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라스트 미션(3)
가야 해 가야 해 이젠 가야 해~
순이 찾아 가야 해~
옆에 정진도 함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정진은 이찬우 다음이라, 무대 준비를 하러 나가 있다.
난 김종근과 함께 계속 ‘17세 순이’를 따라 불렀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를까.
그리고 또 바운스가 어쩜 저리 자연스러울까.
격렬한 춤사위를 벌이는 것도 아닌데, 이찬우의 몸짓에는 사람을 흥겹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대기실에 있던 다른 탑 세븐도 슬금슬금 내가 있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가야 해 가야 해 이젠 가야 해~
―순이 찾아 가야 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떼창이 시작됐다. 함께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누가~ 이런 여자를~ 본 적 있나요
모니터로 보이는 관객들의 모습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떼창은 대기실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다들 난리가 났다.
나이는 십칠 세~~ 이름은! 순이~~
허이!
♪♬♩ ♪♬ ♪♬♪♬♩
간주 중에 이찬우가 허리를 흔드는 걸 보며, 김종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 무대 정말 잘하네. 대박 났구만.”
김종근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잘하는 친구가, 선곡이 끝내줬어.”
“그러니까, 말이에요.”
“와…….”
김종근은 계속 감탄사만 연발했다. 나도 전생에 TV로 이 무대를 처음 봤을 때 이런 반응이었겠지.
지금 직관하지 못하고, 모니터로 봐야 하는 게 너무 아쉽다.
가야 해 가야 해 이젠 가야 해~
순이 찾아 가야 해~
김종근이 벌떡 일어났다.
평소답지 않게 완전 상기되어 있다. 2라운드까지 모두 무대를 마쳤으니, 즐기고 있는 것이다. 마음 편안하게.
“간다~ 또 간다!”
“하하.”
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따라 불렀다.
그렇게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출연자들과 판정단까지 뒤집어 놓은 무대는 어느덧 끝이 났고.
김승주는 웃으며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와~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찬우 씨.]
[하핫, 감사합니다.]
김승주는 판정단과 관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반응 보이시나요? 이찬우 씨 실력이야 두말할 필요 없지만, 선곡이 정말 좋았습니다. 긴장감으로 팽팽했던 2라운드의 분위기를 확 풀어 주셨어요.]
이찬우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 함께 즐기는 결승전이 되기를 바랐거든요.]
―고마워요! 이찬우!
―마음 편히 즐겼어요!
―진짜 최고!
김승주는 이찬우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뒤, 전광판을 가리켰다.
[마스터 점수 확인하겠습니다! 보여 주세요!]
[978점]
[978점! 978점이 나왔습니다! 1, 2라운드 통틀어서 현재까지 마스터 점수 최고점을 받습니다!]
―우와아아~!
―그럴 줄 알았어! 잘했다!
―이찬우! 이찬우!
[1라운드 마스터 점수 최고점은 김종근의 975점이었습니다! 이찬우 씨 대단합니다!]
마스터들도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잘했어. 진짜 잘했어.
―이번 건 완전 인정.
―레전드 찍었다. 진짜.
[이찬우 군!]
김승주의 부름에 이찬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네.]
[1라운드 최종 순위 3위였죠. 2라운드에서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으셨으면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할 만한데요?]
이찬우는 대국민 응원 투표 점수도 높다.
꿀꺽.
그의 너무 높은 점수를 보니 긴장이 되었다.
‘내가 과연 뒤집을 수 있을까?’
[좋은 무대로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를 짓는군요. 이찬우 씨,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찬우! 이찬우!
―가지 마요~! 가지 마~!
―이찬우우!
이찬우가 빠져나갔는데도, 그를 외치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카메라 앵글이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인 정진의 얼굴을 비췄다.
잔뜩 얼은 표정으로 숨만 몰아쉬고 있었는데.
레전드 무대 바로 다음에 한다는 건…… 완전 똥 밟은 것이다.
‘정진 형 클났네.’
우선 내 무대는 접어 두고, 정진의 무대에 집중했다.
