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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4화 (14/188)

14화

"에.. 그러니까 이미 절 맡기실 집을 구하셨단 말이에요?"

"그래... 어제 밤에 너 잠들고 나서 바로 친구녀석에게 전화했지. 이동네 사는 녀석인데다가 네 또래 아이도 있다길래 부탁 좀 했단다."

뭐 그렇게 하염없이 울어제끼는 딸내미를 보면 아버지로썬 당연한 처사일지도... 하지만 그걸 간과하고 나 혼자 생각해버린 게 미처 이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던 이유가 되버렸다.

"아마 괜찮을 거야, 친구 집 아이도 영운고등학교 다닌다고 하더라."

그래도 다행이네, 우리 반 애일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양자간의 선택지 사이에서 꽤나 긴 시간을 고민하던 난 약간은 시무룩 해져서 아저씨께 말했다.

"그럼 그 집에서 살게요, 그 편이 아빠가 좀더 안심하실 수 있을테니까요."

아마 이게 둘 중 더 좋은 방법이겠지. 물론 재희 집에서 신세지는 게 여러모로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저씨가 구해주신 집에서 사는게 분명 아저씨한테도 안심이 될 거야. 그래야 마음편히 출장생활을 하실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아저씨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가셔서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게 되실 지도 모르는걸.

"어떻하니, 너도 너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텐데... 아빠때문에 무용지물이 되겠구나."

나는 오렌지 주스를 쭉 들이키고, 내가 말했던 계획을 버린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신 아저씨에게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아니에요 아빠. 아빠 딸내미를 믿으십쇼!"

나도모르게 튀어나온 호쾌한 남자 말투에 나도 당황했지만, 아저씨도 적잖이 당황하신 듯 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그랬나?

"하하하하. 그래, 요새 우리 딸이 너무나 이뻐져서 아빠도 걱정이었는데, 씩씩해서 다행이다."

하하... 오히려 안심하신 거였군. 이걸로 아빠도 마음편히 출장가실 수가 있겠구만.

"그러니까, 다른 사내놈들에겐 절-대로 안기거나 이런 귀여운 표정 보여주면 안 된다?!"

하지만 역시 팔불출 끼는 아직 안 버리신 것 같다. '이래야 아저씨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야 나도 문제 하나를 해결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저씨와의 야간 데이트 후에, 난 아저씨 방으로 잠옷을 입고 쳐들어갔다. 내가 어두운 방안을 날아 침대로 낙하하자 아저씨는 엄청나게 화들짝 놀라시더니, 강도가 아니라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다 큰 딸내미가 아빠 옆에 찰싹 달라붙어 팔베개 하고 잔 건 최근에 몇 번 있었지만, 여전히 아저씨는 굉장히 부끄러우셨는지 잠을 못 이루신 것 같았다.

난, 아저씨의 품이 너무나 따뜻해서 그대로 잠들어버렸지만.

*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이 되었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젯밤에 아저씨가 주신 약도를 가지고 친구 집이라는 곳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마 일요일 낮이니까 집에 가족들이 다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시간에 가는 것이다.

'고마워요 아저씨.'

집을 나오면서 나는 곤히 잠들어 계시는 아저씨의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너무나 고맙다는 의미의 표출이었지만, 내가 하고도 약간 찜찜한 이 기분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뭔가.. 재희가 말한 것처럼 여자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요즘들어 팍팍 드는걸.'

분명 의식은 예전의 남자였던 나 그대로였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걸 어떻하겠냐 말이지. 재희 녀석도 보아하니 남성 호르몬에 완전히 취해서 자기 예전 몸을 더듬고도 엄청 흥분하는 것 같고 말이야.

"그래도 난 내 몸을 더듬고는 흥분 안 할게 분명하다고. 물론."

나는 스스로 내가 그럴리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도 원래 남자였던 내가 남자 몸을 보고 흥분할 리가 없잖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여자가 된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일걸. 절대 그럴리 없어.

"...어라?"

근데 약도를 따라 걸어가다보니 웬지 길이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분명 이 느낌은, 내가 16년동안 계속 걸어다녔던 그 동네의 느낌이었다. 결국 목표 지점에 뭐가 있을 지 도착할 때 쯤 눈치 챈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집을 향해 걸으며 설마를 연발했다.

'설마... 아저씨가 말한 친구라는게...'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곳은, 아니나다를까 한재희의 집!

"뭐야 이게!!!"

아니 이 말도 안되는 우연이 겹쳐 일어나는 만화 같은 전개는 뭐란 말입니까. 도대체 내가 어젯밤에 아저씨랑 그렇게 고민하고 대화를 많이 나누는 이유는 뭐였단 말인가요? 이럴 줄 알았으면 누구네 집이냐고 물어나 볼걸 젠장! 서로 이름은 왜 언급도 안했던거람!

"하아아..."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초인종을 눌렀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더니. 랄까 뭔가 다른 것 같지만 대충 넘어가고...

익숙한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잠시 후에 내가 그동안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집 안쪽에서 들려왔다.

