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그녀의 몸에 들어온 지 2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샤워할 때라던가 옷을 갈아입을 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에 흠칫 흠칫 놀라고는 있었지만, 그건 그나마 눈이 즐겁기라도 했..고. 하지만 175였던 키가 10cm 이상 줄어버리는 바람에 뭔가 높이적응이 굉장히 어려웠으며, 긴 머리가 이렇게도 관리하기 어렵고 성가신 것인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고, 엄청나게 약해진 힘 때문에 예전엔 간단히 들던 물건도 못 드는 것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뭐 적응하는 과정이니 그건 그렇다 치고 새로 알아낸 사실이 여러가지 있었다. 먼저 그녀의 집이 원래 몸으로 다니던 학교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것과, 원래 우리집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 동네였는데도 처음 윤하의 중학교에 떨어졌을 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못 알아챈 것 뿐이었다.
나는 당장에라도 원래 집에 달려가 내 몸을 차지하고 있을 그녀와 의논하고 싶었지만, 뜬금없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집에 쳐들어갈 핑곗거리가 없었으므로, 건수가 생겨날 때까지 내 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로 결심했다.
뭔가 스토커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들지만, 어쩌겠는가. 그녀가 내 몸을 가지고 무얼 할지 모르는데. 오히려 내가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구? 누굴 변태로 아나! 이래뵈도 내가 첫눈에 반한 여성인데 내가 그런 짓을 할까봐서?
흠. 그리고 그닥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윤하에게는 어머니가 안 계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돌아가신게 맞는 거겠지. 며칠 전 집안 구석구석 찾아본 결과 안방 구석에 놓여 있는 영정 사진과 그 앞에 놓여있는 향을 발견한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웬지 아저씨에게 여쭤보긴 굉장히 미안해서 그런가보다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외로운 아저씨께 내 몸으로 돌아갈 때까지 더 잘 해드려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알게된 것이 있다면,
"딸~ 오늘 저녁에 아빠랑 영화보러 안 갈래?"
"음? 뭔데요?"
"그 있잖아 '아빠다!' 라고. 아빠가 반신불수가 되는바람에 생체 안드로이드랑 연결해서 그 안드로이드로 가족과 지내게 되는 거, 엄청 재밌겠더라!"
사실, 서윤하라는 이 아이는 엄청나게 반에서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던지라, 그녀의 친구 패밀리 등쌀에 나는 이미 이 영화를 보고 온 뒤였다. 하지만, 사별하셨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아저씨 부탁을 거절하기가 힘들어져서 나는 마지못해 수락하곤 했다. 솔직히 최근에 드는 생각은, 아주머니가 안계시는 바람에 아저씨가 이렇게 팔불출이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내가 없으시니까... 기댈 곳이 딸 뿐이니까 당연한 건가...'
아니 그런데 이렇게 불쌍하다 생각을 하면서도, 늘 '이 아저씨 정말 중증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하긴 했다.
뭐 아저씨 얘기는 이쯤 하고, 그녀의 학교 관련 얘기도 좀 해볼까 한다.
2주일간 방학에 돌입하기 전까지 겪은 내 경험에 의하면, 서윤하, 그녀는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틀림없었다. 물론 나도 우리 학교에서 굉장한 인기인이었지만, 윤하의 인기는 그 이상이었다. 남학생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까지 서윤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고 봐야된다.
다행히 2주간은 별일 없었지만, 방학 전까지 나는 그녀의 단짝 친구들이라고 생각되는 4명의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 네명의 아이들과는 이제 원래 친구였던 것처럼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래도 어찌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그렇게들 해 대는지 원. 내가 겨우겨우 알아들은 거라곤 얼마전에 동생에게 사줬던(이라고 쓰고 생일선물로 뜯겼다고 말한다) 외제 화장품 정도였다. 16년동안 남자로 살아왔던 내게, 여자들의 수다 주제는 완전 외계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주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그녀가 학업에 뜻을 버린것은 절대 아니었다.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에 모범학생이었던 것인지, 난 방학식 날 통지표를 받아들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우와.... 8과목 1등급이라니, 장난 아니잖아 얘도? 흔히 말하는 엄친딸이구만'
애초에 공부를 열심히 해왔던, 흔히 말하는 엄친아나 다름없는 내가 이렇게 놀라는 것 자체도 조금 우습지만,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약간 더 상승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더욱더 매력적인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내 마음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아마도 한재희였을때의 남자 친구 녀석들이 그리워져서 그런 것 같았다. 확실히 여자끼리 노는 것과 남자끼리 노는 것은 근본적으로 뭔가 다르긴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예전 친구들이 그리웠다.
'지훈아, 민혁아, 그리고 불알친구 우주야... 다들 너무 보고싶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그립긴 했지만 윤하의 모습으로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친구녀석들의 성격을 아는 나는 더더욱 윤하의 모습으로 그놈들을 만나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래. 어서 원래 몸으로 돌아가서, 친구들도 다시 만나고! 나의 엄친아 라이프를 즐겨주고 말겠어. 그리고 윤하를 나의 애인으로 삼는 거지!!'
라는 나의 다짐은 내가 자기 전 꼭 하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사실,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아직 내 몸에 있는 그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고, 혹여 그녀와 만나 얘기한다 치더라도, 이 일이 그녀의 의지대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나 대책 따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녀가 이런 일을 벌였을 확률도 굉장히 희박하고,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면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알아보다가 이 상태로 늙어 죽을 것이 불보듯 뻔해보였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그녀와 만나기만 하면 무슨 방법이라도 생겨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나는 이미 선생님께 애걸복걸하여 그녀가 미리 지망했던 여고를 포기하고, 남자 한재희가 가려고 결심한 고등학교에 지원해둔 상태였다. 내가 그렇게 비밀로 해달라고 누차 말했건만, 담임선생님이 실수로 그 사실을 누설하는 바람에 같은 여고에 지원했던 윤하의 단짝친구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날 갈구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기다려라 내 몸..!'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하여 방학동안 원래대로 돌아갈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던 나는, 고등학교 입학 후에야 볼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몸에 들어가 있는 서윤하를, 1월 중순 경에 얼떨결에 만나고 말았다.
사실 스토킹을 하려고 했으나 행방이 묘연하여 난감해 있던 찰나에 다가온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지, 같은 동네 사는 주민이라 진즉에 봤어야 하는건데 뜬금없이 다른 동네에서 봤으니 불운이 겹쳐서 그랬던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