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여러분을 위한 공연
드디어 내일, 페스티벌 시티(공연장)으로 출발한다.
‘본선 3차. 트롯콘서트’.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다. 직전 라운드였던 데스 매치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하다.
우리 ‘별이 다섯 개’ 팀이 1등을 할 거라고 확신한다. 순위보다는 무대 완성도를 높이는 데 관심이 있다.
트롯 역사에 길이 남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레전드 무대를 만들고 싶다. 그게 본선 3차를 앞둔 내 목표다.
무대 구성은 중간 점검 때 이미 끝났고, 그 이후 계속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미세한 부분 잡아내고.
난 내 야심을 팀원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모두 자신감이 충천해 있으며, 상대 팀에 김종근이 있든 데이비드 강이 있든 이번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만큼 우린 완벽하다.
“모두 모이셨습니까?”
강당 안에 본선 3차에 진출한 참가자들 20명이 모였다.
공연 전날 왜 모이라고 한 걸까?
오 피디는 앞에서 말했다.
“모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일단 피자랑 음료수 좀 드시죠.”
합숙소에서 음식 지원은 좋았다. 아침과 저녁은 뷔페식이었고, 피자, 치킨과 같은 야식은 수시로 나왔다.
“저희가 앞으로의 미션을 상세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지금 딱 반 왔거든요?”
나와 참가자들은 피자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 본선 3차의 다음은 준결승 미션이고요, 그다음은 결승입니다.”
출연자들은 긴장했다.
―진짜 얼마 안 남았구나.
―하긴…… 현재 20명이니까 예상은 했지만.
오 피디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준결승 미션부터는 합숙을 안 합니다. 즉 합숙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이 사실은 전혀 예상 못 했었다.
전생에 TV를 통해 경연만 봤지, 내가 경연을 참여했던 건 아니니까.
정진, 덕용이 등 친한 참가자들과 더 합숙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아,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설마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고 해서 술 파티 여시는 분은 없겠죠? 내일이 공연 날입니다?”
―하하, 당연하죠!
―누굴 아마추어로 보시나?
―노는 거야 끝난 다음에 하면 되지!
출연자들은 웃으며 저마다 한마디 했고, 오 피디도 껄껄대며 웃었다.
합숙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도 꽤 가까워졌다.
오 피디는 참가자들의 얼굴을 살피다가 살며시 미소 짓고는 입을 떼었다.
“오늘 푹 쉬셔야 하는데, 제가 뵙자고 한 이유는요. 여러분들께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 뭔데요.
―선물?!
오 피디는 웃으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중에 탑 세븐이 될 분들을 위한 선물이긴 한데…… 지금 20명 중에 누구든 탑 세븐이 될 수 있으니까요. 모두를 위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죠.”
일순 조용해졌다.
“탑 세븐의 가장 큰 혜택 중에 하나가 전국 콘서트를 열 거라고 했었죠?”
좌중은 대답 없이 집중했고, 오 피디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했다.
“거기에 더해서…….”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탑 세븐의 2년을 TV고려에서 책임지려 합니다! 모두 박수~ 하하하.”
* * *
다들 엉겁결에 따라서 박수는 치는데, 선뜻 오 피디의 말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2년을 책임지겠다니?
―나, 소속사 있는데?
오 피디는 유독 덕군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하하, 2년 동안 TV고려에서 탑 세븐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 거고요, 탑 세븐은 전속 출연을 하게 됩니다~”
―서브가 아니라 탑 세븐이 주인공이에요?
“네 맞습니다~”
―장르는요?
“예능도 있고~ 음악 프로도 있고~ 어쩌면 드라마가 생길지도 몰라요. 저희는 탑 세븐을 TV고려의 간판 엔터테이너로 모실 생각입니다.”
―우와! 완전 좋은 거잖아!
―대우 끝내준다 진짜!
―우리 같은 무명에게 이 정도까지 해 준다고……?
