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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31화 (31/188)

31화

물론 그 사태가 초래된 데에는 재희의 공이 가장 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스스로 지 무덤을 팠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경고를 하고 가희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도 불구하고, 재희는 계속해서 날 귀찮게 했고 가희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렇게 몇일동안 재희의 잔소리는 계속되었고, 결국 시험 마지막 날에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나쁜놈]

[오늘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원래 가던 커피숍 있지, 거기로 와 한시까지. 그동안 시험이라서 그냥 말 안하고 있었던거니까.]

뭐 문자를 본 내가 콧방귀를 뀐 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와 다른 행동을 내가 했다면, 그건 녀석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한번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가봐야 똑같은 소릴 할 것 같아서 가긴 싫었으나, 그래도 자기 딴에는 시험 끝날때까지 참았다고 하니 뭔가 새로운 말을 할 것 같아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답장]

[어...]

답장의 길이가 짧은 건 내 오묘한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시길.

여튼 시험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간 난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내 예상과 달리 재희 녀석은 집에 없었는데, 어쩌면 커피숍에서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1시까지 20분정도 남았길래 약간 일찍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서둘러 밖으로 나갔더니 그게 화근이었다.

"어라? 은주? 나연이도 있네?"

"오- 윤하!"

[와락]

뜨아, 길에서 마주치자마자 은주는 날 보기가 무섭게 껴안아버렸다. 얘, 숨막혀, 숨막힌다구!!!

"저기, 은주야... 윤하가 힘들어 보여."

"켁.. 켁!"

다행히 나연이가 곁에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앞으로는 은주와 단둘이 있을 때 안전거리를 5m이상 둬야겠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안그랬다가는 언제 질식사 할지 몰라!

"그나저나 어디가? 우리 시험도 끝났고 해서 노래방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오 노래방, 물론 가고 싶지. 하지만 지금은 재희 녀석의 선약이 있어서 무리겠는걸. 난 진심으로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거절했다. 평소라면 흔쾌히 수락했을 내가 사정이 있다며 거절하자 은주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미안, 지금 재희랑 아주머니 심부름 가려는 길이거든. 나도 완전 가고싶은데... 알지?"

"에... 정말?"

은주 역시 아쉬웠는지 쉽게 가던 길을 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나연이가 상황을 정리해 준 덕분에 난 무사히 둘과 헤어져 커피숍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은주가 뭐랄까... 예전 가희처럼 되 가는거 같어...'

물론 은주가 그러면 그럴수록 가희에 비해서 뜯어말리기가 엄청나게 힘들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가희도 힘들었는데 만약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은주가 매달리게 된다면... 으아 아우 생각만해도 무리야 무리 바로 질식사야.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무사히 커피숍에 도착한 나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창가 쪽에서 창밖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재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짜식이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고 있구나, 분명 창가쪽이었으면 내가 오는 것도 봤을텐데 아는척도 안하고 말야.

"자, 할말이라는게 뭐야?"

가죽 시트로 된 의자에 앉자마자 나는 다짜고짜 물어봤다. 그런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재희는 뜬금없이 커피를 먹자고 골라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와는 딴판인 녀석의 반응에 난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일단 고르라는 말에 커피를 고르기는 했으나, 뜬금없이 웬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건지. 당연히 어제까지 했던 잔소리 계속 할 거면서 괜한 커피는 왜 사는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시험 공부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사주는거니까, 절대 다른 뜻으로 오해하지 말고!"

아-하 그런거였냐. 난 또 혼내기 전에 약값주는건 줄 알았지! 오늘은 나 안 귀찮게 할 거구-

"그건 그거고 마시면서 어제 하던 얘기는 계속 해야지?"

-우나아가 아니네~? 근데 그 얘긴 안하면 안될까? 네가 사준 커피 마시다가 체하겠다... 이자식아.

"난또 오늘은 얘기 안하려는 줄 알았더니만..."

한숨을 푸욱 쉬면서 난 답답한 마음에 얼음이 든 커피잔을 자그락자그락 흔들었다. 얼음이 부딪치는 걸 보고 있자니 초조함과 불안한 마음이 든건 왜일지.

그래도 커피가 내 마음을 안정시켜준 덕분에 다른 때보다는 침착한 마음으로 재희의 말을 듣고 있는데, 녀석이 슬슬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역시 침착하게 그 말에 맞대응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우주네 집에 홀몸으로 갈거야?"

