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트롯콘서트(2)
―야야, 싸겠다. 어서 화장실 다녀와.
―아직 안 끝났잖아.
―방금 ‘너는 내 남자’ 끝났잖아~ 다음 곡 나올 때까지 시간 있으니까 빨리 갔다 와.
화장실 가려다 참았던 출연자는 걸음을 옮기려다가…….
한발 늦었다. 머뭇거린 사이 모니터에 덕드래곤이 나타났고, 다시 시선을 뺏겨 버렸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오~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덕드래곤은 반짝이 옷 위에 전통 도포를 걸치고, 한 손에 부채를 들었다.
눈을 감고 한 음 한 음 소중히 부르는데…… 기가 막혔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한 오백 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파란 파도가 일렁이는 뒷배경.
체구는 작지만, 덕드래곤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었다.
오늘 공연을 준비하면서, 덕드래곤은 덕군에게 특훈을 받았다.
한 오백 년은 강원도 지방의 민요다. 그 민요를 조영필이 1970년대에 가요로 만들었다.
가요로서의 한 오백 년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덕군은 민요 특유의 감성을 담아내면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재원예술학교의 민요 전공자이자, 예술단장 출신인 덕군.
민요는 그의 전문 분야이기에, 덕드래곤은 곡에 맞는 최고의 트레이너와 무대 준비를 한 것이다.
청춘에 짓밟힌 애끓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나
몸짓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손끝을 허공에 펼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곡을 하늘로 날리는 것 같았다.
편안한 미소로 부르는 전통 가요.
서바이벌에서 경쟁 중인 출연자들을 ‘한 오백 년’을 통해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한 오백 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계속 덕드래곤 혼자 무대를 채워 가자, 방청객들은 수군거렸다.
―덕용이가 솔로로 하나 보다.
―덕군이 나올 줄 알았는데.
―참 대단한 형제야, 진짜.
덕드래곤 혼자서도 무대를 충분히 꽉 채웠다.
지금 이 무대로 덕드래곤의 이름은 완전히 전국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노래를 마친 뒤, 덕드래곤은 아이로 돌아왔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고.
일부 눈시울이 붉어진 방청객은 활짝 웃으며 큰 박수를 보내었다.
웃게 했다가 울게 했다가.
기승전결이 있는 완벽한 무대 전개에 방청객들은 행복했다.
짠 자가 자가자가 짜가자가 자~
짠 자가 자가자가 짜가자가 자~
덕드래곤이 무대 뒤로 사라진 뒤.
뽕필 가득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빠바밤~ 짜라자자 짠짠짠!
짜라라자 짜~
백색 반짝이와 핑크 반짝이.
정진과 덕군이 활짝 웃으며 걸어 나왔다.
―우와아~!
―대박!
두 스타의 동시 등장에 방청객은 난리가 났고.
판정단과 방청객. 노래 시작 전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립했다.
두 남자는 마이크를 양손으로 들고,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안녕하세요~ 우리 두 사람~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출연자 대기실 어느 누군가가 소리쳤다.
―방울형제다!
* * *
꼭 잡아! 내 손을 꼭 잡아~
기회는 한 번뿐이야~
정진의 스타트.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첫 소절을 뱉었고.
―꺄아악~~~!!
방청객들은 그의 올라간 한쪽 눈썹에 어쩔 줄 몰랐다.
찡긋 올라간 그의 한쪽 눈썹이 여성 관객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보기엔 어눌하고
계산은 느리지만
당신만큼은
행복하게 할 수 있어
손가락 하트 날리는 하얀 제비.
날개 대신 목소리로 공연장 구석구석을 날며 방청객들에게 하트를 뿌렸다.
여성 관객들은 그냥 미치는 거였다.
짠자가 잔잔 짠자가 잔잔
분위기를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미디움 템포 트롯 전주.
약간 BPM을 올려서 편곡했지만, 원곡의 느낌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제 슬금슬금 덕군이 리듬을 타면서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명품 옷에 외제 차
부러워하지 마~
―미쳐! 미쳐!
―오늘 눈 호강하네!
헬로우 트롯맨에서 여성 팬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덕군과 정진.
두 매력남의 무대에 특히 여성 팬들은 난리가 났다.
핑크빛, 인간 하트. 덕군.
어릴 적에 상큼했다면, 지금은 거기에 화려함이 더해졌다.
그의 고유색인 핑크를 입은 덕군은 지금 전투력 최상이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잖아~~!
방청객들의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주는 목소리.
덕군과 정진은 마주 보고 후렴을 힘차게 불렀다.
속이 꽉 찬 남자!
구십구프로~
사랑도 구십구프로~
한 오백 년에서 분위기는 완벽하게 전환됐다.
