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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65화 (65/188)

65화

그도 그럴 것이, 기획 단계부터 대부분은 재희의 아이디어로부터 구성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반 아이들이 다같이 상의하여 현재 단계에까지 온 것이지만, 초안은 전부 재희 것이었다.

'하여간... 능력 하난 알아줘야 된다니까.'

저녁 7시 경이 되어 디너 타임까지 끝나고 나니 첫날 축제의 마무리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다들 지쳐서 녹초가 되어 있었다. 모두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 오신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다들 자는 줄 아셨단다.

"휴, 드디어 다 끝났네."

설거지 및 청소, 망가진 부분을 보수하고 나서야 연극 팀이 잠시 모일 기회가 생겼다. 모인 이유는 내일 있을 연극의 프롤로그 공연데 대한 것이었다.

"자자, 내일 프롤로그가 어찌보면 승부처야. 우리가 다른 연극과 차이점을 둔 것이기도 하고 말야. 그러니까 다들 실수 안 하도록 대본이랑 이동 루트 완벽 숙지하고!"

"오케이!"

우린 다같이 화이팅을 외치고 나서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집에 돌아올 땐 가희를 데려다 주고 다시 학교로 온 재희랑 같이 왔지만 재희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매고 온 가방을 방에다 툭 떨어뜨려 놓고 난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분명히 오늘길에 편의점에 들러 이온음료를 엄청나게 마셨는데도 갈증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으- 정말 말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목이 갤갤하네..."

그 때 어느새 나타났는지 재희가 불쑥 튀어나와서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내 손에 턱 하니 쥐어주는게 아닌가.

"마셔, 목 아프면"

"어.. 응."

뜬금없는 이 녀석의 친절에 난 하마터면 마음을 풀어버릴 뻔 했으나 황급히 다시 풀어헤쳐진 마음을 다잡았다. 넘어가면 안 돼, 이 녀석은 이렇게 신경써주는 척 하다가 또다시 나한테 상처 줄 거야 분명히.

'그나저나 도대체 어느 쪽이 니 진심이니 재희야...'

녀석의 오락가락하는 행동으로 인해 갈수록 혼란만 가증되던 나는 제대로 재희의 진심이 알고 싶었지만 그가 원치않는 실수를 할 까봐 섣불리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다시 사이 풀어지면 그때 한 번 물어봐야겠다.'

뭔가 꿍해지는 기분 때문에 괜스레 짜증이 났다. 우유팩에 들어있는 우유를 거의 반 가까이 마시고 나서야 난 그것을 내려놓았다. 우유를 보니 얄궂게 재희 얼굴이 슬쩍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으며 난 냉장고에 우유를 다시 넣었다.

'어라. 목 좀 괜찮아 졌나?'

그렇게 축제 첫날 밤이 저물어 갔다.

*

둘째 날은 학교 규칙 상 1시부터 5시까지의 오후 타임 영업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 시간동안은 학교 내 여러 동아리들의 공연제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모든 부스는 그 시간동안은 영업을 중단하고 공연제에 참석하든 휴식을 취하든 해야 했다.

"좋아, 충분히 팸플릿도 배부해 놨으니까, 작전 개시는 오후 5시경 강당 앞에서야."

"옛서!"

모두가 의지를 다지며 화이팅을 외쳤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부스 장사가 시작되었다. 첫날 다녀간 손님들의 입소문이 퍼졌는지 둘째 날은 9시에 개점하자마자 몰려드는 손님에 순식간에 가게가 북새통이 되었다.

"윤하야. 이거 먹어봐."

한창 카운터를 보고 있는데 윤수가 다른 반의 부스에 갔다 왔는지 팥빙수를 한 그릇 싸들고 왔다. 마침 후덥지근한 날씨에 시원한 게 먹고 싶었던 나는 옳거니 하고 윤수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팥빙수를 한 입 가득 물었다.

"꺄으- 차가워♥"

내가 팥빙수를 먹으며 황홀한 표정을 짓자 또한번 가게 안의 시선들이 내게 쏠렸다. 윤수는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게 기뻤는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는 한 곳에서만 느껴졌던 레이저 시선들이 오늘은 무려 세 줄기나 느껴졌다. 윽, 이대론 윤수가 위험하다, 빨리 돌려보내야지.

어떻게든 둘러대서 윤수를 보낸 나는 레이저의 근원을 찾았다. 하나는 어제처럼 부엌이었고, 하나는 저쪽 사진기사 쪽이고, 하난 밖인가? 난 재빨리 창밖을 확인해 보고는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반쯤 드러나 있는 뒤통수를 보니 보나마나 같은 집 식구였다. 쟨 저걸 숨은 거라고 숨은거야?

거참, 이 세 남자 때문에 이제 반 남자 애들이랑 말도 못 붙이겠구만. 니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러지 말고 셋이 담판을 짓던가, 한 명한테 몰아주기로! 그리고 니들이 걱정 안해도 스킨십은 내가 알아서 못하거든?!

