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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5화 (15/188)

15화

'어디보자... 내 방도 오랜만이군. 뭔가 예전보다 남자 냄새가 심해졌는걸.'

예전의 나는 방에서 운동하는 일 따윈 결코 없었기 때문에 반 친구들이 놀러와서도 방안 공기가 남자 방 치곤 상쾌하다고 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내 몸을 가진 윤하는 운동이 그렇게나 좋은지 방안에 별의별 운동 기구들이 쫘악 들어차 있었다.

방안에 들어와 오른쪽 벽을 보니, 재희는 마치 새우에다 줄감자 감아둔 것처럼 이불을 돌돌 말고 자고 있었다. 으와 잠버릇 한번 고약하네... 어떻게하면 저렇게 말아서 잘 수가 있지?

'각오해라 요 녀석, 내가 잠깨우기의 진수를 보여주지.'

나는 고양이처럼 손을 앞쪽으로 살짝 들고, 앞발로만 살금살금 침대 옆에까지 접근하여 하늘을 향해 높이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일부러 음성변조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재희야."

그러자 녀석의 눈이 살짝 떠졌고, 나는 이때다 싶어 두 손을 재희의 배 쪽을 향해 가속낙하 시켰다. 쉬운 말로 쓰자면 녀석의 배를 향해 두 주먹을 내리꽂았다는 얘기다.

"일어나!!"

"왁!?"

어? 어어어? 잠깐 너가 거기서 움직여버리면 내가 디딜 곳이 없어진다고!

"으갸악!!"

[쾅]

실제로 저렇게 큰 소리가 난 건 아니었지만, 내 주먹이 재희에게 거의 닿을 때 쯤해서 갑자기 재희가 벌떡 몸을 일으키는바람에 난 그걸 피하느라고 중심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멍하게 깨어나 앞에서 사람이 넘어지는 걸 본 재희는 그걸 또 잡아주겠다고 벌떡 일어나다가 돌돌 말린 이불에 다리가 걸려 바닥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그 와중에 재희 녀석이 내가 먼저 땅으로 넘어지는 걸 막아준 덕분에 몸에 아픔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짧은 찰나에 공중에서 360도 회전을 했기 때문에 어지러웠다. 하지만 나는 너무 놀란 상태라서 녀석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야! 너 왜 갑자기 벌떡 일어나고 그래!"

재희는 바닥에 머리를 찧었는지 머리를 감싸쥐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인상을 잔뜩 쓰고는 내게 되려 소리를 질렀다.

"아우욱.. 머리야.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왜 아침부터 남의 집에 와서 폭력을 휘두르려고... 응?"

어, 잠깐. 이녀석 왜 알몸이야. 너 설마 옷 안입고 자는거냐?!! 남자 한재희는 그렇게 야만스럽지 않았어 이자식아!

"히익! 이불 두르고 있어서 몰랐는데 왜 알몸이야!!"

"왜. 뭐, 왜! 뭐가 어때서! 그래도 속옷은 제대로 입고 잔다고!"

이 녀석이 내 몸을 너무 함부로 굴리는거 아닌가 싶다. 아무리 돌아갈 방법이 없다지만 그래도 혹시 원래대로 돌아갈 지도 모르는데!

"아."

그런데 녀석이 살싹 상체를 일으키며 내 쪽을 보더니 얼굴을 붉히는 게 아닌가. 뭐야, 뭐야 왜 그래 너? 또 흥분한거냐 설마?

"너... 너 빨리 일어나. 제발."

난 이놈이 왜 일어나라고 하는지 몰라서 내 상태가 어떤지 다시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허억, 내가 왜 이녀석 위에 올라타 있는 거지?

"!!!"

게다가 엉덩이 쪽에 느껴지는 이 익숙하고 단단한 쥬니어의 감촉은, 한번도 이런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 내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했다. 그래, 그거냐? 잠자다가 방금 깨어났다 그거지? 응?!