축제를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
한쪽 구석에서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덕군의 오랜 팬 지연 엄마.
그녀처럼 14년 전 방울형제를 기억하는 팬들은 환희로 눈시울을 붉혔다.
정진은 오른손, 덕군은 왼손을 동시에 안쪽에서 밖으로 펼치며 후렴의 마지막을 불렀다.
구십구프로~ 마음 하나로~
당신만을 기다리이~ 잖아~~!
정진은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덕군아! 준비됐니?”
“당연하지~!”
“간만에 가 보자!”
그리고 두 사람은 마이크를 스탠드에 꽂았다.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반주가 멈추고, 방울형제의 손가락 박수가 시작되었다.
신기한 퍼포먼스에 방청객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투르디리 닷닷 툭! 다라닷!
투르디리 닷닷 툭! 다라닷!
툭! 다라닷!
툭! 다라닷!
툭! 다라닷!
난타 공연하는 것처럼 두 남자는 손가락 박수로 신나는 리듬을 이어 갔고. 점점 속도는 빨라졌다.
14년 전에 고사리손으로 치던 손가락 박수가 아니었다.
툭! 다라닷!
툭! 다라닷!
툭! 다라닷!
―우와아아~~!
―멋지다!
―이런 공연을 어디서 봐!
관객들이 열기가 고조될 즈음.
딱!
손가락 박수가 동시에 멈췄고.
덕군이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거칠게 빼었다.
“와싸!”
속이 꽉 찬 남자!
정진과 눈을 마주친 후, 두 사람은 가슴을 두들기며 큰 소리로 함께 불렀다.
속이 꽉 찬 남자!
구십구프로!!
사랑도 구십구프로~!!
판정단들은 난리였다.
―찢었다! 완전 찢었다!
―미쳤어, 진짜! 오늘 결승전이야?
―얘네 왜 이래? 다음 무대 어쩌려고?
구십구프로~ 마음 하나로~
당신만을 기다리이~ 잖아~~!
정진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다 같이요!”
방청객과 판정단은 한목소리로 불렀다.
―구십구프로~ 마음 하나로~
―당신만을 기다리이~ 잖아~~!
덕군은 웃으며 소리쳤다.
“한 번 더!”
구십구프로~ 마음 하나로~
당신만을 기다리이~ 잖아~~!
빰!
전주가 멈추고, 정진과 덕군은 마지막을 화음으로 불렀다.
당신만을~~~
기다리이~~ 잖아~~!
호흡, 꺾기 완벽히 맞췄다.
14년 지기 듀엣의 무대다웠다.
―우와아~~~!!
―덕군! 덕군!
―정진! 정진!
무대를 마친 두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덕군도, 정진도…….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벅찬 감정 때문에 자꾸 울컥거려서…….
덕군은 심호흡을 하고는 정진을 향해 손으로 누르는 시늉을 했다.
“형, 좀만 참자. 아직 안 끝났어.”
“그래, 그래야지. 그냥 막 펑펑 울고 싶다, 야.”
“나도 그래.”
순간 덕군은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애써 꾹꾹 눌렀다.
* * *
“와우! 이것이 2019년 K―방울이다~!”
판정단석. 븀이 크게 소리쳤다.
“와아…….”
장연정이 탄성을 지르며 옆에 앉은 조용수에게 물었다.
“쟤네, 혹시 듀엣이었어요? 아세요?”
“저도 모르겠어요.”
“둘이 친한 거야 알지만, 오래 맞춰 본 게 아니면 이렇게 하기 힘든데…….”
“그러니까요.”
그때 븀이 말했다.
“연정 누님~ 방금 제가 하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 K―방울이다~!”
“그게 뭔데?”
“둘이 처음에 듀엣으로 활동했었어요. 방울형제라고.”
“방울형제?”
“네~ 곡도 냈었는데. 흙장난이라고 들어 보셨죠?”
“아~ 그 노래는 알지! 그게 쟤네 곡이었어?”
븀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곡은 알아도 부른 가수는 잘 모르더라고요.”
장연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너, 대게 잘 안다?”
“제가 가요계 정보통입니다~ 누님~”
바 바밤 바밤!
장연정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엇! 시작했다, 마지막 곡.”
바 바밤 바밤!
심상치 않은 반주.
뒤에 앉은 고요태 출신의 여성 댄스 가수 성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이 곡은……!”
* * *
뚱 다라라 뚱 다다라 뚱 다다라라
무대에 레이저 조명이 현란하게 돌기 시작했고.
뚜벅. 뚜벅.
잠자리 모양 안경을 쓴 신건이 야광 조끼를 입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왔다.
바 바밤 바밤!
전주만 들어도 전 국민이 다 아는 마성의 댄스 곡.
