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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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사카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돌아다니던 우리는 마지막으로 오사카의 메인인 오사카 성에 도착했다.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멀리서 그 대단한 몸뚱아리를 드러내고 있는 하얀 오사카성을 보니 굉장히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도 크기였지만 그 큰 것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더 대단했다. 커다란 천수각 건물을 비롯해 주변에 요새처럼 배치되어 있는 오사카 성 내부는 당시의 역사도 간단하게 느끼게 해줬다.
"윤하야 여기. 이분이 우릴 찍어주시겠대."
난 가볍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주와 재빠르게 오사카성 천수각의 앞에 가 섰다. 날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어째 아리송한 듯 했지만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문제에 얽히기 싫어 최대한 외면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저... 혹시...}
그 다음 내가 들은 말은 아키하바라에서 여중생들에게 들었던 말과 동일한 것이었다. 어째 이번엔 내가 이름을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알아본 걸 보니 엄청나게 팬이었던 모양. 난 당연히 자연스럽게 아니라고 한 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념촬영좀 같이 해 달라는 말에 기꺼이 응해 주었다. 어째 한국에서는 윤하씨의 인지도가 그렇게 엄청나게 높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확실히 일본에 오니 뭔가 다르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을 것 같은데."
"음... 전적으로 동의해."
2중으로 된 오사카성의 해자를 건너 나오며 우주가 내게 말했다.
"점심을 좀 늦게 먹더라도 먼저 이동할까?"
"그러자, 앞으로 가 보고 싶은 곳이 산더미라구!"
바쁘게 움직이느라 솔직히 별로 허기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난 그 말에 바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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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난 하루동안 쌓여버린 피로에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침대 위에도 우주가 겨우 업어다줘서 올라올 수 있었던 터였다.
"결국 교토까지 와버렸네. 오사카 관광은 더 하고 싶지 않았어?"
"응, 충분히 봤거든. 여기에만 있을 순 없잖아. 남은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구."
어쨌든 교토에 도착했기 때문에 내일부터 4일간의 관광 일정을 대충이라도 구상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행 출발 때 딱히 교토 여행은 계획을 안 세웠기 때문에 알뜰하게 시간을 쓰려면 계획이 중요했다.
"그나저나 정말 방 구하기 어렵다. 결국 또 1인실 신세네."
야간에 도착해서 급하게 구했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이렇게까지 하면서 방을 잡은 건 다 내 욕심 때문이었다.
"다음부터는 주간에 이동할까? 그래야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은데."
"아냐, 주간에 움직이면 그만큼 관광 시간이 줄어들잖아. 무조건 야간이야 야간!"
그 덕분에 이렇게 둘이 같은 방을 쓰게 되는 기회가 잦아졌지만,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평소처럼 우주를 대했다. 그 때문인지 우주가 들이대는 일도 좀 줄긴 했지만, 갈수록 이 녀석의 나를 향한 추파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응, 지금 교토야. 내일이랑 그 다음날은 여기서 관광하려구."
[여튼 알았어. 계속 전화하고, 늘 조심하고. 잘 자고.]
시간이 지날수록 재희의 간섭도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녀석도 나에 대해 크게 신경을 못 쓰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어째 계속 전화를 해줘서 그런지 녀석의 목소리는 꽤나 안정적이었고,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재희가 요샌 뭐라 안하나봐?"
"그러게. 오히려 이러니까 더 수상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믿어줘야지 뭐. 그리고 오히려 신경 안써주니까 난 더 편해서 좋은걸 뭐."
그래 좋은 일이라 생각하자고. 재희 녀석이 이젠 나에 대한 집착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거야. 솔직히 난 재희를 잊은 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믿고 있고, 그동안 재희가 날 정신없게 흔들어대긴 했어도 나의 이 굳은 신념을 올곧게 지켜나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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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하룻밤 푹 쉰 나는 완전히 기운을 회복하여, 어제 그 축 처졌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우주도 다행이라 생각한 듯 미소띈 얼굴로 나를 이끌었다.
교토의 명소를 둘러보기 위해 결정한 장소는 대략 3군데. 그 외에 수많은 유적지 등의 관광지는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구경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특히 기요미즈사 같은 경우, 만화나 사진, 영화 등에서도 여러 번 봐왔던 곳으로 그 아찔함과 웅장함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으므로 가장 기대중이었다.
가장 먼저 들렸던 금각사, 그 후 은각사를 들러 마지막 목적지인 기요미즈사로 향했다. 금각사와 은각사의 발음이 각각 '킨카쿠지'와 '긴카쿠지'로 비슷했기 때문에 좀 해매긴 했으나 크게 지체하진 않았다.
기요미즈사에 도착하자 내 입은 쩍 벌어졌다. 이게 정말 천년도 더 된 건물이라는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곳이었다. 어떻게 이런 위치에, 이런 형상으로 올곧이 서 있는 것인지 대단할 따름이었다. 특히 산비탈을 올라가며 보이는 기요미즈사 하부의 지지 기둥들이 이루고 있는 격자는, 그 옛날에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설치해 놓은 것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기술력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우와...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왜 말이 안돼? 우리나라엔 이것보다 대단한 유적도 더 많을텐데."
벙찐 표정으로 기요미즈사의 자태를 바라보는 나를 보며 우주가 별 거 아니라는 듯 키득거렸다.
