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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67화 (66/188)

67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말에 우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당황한 나머지 아무렇게나 막 던졌던 나로서는 이렇게 일이 풀려가는 게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물어보니까 오늘 5시까지만 쓰기로 했었대. 그래서 내가 당장에 축제 본부로 가서 좀 쓰겠다고 했지."

"물론 결과는 OK겠죠?"

그녀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만다행이다.

"그럼 당연히 움직여야지, 얘들아 모여봐!"

재희가 박수를 치며 모두를 불렀고, 그 큰 박수소리에 각자 위치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인파 속에 끼어있던 상황팀과 홍보팀도 어느 새 교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자, 일단 원래 부스에서 배치된 업무가 있는 사람들은 자리로 가고, 홍보팀과 상황팀, 그리고 일이 이제 없는 애들을 추가로 배치할 거야.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정말 볼수록 신기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가운데 위치하여 전두지휘하고 있는 재희의 모습은 신비한 느낌을 풍겼고, 모두들 녀석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그의 부탁을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고 있었다.

"가희는 요리 도와주고, 윤수는 다목적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려... 난 멍하니 녀석을 또 바라보고 있었다.

"자 고고고! 15분 남았어!"

"화이팅!"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서도 난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난 윤하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저런 내면에까지도 반했던 것 일지도 모르겠는걸.'

그리고 그런 생각과 함께, 우리가 서로 몸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서로와 함께 하고 있었을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어쩌면 바뀌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이 모습처럼 서로 티격태격 하면서도 함께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미련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아니긴 아닌가봐.'

그날 저녁 디너 타임은 대 호황을 이루었고, 마감 시간인 7시 전까지 우린 간신히 모든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모두들 구슬땀을 흘렸지만, 다들 표정만은 즐거워 보였다.

모든 이틀째의 축제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재희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요즘 신경쓰이지 않아?"

"..? 뭐가?"

난 이때 재희가 무슨 의미로 이 질문을 했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연극을 하면서 난 이 질문을 한 재희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민혁이라던가, 우주 말야."

"하아? 글쎄... 어째 좀 날 바라보는 눈들이 수상하긴 한데..."

"..."

그 말을 듣고 나서 재희는 '역시 눈치채고 있었군, 의왼데'라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표정을 보니 좀... 기분이 언짢았다. 아니 난 뭐 눈치 좀 채면 안되냐 이눔아? 그나저나 그건 왜 물어보는데?

"근데 그건 왜? 신경쓰이는 건 걔들 둘 말고도-"

"아냐아냐! 얼른 가자!"

녀석은 그렇게 말을 끊어먹더니 내 팔을 낚아채서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리기 사작했다. 끌려가는 내 입장은 생각도 안하고 마구 뛰어가는 재희는, 가히 성난 황소에 비교할 만한 속도였다. 따라가는 난 안 넘어지려고 발버둥쳤고, 간신히 집에 돌아오고 나니 달릴 땐 몰랐던 부상이 있어서, 당장 내일로 다가온 공연에 대한 걱정이 잔뜩 쌓이고야 말았다.

삐인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격하게 데려올 거였으면 차라리 업고 오던가 이 멍청한 놈 자식...

*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된 연극제로 인해 부스는 잠시 휴업중인 상태. 연극 시작과 동시에 난 어제의 부상이 내게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읏..!'

빠르게 움직일 때면 아파오는 발목 때문에 난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애쓰는 중이었다. 행여 발목이 삔 걸 들킬까봐, 아무에게도 말 안하고 꾹꾹 참으며 티 안내면서 연기하느라 더더욱 힘들었지만, 반 친구들이 걱정하느라 집중 못 할 것을 걱정한 나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저, 런던 타임즈 기자 휘츠먼이라고 합니다. 웰른 부인 계십니까?"

쨌든 연극의 프롤로그에 부연설명을 하자면, 영궁의 대 부호 가문의 차녀인 레이아 디 웰른(내 역할)은, 부묌이 돌아가신 후 유서에 따라 장남인 레안 드 로젠(한재희 역할) 대신 가문의 가주와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레이아는 재산을 물려받은 후 1/4를 오빠 부부에게 내어주고, 1/4는 사회에 환원한 뒤 평소 즐기던 과학적 연구에 몰두하곤 했다. 그녀는 재산을 대부분 쓰지 않고 일부만 연구에 사용하였으며, 오빠 부부는 늘 이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안 됩니다. 현재 저희 저택엔 외부인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건 웰른 부인의 명령이오?"

