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36화 (236/250)

236화. 그처럼 산다면

―오~~~

―빅 매치다~

―종근 형님 은근 깡 있다니깐?

14명의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지만…… 난 당혹스러웠다.

나 이외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오 피디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김종근 씨, 선택해 주세요.”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덕군과 하고 싶습니다.”

“…….”

그는 나와 김종근이 붙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연출과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어떤 출연자가 참가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준결승 이후에 결승전이 남아 있다. 우승 후보로 불리는 출연자가 붙었다가 만약 한 명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프로그램의 손실이 크다.

“다른 출연자들도 많은데, 굳이 덕군을……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오 피디는 다시 한번 권유했고.

―에이~ 뭡니까! 이미 지목했는데.

―공정한 서바이벌 아니었어요?

―왜 회유를 하고 그래요~

다른 참가들은 이런 오 피디의 태도에 반감을 가졌다.

강자끼리 붙어서 한 명 나가게 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좋은 거니까.

오 피디는 입술을 깨물었다.

‘듀엣 대결 하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전까지 합친 최종 점수로 탈락자 결정하잖아. 두 사람 다 실력이 좋으니, 괜찮겠지.’

“흠! 회유하는 게 아니고요. 다시 한번 확실히 확인하는 겁니다. 김종근 씨?”

“…….”

김종근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내가 만만하게 느껴지진 않을 텐데.

데스 매치 때는 정진을 선택하더니, 이번엔 왜 나를? 혹시 무슨 이유가 있나?

“변함없습니다. 덕군과 하고 싶습니다.”

“하아…… 네, 그럼 김종근 씨의 듀엣 대결은 덕군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우오오~!

―벌써부터 기대되네!

―둘 다 화이팅!

어쩔 수 없다. 난 김종근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형님, 잘 부탁드려요.”

“소원 성취했네. 너랑 같이하고 싶었는데.”

김종근은 날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를 있는 그대로 못 받아들이겠다. 그의 속이 가늠이 안 되어 뭔가 좀 꺼림칙했다.

“자, 다음 분 나와서 지목해 주세요.”

상대 지목은 순차적으로 이뤄졌고, 내가 우려했던 덕용이와 정진의 조합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두 사람 남았네요.”

‘김덕용과 신건’.

이 두 사람은 끝까지 불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덕용 군과 신건 씨가 듀엣을 이루게 됩니다.”

준결승 미션의 듀엣 대결은 각자 한 곡씩 불러서 승부를 벌이는 데스 매치와는 다르다.

하나의 곡을 듀엣으로 불러야 하는데, 덕용이와 신건에게는 묻히기 쉽다고 판단되어 마지막까지 불리지 않은 것이다.

덕용이는 10세 어린이라는 자체가 존재감이 엄청났고, 신건에게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있다.

덕분에 정말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조합이 탄생했다.

* * *

연습실에 김종근과 마주 보고 앉았다.

먼발치에서만 보다가 가까이 있으니, 좀 어색하다.

그를 힐끔 봤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소만 짓고 있다.

“흠! 형님.”

결국 정적을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 덕군아.”

“우선 선곡부터 할까요?”

“그러자.”

‘연철, 성대관, 이민자’.

이번 미션의 레전드다.

이 세 분의 곡 중에서 선택하여 무대 준비를 해야 한다.

제작진에서 나눠 준 세 분의 선곡표를 쭉 읽어 가며 말했다.

“형님 혹시 하고 싶은 곡 있으세요?”

“글쎄~ 너도 알다시피 내가 빠른 곡은 좀 약해.”

“…….”

“트롯콘서트 때 시도해 봤는데, 영 맛이 안 살더라.”

“그래요? 전 신나는 곡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일부러 한번 찔러봤다. 나도 사실 느린 곡이 하고 싶다.

듀엣 무대이기에, 김종근과도 어울리는 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겨서 점수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중들에게 좋은 무대를 보여 주는 게 우선이다.

“그럼 신나는 곡 해 봐~ 대신 네가 나 연습 잘 시켜 줘야 한다?”