"당연하지. 난 친구 집도 맘대로 못 가냐? 내가 가서 무슨 나쁜 짓 하고 오는 것도 아니고 말야."

그러나 나의 그 말이 믿음이 안 갔는지, 재희는 버럭 화를 냈다. 아, 이러다간 여태까지 싸웠던거랑 별다른 싸움이 계속될 게 뻔할 뻔자였다.

그렇지만 녀석이 짜증을 내면 나도 받아칠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항상 침착하고 냉정한 판단을 유지하던 나도 재희와 말다툼만 벌어지면 이성이 박살났다.

"아 진짜 너 요새 왜 이렇게 신경쓰이게 만들어!"

"내가 뭘? 소꿉친구랑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안 돼? 넌 되고 왜 난 안돼?"

그렇게 서로 언성을 조금씩 높여가는데, 갑자기 재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내 얼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미는게 아닌가. 어이 잠깐, 잠깐! 좀 가깝다고 임마!

"당연하지, 너 지금 여자라고! 내 몸에 깃든 남자지만 말야!"

"그런데! 내가 우주를 소꿉친구라고 생각하는 이상 문제 없다니까! 가희를 사랑하는 너랑 다르게 난 아니라니까??"

내가 손으로 녀석을 원래 자리로 밀어내려고 했지만, 내 힘으로 녀석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결국 우리의 얼굴과 얼굴은 더더욱 가까워졌고, 거의 코앞에서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우주는? 너 우주 마음은 생각 안해? 우주가 널 친구로 생각 안 하고 있을지 어떻게 아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코웃음이 쳐졌다. 니가 그걸 왜 신경쓰는데? 너야말로 지금 가희 마음은 생각 안하고 요새 뭐 하는 짓인지나 알고 있는 거냐 정말? 한재희 너 내가 조심하라고 분명 경고했지! 그리고 이제와서... 뭐라고...?

"웃기셔!"

나는 녀석을 힘껏 밀어서 다시 자리로 돌려보내려고 뒤로 슬쩍 상체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재희의 얼굴로 가려졌던 재희의 뒤쪽을 보게 된 나는 온몸에 피가 그대로 멈춰버리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돼, 네가 어떻게 여길 알고 와 있는거야...?!

"재희야...? 윤하야? 지금 뭐 하고 있는거니 둘이서?"

내 얼굴 앞에서 꼼짝 않고 있던 재희도 뒤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왜냐고? 녀석의 뒤에서 가희가 잔뜩 열이 받은 채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재희와 내 사이의 거리가 오해할 만큼 가까웠다는 걸 이내 깨닫고, 황급히 녀석의 얼굴을 밀어버렸다.

"아니, 저기 가희야 지금 이건 오해..."

재희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머릿속이 새햐애지는것을 느끼며 사고회로가 멈춰버렸다.

큰일이다, 이런식으로 오해받아버리면 재희와 가희의 관계에 금이 가고 말거야!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낀 나는 황급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가희야. 지금 말이지 다른일이 아니고-"

"쉿!"

그러나 가희는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입에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더이상 말하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해 보였다. 아니 잠깐, 그래도 말이지 변명은 마저 해야...

"한재희, 따라와."

"어... 응."

재희는 힘없이 가희를 따라 끌려나가 버렸고, 난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 그자리에 서서 멍하니 두 사람이 카페를 떠나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난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을 수 있었다. 너무나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고 여전히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건 생각도 못한 채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불안감에 손톱만 물어뜯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람. 가희는 분명 여기를 모르고 있을 텐데 어떻게 알고...'

그리고 난 문득 허리춤에 진동이 오는 걸 느끼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문자가 와 있었는데 방금 온 건 아니었고, 10분전에 온 문자가 있었다.

[은주]

[윤하야, 지금 가희가 너네 찾으러 갔어! 왠지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화난 것 같은걸? 내가 너네 같이있다고 괜히 말해준건가?]

이럴 수가, 내가 무심코 은주에게 재희랑 같이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이런 일이 터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감조차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또하나의 문자가 도착했다.

[가희]

[너 그러는거 아니야 서윤하!!]

하아... 진짜로 큰일 터졌다.

============================ 작품 후기 ============================

+14.07.08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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