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6화 (6/188)

6화

<2. 완벽한 그놈의 은밀한 비밀>

"재희야."

익숙한 목소리에 어두웠던 시야가 걷히고, 내가 벤치에 누워있다는걸 깨달을수 있게 될 정도로 주변이 환해졌다.

"이 목소리... 익숙한데."

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내 옆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소녀를 확인했다. 햇살이 강렬해서 얼마 후에야 보이기 시작한 소녀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몇달간 내가 가지고 있던 몸인 서윤하였다.

"너.. 설마 서윤하?"

"응. 맞는데? 여자친구 얼굴에 뭐 묻었나?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시나?"

뭐... 뭐? 여자친구라니? 무슨소리하는거야 얘가. 아니 그보다 지금 나 원래 몸으로 돌아온건가? 지금 내게 느껴지는 이 감각은 분명 남자 한재희의 몸 맞지? 지금 내 몸으로 돌아왔고 내 옆에는 원래대로 돌아간 서윤하가 있는거고..!

"나... 나, 한재희 맞지? 맞는거지?"

"얘가 미쳤나. 너 한재희 맞아요 정신좀 차리세요."

윤하가 정말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나에게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나는 이게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가 없었지만, 내가 원래 몸으로 돌아왔다는 것 자체에 기뻐하기에 바빴다.

"어.. 근데 윤하..야?"

그런데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분명 내가 윤하와 사귀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난 그녀에게 이 관련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지금 내가 그녀와 사귀고 있기엔 뭔가 건너뛴 느낌이 굉장히 많지 않은가...? 애초에 언제 몸이 바뀐거고 우린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했던거지? 설마 이거...

"왜 내가 니 여자친구냐구?"

헉. 잠깐만, 윤하야? 왜 지금 이상황에서까지 내 마음을 읽어야하니? 차라리 관심법 쓴다고 얘길 해줘 눈치로 자꾸 알아내지 말고!

"후후후. 그냥 잠시 재희 너의 소망을 이뤄준 것 뿐이야. 잘 들어 한재희."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의 머리를 양 손으로 감싸고는 얼굴을 코앞까지 가져오더니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화창했던 세계가 와장창 하고 박살나더니 바닥에 있던 벤치가 사라지고 우리는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내 바로 앞에서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무서웠고,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정신을 잠깐 놓았던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정신이 들자 보이는 것은 더이상 윤하가 아니었다. 분명 윤하가 내 머리를 감싸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남자 재희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허-헉! 이게 뭐야!!"

난 황급히 손을 떼고 내 몸을 더듬거렸다. 안 돼 또 윤하로 돌아왔어..!

"알겠어? 난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네 몸을 도로 빼았을 수 있어..."

안돼, 잠깐, 그러지마 윤하야. 제발 다시 원래대로 돌려줘... 남자 한재희로 돌아가게 해줘!! 왜 다시 돌려버리는거야.. 제발 돌려줘!!

"게다가 넌 날 좋아하니까... 어쩔수 없이 내가 하자는대로 할 수밖에 없을걸?"

"뭐.. 뭐라고?"

"그러니까 내가 영원히 이대로 네 몸을 가지고 있어도 넌 아무 말 못할 거란 얘기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물론 네가 좋긴 하지만 그래도, 난 내 몸을 돌려받아야만 해... 그건 내 몸이야, 내 몸!

"왜냐면. 넌 내가 좋으니까."

이윽고 주변이 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가 다시 칠흑같은 어둠으로 바뀌었다.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고음의 비명소리와 함께, 나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며 잠에서 깼다. 간밤의 꿈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온 몸에 흐른 식은땀으로 인해 잠옷이 흠뻑 젖어버렸다.

"하아... 허억... 허억..."