"꺄아아아아아악!!!"

나는 내가 생각해도 엄청난 소리를 지르며 내 방으로 달려가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가 겁먹은 햄스터처럼 몸을 웅크리고 덜덜덜 떨었다.

내 비명 소리에 놀라 엄마가 달려오셨고, 재빨리 옷을 걸친 재희가 엄마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안심을 시켜준 뒤 내 방으로 털레털레 걸어들어왔다.

"야! 일어나! 뭘 그렇게 여자애처럼 소리를 지르고 그래?"

"하.. 하지만, 있었다고, 네... 그게 있었다고!!"

우와. 여자의 몸으로 느껴지는 남자의 그것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다니. 난생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의 감각에 나는 다시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씨, 나도 놀랐단 말야. 그러니까 왜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고 그래? 여자가 겁도없이 남자방에 함부로 들어오고 말이야."

아 미안, 정말 미안한데 재희야, 나 원래 남자였거든? 그래서 이런 건 전혀 생각 못했단 말이야. 젠장, 그때 가슴 만지게 해 준 것도 내 실수야, 그래 미안해.

"아그래, 내가 미안해, 진짜 미안해, 앞으로 절대 안 그럴거라고는 장담 못하겠지만 아무튼 미안해."

내가 뒤집어쓴 이불 밖으로 머리만 빼꼼 내놓고 재희를 바라보니까 재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근데... 진짜 귀엽다. 내가 원래 이렇게 귀여웠던가? 진짜 햄스터 같네, 겁먹은 햄스터."

귀엽다는 말에 약간 화가 난 나는, 바로 이불을 걷어 내고 제대로 침대 위에 앉아서 녀석에게 말했다. 아마 꼴에 전 남자라고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끄러, 너 너무 밝히는 거 아냐?"

"뭐? 야, 아마 너가 이 몸에 있었을 때 나랑 그런 상황이 벌어졌으면 좋아 죽었을걸?"

"누가 좋아 죽는다고 그래! 시.. 싫지는 않겠지만."

"으이구..."

재희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내 어깨애 두 손을 올려놓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하면, 만약 지금 부모님만 안계셨어도 널 덮쳤을지도 몰라."

"아줌-압!"

내가 빽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당황한 녀석은 그 큰 손으로 내 입을 턱 막더니 반대쪽 손으로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대고 '쉿!- 쉿!!'을 연발했다. 녀석은 거실쪽을 훑어보며 안절부절 못하더니 내 귀쪽에 입을 가져다대고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다.

"쉿! 너 진짜 자꾸 이러면 여기서 강제로 내 부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잘못했습니다. 그래도 전 연애는 하면서 밤일도 하는게 맞다고... 보는게 아니라 누가 좀 살려줘!

한참을 웅얼거리며 바둥바둥거리다가 결국 내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힘없이 양 팔을 내려놨다. 절대적인 약자가 됬음을 다시한번 실감하는 대목이었다.

"알았지? 소리지르지 마?"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힘겹게 끄덕거렸다. 녀석이 내 입을 막은 손을 놓아줬지만, 태어나서 남자가 이렇게 무섭게 보인 적은 처음이라서 난 어찌 해야 할 줄을 모르고 손톱을 계속 물어 뜯을 수 밖에 없었다.

"부탁이다, 윤하야. 난 가희밖에 없으니까, 날 유혹하지 말아줘. 너도 남자였으니까 남자의 본능 정도는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넌 스스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닫고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니까?"

녀석이 하는 말이 이해는 됐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의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섹시한 여가수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걸 보면 당연하게 이해될 문제였으니까. 물론 몸이 바뀌기 전 나도 마찬가지였고. 게다가 윤하의 몸은 여자아이들도 부러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남자애들을 절대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자꾸 이러면 정말 어떻게 해서든 내 부인으로 삼고 싶어질 지도 몰라... 내몸이지만."

그리고 넌 좀 쓸데없는 소리좀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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