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22화 (222/250)

222화. 데스 매치(1)

‘배려는 여기까지입니다. 잘 가세요!’

―뿜뿌부뿌우~

―쇼! 미더트롯~!

덕군의 짧고 강렬한 한마디에 판정단은 난리가 났다.

무대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김승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와~ 뜨겁습니다. 너무 뜨겁습니다. 본선 2차의 빅 매치답습니다~”

덕군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양상두를 향해 잽 날리는 포즈를 취했지만.

양상두는 경직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시작부터 완전히 쫄았다.

김승주는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 보더니.

“일단 기선 제압은 덕군은 한 것 같은데요~ 진짜는 무대에서 확인해 봐야겠죠?”

그는 얼어 있는 양상두를 향해 물었다.

“양상두 씨, 괜찮으시죠?”

“네? 아 네.”

“선공은 양상두 씨입니다. 덕군은 뒤에 자리해 주시고요.”

덕군은 무대 뒤쪽의 의자에 앉았고, 무대 조명이 꺼졌다.

정적에 휩싸인 무대.

‘후우~!’

양상두의 긴장된 호흡 소리만 들렸다.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 하냐, 이왕 이렇게 된 거 화끈하게 하고 가자!’

아무리 긴장했어도, 양상두는 17년차 기성 가수였다.

무대가 시작되기에 앞서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을 다잡았다.

♪♬♩ ♪♬ ♪♬♪♬♩

전주가 나오자…… 그의 눈빛이 돌았다.

바바밤!

사랑은 아무나 한다!

어느 누가 어렵나 했나~~

양상두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굵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짝짝짝.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랑은 아무나 한다

손잡으면 끝이 난 거지~

원곡보다 빠르게 편곡했다.

양상두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외에 특별한 동작을 첨가하지 않았다.

흥이 넘치는 정통 트롯의 무대.

말끔한 신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의 흥을 돋우었다.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결국엔 나 하기 나름인 걸

쿵짝. 쿵짝. 쿵짝. 쿵짝.

여기서 박자가 더 빨라지며, 전주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리저리 노래에 맞춰서 어깨를 흔들고 있던 판정단이 일어났다.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마침표를 찍을까!

사랑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가사. 만나고 헤어짐은 인연이며, 내게 속하지 않은 일에 마음고생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어찌 보면 허탈하고, 슬픈 가사에 빠른 박자의 멜로디를 입혀 더욱 진한 여운이 느껴지는 곡이다.

이 노래는 미친 듯이 흥겹게 부르면 안 된다.

딱, 지금 양상두처럼.

인생 욕심 없는 듯 박자에 몸을 맞춰 흔들흔들 불러야 한다.

완벽한 곡 소화에 판정단과 관객들 모두 매료되었다.

얼굴이 굳어지고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덕군밖에 없었다.

사랑은 아무나 한다!

어느~~ 누가~ 어렵다 했나~~~~

바바바밤!

전주가 멈추고.

양상두의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꽉 채웠다.

어느 누가으가으가으~~~~

양상두는 노래를 길게 끌었고.

긴장된 스튜디오에는 그와 방청객의 숨소리만 들렸다.

어렵다 했나~~~~~

밤! 바암~~!

노래가 끝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브라보! 브라보!

―양상두 멋지다!

―대박! 레전드 나왔다!

판정단, 방청객 할 거 없이 모두 기립했다.

* * *

판정단석.

양상두의 무대에 판정단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가 수준 높은 가수인 건 잘 알지만. 헬로우 트롯맨에서는 시작부터 치고 나온 덕군이 대세였다.

김종근과 함께 우승 후보로 불리는 덕군과 붙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무대를 감상했는데.

―와…… 이걸 어쩌면 좋지?

―난감하다. 진짜.

지금 양상두는…….

상대가 누구든 이기기 어려운 무대를 만들어 냈다.

미친 듯이 빠른 곡도, 눈물 짜내는 정통 트롯도 아닌, 미디움 템포로 이런 무대를 만들어 냈다는 건……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첫 무대부터 덕군을 원픽으로 뽑고, 개인적으로 응원해 왔던 두 마스터.

장연정은 조용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셨어요?”