무명 참가자의 입장으로 보면 TV고려의 혜택은 획기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미래를 안다면…… 헬로우 트롯맨이 끝났을 때, 탑 세븐이 얼마나 국민적 사랑을 받는지 알게 된다면…….
오 피디는 참가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경연 시작할 때 작성하셨던 계약서 있죠? 그래서 지금 그 계약서 내용을 갱신하려 하거든요~”
―오~ 당장 해요~
―좋아요~
“자~ 그럼 지금 수정된 계약서 돌릴 테니까…….”
“질문 있습니다.”
덕군이 손을 들었고, 오 피디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네?”
“2년이라고 하셨죠?”
“네.”
“그 2년간 고정 출연 혜택을 빌미로 다른 방송국에 출연 못 하게 하는 건 아니겠죠?”
“…….”
오 피디는 허를 찔렸다.
―에이~ 설마!
―그건 배타적 독점 계약이잖아? 방금 혜택이라고 했는데, 독점을 혜택이라고 하겠어?
―근데 독점이라도 괜찮지 않나?
덕군은 대답을 기다렸고, 오 피디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안 그래도 계약서 전달 후에 함께 보면서 설명드리려 했어요. 2년간 TV고려에만 출연입니다. 최고 대우를 약속드리고요, 물론 협의를 통해 타 방송국에 일회성 출연은 가능합니다.”
“독점이 맞다는 거네요?”
“뭐…… 특별 대우라고 할 수 있는데, 독점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네요.”
오 피디는 말을 이상하게 했다.
덕군은 다시 손을 들고 물었다.
“원하는 사람은 계약서 갱신 안 해도 되죠?”
“네?!”
오 피디의 눈이 커졌다.
“참가 조건으로 나왔던 얘기는 아니니까요. 중간에 변경되는 사항이니까 당연히 선택이 가능하겠죠?”
덕군이 이렇게 나오자, 참가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거 안 좋은 건가 봐.
―왜? 난 괜찮은 거 같은데.
―몰라, 덕군이 저렇게 나오면 안 좋은 거야.
―그런가…….
―그냥 덕군 따라가면 돼.
오 피디는 주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말했다.
“이런저런 방송으로 인지도를 쌓은 덕군, 정진 씨와는 달리 다른 참가자들은 인지도가 약해요. TV고려에서 집중 관리해 주면 분명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인큐베이팅 과정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덕군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인큐베이팅을 2년이나 합니까?”
“…….”
“너무나 좋은 제안은 의심해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우리 같은 무명을 2년간 밀어주겠다니…….”
오 피디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마치, 제작진의 속마음을 다 알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덕군은 달라. 하지만 제일 중요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덕군을 꼭 잡아야 하는데…….’
20명의 참가자들이 오 피디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쩔 수 없지. 계약을 강제할 수 없는 노릇이잖아. 덕군은 포기하는 쪽으로…….’
오 피디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려는데.
“1년만 하시죠.”
덕군이 말했다.
“저희가 헬로우 트롯맨 덕분에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졌죠. 나중에 잘되더라도 TV고려 덕분인 건 분명 사실입니다. 서로 기여할 부분은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
“감사한 마음이 있어 TV고려에서 제안하는 건 웬만하면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1년만 하시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덕군은 이미 탑 세븐에 든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모습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오 피디는 잠시 생각하고는. 꺼내었던 계약서를 다시 집어넣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덕군이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나중에 답 주셔도 되는데.”
“아니요, 잠시면 됩니다.”
오 피디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데스 매치’가 방영되기 전에 계약서 갱신을 해야 해.’
데스 매치. 헬로우 트롯맨 5회가 이제 세 시간 뒤에 방영된다.
잠시 후.
고 CP의 컨펌을 받은 오 피디는 환하게 웃으며 계약서를 돌렸다.
“독점 출연 기간 1년으로 수정했습니다! 서명 부탁드립니다~”
이젠 명확하게 ‘독점 1년’이라고 말했다.
* * *
1월. 한겨울이다.
본선 3차 공연 날에 한파가 찾아와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다.