‘별이 다섯 개’ 팀은 마지막 곡으로 고요태의 ‘비몽사몽’을 선택했다.
신건이 속사포 랩이 터졌다.
요! 요! 쉐키 부리. 커먼 에브리바디 쉑키 부리. 브레이크다운 다운타운. 커먼 더 쉑키 쉑키. 쉐이크 더 고고. 백투더 고고. 에브리바디 쉑키! 쉑키!
나이트클럽 스타일. 영어인지 외계어인지 모를 랩.
신건은 진짜 래퍼였지만, 곡에 맞게 허경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다 함께~ 뛰어~!”
나, 정진, 허경구, 덕드래곤.
나머지 네 남자가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다 함께 소리쳤다.
나나나나 쏴아~ 나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난 쏴아! 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쏴아~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난 쏴아~ 나나나!
뽕필과 나이트의 조화.
하지만 원래 삼류가 신나는 법. 시작부터 제대로 터졌다.
―우와악!
―나 오늘 집에 안 가!
―뛰어! 뛰어!
난나나나나!
―쏴아!
난나나나나나나 난 나나나!
―쏴아!
별이 다섯 개 팀의 ‘나나나’ 선창과 방청객이 ‘쏴’로 답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청객들은 알아서 잘했다.
시작부터 방청객과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
허경구의 스타트.
믿을 수가 없어!
너의 모습 앞에!
너무도 어두운 표정!
관객들의 호응에 자신감이 붙은 다섯 남자는 제대로 뛰어놀았다.
그다음 정진!
건방진 말투와
날 피하는 눈빛
예전의 네가 아니야
그다음에 내가 백스텝을 밟으며 무대 뒤로 사라지며 불렀다.
말이라도 해 봐
그게 인지상정
왜 나를 떠나려는지
신건은 현란한 춤을 추며 그다음 소절을 불렀다.
마음 여린 내가
밤새도록 울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다음 후렴.
성지의 고음 파트지만, 옥타브를 조정하지 않고 원곡 그대로 했다.
웬만한 여자 키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덕드래곤이 부를 거니까.
정진과 신건은 덕드래곤의 뒤에서 백댄서를 하고, 덕드래곤은 고음에 집중했다.
그사이에 나와 허경구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런 말 하지 마~
잘살기를 바란다는 말
원키 자체가 높은데, 쭉쭉 올라가니 관객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정진과 신건의 백댄스도 완벽했다.
엄청나게 연습을 했으니…… 눈감고도 출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울어도!
상처로 남겨질!
내 맘 알잖아~~~~~
후렴구 마지막. 덕드래곤의 고음이 최고 피치를 가볍게 찍자,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대박!
―고음 뭐야? 완전 시원해~!
밤 바바밤 바밤~
후렴구가 끝난 뒤, 전주가 바뀌었다. 여기서 허경구와 내가 출격한다.
“형님, 준비되셨어요?”
“당연하지!”
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재밌게 놀아 봐요!”
“오케이~!”
허경구는 이 순간만큼은 다섯 아이의 아빠로서의 부담감은 벗어던지고 20대 시절로 돌아갔다.
음악과 춤에 취해 사이키 조명을 따라 빙글빙글 돌던 그 시절로.
신건은 분위기가 살도록 댄스 브레이크 내내 추임새를 넣어 줬다.
역시 랩에 일가견이 있다.
요! 요! 쉐이키 부리. 커먼 에브리바디 쉐이키 부리. 브레이크다운 다운타운. 커먼.
허경구의 댄스 브레이크.
콩! 콩!
그는 콩콩이 댄스로 시작하여 온 몸을 이리저리 찢는 잉여춤으로 이어 갔다.
죽돌이나 죽순이가 아닌 이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희한한 춤사위에 방청객들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저 춤 뭐야?
―기괴한 건지 이상한 건지.
―아 몰라~ 신나는데!
허경구는 잉여춤의 대가였다.
접신 들린 사람처럼 몸을 이리저리 찢었고.
더 쉐이키 쉐이키 부리. 쉐이크 더 고고. 백투더 고고. 에브리바디 쉐이키! 쉐이키!
“요! 덕군!”
밤 바바밤 바바 밤~
그다음 내 차례.
난 무릎에서부터 반동을 치며 미끄러지듯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꺅~!
―저 춤 뭐야?!
―못 보겠어! 근데 자꾸 시선이 가!
―어머! 어머!
여성 관객들은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손가락은 활짝 벌려 있었다.
꿀렁. 꿀렁.
무릎부터 머리끝까지 반동.
하지만 마무리에는 반드시 엉덩이 스냅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 떡춤이다.
난 이제 성인이며, 당당하게 출 수 있다.
물론 춤 이름은 방송에서 말 못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