"... 그녀의 오라버니이신 로젠 백작님의 명이십니다."

그렇게 레이아는 연구를, 그녀의 오빠 레안은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즐기는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레이아의 남편과 레안이 연구에 관해 남자들끼리 상의할 게 있다며, 레이아와 그녀의 친구들을 파티에 보냈고, 프롤로그와 같이 그녀의 남편이 살해당한 것이다.

"쳇, 정문으로 못 들어가면 몰래라도 들어가야지..."

그 뒤 휘츠먼은(나우주 역할) 이 살인에 분명한 음모가 있다고 판단, 단독으로 취재하러 오게 되었다.

"흐흐, 좋았어. 이쪽이 로젠 부부가 사는 곳인가? 뭔가 있을 것 같은 냄새가 나는구만..."

우주의 익살스런 모습들은 연극 시작후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엄청났다. 과거 체육대회 이후와 비교하자면 지금은 거의 그때의 두 배쯤 되는듯 하다. 목각인형처럼 딱딱했던 나우주는 현재 연기자 나우주로 빙의한 상태이다.

"어? 이건 뭐야... 피인가?"

휘츠먼은 로젠 부부의 방을 뒤지다가 누가 숨겨놓은 듯 한 피묻은 반지를 발견하게 되고, 몰래 비닐 주머니에 담아간다. 마치 닌자같은 몸놀림으로 하인들의 눈을 피해 관리동을 지나 본채로 가던 휘츠먼은 방심하다가 그만 집사 애쉬(장민혁 역할)에게 들키게 되고,

"거기 서랏 침입자!!"

"으아아앗~"

간신히 그를 따돌리고 본채의 중앙 계단에서 담을 뛰어넘어 저택 밖으로 도주하게 된다. 크, 놓치고 아쉬워하는 민혁이의 표정연기가 일품인걸.

여튼 그렇게 휘츠먼이 도망치고 나서 또다른 손님이 저택으로 찾아온다.

"계시오? 런던 경찰서 서장 카프입니다!"

그는 바로 카프 다 오트먼(차윤수 역할). 부스에서 이벤트를 하던 바로 그 인물이며, 프롤로그 때 웰른 부인 친구로 나온 캐리 다 오트먼(이해리 역할)의 남편이었다. 카프는 독백을 통해 본심을 드러냈는데, 자기 부인에게 만족하지 못 하고 미모의 웰른 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남편이 죽자 그는 기회라고 판단, 그녀를 만날 속셈으로 살인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명목 하에 저택에 들어온 것이었다.

"... 누군가 가져갔군. 분명 피묻은 증거물이 있었던 건가..."

그래도 그의 특기는 엄청난 수사력이어서, 어떻게든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 그걸로 웰른 부인에게 호감을 얻을 속셈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수사를 시작한 그는 단독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채의 웰른 부인 방에 도착할 때 쯤 범인이 누군지 가닥을 잡아가게 된다.

"폴, 가서 부인께 이걸 갖다드리세요, 부인 방 안에 놓고 나오면 헬라가 가져 갈 거에요."

"네 세레나. 금방 다녀오지요."

그 사이 다시 저택에 잠입한 휘츠먼은 집사 폴(안승호 역할)을 벽장에 가둔 뒤 옷을 뺏어입고 다시 본채로 가려고 준비중이었다. 사실 그도 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수상한 점을 발견해서 웰른 부인의 남편 방, 즉 사건 현장에 가 보려고 다시 잠입한 상태였다.

"여기가 서재구만... 응?"

그는 서재를 뒤지다가 가득 차 있는 책장들 중 한 권이 비어있는 곳을 발견하고, 책의 행방을 찾아보았다. 꽤나 두꺼운 책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책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고, 짜증이 난 휘츠먼이서재 안쪽으로 걸어가려다가 어두운 바닥에 놓인 뭔가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윽... 아이구 내 발가락...!!.. 어라?"

그의 발을 건 것은 다름아닌 잃어버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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