"누구세요?"

엄마다... 날 낳아주신 엄마! 3개월동안 못 들었던 목소리를 들으니 내 가슴 속에서 뭔가가 찡- 하고 우는것이 느껴졌다.

"저- 서윤하라고 하는데요, 아빠가 소개해주셔서 왔는데-,"

"어머 윤하구나? 잠깐만 기다리렴~"

내가 머뭇머뭇 거리면서 말하는데, 엄마가 엄청나게 반가워 하시면서 문을 열고 나오셨다.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는척을 해 주시니 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엄마는 내 손을 잡았는데,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으니 옛날 생각이 물씬 나서 하마터면 울 뻔 했다.

"그런데 절 어떻게 아세요?"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데리로 가는 중에, 내가 경직된 표정으로 물어봤다.

"너희 부모님이랑 우리가 고등학교 친구라는 거 아저씨한테 못들었나보네?"

"헉. 진짜요?"

뭐야, 우리 부모님이랑 윤하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동창이셨단 말야? 설마 그동안 부모님이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서 만나셨던 게 전부 아저씨였단 말인 건가? 그럼 나랑 윤하는 적어도 어렸을 적에 몇 번은 봤다는 얘기인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

"그래, 그런데 너희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는 연락이 좀 뜸했거든... 일곱살 때 보고 벌써 10년만에 보는구나. 정말 미인이 됬구나 윤하는?"

"아-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예쁘다는 칭찬에 나도모르게 반응했지만, 그건 뭐 당연한거니까. 일요일 아침의 여느 집이 그렇듯, 우리집도 예전처럼 조용했다. 늘 일찍 일어나시는 엄마만이 일어나셔서 집안일을 하고 아침드라마를 보고 계셨던 듯.

"그럼 제가 살 방좀 봐도 될까요?"

"아 맞다. 이쪽이야, 너 온다구 안쓰던 방을 좀 정리하고 있었거든."

집 안은 내가 원래 몸에 있을 때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별로 없었지만, 웬지 오랜만에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거실을 지나 부엌 오른편의 내가 살던 방을 지나자 오른편에 방이 하나가 보였다.

'아아 이방 기억난다. 전에는 헌책이랑 앨범같은게 모여있었던 방이었는데.'

예전 방 안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땐 사람이 살만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바꾸셨을지 궁금했다.

"짜잔~ 앞으로 윤하가 살 방입니다. 어떠니?"

방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와- 이게 무슨 냄새일까, 마치 어디의 화원이라도 온 듯한 냄새가 나를 방 안으로 이끌었다.

방 안에 들어와보니 깔끔하게 정리된 벽지와 가구,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예전 방의 모습이 더해져 앤티크한 느낌을 주었다. 뭐랄까 3평 남짓 되는 조그만 방 주제에 시대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한 언밸런스함이 멋졌다.

"와... 이걸 정말 혼자 다 하신거에요?"

"혼자는 아니구. 바깥사람이 좀 도와줬어, 벽지라던가 가구 옮기기 같은 건 혼자 하기는 힘들잖아~"

"어라 그러고보니 아저씨는 안계시네요."

난 방안을 둘러보다가, 새로 놓은 듯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절대로 남자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한텐 딱 맞는 적당히 레이스 달린 핑크빛 이불이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이는 지금 운동 나갔어. 나름 건강관리한다고 그래도 일요일 아침엔 꼭 운동 하러 뒷산에 올라가더라? 처음엔 몇주 하다가 그만두겠지 했는데, 그래도 꾸준히 잘 하더라구."

아빠가 운동을? 주말에 일어나면 움직이기 싫어서 거실 바닥에 마치 붙은 것처럼 움직이던 우리 아빠가?! 신기하네, 내가 없는 3달사이에 도대체 무슨일이 생긴걸까.

"사실 이게 다 재희 덕분이지 뭐야. 재희가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거 보니까, 그이도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게 분명하다니까. 재희도 예전엔 체육 잘하고 운동 하는데 불편함은 없다고 늘 말했지만 저렇게 매일 단련한 건 몇 달 안됬거든. 고등학교 가서 조금은 생각이 바뀐 걸지도 모르겠구나."

아하... 하긴 윤하 녀석 운동 바보였지, 열혈 운동 바보. 정말 남자 하면 딱일 캐릭터인 녀석이 여자로 태어나 버린 것도 약간 에러스럽긴 했지만, 어쩌겠어 운명의 장난인 것을. 아니지, 그렇다고 이렇게 뒤늦게 바꿔버린것도 에러다 에러.

"재희는 어딨어요?"

"아마 지금 방에서 자고 있을거야. 어제도 밤새 컴퓨터 하다가 잤는지 아까 깨워도 안일어나더라. 윤하 네가 좀 깨워줄래?"

오호라 이녀석 자고있단 말이지? 내가 거칠게 깨워주도록 하겠어?

"후후후후. 네 맡겨만 주세요."

나는 새로이 내 방이 될 곳에 자켓을 벗어놓은 뒤, 발소리와 문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레 재희 녀석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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