나의 친형과 다름없는 정진의 헬로우 트롯맨 마지막 무대를.
* * *
“다음 차례입니다~!”
[5번 정진]
―끼야악~
―정진아~ 정진아~
―어서 온나~
―정진! 정진!
정진이 무대를 천천히 걸어 나오는데, 등장부터 난리가 났다.
특히 여성 팬들이…….
“와…… 정진 군. 2라운드를 제대로 하실 생각인가 본데요?”
김승주는 표백제로 세탁한 듯한 새하얀 정장을 보며 말했다.
‘화이트’는 정진의 상징색이다.
오늘은 화이트 중의 화이트 ‘스노우 화이트’로, 아주 새하얀 의상을 입었다.
“하하. 네. 마지막 무대인데, 전투복 입어야죠.”
“좋습니다. 역시 정진은 하얀색입니다.”
김승주는 웃으며 말했다.
“좀 전 무대 때문에 긴장 좀 되시겠어요. 1라운드에서 비슷한 점수를 기록한 이찬우 씨가 너무 잘하셔서…….”
―에이~ 하지 마요!
―왜 부담을 주고 그래요~
―정진! 괜찮아! 뭘 하든 다 좋아!
―가자~ 가자~
김승주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이쿠. 농담 몇 마디 더 했다가는 돌 맞겠네요. 하하. 하여간 정진 씨 팬들은 정말 유별납니다.”
숫자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진 팬의 충성도만큼은 덕군 못지않았다. 열정적이다 못해 광적인 걸로 유명했다.
관중석 한쪽을 하얗게 수놓고 있는 것만 봐도.
“자! 그럼 더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정진 씨의 인생곡! 큰 박수로 청해 듣겠습니다!”
무대가 어두워지며, 화면에 정진의 인생곡에 대한 사연이 흘러나왔다.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많이 겪었는데요. 넘어지고, 잘될 줄 알았는데 또 넘어지고. 겨우 일어섰더니 또 넘어지고…….]
화면 속에서 정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활짝 웃었다.
[그래도 견디고 버티고 이겨 내야 남자 아니겠습니까? 터지고 울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우리를 위해 부릅니다.]
정진의 나레이션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의 역사를 너무 잘 아는 신바람은 관객석에서 입술을 꾹 다물고 지켜봤다.
[남자라고.]
♪♬♩ ♪♬ ♪♬♪♬♩
팟!
조명이 환해지며, 새하얀 남자가 날갯짓을 했다.
일부 눈시울을 붉히던 팬들은 새하얀 정진의 모습에 입술이 올라갔다.
바밤~ 바바밤~
신나는 리듬 속에, 정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첫 소절을 시작했다.
소망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있다고 하는 말은 들었는데~
어릴 적 무대만 서면 하던 문워크.
오랜만에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미끄러졌다.
어렵다 어렵다 하고~ 홍이야 홍이야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견디고 버티고~
정진은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후렴을 불렀다.
위하여! 우리는 여기 있어 위하여!
오늘도 살아 있어 위하여!
한번 크게 웃는 거야~~~~
공연장을 꽉 채우는 목소리.
화려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에 관객들은 녹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떠나는 우리~
세상을 향해 다시 또 한 번!
끝까지! 살아 내야! 남자라고!
신나는 곡인데.
춤추면서 부르고 있는데…….
노래를 부르는 내내 정진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다 같이!”
―위하여!
우리는 여기 있어!
―위하여!
관중들은 정진과 함께 불렀다.
정진의 손짓에 따라 ‘위하여’를 외쳤다.
오늘도 살아 있어~
―위하여!
한번 크게 웃는 거야~~~~
허리를 숙이며 있는 힘껏 소리를 내었고.
카메라 앵글에 꿈틀거리는 정진의 목울대가 잡혔다.
바람이 불면~ 떠나는 우리~
세상을 향해 다시 또 한번!
두구두구두구 탁!
끝까지! 살아 내야! 남자라고!
땀범벅이 된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마지막 소절을 한 번 더 불렀다.
