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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1화 (11/188)

11화

<3. 전세역전>

내가 가져온 이 작전은 녀석에게 치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윤하가 이 말을 듣는 순간 다시 내 몸과 바꿔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는지, 상황은 전혀 예측 밖으로 흘러가버렸다.

"뭐... 뭐라고?"

인적 드문 밤의 공원 운동장으로 재희를 불러내어, 도난당한 내 몸을 돌려받기 위한 담판을 지으려던 나는 오히려 한 방 먹고 말았다.

"그러니까 몇 번 말해. 난 그런 능력 없다니까. 그때 한 말은 그냥 내가 너와의 관계를 주도하려고 거짓말 한 것 뿐이야. 이건 순전 우연이고 비과학적인 현상이라고 벌써 열 두 번째 말하고 있거든?"

녀석이 몸 바뀌고 나서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도 자신있게 말했던, '몸을 바꾼 건 내 능력이다'라는 말을 고지곧대로 신뢰했던 나는 충격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이제와서 거짓말이었다고 밝히는 이자식도 어지간히 짜증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나도 피차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한심한 내가 그렇게 판단해버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뭔지 떠올랐다.

'그날 그 악몽!'

요전번에 꾸었던 그 악몽에서, 윤하가 자유자재로 몸을 드나드는 모습을 봄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재희의 말에 낚여 버린거나 마찬가지였다.

"하..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어."

"그럼 어떻게 하려구. 너도 내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

정말 돌아버리시겠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거야? 가능성이 너무나 많다. 윤하가 실제로 능력이 있고 능력을 쓸 수 있으면서도 없는 척 하는 것 일수도 있고, 정말 윤하가 말하는대로 이 모든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며, 우리가 아닌 제 3자에 의해서 이 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와나... 시바..."

내가 준비한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버리자, 웬만해선 바른말 고운말만 쓰는 내가 과격한 말까지 쓸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내가 능력자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협박하러 온 거야?"

"그.. 그래."

재희는 어이없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벤치에 털썩 앉았다. 그리곤 나에게 앉으라며 손짓하고는 대단하다며 손을 으쓱해 보였다.

"물론 내가 정말 능력자였다면, 이 협박엔 못 이겼을 게 뻔해. 하지만 아니라서 기각."

협박의 내용은, 만약 몸을 돌려주지 않으면 윤하의 몸으로 가희를 차지해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재희가 가희에게 꽤나 점수를 얻은 상황이긴 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윤하를 제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희를 피하고 있는 내가 태도만 바꾸면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쳇. 어제부터 오늘 낮까지 하루종일 고심한 거였는데. 이렇게 허탈하게 끝나버릴 줄이야."

하지만 평소같았으면 내가 이렇게 툴툴거려도 씨익 웃고 있었을 재희가, 오늘은 그닥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화났다 이녀석.

"후-. 그런데 말이야, 윤하야."

"응?"

그 약간씩 끊어 말하는 강렬함이 담긴 단어 하나 하나에, 나는 약간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뭔가 화가 제대로 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보는데, 약자의 입장에 있는 나는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게 실제로 했었다면, 난 널 용서할 수 없었을 지도 몰라."

그 당시의 재희는 눈에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런, 내가 녀석의 역린을 건든 것이 분명했다.

"넌 모르겠지만.. 내가 가희를 좋아한건 벌써 3년도 넘었어."

"..."

잠깐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지금 내 몸에 들어오기 전부터도 가희를 좋아했었단 말이야? 아니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너 설마 레즙-"

"거기까지."

재희는 재빨리 내 입을 손으로 막아버리더니, 슬쩍 째려봤다. 아이구 이놈의 입. 입조심해야지 입조심, 안그랬다간 저 살기띈 눈으로 날 어떻게 할지...

"상관없어.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난 걔가 좋았단 말야. 지금도 가희가 너한테 그렇게 달라붙는 이유도, 내가 그동안 일궈 놓은게 있었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구."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친구끼리라지만, 이렇게 달라붙는건 특별한 감정이나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내 마음 속으로도 이미 결론을 낸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좋아하는 사이였다니...

"뭐 나야 남들 시선은 상관없지만 가희가 이상한 눈총을 받는 건 정말 싫었으니깐. 남자라도 되면 정말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그 날 이렇게 되 버린 거지. 나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그당시엔 얼마나 놀랐다고."

