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5화 (5/188)

5화

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커피숍이었다.

"여기는 잘 알지?"

"... 우주가 알려줬나보지? 여기 오는 건 우주 밖에 없는데."

"오~ 정답. 잘 알고 있는거 보니 역시 한재희 맞나보구나."

이보세요. 그건 댁이 더 잘 알고있을 것 같습니다만. 장난은 정도껏 하지 않으면 내가 불같이 화내는걸 관람할 수 있을 것이에요. 제가 지금 그쪽의 몸에 들어가 있어서 굉장히 약해보이지만 성격은 그렇게 착하지 않답니다.

"후후. 일단 앉자. 더 이상 장난칠 생각은 없으니까 이제 화 풀고."

그녀의 말에 난 또 흠칫 했다. 어떻게 내가 딱 딴지를 건다던가 화를 내려는 순간이면 분위기를 읽고 장난을 멈추는지 원... 얘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지금 내가 생각할 것도 알아차리는거 아냐..?'

하지만 지금 이런 관심법 같은거 생각할 겨를이 어딨는가. 난 한시라도 빨리 내 몸을 돌려받아야만 했으므로, 잡생각 할 시간 1초도 아까웠다.

"그래서, 몇 주 전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해주실까요?"

나는 완전히 가시 돋힌 말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계속해서 적대적인 상태로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면 일부러 생각을 읽지 못하게 하려고 저렇게 웃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내 원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던지라, 호러틱하게도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 안의 내가 계속 싱글싱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 그럼.. 어디부터 설명을 해줘야 하려나?"

그녀가 또다시 시간을 끌려는 조짐이 보이자, 나는 양 팔을 테이블 위에 턱 올리며 팔장을 낀 뒤 지긋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난 지금 매우 급한 사안이니 질질 끌지 말라는 무언의 감정표현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구. 그럼... 재희 너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벌어졌다고 생각해?"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단지 널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바뀌어 있었을 뿐이라구."

"역시 전혀 예측 못하고 있구나. 뭐 이럴 줄 알았어."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다. 내가 진짜 이렇게 계속 빙글빙글 돌려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어야 하나 싶을정도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고 들어야만 했다. 이 사태의 모든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녀 뿐이었으니까.

"제발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고,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이었다면 몸이 바뀐 그 날 자기집으로 이 꼴을 하고 쳐들어갔을거라고."

"아하하하!! 맞는 말이야. 나도 솔직히 너가 왜 안 찾아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거든."

솔직히 맞는 말이긴 했다. 다만 내가 너무나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그동안 참고, 찾아가지 않은 채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섣불리 찾아가지 않고 확실한 정황증거와 사건정보를 모은 뒤 확실하고 완벽하게 끝내는 것이 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뭐 그럼. 바로 얘기해 줄까?"

드디어 기다려왔던 본론인 듯 했다. 도대체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걱정하면서도 난 내 궁금증을 해소해 줄 그녀의 한 마디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나의 힘 때문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됨을 느꼈다. 내가 제시했던 여러가지의 수많은 비과학적인 가설 중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가설이 사실이라는 것을 내 귀를 통해서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 뭐라고? 정말로 마법이라도 썼단 말이야?"

내가 하는 말이었지만 정말로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젠장 커피숍 내 모든 사람들이 우리 쪽을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잖아.

아니 그것보다 뭐야, 당신은 무슨 소스단이 나오는 소설 주인공을 괴롭히는 신이라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그보다 신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나 합니까?

"마법이라...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정확히 어떻게 말해야 될지는 모르겠네. 뭐 아무튼 이 일이 내 의지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니까, 아무튼 그 말도 안되는 너의 능력 때문에 내가 이 꼴을 하고 있다는 거구나."

'꼬라지'라는 말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그는 내가봐도 카리스마 있는 눈초리로 나를 째려봤다. 젠장 내 몸으로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이 꼴이라니. 너도 볼 건 다 봤으면서 아직도 내 아름다움을 못 느꼈단 말야?"

"야-! 야! 잠깐, 그 얘길 하는게 아니라고! 아니.. 아름다운 거야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내가 뭔 얘기를 하는거지, 아참! 그리고 너도 볼건 다 봤잖아!!"

"그래도 혈기왕성한 남자애랑 같을까."

그러더니 그는 내 쪽으로 고개를 쭉 빼더니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솔직히 말해봐, 벌써 1달이나 지났는데 XXX라던가 XX같은 것도 안 해봤을 리가-"

"뭠멈머-멋!"

우와, 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엄청나게 얼굴이 붉어졌던 것 같다. 이 녀석 정말 여자 맞는가 싶을정도로 부끄러운 말을 쏟아내는 그녀 때문에, 강제로 펼쳐진 상상의 나래로 인하여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무슨 여자애가... 이런걸 그렇게 서슴없이 말하냐고오-!

"우와, 나도 내 얼굴이 이렇게 빨개질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뒤에 그녀가 말했던 건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정신 번쩍 차리고 내 몸을 되찾았어야 했는데, 평정심 공격 단 한방에 치명상을 맞아버린 난 그대로 K.O.되고 말았다. 간신히 그녀가 날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다준 덕분에 집에는 돌아올 수 있었으나, 내 머리속에 가득한 야한 생각들을 다 없애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다. 약 5시간 뒤 정신을 차린 나는 후회 가득인 상태로 머리를 박박 긁고 있었다.

'젠장, 이게 아닌데. 어떻게든 내 몸을 돌려달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겨우 그런 거에 얼굴 붉히고 내가 도대체 뭐 하는 거지?'

그렇게 계속 후회하면서 궁시렁대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밤 12시가 지난 야심한 시간에 온 한 통의 문자의 발신인은 그녀였다.

[발신자 : 한재희]

[어이, 괜찮아? 일단 데려다 주긴 했는데 아직까지 그 상태는 아니겠지? 남자가 그런거 가지고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래]

젠장,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달 사이에 여자애 바이러스라도 감염된 건가... 게다가 이녀석 언제 내 휴대폰 번호를 여기다 입력하고 간 거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력해 놓았네?

[답장]

[시끄러워. 그게 여자애가 할 소리냐? 다 됐고 내 몸이나 돌려줘. 그리고 너도 네 몸으로 당장 돌아가!]

나는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을 문자에 실어 보내기 시작했다. 보낸지 얼마나 지났을까, 칼같은 속도로 답장이 왔다.

[발신자 : 한재희]

[왜? 싫어. 아까 말했잖아, 내가 일부러 이 몸을 차지한 거라구. 난 아무 말 안하길래 되돌아가는걸 포기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이 녀석 정말 답이 안나온다. 그럼 난 어떻게하라고, 평생 이 몸에 갇힌 채로 여자로 살란 말이야? 안돼 그럴순 없어, 여자가 되어 살아보는게 남자들이 생각하는 망상 중 손에 꼽을 정도라곤 하지만 난 아니라고. 그리고 난 이 몸에 있었넌 서윤하 너가 좋았던 건데, 어쩌다가 내가 그 서윤하의 몸에 들어오게 된거람...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답장을 차마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눈물이 핸드폰 액정 화면에 떨어지는 것을 난 묵묵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우는지 나 자신도 잘 몰랐지만, 저녁에 겪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굉장한 패배감에 사로잡혔던 건 분명했다.

<1.서윤하> End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