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필요한 사람(1)
“와우~”
븀은 흥분해서 소리쳤다.
“하하, 반전 캐스팅인데요?”
신건의 이름이 불리자, 다른 사람들도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진짜 예상외인데?
―지금 남은 사람 중에 신건이 제일 약하지 않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기적인데.
덕군에게 이름이 불리자, 신건 또한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븀은 웃으며 물었다.
“정말 팀 구성 생각해서 호명하신 거 맞으시죠?”
“네, 물론입니다. 서바이벌인데요. 가장 필요하신 분들만 모셨습니다.”
“하하. 프로그램 재미를 위해 최강자들을 호명하지 않으신 건 참 감사하고요~”
이 말에 덕군은 알 듯 모를 듯 미소만 지었다.
븀은 그다음에 김종근을 호명하여 팀 구성을 요청했다.
김종근 또한 남은 최강자인 이찬우와 데이비드 강은 호명하지 않고, 팀을 구성했다.
결국 마치 짠 것처럼 정확하게 헬로우 트롯맨 강자들은 다른 팀으로 흩어졌다.
덕군과 정진 조합만 빼고.
븀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네 좋습니다~ 이렇게 팀 구성은 끝났고요. 혹시 질문 있으신 가요?”
덕군은 번쩍 손을 들었다.
“네~ 덕군 말씀하세요.”
“선곡은 자유죠?”
“네, 물론입니다~”
“댄스 곡을 선곡해도 됩니까?”
“네?”
븀은 살짝 당황했다.
“댄스 곡이요? 여기 트롯 오디션인데?”
“콘서트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콘서트라면 타 장르 한 곡쯤은 부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 잠시만요~”
븀은 제작진을 불러서 잠시 대화를 나눈 후, 말했다.
“네~ 지금 얘기를 나눴고요~ 한 곡까지는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오케이! 좋았어!”
덕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물론 트롯과 너무 다른 느낌의 곡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장르가 다르더라도 트롯과 어우러져야겠죠. 트롯 잔치에서 갑자기 헤비메탈을 들고 나오면 안 어울리잖아요. 이별의 눈~ 물 고개~ 이러다가 쉬즈 건! 이상하잖아요~”
―하하. 역시, 설명 잘하시네.
―귀에 쏙쏙 들어와.
븀은 빙그레 웃으며 덕군을 바라봤다.
“근데…… 덕군? 댄스 곡 하나 하시려고요?”
덕군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비밀입니다. 하하.”
* * *
조원들과 함께 동그랗게 앉았다.
정진, 덕용이와는 달리 허경구와 신건은 좀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
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조원들에게 말했다.
“저와 한 조가 되어 주셔서 모두 감사하고요. 아, 제가 선택한 거니 선택권은 없으셨네요. 하하.”
난 오른편에 앉은 정진을 향해 말했다.
“저는 모두 잘 알지만, 서로 모르시는 분도 있으니, 돌아가면서 간단히 소개 좀 할까요? 정진 형부터.”
정진은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트롯 가수 정진입니다. 덕군과는 14년 지기고요, 제가 올해 24이니까.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친구죠?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그다음 덕용이 말했다.
“얼마 전 한 살 더 먹어서 이제 열 살이 된 김덕용. 덕드래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건과 허경구는 질문도 없고, 너무 조용했다.
“자~ 다음 허경구 님?”
얼굴은 쭈글쭈글하지만 앞머리를 아래로 내려서 로맨스 만화 주인공처럼 곱게 가르마를 한 남자.
난 그를 예선전 때부터 주목했었다.
“안녕하세요. 전 43세고요. 다섯 아이의 아빠 허경구라고 합니다.”
그는 소개를 짧게 하려 했지만, 난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네?”
난 씩 웃으며 물었다.
“경구 형님, 나이트클럽에서 20년 일했다고 했죠?”
“엇, 그걸 어떻게?”
“예선전 인터뷰할 때 말씀하셨잖아요.”
“아, 그걸 기억하네…….”
난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춤 좀 추시죠?”
“춤?!”
허경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했다.
“뭐…… 나이트 댄스는 좀 추지. 1평 댄스라고 불리는…… 근데 잘 추는 건 아니야.”
물꼬를 틀어 주니, 그는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난 블루스 타임 전문이라서. 하지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기본적인 스텝은 다 밟지.”
난 곧바로 전문 용어를 던져 보았다.
“247, 콩콩이, 오징어, 크롭하, 잉여, 떡…….”
“헛!”
허경구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너, 죽돌이였니?”
내가 말한 건 나이트클럽 계보를 잇는 댄스 이름이었다.
