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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29화 (29/188)

29화

우선 이 파티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둘에게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바로 재희와 가희가 문제였다. 두 사람 다 가르쳐 주는대로 잘 따라 오기는 하지만 너무나 금방 실증을 내는 통에 이끄는 입장인 나와 우주가 엄청 힘들었다. 역시 이 둘은 공부보다는 다른 자유로운 활동이 훨씬 적격인 것 같다는 게 나와 우주가 내린 결론이었다.

"으아... 진짜 머리 터질것같아. 무리야 이건!"

"윤하야, 나도 좀 쉬고 싶은데."

동시에 탄성이 터져나오고, 동시에 화장실로 대피하고, 동시에 냉장고로 달려가며, 동시에 바닥에 널브러지는 이 두사람. 어찌보면 정말 찰떡궁합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특히나 집중력 제로인 쪽으로!

두사람이 동시에 드러누워버리면 나와 우주는 결국 두 사람을 놔줄 수 밖에 없다. 친구인지라 지독하게 스파르타식으로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 그런식으로 가르쳐주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다보니 나중엔 마치 학교 수업시간인마냥 공부와 쉬는 시간이 저절로 구분되버렸다.

그래도 이 두 사람, 하려는 의욕은 꽤나 있는편이라서 가르치는 재미는 있었다. 알려주면 척척 문제를 풀어내는게 보고 있으면 흐뭇해졌다. 다만 조금 난이도가 있는 문제가 나오면 막혀서 골골골 하는통에 구슬리느라 힘들었지만 말이다.

"자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

나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쾌재를 불렀다. 오늘 하루종일 머리가 엄청 아팠을 텐데 잘 따라와줘서 다행이었다. 그나마 파티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이정도로 해준 건 참 고마운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 사람의 집중력의 문제라면 나와 우주가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 문제에는 나와 가희의 문제로, 본능적인 쪽의 문제였다.

"오오! 저거봐 윤하야! 아이스바니에 새로운 빙수 출시!"

"뭐... 뭣이?!"

하교길에 널려있는 온갖 커피숍들과 디저트숍들의 강력한 유혹 때문에 나 역시도 쉽사리 집으로 향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7월이 다가오면서 날씨도 무더워지고 있는지라, 시원한 얼음과자들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 오늘만 아이스바니에서 공부할까?"

"난, 난 상관없어! 간식먹으면서 하는것도 좋잖아!"

가희가 새로나온 석류 빙수가 너무나 먹고싶었는지 내 제안에 무조건 동의를 표시했고, 재희랑 우주도 더운 날씨 때문에 먹고싶은 마음이 꽤나 있었는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흠.. 우주야 우리도 먹으면서 할까?"

그런데 재희가 묻는 이 말은 솔직히 우주의 선택에는 크게 영향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녀석도 나와 같이 여기저기 까페며 디저트숍을 다니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나와 비슷하게 입맛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맛있겠네. 윤하야 여기서 공부하는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그치 그치?"

물론 제일 가고 싶은 건 나였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여자가 디저트의 유혹 앞에서 어찌 견디리오! 안그래요 세상의 여성여러분? ... 아님 말구요.

"아... 에어컨도 시원하고. 여기 진짜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다."

확실히 이런곳이 도서관보다도 냉방설비가 잘 되있어서 더운 여름에 공부하기엔 생각보다 좋은 환경이 갖춰져있다고 봐도 될것 같다. 다만 사람들이 많아서 북적거리고, 먹을게 앞에 놓여져 있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게 흠이지만.

"내일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는거다?"

물론 나도 무진장 카페에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 욕구를 꾹꾹 누르면서 어떻게든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친구들에게 말을 꺼냈다. 그 제안에 모두들 동의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다들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았다.

'뭐, 내일은 도서관 가고 다음에 한번 카페라던지 가야겠네.'

너무나 가고 싶었으니까, 나도 내 마음을 주체할수가 없어서 가긴 가는것으로 마음속으로 몰래 결정을 내려버렸다. 물론 가자고 하면 다들 동의하겠지 후후.

여튼 그렇게 카페와 디저트숍 그리고 도서관을 전전하던 우리는 어느 한곳에 자리잡지 못한 채 시험 전 마지막 주말을 맞이했다. 그래도 나름 시험 범위 안에서는 어떤 문제가 나와도 자신있을 정도의 실력들을 갖춘 상태여서 크게 걱정은 없었다.

얼마나 자신이 있었는지, 다들 주말은 집에서 푹 쉬면서 원기회복을 하기로 약속했을 정도였다. 그때문에 나도 지금 자연스럽게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쉬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만에 누리는 여유인지, 단지 집에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을 뿐인데 행복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나의 집중은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한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

당연히 눈뜨면 아침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눈을 뜨니 보이는 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아무리 눈을 부벼보고 다시 봐도, 정말 생소한 장소였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코로 거슬리는 알콜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을.

"아빠...?"

아저씨가 바로 옆에 서 계셨다. 그리고 울고 계셨다. 하염없이, 너무나 깊은 슬픔에 빠져서 울고 계셨다.

"으흐흐흑..."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을 정도로 깊은 아저씨의 슬픔에, 난 할말을 잃고 말았다. 나의 이 감정을 7살 윤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 말없이 아저씨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아저씨가 저렇게 서럽게 우시는지 생각했다. 어떤 큰 일이 있었겠지, 가족이나 친지에게 큰 사고가 생겼다던가...

'윤하 어머님!'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꿈은, 윤하 어머님이 사고를 당하고 난 직후였던 것이다.

갑작스런 충격에 놀란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른채 그저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말이라도 걸어서 위로를 드리고 싶어도 그럴수도 없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가는데, 오른편 수술실에서 담당 의사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아저씨는 의사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안사람은... 안사람은 어떤가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던 나는, 차마 다음 말을 그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아저씨를 납득시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부인은... 최선을 다했으나... 무리였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출혈이..."

"으아아아아!!"

결국 사실을 전해 들은 아저씨는 소리지르며 오열하고 말았다. 바닥에 털석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시는 아저씨 곁에서, 윤하는 어쩔줄 모르며 따라 울기 시작했다.

사고 후 참아왔던 눈물이, 다시 윤하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충격 때문에 나오지 않았던 윤하의 눈물이... 아저씨의 울음소리 때문에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 슬픔의 여파는 나에게까지 전해져와서, 울음을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울적한 기분을 만들었다. 손쓸수 없을 정도로 강한 슬픔이 마음을 가득 채우자 생각지도 않은 눈물이 터져나왔다.

"엄마..."

눈물흘리는 어린 윤하의 표정과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난 계속해서 되뇌였다. 울지마, 울지마 윤하야. 제발... 울지마 윤하야...

"울지마..."

어째서인지, 꿈에서 깨어났을 때 울고있는 건 나 자신이었다.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베개 주변이 온통 물바다일 정도로...

"제발... 흑-! 울지마... 울지마 윤하야..."

그렇게 누워서 하염없이 울고만 있으니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으며, 아저씨가 너무나도 보고싶어졌다. 너무나.

<5. 악몽, 그리고 삼각관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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