모든 도구를 불태웠어요."

"크윽! 안 됩니다 부인! 당장 이것 푸세요!"

"그러나 반지에 묻은 피가 굳은 걸 모르고 그는 그것을 서랍에 방치해 뒀죠. 지금 제가 발견한 이 반지와 피를 서재의 책에 묻어있던 피와 비교해 보면 분명 한 사람이 나올 겁니다. 카프 서장의 수사 일지를 보면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오라버니가 제게 건네준 남편의 편지는 뭐죠?"

난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휘츠먼을 바라보았다.

"분명 편지엔... 그이가 곧 죽을 것 같다고... 자기가 알려주는 연구로 다시 되살려달라고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전 그이가 알려준 방법대로 계속 실험해봤는데 아무리 해도 계속 실패해서-"

"당연합니다. 그건 위조된 편지니까요 부인."

[쩌적]

"?! 그게 무슨-!"

그 말과 동시에 큐리올의 발을 묶고 있던 물질이 떨어졌고, 그녀는 하늘로 뛰어올라 휘츠먼에게로 돌격했다.

"당신의 남편을 살해한 건 당신의 오빠 로젠 백작이 맞습니다-!"

손쓸 겨를조차 없이 큐리올의 검은 휘츠먼을 향해 돌진했고, 그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검에 맞으려는 찰나,

"안돼요 엄마!!"

"헬라?!"

[쨍!]

헬라가 뛰쳐나와 그녀를 가로막았다. 큐리올은 그녀를 보더니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검이 떨어져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온 지하실을 맴돌았다.

"어떻게... 분명 레안 백작은 네가 잡혀 있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에요!! 전 엄마랑 헤어지고 나서 단 한번도 주인님이랑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협박을 받았길래 이런 짓을..."

헬라는 큐리올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청 오랜만에 만난 모녀의 슬픔과 더불어, 과거의 잘못을 다시 저지르려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말로 우리 오라버니가... 당신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만들었나요...?"

난 떨리는 목소리로 큐리올에게 물었다. 그녀는 헬라를 꼭 안은 채 글썽거리며 대답했다.

"네... 그는 당신이 내 딸 헬라를 생체실험 재료로 쓰고 있다고 말했어요... 몇 번이고 이 집에 들어왔지만 올 때마다 헬라가 보이지 않아 속을 수 밖에 없었고, 그는 자신의 뒤를 봐 주면 헬라를 구하고 이 집에서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죠."

"전 헬라를 맡았을 때 부터 언제나 딸처럼 생각하며 키웠어요. 어쩌다가 이런 오해가 생겨버린 건가요... 과거 당신이 암살자를 그만두게 한 게 허사가 되게 하다니..."

내가 주저앉자, 헬라가 숨겨두었던 편지를 꺼내 내게 가져왔다.

"이거... 바깥주인님께서 쓰신 진짜 편지에요. 이걸 읽게 되면 주인님까지 위험해 질까봐 말씀 안 드린 거에요."

차분히 편지를 집어든 난 해설자가 편지를 읽을 동안 기다렸다. 편지에는, 남편이 죽을병에 걸려 얼마 못 살 것 같으며, 레안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 레안이 곧 나의 목숨을 노릴 것이고,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라는 말도 써 있었다.

"그럼... 그이는 되살릴 수 없는건가요 헬라..?"

멍하니 헬라를 바라보며 난 힘없이 말했다. 그 힘빠진 말을 하면서 마치 세상을 잃은 듯한 슬픔이 밀려오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 퍼시, 난... 난 과학으로 그댈 살릴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댈 살릴 수 없다면 이 연구실과 그 동안 연구한 실험 자료가 무슨 소용인가요... 내가 무슨 낙으로 이 세상을 산단 말인가요..."

목놓아 우는 내게로 헬라와 휘츠먼이 다가와 위로해주어다. 너무나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진짜 울음이 터져버렸고,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내가 진정할 시간도 없이 연극은 계속됬다.

"...? 출구쪽에 누가 있습니다!"

큐리올이 출구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걸 보고는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가 칼을 집어들기가 무섭게, 불꽃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이 엄청난 '무대효과'에 관객들은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크흣-! 누구냐!!"

아슬아슬하게 폭발을 피한 큐리올이 의문의 사람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관객들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답답하군요 큐리올. 일 처리를 그렇게 못 해서야 원. 내가 꼭 이렇게 직접 나서야 합니까?"

"레안!!"

우와 진짜 표정 완전 사악하다.... 진짜 사람이 어떻게 저 정도까지 사악하게 보일 수가 있는거야? 예전에도 한 번 느꼈지만 저놈은 진짜...

"뭐 그래도 이렇게 처리해야 할 사람을 모두 모아 놓은 건 잘했군요. 약속대로 헬라를 보게 해 줬으니 난 가보겠소! 불찜질 실컷 하시오 하하하!!"

"크윽!! 거기 서지 못해?!"

[콰쾅!!]

계속해서 퍼져나가는 불길이 실험실의 약품들과 만나 계속 커지고 있었고, 레안이 마지막으로 터트린 폭탄으로 인해 입구는 완전히 불로 가로막혀 버렸다.

"으아~ 어떻게 해요 큐리올 씨!! 이러다 진짜 통구이가 되겠어요!!"

"큰일났다... 주인님! 주인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그러나 마땅히 방법은 보이질 않고, 난 여전히 울고 있는 상황, 불길은 계속 커져서 어느 덧 실험실의 절반 가까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큰일났군... 헬라, 다른 빠져나갈 길은 없니?"

"그게... 주인님만 알고 계시는 비밀통로가 있는데 계속 저 상태시라..."

불은 커져만 가는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날 보던 휘츠먼은 답답했는지 내 옆으로 와서는 날 붙잡아 벌떡 일으켰다. 내 몸이 경기를 일으킬 새도 없이 그는 엄청난 박력으로 내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제발 정신 차려요! 남편은 어짜피 곧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부인 안위를 걱정해 편지까지 쓰며 신신당부 했는데! 이래서야 그가 레안에게 희생된 게 뭐가 됩니까! 살아 나가서 복수해야 할 거 아니에요!"

"휘츠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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