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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51화 (51/188)

51화

그런데 내가 에상했던 선물과는 다르게, 그는 내 손에 뭔가 적은 종이를 잘 접어서 건네주었다. 와락 껴안거나 기습 키스 혹은 뽀뽀를 할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셈이었다. 왜 그런 걸 기대했냐구? 내 주변에 있는 남정네 두분이 하나같이 그러고 계셔서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을 뿐입니다 허허...

{이게 뭐에요?}

{아~ 열거 아니구, 내 면상북 주소야. SNS 하지?}뭔가 했더니만, 그가 적어준 것은 얼마 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SNS의 주소였다. 난 아직 시작해보질 않아서 이 SNS라는 걸 잘 몰랐기 때문에 일단 주소만 받고 나중에 하는 법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알려준다는 건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외국 친구라구 다 같은 친구가 아니지... 후훗.'

종이에 적힌 글씨들을 숄더백 안의 수첩에 또박또박 옮겨적은 후 빙그레 웃고 있는 날 보며 마즈모토씨가 계속 말했다.

{한국에 너 같은 여자애가 있다는게 놀랍고 신기해 정말. 대부분의 여자들은 내 앞에만 서면 긴장해서 대화가 잘 안 되던데, 넌 참 대단한 것 같아.}

{아하하하~ 별 말씀을요.}

물론 나도 긴장을 좀 하긴 했다만, 난 본판이 남자인지라 이 사람을 보고 굉장히 떨린다던가 하는 감정이 일체 없었던 탓에 이런 결과가 나왔으리라.

{암튼 한국 돌아가서도 연락해. 그리고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 굳이 존댓말 안 써도 되니까.}그... 제가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건 어색해서가 아니고, 제가 말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만 어쩔 수 없네요. 친하게 지내자는데 이런 오글거림 쯤 양보할 수 있는거니까요.

어찌어찌 남은 시간들도 신나게 수다를 떨며 보낸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잘 가 윤하짱!}

그리고 나서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밤 9시가 넘은 상황, 난 아까 레이 언니가 적어준 주소를 보고 차근차근 따라가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던 내 머릿속 잡생각들을 잊게 해춰서 그런지 오늘 하루는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다. 일본 톱 스타들과 함께 방송 출연한 경험은 아마 평생가도 못 잊겠지? 오늘 찍은 사진들은 무조건 대대로 가보로 남겨야겠어.

마지막으로 재희에게 연예인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핸드폰으로 찍어 보낸 뒤, 난 편안히 잠을 청했다.

[와하하하! 이것이 나의 인맥이닷!]

하지만 재희의 놀라는 모습을 기대한것과 다르게, 녀석이 알아본 배우는 우에노 쥬리 딱 한명 뿐이었다.

*

우주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받게 된 건 그리로부터 정확히 1시간 뒤였다.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정확히 9일에서 10일로 넘어가는 밤 10시 쯤, 레이 언니의 맨션으로 가고 있는데 가는길에 우주가 나타나서는 갑자기 날 어디론가 이끌었다. 함께 간 곳은 수상 레스토랑이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뒤 얼마 후 자리로 돌아온 우주의 옷은 깔끔한 수트 핏으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우주의 손엔 작은 상자와 꽃다발이 있었는데 그 물건들을 본 순간 난 바로 느낌이 팟 하고 왔다. 이건 100% 그거다, 우주 녀석이 그걸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절부절하는 날 도로 자리에다 앉혀버렸다. 어찌 대응해야 될 지 몰라 안절부절 하는 사이 나의 손을 잡은 우주는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미안한데... 꼭 할 말이 있어서 해야될 것 같아."

꿀꺽. 긴장된 탓에 침이 제멋대로 넘어갔다. 안돼, 이 말 들어버리면...

"나.. 정말 몇 달 동안 계속 생각해 봤는데, 내 맘은 이게 맞는 것 같아. 그래서 더이상 숨기지 않고 너에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놀라진 마."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막아질 것 같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 얘길 듣게 된다면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던 나와 우주의 친구 관계는 산산이 부서져버릴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하던 내가 미처 준비 완료하기도 전에 걱정하던 말이 내 귀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좋아해 공주. 아니 윤하야, 나 널... 좋아해."

"..."

그리고 나서 내가 들고있던 상자를 열어 밴드형 옥석이 달린 팔찌를 꺼내 든 녀석은 내 팔에 슬며시 끼워주었다. 척 봐도 가격은 꽤나 비싸 보이고, 사이즈는 내 팔목에 딱 맞았다. 그 동안 얼마나 눈여겨 봐 왔던 것인지 이 팔찌 하나로도 척 하고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설마 여행 전부터 준비해왔던 걸까?