분명 그녀의 얘기도 애절한 사랑이야기였으나, 그에 버금가게 나도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인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겨울방학 때 처음 둘이 만나서 카페에서 얘기할 때 했던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가희를 위해서 남자가 되고 싶다'라는 의지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것인가... 야속한 신 같으니라고.

'어쩌다가 이런 복잡한 아이에게 반하게 된 걸까.'

그날의 대 사건으로 인해 내 인생도 완전히 꼬여버린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만, 그녀가 가희를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더 컸길래 이런 말도 안돼는 일이 벌어지고 만 걸까.

"아무튼 그렇다고. 방해할려면 해봐, 너가 원판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안다 알아, 내가 널 어떻게 이기냐. 애초에 난 내가 스스로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좋아하려는 마음조차도 생기지 않는 인간인 것을... 하기사 넌 그런걸 알 리는 없지만.

'에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내 몸인데!! 이자식은 내 몸으로 가희랑 껴안고 키스하고... 으, 안돼 생각하면...'

생각하니 열이 머리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부끄러웠다. 아니지 잠깐 이런 생각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그럼 내 몸은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는 건가?! 함께 고민해도 시간이 모자를 판에 저놈은 결국 자기 노선을 가겠다는 거 아녀!

"하아... 결국 난 이대로 살아야 하는구나."

내가 땅이 꺼질듯이 한숨을 쉬자 재희가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녀석이 내 마음을 알리가 없었으니 당연도 하다.

"솔직히, 전부 듣고 나니까 널 방해할 생각은 완전히 없어졌어, 이길 자신도 없고. 그런데...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희의 현재 상황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하늘이 도우신 것이나 다름없겠다만, 반대로 내 상황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난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지? 재희를 축하해주면서 녀석의 사랑을 도와줘야 하나? 내 성격에? 아마도 힘들겠지.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면서 돌아올 리 없는 마음을 계속 줘 가며 남자가 되어버린 재희에게 매달려야 할까..? 그것도 힘들겠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기다리는 것 뿐인데, 만약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기 전까지 녀석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내비치지 못한다면 그것대로 너무 힘들거 같단 말이지.

"야. 너 솔직히 말해 봐. 나 좋아하지?"

분명히 속인다고 속였으나, 역시나 재희는 내 감정 정도는 훤히 꿰뚫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너한테 호감을 보이는걸 귀신같은 이 녀석이 놓쳤을 리가 없지.

"그래, 첫눈에 반했어. 그동안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하필이면 수학여행에서 만난 그 날, 첫눈에 반해버렸지. 애석하게도..."

녀석은 맥빠진 나와 바닥을 번갈아 응시하며 고민하더니, 고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상상도 못할 말을 나한테 하는게 아닌가?

"그럼... 이렇게 바뀐 모습이라도 내가 좋으면,"

좋으면? 좋으면 뭐해 너 가희 좋아하-

"내 두번째 마누라 하던지."

"-잖아!! 이 미친놈앗!!"

으아 빌어먹을 또 속마음이랑 소리지르는 거랑 이어졌어! 미쳤냐 너! 진짜 미친거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능할 만한 소리를 해야지 이 자식!!

"무슨 소리를 하는거얏! 제정신이냐 너?!"

재희는 내가 버럭 소리지르면서 등짝을 후려치려 하자 재빠르게 일어나서 도망가버리는 게 아닌가? 도망가는 녀석은 '미안!' 하면서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오!! 한재희!!!!"

저번에 이어 또 녀석의 언어 공격에 2연타를 먹은 나는, 빠르게 멀어져가는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ps. 댓글로 일본 만화책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말씀해주셨길래 말씀드리는겁니다. 사실 Ts물 특성상, 신체가 바뀐다는 모티브는 한정된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그 스토리에 사용되었던 모티브가 가장 마음에 들어서 이 소설의 기반 배경으로 사용하기로 결정을 했었습니다. 아직 초반부이고, 가장 친한 친구 한명씩이 나온다는 점이 그 만화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저도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궁극적으로 제가 소설 결말에 보여드리려고 하는 건 그 만화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지금 미리 말씀드리고 싶네요.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를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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