“양상두가 역시 대단한 가수네요. 확실히 구력은 무시 못 해요.”

“그러니까요. 덕군이 질 수도 있겠는데요?”

“…….”

조용수는 이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물론 덕군이 무대를 멋지게 해내서 이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양상두가 잘해도 너무 잘해 버렸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덕군을 응원하는 입장입니다만…….”

“…….”

“심사는 공정하게 해야겠죠. 덕군이 잘하길 바랄 뿐입니다.”

장연정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러니까요. 추가 합격은 없다고 했잖아요.”

조용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안 그래도 데스 매치의 특성상 아까운 탈락자가 발생할 것 같아서 한번 물어봤는데. 완강하더라고요.”

“…….”

장연정은 무대 위의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작할 때와 달리, 두 사람의 분위기가 상반되었다.

덕군은 초조해 보였고, 양상두는 활짝 웃고 있다.

누군가는 무조건 져야 하는 싸움. 장연정은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데스 매치. 왜 둘이 붙은 거야…….’

* * *

방심했다.

괜히 17년 차 가수가 아니다. 확실히 다르다.

뒤에서 양상두의 무대를 지켜보는 내내 몇 번이나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는 뛰어난 실력에 긴장해서 보다가, 나중엔 발장구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또 소름이 돋았다.

마인드 컨트롤이고 뭐고, 그의 무대에 흠뻑 젖어 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김승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노래 잘 들었습니다.”

‘아쉽다. 더 듣고 싶은데.’

아니, 내가 미쳤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레전드 현역 가수는 확실히 다릅니다. 격이 다른 무대. 너무나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양상두 씨는 뒤에 자리해 주시고요.”

두근. 두근.

“자, 이제 후공!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죠~ 덕군! 모시겠습니다~”

―와아아~!

―덕군! 덕군!

―덕군! 보여 줘!

양상두의 무대에 홀렸던 팬들은 내 이름을 호명하는 소리에 돌아온 것 같았다.

“덕군, 괜찮나요?”

멍하니 있던 나는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하하. 표정을 보아하니~ 양상두 씨의 공격이 너무 강했나 본데요. 지금 그로기 상태 아닌 거죠?”

―에이~ 김승주 씨! 그러지 마요!

―안 그래도 긴장한 사람한테.

약간의 농담에 판정단들이 들고 일어났다.

“하하하. 아이~ 뭐 이 정도 농담에. 다들 너무 예민하시다~ 하하.”

김승주는 웃음으로 무마하며 내게 물었다.

“덕군?”

“네? 아, 네.”

“심호흡 한번 하시고요.”

스읍~ 휴우~

김승주의 말에 따라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잠시만요!”

김승주는 제작진에게 사인을 보낸 후, 마이크를 내려놓고 나만 들리도록 작은 소리로 말했다.

“덕군아, 정신 바짝 차려. 너 잘해. 의심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돼.”

“아, 네 감사합니다.”

“시간 좀 줄 테니까. 준비되면 말하렴.”

김승주는 날 향해 싱긋 웃어 주었고, 그 미소에 마음이 좀 놓였다.

‘위기’.

지금 웬만큼 해서는 양상두를 이기기 어렵다. 좀 전에 그는 자신의 실력을 넘어서는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냈다.

최고의 무대. 그건 감정, 선곡, 장소, 시간, 분위기, 반전 등 모든 게 어우러진 허락된 순간에 만들어진다.

하늘이 도와야 나오는 무대.

방금 전 그 무대가 양상두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제 좀 진정됐니?”

김승주 또한 경연 무대를 많이 해 봐서일까. 엄청난 무대를 바로 이어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해하는 듯했다.

확실히 시간을 갖고 숨을 돌리니, 좀 나아진다.

“네, 됐습니다.”

김승주는 스태프에게 사인을 보냈고.

[하이~ 큐!]

“네~ 덕군. 준비하신 곡은요?”

“오매불망 장미입니다.”

“캬아~ 오매불망 장미! 나 이 노래 엄청 좋아하는데~ 하하.”

김승주는 일부러 밝은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고, 난 씩 웃었다.

“6.25 전쟁 중 납북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둔 어느 할머니의 사연에 조영필 선생님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죠.”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니깐요~”

‘오매불망 장미’.