'... 팔찌 이쁘네. 잘 골라왔는걸.'

하지만 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방법을 못 찾아 그랬던 것일 수도 있었다.

"꼭 사귀자거나 그런 건 아냐, 다만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뿐이니까... 대답은 천천히 해 줘도 돼."

꼭 사귀자는건 아니라니... 너 바보냐? 사귀자면 사귀자 아니면 말자 둘중 하나만 해야지, 내가 언제 너보고 사랑의 바보 역할을 도맡아 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게다가 재희를 포기했다지만, 그래서 대신 우주 널 애인으로 원한다거나 그런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힘들 때 친구로서 살짝살짝 기댔을 뿐인데 그게 널 이렇게 바뀌게 만들었던 거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너네 집에 놀러가고, 공부하고, 놀러다니던 것도 넌 전부 나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있었기에 좋아했던 거구? ...역시 재희의 말이 맞았던 거야...?

'결국 이 녀석이 이렇게 된 것도 내 탓이 맞는거구만. 하아...'

여자였다면 사랑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본판은 남자니까 절대로 우정이라고만 읻었었고, 절대로 우주에 대한 이 감정은 사랑이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왔다.

"그... 우주야."

하지만 그 단단하던 나의 마음 속 벽이 우주의 끊임없는 망치질로 인해 금이가고, 갈라져서 여태껏 믿고 버텨왔던 내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길었던 여자로서의 생활, 그리고 우주에 대한 미안함이 거기에 더해 압박을 계속 줘왔기에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난 말야... 널..."

그러나 하마터면 봇물 터지듯 터질 뻔 했던 내 감정은,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생각에 의하여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극한의 한기에 물이 순식간에 굳어지듯, 혼란함은 순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엔 정적과 안정만이 남았다.

"널..."

어제 꿈, 난 아직 그 사실을 밝히기 위해 완전히 노력하지 않았었다. 내가 노력해서 꿈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쉽게 포기해버렸던 것이다. 더 늦기전에 난 그걸 확인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됐다.

게다가 우주의 애정을 동정으로 받아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 역시 함께 들었다. 내가 너와의 교제를 허락한들, 내 감정은 너를 오해하게 만든 내 행동들을 속죄하기 위한 동정으로 인해 움직일게 뻔했으니까.

"... 아니야 미안. 아직은 안 되겠다."

미안 우주야. 네가 내 소꿉친구이고 굉장히 믿음직스러운 녀석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흑막 뒤에 가려져있는 모든 일들이 해결되기 전까진 네 맘, 잠시 보류해둬야 할 것 같아. 만약 아저씨 일이 해결되고, 그때까지도 내가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때 널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네 마음을 받아줄게. 그래도 늦지 않겠지?

"미안해 우주야... 나 아무래도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난 우주의 표정은 굉장히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슬픔? 기쁨? 안보담? 어이없음? 실망? 좌절?

"...에- 아니야. 미안해하지마 아냐!"

그리고 내가 가야할 목적지가 떡하니 생각났다. 내가 가야할 곳, 지금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곳으로 서둘러 가야만 했다.

"나, 지금 당장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 팔찌 고마워!"

서둘러 겉옷을 챙겨 레스토랑 밖으로 뛰어나오는 나를 쫓아 우주가 빠르게 달려나왔지만, 그가 계산을 하고 나왔을 때 난 이미 다가온 택시를 잡아 올라타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내게 달려오는 우주를 향해 나는 말했다.

"걱정 말고 먼저 들어가 있어! 금방 언니네 집으로 돌아갈 테니까!!"

택시 뒤쪽으로 내가 탄 차가 사라질 때 까지 움직이지 못하는 우주의 모습이 보였다. 미안 우주야, 나 역시 어떻게든 지금 날 답답하게 만드는 이 진실을 파헤쳐서 결과를 알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할것 같다.

"아 저기 아저씨, 오에도 온처-언, 으로 가-주-"

뭐지? 몰려오는 이 몽롱한 기분은? 잠깐 이거 수면...

[털썩]

내가 뒷좌석에 가로로 쓰러지면서 본 택시기사의 얼굴은, 분명 아까 오모테산도 힐즈에서 봤던 수상한 그 남자였다. 그 얼굴을 마지막으로 내 기억은 뚝하고 끊겨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14.07.10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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