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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1화 (1/188)

1화

「 그녀의 운명은 뭔가 잘못됐다. 」

<1부. Prologue>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사람이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게, 이 첫눈에 반한다는 말의 의미이니까.

나, 한재희는 올해 중학교 3학년의 혈기 왕성한 남자아이로써 졸업여행으로 온 이곳 제주도에 와서야 간신히 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집, 그리고 수려한 외모에 강력한 엄친아 기질까지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3년간 여자친구가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내가 너무나도 이상형에 대한 고집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3년이라는 중학생 기간동안 내게 거절당한 여학생 수가 기록으로 남을 정도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긴 말 안해도 대충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2병에 왕자병에 도끼병에 아주 몹쓸 병이란 병은 다 걸려있는 허세에 찌든 녀석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난 나름 교우관계도 돈독하고 학업도 열심히 이수하고 있으며 회장도 3년 내내 역임할 정도로 학교 내에서의 신뢰도 굉장하다. 여튼 굉장하다고, 그냥 믿어주길 바란다.

아무튼 그런 내가 첫눈에 반할 정도의 상대였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것이 나를 이렇게 설레게 만들었던 것일까? 분명 여자를 깨달은 중학교 입학 때부터 3년동안 여학생들 중에서도 저 정도의 미모를 가진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이긴 했으나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 단순한 미모 때문만은 아니야, 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매력은 아름다움 뿐만은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불과 거리도 30미터 남짓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날 아직 보지 못한 듯 했다. 그녀도 분명 날 봤다면 서로 무언가 찌릿함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건 운명이겠지, 같은 날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이 다른 버스에서 내려 만나게 되었다니. 신이 내게 기회를 준 순간이라 이 말씀이야.

'말을 걸어보고 싶다'

일순간 떠오른 이 충동적인 생각에, 난 지체 없이 그녀가 있는 여학생들의 무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어디 가냐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확실한 건 자유행동 시간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녀를 놓칠 순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수학여행의 규칙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았다.

한 발자국 걸어갈 때마다,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가까워질 때마다 내 가슴의 두근거림은 점차 빨라졌다. '넌 뭐야, 도대체 뭔데 날 이렇게 가슴뛰게 하는거야. 당장 말 걸어서 너가 어떤 애인지 확인하고 말겠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난 거침없이 걷기 시작햇다.

그렇게 성큼성큼 그녀 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둔 상태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잠깐 인상을 찌푸리더니 오묘한 표정을 지었고, 이윽고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나도 걸음을 멈춘 채 그녀의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를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난 그 순간 그녀의 입이 조그맣게 움직이며 무엇인가 말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뭐라고..?'

하지만 연이어 잠깐동안 기억이 끊기는 듯한 괴상한 느낌을 받았고, 분명 서 있었던 나는 웬지 잠을 자다가 번쩍 눈을 뜨게 되었다.

정신을 차린 뒤에도 계속해서 멍한 상태였던 나는 옆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 덕분에 간신히 내가 버스에 앉아 있고, 앞에 있는 사람이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윤하, 윤하 아직 안왔니?"

정신이 없었던 나는 저게 날 부르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아니 내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대답 안한게 맞다고 본다.

"윤하야, 너 불러!"

"응?"

옆자리의 여자아이가 날 툭툭 치며 말했다. 잠깐 왜 여자아이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거야. 나 분명 올때 우주가 내 옆에 있엇는데...

"윤하 아직 아픈가봐요. 여기 있어요 선생님."

난 얼떨결에 손을 들어 앞에 계신 선생님께 보였으나, 뭔가 이상했다. 앞에서 출석체크를 하고 있는 저 분은 우리 담임선생님이 아닌데다가, 내 옆에 앉은 여자아이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내가 알던 우리 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거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내 옆의 그 여학생이 입고 있는 교복은 굉장히 낯익은 것이었다. 자주 보던 것은 아니지만 극히 최근에 본 것 같은 느낌의 교복...

"윤하야 너 괜찮아? 아까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줄 알아?"

게속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옆자리의 여학생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내이름은 서윤하가 아니라니까, 왜 자꾸 윤하라고 부르는거람. 난 대충 지금 이 상황을 더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적당히 둘러댔다.

"응.. 괜찮아. 나 조금만 더 쉬어도 될까? 아직 좀 어지러워서..."

"그래 그럼. 난 뒤에 가서 애들이랑 놀고 있을게."

그런데 처음으로 내뱉은 내 음성을 듣고, 나는 뭔가 강렬하게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내 목소리. 왜이래?'

분명 변성기를 지나 중저음이어야 할 목소리가 두 옥타브는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두 옥타브는 올라간.. 마치 여자 같은 낭랑한 목소리가 내 몸 안에서 들리고 있었다.

약 3초 후 팟 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잠깐, 저 교복.. 설마?'

생각났다. 이 교복. 바로 오늘 본 디자인이잖아. 오늘 만났던 내 절대적 이상형의 그녀가 입고 있던 교복. 바로 그 학교의 교복이잖아!

'어라...? 그럼 이 버스는 그녀의 학교 학생들이 타야할 버스라는 소리인데, 내가 왜 여기 타고 있지? 나 설마 기절했다가 버스 잘못 탄거?!'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내려다 본 나는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치마, 내가 왜 여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거지? 왜? 나 왜?!

'아냐 버스 잘못 탄게... 내 목소리가 이상해.. 뭐야 대체.. 뭐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내 앞에 걸려있는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앞에 걸려 있는 가방은 내 것이 아닌 모르는 사람의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에 그런 것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대충 거울 비슷한 것을 잡아들어 눈 앞에 가져온 뒤, 나는 따귀를 맞은 것 처럼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을 비비고 볼을 꼬집고 한참을 눈을 감았다 떠 봐도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모습은, 내가 아니었다.

'이... 이게 뭐야? 왜 내가...'

거울에 반사되어 보이는 나의 모습은 아무리봐도, 남자 한재희가 아니었다. 남자 한재희의 모습 대신에 거울에 비친 상은... 내가 첫눈에 반했던 아까 눈이 마주쳤던 그 소녀의 모습이었다.

'왜 내가 그녀가 되어있어어어어어어?!!!!'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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