“언니들 난리 났겠는데? 죽돌이처럼 안 생겼는데. 어디서 활동했어? 미아리야? 부천이야? 아니면 수유리?”
당연히 난 죽돌이는 아니다. 춤은 다 알지만, 이번 생에는 나이트클럽 한 번도 안 가 봤다. 전생에는 좀…….
“죽돌이는 아니에요. 그냥 클럽 댄스를 좋아해서 좀 알아요.”
“아~ 그래?”
“어쨌든 다 아신다는 거죠?”
“당연히 알지~ 경력이 20년인데. 눈 감고도 춘다, 야.”
“오케이!”
내 짐작이 맞았다. 사람 잘 뽑은 듯.
팀 대결은 분위기가 중요하다.
감동보다는 흥겨움으로 가야 한다.
팀으로 움직일 때 폭발력을 내기 쉬운 게 흥이 넘치는 무대다.
정통 트롯을 하는 사람 두 명과 댄스를 할 수 있는 두 명.
그래서 정진과 덕용이. 허경구와 신건을 선택한 것이다.
“자~ 다음 건이 형 소개 부탁해요.”
신건은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건이라고 합니다. 26세고요, 춤에 자신 있습니다.”
“형, 랩도 하잖아.”
“랩?!”
신건은 못 들은 걸 들은 것처럼 벙찐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하, 하긴 하지. 내가 제이스트림 랩 담당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도 할 수 있지?”
“그야 어렵지 않은데…… 설마?”
모든 게 예상했던 대로다. 만족스러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우리 팀은 래퍼까지 보유한 것이다.
“자! 지금부터 저희가 부를 곡 설명합니다.”
정진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언제 선곡까지 다 짰어?”
* * *
라운드 방식은 전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름만 좀 달라졌는데.
서바이벌인 이상 팀 미션은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할지는 원미당에서 이미 구상했었다.
“자, 먼저 시작은 ‘뿅 가겠네’로 갑니다.”
씨티 트롯. 색소폰 연주가 돋보이는 세련된 미디엄 템포 트롯 곡이다.
“전 인원이 나와서 뿅 가겠네로 스타트를 하고요. 춤도 좀 있을 건데, 약간의 손짓과 스텝 정도? 화려하게 막을 여는 뮤지컬 오프닝 같은 컨셉으로 가는 겁니다.”
“…….”
팀원들은 내 말을 찍소리도 안 하고 경청했다.
“그다음 곡은 ‘너는 내 여자’예요. 이 곡은 신건 형이 메인이고, 제가 서브로 붙습니다. 형, 이 노래 알지?”
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좋아하는 곡이야.”
“다행이네. 그럼 노래 익힐 필요는 없고, 퍼포먼스에 집중하면 되겠네.”
“퍼포먼스?”
“응, 여기서 어른 섹시를 보여 주는 거야. 브레이크 댄스도 좋고, 크럼프도 좋고. 안무는 형이 알아서 짜. 그냥 형 곡이라 생각하고. 할 수 있지?”
“근데 어른 섹시가 뭐야?”
“음…… 뭐랄까. 좀 더 농밀한 느낌의 섹시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장난치는 거 말고, 진짜로 하듯이.”
“흠…… 그래. 근데 너, 말이 짧다?”
“우리 5년 전에 말 놓기로 하지 않았었어?”
“그랬나……?”
그렇다 치고, 난 덕용이를 보았다.
“덕드래곤?”
“응?”
“다음 곡은 네가 솔로로 불러.”
“솔로? 내가?”
“그래, 곡은 ‘한 오백 년’.”
팀원들은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봤지만, 난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너랑 잘 어울릴 거야. 이번에는 절절하게 부르는 게 포인트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원래 네가 부르듯이 하면 돼.”
“…….”
“팀 라운드에서 솔로는 이 곡뿐이니까.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해.”
“…….”
덕용이는 부담감에 대답도 못 하고 눈만 껌뻑였다.
“덕드래곤!”
“으응?!”
“형은 여덟 살 때도 혼자 했어. 너, 지금 열 살이야. 할 수 있지?”
나를 비교로 들어 얘기하자, 덕용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당연하지!”
풉. 귀엽다. 덕용이에게는 어릴 적의 내가 롤모델이면서도 경쟁자인 것이다.
난 팀원들 전체를 향해 말했다.
“덕용이의 한 오백 년까지 끝난 후에 분위기를 완전히 끌어올립니다. 그래서 다음 곡이 진짜 중요해요. 클라이맥스로 가는 겁니다. 정진 형.”
정진은 깜짝 놀라서 날 바라봤다.