“…….”

생각보다 너무 쿨한데?

난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연습할 시간이 이번엔 많지 않잖아요. 서로 잘하는 거 하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넌 다 잘하잖아.”

음…… 일단 김종근은 까다롭고 어려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난 선곡표를 쭉 넘기다가, 이민자 선생님이 대표곡이 눈에 꽂혔다.

‘백일홍 아가씨’.

“형님, 이 노래 어때요? 이왕 할 거면 대중들이 가장 잘 아는 대표곡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너무 잘 알려진 곡을 하면, 기대감 때문에 평가 기준이 올라가지 않을까? 대표곡을 보면 이민자 선생님이 바로 떠오를 거 아니야.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을 하는 게 유리할 것 같은데.”

꽤 설득력 있는 말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대중의 기대치를 넘지 못할까 봐, 덜 자신 있는 곡을 한다?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더 잘해서 기대치를 뛰어넘으면 되죠.”

“오…….”

김종근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패기가 있네. 자신감도 좋고.”

“…….”

“너 혹시 이 곡을 쉽게 보는 건 아니지? 단조로운 엘레지 장르가 표현하기가 은근 까다롭거든?”

“전 그 어떤 곡도 쉽게 보지 않습니다.”

땅땅땅.

김종근은 벽을 두들기고는 소리쳤다.

“오케이! 선곡 완료!”

선곡 미팅한 지 10분도 안 되어, 우리는 곡을 정했다.

김종근은 날 향해 활짝 웃었고, 이번엔 나 또한 그를 향해 웃었다.

* * *

베일 수 없는 수많은 날을

내 가슴 상처 내는 아픔에 겨워

악보에 힘줘야 할 부분을 체크해 가며 가볍게 불러 보았다.

김종근은 잠깐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한참을 그렇게 혼자 악보에 강약 조절, 파트 배분에 고민하고 있는데.

철컥.

김종근이 웃으며 뭔가를 들고 들어온다. 쟁반 위에 하얀색 보자기가 얹어져 있었는데.

“뭐에요?”

“어~ 형이 집에서 싸 왔거든? 여기 전자레인지 있길래 데워 왔다. 죽이야.”

“죽이요?”

“그래~ 성대에 좋은 거니까, 먹어. 내가 평소에 꾸준히 해 먹는 거야.”

난 의아해서 그를 바라봤다.

갑자기 연습하다 말고, 웬 죽이야?

“그 눈빛 뭐야? 혹시 형이 안 좋은 거 먹일까 봐? 경쟁자 못하게 하려고?”

“아, 아니요. 그냥 좀 황당해서 그래요.”

김종근은 죽을 한 숟가락 떠서 내게 건네며 말했다.

“자자, 어서 먹어~”

“아니, 근데 왜…….”

“그냥~ 형이 잘해 주고 싶어서 그래. 조카 같고 그래서.”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헬로우 트롯맨의 다섯 번째 미션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팀 미션, 개인 미션 등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했지만, 이런 참가자는 없었다.

근데, 이게 시작이었다.

몸에 좋은 음식, 성대에 좋은 약초 달인 물, 한약 냄새 가득한 환. 김종근은 계속 뭔가를 해 왔다.

나와 경쟁을 하는 건지, 먹여 살리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 * *

듀엣 미션 준비는 5일 만에 끝내고, 우리는 개인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난 개인전 선곡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가장 무난해 보이고, 특징이 없을 만한 곡.

난 쇼미더캐시 우승자 빅보이의 조언을 받아들기로 했고, 그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어느 무대든 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니, 내 성격상 적당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수의 역량을 담아낼 수 있는 게 선곡인데, 내 성격은 어쩔 수 없으니 담아낼 그릇 자체를 작은 걸 택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고음도 없고, 절절한 감성도 없는, 남녀노소 가볍게 부를 수 있는 트롯 곡.

많은 고민 끝에 선곡을 끝내고, 무한 반복 단계에 돌입하여 연습 중이었는데.

똑똑.

“덕군아~”

김종근이었다.

“방해한 거니?”