내가 방금 꾼 악몽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 미래를 보여준 꿈이었다. 하지만 내가 윤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벌어질 수도 있는 너무나 사실적인 꿈이었기에, 깨어난 후 30분동안 난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벌써 며칠 간격으로 몇 번이나 비슷한 꿈을 꾸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평소같았으면 아저씨가 달려와서 무슨일이냐고 물어봤겠지만, 지금은 아저씨가 직장에 가시고 안 계신 평일 오전. 집에 있는 건 나 혼자 뿐이어서 다행히 고요한 방에서 혼자 마음을 추스리는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은 편이었다.

'하아... 젠장, 몇 번째야 이게... 얼마나 노이로제가 되려고 이러지.'

힘들게 엉킨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 발을 디딘 나는, 창가에 놓인 전신거울 쪽으로 걸어가서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봐도봐도, 아무리봐도 아름답구나...'

악몽을 꾼 것이 윤하 때문인 것 같아, 괜시리 화가 나서 나는 거울 속의 그녀에게 연신 주먹을 콩콩 날려댔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바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몸 내놔.]

평일 오전에다가 이른 시간이기도 했으나, 이 녀석 부지런하게도 이미 일어나 있었던 모양이다. 예처럼 도착하는 칼 답장. 그리고 어제 홧김에 바꿔버린 녀석의 이름이 내게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누가 지었는지 별명 하나 잘 지었네.

[발신자 : 도둑놈]

[또 시작이야? 요즘 좀 잠잠하더니, 악몽이라도 꿨어?]

우와. 이 귀신. 진짜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아는거야. 정말 이놈의 뇌를 해부해보고 싶을 정도다. 아니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건 내 뇌잖아. 그래 어찌됬건 뇌가 아니라 영혼이라도 붙잡아서 고문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지 지금은..

[답장]

[시끄러워, 빨리 돌려줘, 돌려줘돌려줘돌려줘돌려줘!!돌려줘~~~~~~~~~~~!]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애걸복걸 매달려야 되는건지 모르겠으나, 딱히 방법도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이런 것 뿐이었다. 방법을 알아야 뭔가 대책을 세워서 제대로 덤벼들어서 몸을 빼앗아오던가 할텐데, 아무것도 모르니 대책도 서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세수하면서 녀석의 답장을 기다리는데, 문득 간밤에 꾸었던 꿈의 내용이 생각나서 온몸에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며칠 연속으로 꾸다 보니 진짜 실제로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잠깐. 혹시 윤하가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아채버리면... 꿈처럼 몸을 저당잡힌 노예나 다름없이 되 버리는거 아니야?'

과연, 내가 생각해도 이러한 추리는 정말 대단했다고 본다. '앞으로 절대로 그녀석 앞에서 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테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답장이 왔다.

[발신자 : 도둑놈]

[얘가 왜 이렇게 칭얼대? 너 벌써 여자다움에 익숙해져 버린거야? 아니면 혹시 나 좋아하는거?]

으-악! 세상에나, 10분만 늦게 생각했다간 진짜 노예가 될 뻔 했다.

[답장]

[무슨소리야? 착각도 병이라고 참..]

별 대수롭지 않은 듯 답장햇지만 난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정말, 서윤하 이 여자는 어떻게 된 인간인거야, 정말 신이라도 되는건가?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것 하나하나를 다 꿰뚫고 있는 거지? 진짜 관심법이라도 쓰냐?!

[발신자 : 도둑놈]

[ㅋㅋㅋㅋㅋ, 놀라기는. 남자인 자신의 모습에 반했나보지? 대단한걸]

빠직. 빠직빠직.

내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또 들렸다.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서 이 여자에게 이겨야 하느니라... 그래야 하느니라... 아, 근데 진짜 이 짜증나는 이 자식의 말투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고-!!!!!"

"어이쿠 깜짝이야!"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허공에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쪽을 돌아보니 아저씨께서 들어오시면서 날 보고 굉장히 놀란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니에요 아저씨한테 화낸거..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친척들 좀 만나느라고 좀 늦었네요, 오늘 8회까지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추천이랑 선작 감사합니다!

아직리리플까지 달 시간은 안되네요ㅜ, 비축분량 마저 올리고 시간이 좀 남으면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