“으응?”
“쫙 끌어올린 분위기를 터뜨리려면 여기서 에이스 등판해야지. 그다음 무대는 형이 메인이야. 곡은 ‘99%’”
“속이 꽉 찬 남자~ 구십구프로~ 사랑도 구십구프로~ 이 노래 말하는 거니?”
역시, 정진도 나 못지않은 트롯 주크박스다.
“맞아. 여기서 확실하게 분위기 뒤집어 줘야 해. 형 역할이 진짜 중요해. 서브로는 내가 붙을 거야.”
정진은 안심하는 얼굴로 말했다.
“오케이~ 너랑 나랑 듀엣이란 말이지?”
“응.”
“그럼 자신 있지.”
2019년 방울형제. 출격이다.
팀원들은 얘기가 다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마지막 한 곡 더 있습니다.”
“…….”
“이 곡은 트롯 장르는 아니지만, 전국민이 다 아는 댄스 곡이고요, 멜로디가 트롯풍이에요.”
네 사람은 내 말에 집중했다.
“99%로 불꽃을 피우고, 거기에 기름을 붓는 겁니다. 마지막 곡에서는 팀원 전체가 군무를 맞출 거예요. 곡의 스타트는 경구 형님이랑 건이 형이 끊습니다.”
“…….”
“무대 디테일은 경구 형님이 맡아 주세요. 헬로우 트롯맨 공연장을 나이트클럽으로 바꿔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난 곡의 제목과 마지막 곡 무대 구성에 대해 설명했다. 팀원들은 눈빛은 놀라움에서 경이로움으로 바뀌어 갔다.
―대박이다, 진짜.
―설명만 들어도 신나네?
허경구는 혀를 차며 말했다.
“덕군, 혹시 가수 하기 전에 무대 기획자 했었어? 우리 오늘 아침에 미션 받았잖아? 언제 이렇게까지…… 기승전결 완벽하고 거기에 디테일까지.”
정진은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스토리까지 있어요. 한 여성에게 뿅 가서 ‘너는 내 여자’로 만들었지만, 언젠가 이별이 찾아와 ‘한 오백 년’으로 인생 덧없음을 부르고, ‘99%’ 꽉 찬 남자가 되어 다시 돌아오죠. 하지만 아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비몽사몽 거리를 걸으며 과거를 추억할 수밖에 없다는…….”
그렇게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이럴 때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역시 정진은 나의 영혼의 단짝이다.
“제가 큰 그림이랑 배치까지 끝냈으니까. 디테일한 부분은 각 메인이 채워 주세요. 전체 일임합니다. 아, ‘뿅 가겠네’ 디테일은 제가 채울게요.”
신건이 손을 들었다.
“근데 팀원들 다 메인 곡이 있는데 덕군은 없잖아? 좀 미안한데…….”
난 윙크를 하며 말했다.
“대신 서브로 많이 끼잖아. 그리고 2라운드 에이스 대결은 제가 나갈 건데…… 이의 없으시죠?”
네 사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정진이 대표로 말했다.
“있을 리가 없지.”
* * *
중간 점검 날.
아직 선곡도 못 마친 팀도 있었는데 단 한 팀, 완성도를 다듬고 있는 팀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별이 다섯 개’ 팀입니다.”
덕용이의 아이디어로 팀 이름을 ‘별이 다섯 개’로 지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직관적인 이름으로.
덕군이 대표로 인사했고, 오 피디가 물었다.
“듣기로 이 팀은 연습이 거의 끝났다고 하던데?”
덕군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하하, 겸손은. 자료 영상 다 봤는데.”
오 피디는 허경구를 지목했다.
“허경구 씨?”
“네.”
“팀 이끄시는 데 어려운 점 없으셨어요?”
“네?!”
허경구는 뭔 소리냐는 듯 되물었고.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네? 아무래도 최연장자시니까.”
덕군 22세. 덕용 10세. 정진 24세. 신건 26세.
전체적으로 너무 젊은 팀이다.
당연히 40대의 허경구가 팀을 이끌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에이~ 나이가 뭐 중요합니까. 전 그냥 대장님 이끄는 대로만 했습니다.”
“대장이요?”
“네, 덕군 대장이요.”
이 말에 팀원들은 다 함께 웃었고, 덕군은 민망해했다.
“에이~ 형님. 대장 소리 좀 하지 마시라니깐.”
오 피디는 피식 웃고는 허경구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덕군 대장이 잘 이끌어 주던가요?”
허경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말도 마십시오.”
“…….”
“이런 직장 상사를 만날 수 있다면, 최저 임금 받아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