“아니에요. 형님. 들어오세요.”

일주일이 지난 지금 김종근은 내게 삼촌이 되어 있었다. 가까이 지내고 보니, 너무 괜찮은 사람이다.

“에구~ 어깨가 너무 굳었잖아. 넌 너무 몸을 안 사리고 열심히 하더라. 어릴 때부터 관리 잘해야 해. 벌써 거북목 살짝 왔네.”

그는 내 어깨와 목을 주물러 주었고, 난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헬로우 트롯맨의 엄마 같다. 아빠 말고 엄마.

“배고프니?”

“뭐 먹을 거 있어요?”

“그럼~ 있지~ 기다려 봐.”

김종근은 예상했다는 듯 바로 보자기를 펼쳤다. 오늘은 백숙을 해 왔다.

“어이쿠. 이거 잔치네요.”

“하하. 어서 먹자.”

우리는 연습실 바닥에 앉아서 발골 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과 집 음식은 다르다. 난 정신 놓고 먹다가…….

“형님.”

“응?”

“저, 형님 약간 오해했었어요.”

“뭘?”

“저랑 정진 형 싫어하는 줄 알고. 아니면…… 샘이랄까? 뭐 그런 거 있으신 줄 알았어요.”

“하하.”

이 말에 김종근은 큰 소리로 웃었다.

“싫어하긴~ 덕군과 정진이 헬로우 트롯맨 내 최애 캐릭터인데.”

“근데……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다들 저희를 피하잖아요. 왜 경쟁 상대로 우릴 지목했던 거예요? 굳이 왜?”

“…….”

“형님 덕분에 데스 매치에서 정진 형 집에 갈 뻔했잖아요.”

이 말에 김종근은 씁쓸히 웃었다.

“덕군아, 이 경연 말이다.”

“…….”

“지금은 이게 다인 것 같지만, 어쨌든 인생의 한 점일 뿐이야.”

김종근 특유의 편안한 미소로 말했다.

“전전긍긍하고 싶진 않아. 그리고 인생이란 건 내가 애쓴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더라고.”

“…….”

“이미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거지.”

운명론자인가?

김종근의 말이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안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난 맞는다고 생각한단다. 그게 이미 정해진 길로 가는 이정표라고 생각해. 난 그냥 정진과 덕군이라는 걸출한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했을 뿐이야.”

내가 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김종근은 웃으며 말했다.

“결과를 봐 봐. 내가 데스 매치에서 정진 이겨서 어떻게 됐어? 정진 완전 떡상했잖아. 하하. 나의 작은 결정 때문에 붙을 사람이 떨어지고 그러는 게 아니라니깐?”

약간 짜 맞추는 말 같긴 한데…… 뭐 그때그때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산다는 얘기였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거니까.

내가 뭐라 할 부분은 아니다.

“근데요, 형님.”

“응?”

“그런 형님 결정 때문에 형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요?”

“…….”

“예를 들어, 형님이 떨어진다든지.”

김종근은 잠시 생각하고는 씩 웃었다.

“그 또한 정해진 거겠지.”

“…….”

“많이 아쉽긴 하겠지만, 괜찮아~ 더한 일도 겪고 살았는데.”

미소를 짓는 김종근을 보며 확실한 그의 장점을 알았다. 그처럼 살면, 적어도 스트레스는 안 받고 살 것 같다.

* * *

14일은 빠르게 지났다.

이 기간도 짧은 건 아니지만, 이전에 경연 준비 기간이 길어서였을까.

참가자들은 정신없는 2주를 보냈다.

드디어 경연 날.

전날 방영된 ‘본선 3차 트롯콘서트’가 시청률 35퍼센트를 넘겼고.

이제 헬로우 트롯맨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신드롬’이 되었다. 어딜 가도 헬로우 트롯맨 얘기가 들릴 정도였으니.

김승주가 무대 중앙에 서서 외쳤다.

“100억 트롯맨을 찾아라! 드디어 준결승전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방청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승주 인사드립니다~!”

―우와아~

―덕군! 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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