"뭐? 이만한 게 또 어딨어. 아는 거 있음 대 보셔!"
그러나 웬지 허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집중 추궁해보니, 녀석의 발언은 실로 허풍임이 밝혀졌다. 짜식이 어째서인지 나한테만은 아는 게 많은 것처럼 보이려고 한 단 말이지.
"그나저나 아직 다 올라가려면 멀었어?"
아찔한 기요미즈사의 지주기둥들을 측면에서 바라보며 계속해서 산을 오르고 있었지만, 어째 정상인 기요즈사가 나오려면 아직 한참 먼 듯 보였다.
"힘들어? 힘들면 안아줄까?"
"뭐? 야, 됐어 무슨-."
갑작스런 녀석의 강공에 당황했지만 난 곧바로 거절하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어느정도 대응하고 있기는 하지만, 갈수록 열세에 놓이는 건 내가 분명했다. 어떻게 우주의 유혹을 이겨내야 할 지 앞으로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온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번쩍]
"우와아악?"
허나, 어떻게든 대항하려는 나를 강한 힘으로 눌러버리는 우주의 박력에, '안돼,안돼' 하면서도 난 끌려다니고 있었다. 지금도 말야, 어떻게든 이 사람 많은 곳에서 녀석의 팔에 들려 안기고 싶지 않아 발버퉁 쳤지만 단 3초만에 들려 안기고 말았다.
"야! 야! 야~!! 안돼~!! 보는 눈이 몇개인데!! 내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왼팔로는 녀석의 목을 감고 있었고, 오른팔로는 녀석의 가슴팍을 마구 치고 있었다. 물론 떨어지기 싫어서 그런 거였지만, 그걸 또 놓치지 않고 우주는 내게 일침을 가했다.
"이 왼손이나 내 목에서 풀고 그런 말 하지 그려?"
윽. 반격의 의지를 상실.... 아우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는게 상책일까봐.
"아... 아냐, 일단 가자."
난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지는 주변의 시선에 못 이겨 빠른 속도로 그 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우주의 어깨를 빠른속도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치 말에 박차를 가하듯이.
"아야, 악. 아파~!!"
"고! 고고고!!! 고고!!"
내가 보채자 우주는 결국 알았다며 황급히 나를 안은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초인적인 힘으로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던 우주도 정상에 가까워지자 결국 퍼지고 말았지만, 그 바보같은 모습이 멋있게 보였던 건 사실이었다.
"힘들어어어-."
지쳐 바위 위에 널브러진 우주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키득거리고 있는데 좀전에 밑에서 달려오면서 지나친 관광객들이 우릴 보며 깔깔거리는 것이 보였다. 웬지 그분들이 우리가 못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최대한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머 하여간 젊은사람들은!'하는 일본어가 안들릴 수가 없었다.
난 급하게 우주를 불러 올라가자고 보챘다. 내가 녀석의 소맷자락을 톡톡 당기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함께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물론 그 힘을 마지막으로 우주는 정상에서 벤치에 누워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진이 다 빠져 누워있는 우주를 위해 200엔짜리 부채를 연신 부치며 최대한 살려내려 애쓰는 나를 도와주려는 건지, 시원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며 내게 불어왔다. 아무래도 산 중턱에 위치한 절이다 보니 바람이 자주 불어왔다.
기요미즈사의 난간에서 아래를 바라볼 땐 떨어질까봐 무서워 우주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는데, 약간은 떨고 있는 녀석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느낌이 천길 낭떠러지의 스릴을 더했다.
"짠, 우리도 이거 쓰자."
기운을 다 못차려 아직까지는 흐느적대는 우주를 다시 벤치에 걸쳐 놓고, 난 나무짝 2개를 들고 와서 녀석에게 내밀었다. 우리나라의 절에선 많이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일본의 절에선 꽤나 흔히 볼 수 있다는 그것이었다. 바로 소원 나무짝!
내가 빨리 적자고 들들 볶자 우주는 귀찮은 척 하면서도 은근히 미소를 지으며 나무판에 사각사각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주가 훔쳐봤으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내 실망은 당연하게도 아저씨를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뭐 적었어 윤하야?"
"후후... 비밀은 비밀이어야 매력인 법이지!"
우주는 뭔가 기대하는 표정이었지만,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고는 자신의 나무짝을 가져다 걸어놓았다. 나도 우주와 약간 떨어진 곳에 보이지 않게 살짝 뒤집어 걸어두었다. 악마가 '우주의 소원을 빨리 들춰봐!'라고 자꾸 날 유혹했지만 대충 예상이 되는고로 넘어가기로 했다.
두 시간동안 여유와 낭만을 즐기던 우리들은 저녁이 다 되어감을 알리는 주황빛 하늘이 보일 때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기 전 영상통화로 재희에게 이 멋진 광경을 자랑한 뒤, 카메라로 신나게 기념촬영을 하고나서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기요미즈사를 내려왔다.
"윤하야 미안한데... 오늘은 좀 일찍 쉬러가자."
내려오는 길에도 여전히 다리가 아팠는지, 우주는 맥빠진 목소리로 내게 부탁했다. 그래 오늘 고생했으니까, 특별히 아직 낮이지만 쉬게 해 주도록 하겠다! 관대한 이 몸에게 감사할 준비는 되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