이 살인적인 추위에도.
[항상 대세 햇살 덕군]
[김덕후 날아가자.]
[오늘의 주인공은 너야 너! 덕군!]
[내 맘 도둑 덕군.]
플래카드를 든 팬들의 응원이 엄청났다.
그리고 어젯밤 헬로우 트롯맨 5회를 폰으로 모니터링했는데, 5회 마지막에 내가 나왔었다.
데스 매치는 5회와 6회. 이렇게 두 회차에 걸쳐 방송될 것 같다. 정진과 김종근의 대결은 어제 안 나왔다.
6회의 피날레는 아마도 정진과 양상두의 패자부활전 매치가 장식하지 않을까 싶다.
부끄러워서 TV로는 내 모습을 잘 안 보려 하는데, ‘오매불망 장미’를 부르는 건 꼭 보고 싶었다. 내 나름대로는 한이 맺힌 노래라서.
내 스스로 평하긴 좀 그렇지만, 잘 불렀다고 생각한다. 보면서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이 불이 났던 걸 보면, 나 혼자만 만족한 건 아닌 듯싶다.
‘오매불망 장미’의 영향은 팬들의 플래카드에서도 느껴졌다.
[날 울리는 멋진 남자. 덕군.]
[십 년 만에 울었습니다. 오매~]
[난 덕군 기다릴 거야.]
[오매불망 기다려. 덕군♥]
[눈보라가 불어도 덕군뿐이야~]
감사하긴 한데, 플래카드를 읽다 보니 얼굴이 화끈거려서…… 민망했다.
옆에서 정진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팬들이 정말 지극정성이다.”
“…….”
“대부분 네 거구만. 혹시 핑덕덕핑 출동한 거니?”
“몰라, 지연 엄마한테는 별말 없었어.”
“네 팬들은 어쩜 그리 열정적이냐?”
“참나.”
난 창밖의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이 할 말은 아니거든?”
[순백의 제비. 내 둥지로 날아와♥ 정진~]
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여성분은 한파에도 가슴골이 파인 옷을 입고 있었다.
“형~ 가까이 있는 이 둥지는 어때?”
난 내 가슴에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고. 정진은 내 어깨를 때리며 소리쳤다.
“하지 마! 징그러!”
* * *
김승주가 무대에 섰다.
―우와아~!
―김승주다!
―국민MC~
헬로우 트롯맨 인기와 함께 김승주의 인기도 높아졌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승주는 방청석을 향해 물었다.
“와아~ 열기가 엄청난데요? 연일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헬로우 트롯맨! MC 김승주 인사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와아아~!
―김승주! 김승주!
방청객은 김승주의 이름을 연호했다.
김승주의 입이 귀에 걸렸다.
“하하, 이거 저도 트롯 한 곡 불러야 하나? 오늘따라 분위기 너무 좋은데요?”
―한 곡 해요~
―아싸~!
일부는 이미 춤을 출 기세였다. 오늘 유독 방청객 분위기가 밝았다.
“좋습니다! 오늘 제대로 불타오르겠는데요? 제대로 노실 수 있는 관객분들이 오신 것 같네요! 하하~”
―덕군! 덕군!
―정진! 정진!
―김종근! 김종근!
―데이비드 강~! 사랑해!
―트롯은 덕드래곤~!
“자!”
김승주가 눈에 힘을 주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오늘은 트롯맨들이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경연을 준비했습니다. 다섯 명으로 한 팀을 이루어, 총 네 팀이 엄청난 무대를 펼친 건데요.”
―…….
“각 팀당 12분짜리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정통, 댄스, 네오 등 다양한 트롯 장르를 섞어서 무대를 준비했다고 하거든요?”
김승주의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어떤 무대일지 궁금하시죠?”
―애가 타요!
―빨리 보여 주세요!
―덕군아~ 어여 온나~
김승주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렸다.
“여러분의 피를 끓게 만들! 트롯의 향연! 이름하여~”
두구. 두구. 두구.
“트롯콘서트~!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