그렇게 세 남자의 눈빛을 무시하며 카운터를 보고 있으니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다. 교내 방송으로 모두들 강당으로 이동해 줄 것을 부탁하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와서, 우리는 남아있던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오전 영업을 결산하기 시작했다.

"자 가자."

대강 결산을 마무리짓고 나니 딱 한시였다. 우리들은 연극을 선보일 루트를 다시한 번 점검하며 만전을 기했고, 홍보팀은 그 와중에도 강당 안의 사람들에게 우리 연극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말 손발이 착착 맞는 완벽한 호흡이었다!

연극 관계자들은 모두 강당으로 입장해서 외부상황팀의 지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오랜만의 휴식과도 같은 공연 관람에 모두 약간씩 기분이 들떠 있었던 탓도 있었고, 무대 쪽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밴드 사운드가 거기에 더해지니 몸이 절로 흔들거렸다.

"어라? 재희는 교실에 있나?"

그런데 양 옆을 보니 우주와 민혁이만 있을 뿐 재희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밖에서 파이팅 할 때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재희 교실에 있어야 되잖아 대본 상. 교실이 일단 임시 방으로 되있으니까."

어쩐지 우주랑 민혁이 둘다 여기 있는데 재희만 없는게 약간 이상하다 했다. 그런데 니들 언제 팝콘이랑 감자구이랑 땅콩 오징어까지 사서 준비해 온거야?! 귀신같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난 무심결에 두 사람이 내미는 간식거리들을 입에다 던져 넣으며 오물오물 거리기 시작했다.

"암튼 당분간은 공연 보면서 좀 쉬자. 근 몇주간 한번도 안 쉬고 계속 달려왔잖아. 오늘 오후쯤은 쉬어도 되지 않겠어?"

"맞아. 윤하 너 얼굴에 피곤함이 아주 한바가지야, 특히 눈 밑에."

어떻게든 나에게 좋은 점수를 따려는 속셈인지 두 사람은 날 쉬게 하기 위해 온갖 안주를 대접하며 편히 쉬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에라이 자식들아 어찌 그렇게 속셈이 훤히 보이는 말들만 하니. 어쩌면 내가 저번에 너네 둘이 하는 말을 몰래 들어서 이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내 눈치도 확실히 빨라지긴 했어.

그래도 확실히 이 공연 관람이 싫지만은 않았다. 한창 다들 바빴던지라 모두들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민혁이와 나연이는 요리하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서로 넋두리를 나누고 있는걸 보니 여전히 사이가 좋아보이긴 했다. 다혜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다시한 번 대본을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우주는 혹여 뛰다가 카메라가 고장날까 싶어 신나게 뛰질 못하고 고개만 흔들흔들 거리는 중이었다.

내 몸에 무겁게 걸려 있는 귀족 의상 덕분에 신나게 뛰어놀 순 없었다. 그렇지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극 의상을 입은 채로 친구들 모두가 공연을 즐기고 있었던 건 분명했다.

'나쁘지 않은걸 이 분위기도.'

*

몇 시간 뒤, 학교 내에서 가장 인기 좋은 혼성 밴드 동아리의 공연까지 끝이 나자, 우리는 행동 개시를 외치며 신속하게 강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밖에 나가자마자 보인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헉. 이건 대체."

도대체 외부 상황팀이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이리도 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것이여?!

"윤하야~"

은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이 엄청난 인파의 원인은 은주인 듯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약간 황당할 따름이었지만.

"내가 홍보차 서빙하던 메이드 복 입고 그대로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뒤돌아보니 학교 학생들이 잔뜩 있더라. 하.하.하."

이유인 즉, 보이시한 은주가 메이드복을 입으니 그거 나름대로 남녀 모두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어서 그로 인해 발생한 인파였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가희랑 다혜랑 우주도 없네?"

"아, 가희는 오면서 만났는데, 가면서 또 홍보 하면서 가더라."

우와 대단한 직업정신.. 그렇다는건 다혜랑 우주는 지금 연극 때문에 각자 위치로 흩어져있나보구만. 다들 준비 완료인거지? 좋아 이제 선생님이 오시면 연극 시작이다.

"은주야, 사람들 좀 뒤로물러서게 해 줘, 공간이 필요해."

"오케이. 맡겨만 줘!"

은주는 그길로 달려가서 관객들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고, 상황팀까지 가세해 인파속의 동그란 공연장같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딩동♪]

잠시 후 나에게 문자가 왔고, 문자를 보낸 선생님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연극 개시를 알리는 한 마디를 외쳤다.

"자 그럼 1학년 2반의 연극. '음모의 대저택' 그 프롤로그를 지금 시작합니다!"

============================ 작품 후기 ============================

+14.07.11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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