내 이름을 처음 전국에 알렸던 전국민노래자랑에서 부르려고 준비했던 곡이었다.

당시 갑자기 변성기가 오면서 마지막에 선곡을 포기했었다.

난 이 곡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13년간 부를 날을 기다리며 준비해 왔다.

내가 가장 아끼며, 자신 있는 곡.

난 그 무기를 이번 데스 매치에서 꺼내 들었다.

‘다음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경연에서 지면, 그 무대가 마지막이니까.

뚜벅. 뚜벅.

난 무대 중앙에 섰고.

김승주의 비장한 외침이 공연장을 울렸다.

“숨 막히는 데스 매치! 덕군의 무대입니다! 오매불망 장미!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 * *

―꺅~!

―덕군! 사랑해!

―어서 와! 덕군~ 기다렸어!

―어떡해. 벌써 눈물 나.

후우~

무대 중앙에서 덕군은 감정을 잡고 있었고.

공연장은 팬들의 괴성 소리에 난리가 났다.

♬♪♩ ♬♬♬ ♬♪♩

전주가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괴성 소리가 멈췄다.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단 하나의 악기로 단조로운 전주가 시작됐다.

쓸쓸한 분위기가 올라올 때쯤.

정 주셨던 밤에 눈물 흘렸네

이별의 물로 이불 적셨네

덕군의 담담한 목소리가 흐르듯 나왔다.

마이크를 꼭 잡은 두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한 음 한 음 소중히 불렀다.

잊을 수 없는 뜨거운 추억

오매불망 장미야

조금씩 덕군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청중들의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시작이었다.

그 겨울 추운 바람

그 겨울 추운 바람

눈보라와 가시었네

후렴의 시작.

덕군은 읊조리듯. 마치 독백을 하 듯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달콤했던 장미 인생……

눈보라에 꺾이니……

―흑

―훌쩍. 훌쩍

조금씩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덕군은 몽글몽글해졌던 감정을 강하게 터트렸다.

나는! 홀로 남은~~

빛 잃은 장미야!!

덕군은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한이 가득 맺힌 핏발 선 눈빛.

주먹을 들어 부들부들 떨며, 토하듯이 뱉어 냈다.

오랜 세월 사진 속에! 그의 모습 만나니~~!

언제쯤 그이의 숨결! 느낄 수 있을까!!

―허억.

―아파……. 너무 아파.

―가사 주인공 얼마나 힘들었을까.

―흑흑.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방청객들도 있었으며, 일부는 얼굴을 감싸 쥐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판정단도 눈시울을 닦았고.

그중 여성 댄스 가수 성지는 오열을 했다.

오매불망 장미는~

오매불망 장미는~

잊지 않으리라…….

덕군의 눈가도 촉촉했다.

혹시 눈물이 터져 노래가 흔들리지 않을까 보는 사람들은 우려스럽기도 했는데.

그래서 더 감동이 다가왔다.

마지막엔 잔잔한 목소리로 눈물 흘린 사람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잊지~ 않~ 으~~ 리이~ 라~~~!

강렬하고도 잔잔하게 퍼지는 마지막 소절.

바암!

노래는 끝이 났다.

후우~ 후우~

정적에 휩사인 무대.

박수, 함성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덕군의 거친 숨소리만 빈 무대를 울렸다.

* * *

노래고 끝나고 한참 뒤.

짝…….

누군가의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짝짝짝.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팬들도 괴성을 지르지 않고, 있는 힘껏 박수만 쳤다.

노래가 끝난 지금도 무대의 여운이 남아 있었고, 그 누구도 이 여운을 망치길 원치 않았다.

큰 박수갈채 속에 덕군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고.

박수 소리는 더 커졌다.

무대 한쪽에서 계속 눈물을 훔치던 김승주가 호흡을 정돈하고 덕군의 옆으로 다가왔다.

“덕군…….”

“…….”

“고맙습니다. 이런 무대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21세 아닌가요? 정말 감정이…… 대단하네요. 빠른 곡만 잘하는 게 아니었네.”

판정단들은 덕군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 이제, 판정의 시간인데요. 양상두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양상두는 무대 중앙으로 나왔고.

두 남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껴안고 서로 등을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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