끝까지! 살아 내야!
남자라고~~~~~!
바~~ 바밤!
노래가 끝났다.
―우와아아아~~~~~
―정진! 정진! 정진!
모두가 환호성을 외치는 가운데.
출연자 대기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덕군아…….”
김종근은 가만히 등을 토닥여 주었다.
덕군은 마지막 후렴부부터 눈물을 보이더니, 결국 고개를 숙였다.
―정진! 정진!
정진이 어떻게 살았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의 노래가 고스란히 가슴에 다가왔다.
데스 매치에서 죽다 살아나서, 이렇게 결승전 마지막 무대까지 멋지게 끝낸 정진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이제 진정해~ 곧 네 차례잖아.”
김종근은 휴지를 건네며 말했고, 덕군은 숨을 고르며 눈시울을 닦았다.
* * *
“와~ 정말 멋진 무대를 보인 정진 씨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 짝. 짝.
정진이 들어간 후, 김승주는 힘들어 보였다.
“와, 결승전답네요! 정말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다. 연달아 레전드 무대가 나오니…… 하하.”
[6번 허경구]
“여섯 번째 참가자 모시겠습니다! 허경구 씨!”
―아빠아~
―우리 아빠 최고!
―아빠 화이팅!
그의 다섯 자녀가 무대 가장 앞줄에 앉아, 재잘대며 아빠를 응원했다.
“아이고~ 귀여워라. 가족이 총출동했군요?”
허경구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세상 기쁜 표정으로 웃었다.
“네~ 하하. 너무 기쁩니다. 제가 서는 무대에 아이들 데려온 건 오늘이 처음이라…….”
“아, 그래요?”
“네, 나이트클럽에 데려올 수는 없잖아요? 하하.”
“…….”
김승주는 약간 찡해져서, 숨을 골랐다.
정정당당하게 돈 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직업.
하지만, 지금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탑 세븐으로서, 당당히 결승 무대에 섰다.
“아이 엄마는 안 보이네요?”
“네,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아, 그럼 혼자서…….”
“혼자 아닙니다.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내도 항상 제 곁에서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하하.”
―어머…… 어떡해.
―그런 사연이 있었어?
―근데 어쩌면 저렇게 구김살이 없을까.
훌쩍이는 관중들도 있었지만, 허경구는 멀쩡했다.
김승주는 살짝 눈치를 보고는 말했다.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네, 좋습니다.”
“이번에 들려주실 곡이…….”
“사모곡입니다.”
―어이쿠, 휴지 준비해야겠네.
―어떡해, 벌써 눈물 나.
♪♬♩ ♪♬ ♪
파랑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
너무나 그리워서 이 한밤을 지샙니다!
허경구는 주로 나이트 느낌의 빠른 곡만 불러 왔었다.
그의 걸쭉한 목소리는 이런 한에 사무치는 곡도 잘 어울렸다.
김승주는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첫째 아이만 눈물을 훔쳤고, 다른 아이들은 멍하니 허경구의 노래를 감상했다.
너무 어릴 적에 헤어져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없는 것이다.
“에이…… 진짜.”
김승주는 그 모습이 더 슬퍼서, 결국 손수건을 꺼내었다.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무대 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덕군은 죽을 맛이었다.
‘와, 이거 경연 순서가…….’
눈물 지뢰밭에 갇힌 기분이었다.
정진 무대 때문에도 한참을 울었는데, 허경구 무대는 점입가경이었다.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후우~ 후우~
덕군은 애써 진정하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허경구의 마지막 간절한 외침에서 결국 또 터져 버렷다.
어머니~~~~~~~~
* * *
훌쩍. 훌쩍.
허경구가 무대를 내려간 뒤에도 공연장은 눈물바다였고.
김승주도 한참을 훌쩍이다가 겨우 마이크를 이어 갔다.
“와…… 인생곡 미션…….”
관중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끄덕거림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클래식 악기를 든 사람들이 무대 위로 차곡차곡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결승전 마지막 무대네요. 이번 무대는 세팅하는 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김승주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잠시 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