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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4화 (4/188)

4화

어떻게 보면, 내 몸이 본능적으로 발견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우연에 행운이 겹쳐 찾아온 기회였으니 말이다.

내 몸에 들어간 그녀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의 원래 목소리 덕분이었다. 그날도 나는 찰거머리(?) 같은 그녀의 네 친구들과 함께 시내에 나와서 그녀들 기준으로 방학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방학이라서 나가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멋대로 진학 고등학교를 바꿨기 때문에 그녀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요청이라 쓰고 놀자고 불러서 갈굼하는 것이라 읽을 수 있겠지...

이 네 명의 여자애들은 모두 윤하가 지망했었던 고등학교에 가기로 했었지만, 내가 목적달성을 위해 급하게 진학 예정 고등학교를 바꿔버리는 통에 아쉬움이 엄청나게 컸나보다. 그래도 어쩌겠니, 너희들도 충분히 착하고 이쁘고 좋은 애들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나 내가 남자였을때 얘기란 말이지. 게다가 내 이상형인 윤하를 만난 이상 더이상 다른 여자애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구나! 나도 너희들과 더 어울리고 싶지만 지금 내가 가장 급한 건 내 몸을 찾는거니깐.

"하아- 이렇게 윤하를 마주보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도 한달 이후면 못하겠구나..."

그녀의 친구들 성격이 어떤지 아는 데는 불과 며칠도 안 걸렸으나, 여전히 가장 적응 안 되는 것은 지금 말하고 있는 '최가희'라는 아이였다. 도대체 윤하 얘는 이 아가씨랑 어떤 끈적한 사이였길래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달라붙는지, 게다가 꽤나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애라, 정말 지내면서도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분명했다. 이제 고등학생 되는 주제에 쓸데없이 왜이렇게 생긴것도 어른스럽냐고오-!

'그래.. 알았으니까 제발 조금만 떨어져줄래...? 응? 지금 한겨울인데도 너 때문에 더워 죽겠거든?!!'

아직 나 스스로도 여자 몸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몸을 건드리는 것 조차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자꾸 가희의 몸이 들러붙어 내 상체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부드러운 느낌을 전달했고, 덕분에 내 모든 땀구멍이란 땀구멍에서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진정하자 진정. 지금 내 몸에 붙어있는건 여자가 아니라 푸딩이다 푸딩...'

그렇게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돌처럼 굳어 있는데, 어디선가 내게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놓칠 뻔 한 음성을 가까스로 캐치한 건 내 본능이 나를 이끈 덕분이었다.

"자자, 그만 가자. 배 터질것 같아!"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그 목소리는, 잠자고 있던 내 감각기관을 신경 끝까지 곤두세울정도로 아찔하고 짜릿했다. 나의 성대에서 나와서 몸을 통해 귀로 전달되야 할 목소리가 이제는 내 몸이 되어버린 윤하의 고막을 통해 아득하게 전해져오자, 나는 내 몸을 되찾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엇 어디가 윤하야!"

"나 가스 안잠그고 왔어, 미안!! 먼저 들어가볼게, 내일보자?"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친구들에게 대충 이유를 둘러댄 뒤에, 나는 가게를 나선 빼앗긴 내 몸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서윤하! 설마 동네도 아니고 이런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내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만났어, 드디어 만나서 제대로 얘기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득차서,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로 나는 조심스레 추격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암살자 마냥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으로 녀석을 쫓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그리고 마을 버스로 갈아타고. 무려 40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녀석이 내리는 우리 동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오랜만에 마시는 집 주변 공기.. 불과 몇 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왜 이렇게 향수가 밀려오는걸까.

오면서 들킬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 몇 번 있었지만, 내 뛰어난 은신술 덕분에 아슬아슬한 상황도 가뿐히 넘어간 상태. 마침내 집이 가까워지자 녀석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따라가는 나 역시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점차 빨라지다 못해 녀석이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잡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나머지, 재빠르게 골목을 돌아나가는 녀석을 따라잡기위해 난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뭐야 눈치챘나..?! 이제 이 코너만 돌면 우리 집인-'

[쿵]

"악!"

꽤나 어두워진 골목을 빠른 속도로 돌던 나는 그만 순식간에 나타난 커다란 물체에 부딪치고 말았다. 부딪친 내 머리가 꽝 하고 울리지 않은 걸 보면 분명 건축구조물은 아니었다, 그럼 뭐였지? 고개를 들어 나와 부딪친 물체를 살펴보던 나는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누가 이렇게 따라오나 했더니만..."

그곳에는 '내가 아닌 나'가 길을 가로막고 서서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디로보나 분명 예전의 잘 나가던 내 모습 그대로였으나, 무엇인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처음 본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하지, 내가 아닌 지금 이 몸의 주인이 들어가 앉아있는데!

'어.. 어떻게 안거지? 나 분명 들키지 않았을텐데?'

그러나 그녀석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지 다리를 굽혀 넘어진 내 앞으로 시선을 낮추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도 내 얼굴로 굉장히 비웃는 듯한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면서.

"미행을 하려면 좀 더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가는곳마다 눈에 띄는데 그것도 미행이라고 한 거야 한재희씨?"

우와. 뭐야 이 여자 무서워! 여태까지 다 알면서 모른척 한거야?! 완전히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니..

"뭐.. 뭐야, 알고있었어? 그럼 아는척을 해야지! 사람 무안하게!!"

"잠깐, 우리 그나저나 처음 보는 사이 아니었던가요? 처음부터 말 놓을 정도로 친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요."

아니 잠깐 이봐요. 지금 말 놓고 자시고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란거 그쪽도 잘 알고 있지 않냐고요. 나 안그래도 놀란 상탠데 자꾸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면 나 진짜 화낸다?

"아니, 잠깐, 지금 말을 놓고-읍!"

내 몸을 차지한 그녀는 내가 화가 나서 버럭버럭 화를 내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는지 씨익 웃으면서 큰 손으로 다짜고짜 내 입을 막아버리고는, 나지막히 말했다.

"푸하하하. 진정 진정, 알았어 알았다구. 장난이야 장난~."

나는 내 얼굴의 반을 가려버린 그녀의.. 아니 내 몸의 커다란 손 위로 간신히 보이는 두 개의 큰 눈동자로 녀석을 노려보았다. 젠장, 그래봤자 원래 나랑 달리 윤하의 눈은 아무리 화를 내도 카리스마가 부족하단 말이지.

"일단, 어디 근처 카페라도 가지 그래? 집에서 얘기할 만한 일은 절대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거 아니야."

그러면서 그녀는 내 얼굴에 대고 있던 손을 치우더니 일어나서 주저앉아 있는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녀석이 내민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서 2초정도 녀석을 노려본 뒤 옷을 탁탁 털면서 하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좋아, 안내해. 너나 나나 할 얘기가 무진장 많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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