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본선 1차(1)
중간 점검에서 욕만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것 외엔 별다른 코멘트는 없었다.
다들 점검이 아니라 공연 보는 듯했는데, 끝난 후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터지겠네.’
표정과 말투로 봤을 때, 좋은 뜻과 안 좋은 뜻이 함축된 말이었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의미.
혹시 다른 걸 준비해 볼 생각은 없냐는 말에 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다른 걸 준비할 여력도 없으며, 단 두 명으로 팀 미션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또한 품바 장르의 특성상, 두 명만으로도 무대가 차 보이는 착시 현상이 있다. 옷이 치렁치렁한 데다가, 싸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니까.
단 한 명으로도 시장 바닥을 휘어잡는 장르가 품바다. 우리처럼 소수 인원의 팀이 다수의 팀을 상대하기에 최적의 장르다.
중간 점검이 끝난 후, 일주일 더 합숙을 계속했다.
1라운드 ‘100인의 오디션’에서는 상대방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 수 없었다. 각자 준비해 온 걸 보는 무대였다.
본선 1차 팀 장르 미션은 제작진의 지원을 받으며 준비를 했고,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 공연을 만들었다.
또한 모두에게 동등한 연습 기한이 주어졌다.
모든 참가자들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느덧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12월 중순. 눈이 내리던 날.
이른 아침, 강당에 모였다.
“여러분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븀이 아닌, 오 피디가 앞에 섰다.
강당 창밖으로 동해 바다 위로 내려 앉은 눈발의 모습이 참 장관이었다.
“예고했던 대로 아침 식사 후에 바로 공연장으로 이동합니다. 짐을 미리 싸 놓으시면 준비하기가 수월…….”
참가자 중 한 명이 말을 끊고 물었다.
―다음 미션 때도 이곳에서 합숙하는 거 아닌가요?
오피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럼 오늘 미션 끝나고 돌아올 텐데, 굳이 짐을 싸야 하나요?”
―하하, 맞아.
―어차피 올 거잖아.
3주간의 시간은 서로 친해지기에 충분했다.
어느덧 화기애애해진 참가자들은 서로 웃으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오 피디의 너무나 당연한 한마디에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누가 오게 될 줄 모르잖아요.”
―…….
“떨어졌는데 짐 빼러 오면 너무 참담하지 않겠습니까?”
강당 안에 흐르는 정적.
아무리 화기애애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 이곳은 서바이벌이다. 누군가는 집에 가야 한다.
오 피디는 헛기침을 하고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어차피 호텔 측에서 대청소도 해야 한다니까요. 모두 짐을 빼는 거로 하겠습니다. 합격 자신하시는 분은 프런트에 짐을 맡겨 놓으시든가요. 하하.”
이제 아무도 웃지 않았다.
* * *
아침 식사 후 바로 출발했고, 우리는 공연장인 페스티벌 씨티에 열 시쯤 도착했다.
“와~ 오랜만이네.”
막상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 오래전은 아닌데,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게 말이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옆에 선 안만호가 웃으며 말했다.
팀 미션 때문에 자연스럽게 팀 단위로 몰려다녔다.
어느새 내 옆에는 정진이 아니라, 항상 안만호가 있었고, 3주간 항상 붙어 있으니 정도 꽤 들었다.
만약 둘 중에 한 명만 붙는다면…….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출연자들이 눈물을 쏟아 내는지, 겪어 보니 이해가 된다.
서바이벌 상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니, 더욱 각별한 정이 생긴다. 전우애와 비슷하다고 할까.
“어쨌든 다시 왔잖아요.”
“내가 잘해서 올라온 것 같지는 않은데…….”
“…….”
안만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쪽수 맞추기 위해서 그가 어렵게 추가 합격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기에 난 딱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형님, 이번에 증명하시면 돼요.”
“…….”
“이번에 멋지게 해서 올 하트 받으면 되잖아요. 1라운드야 긴장돼서 실력 발휘 못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깐.”
“넌 긴장 안 하는 거 같던데?”
“그거야…….”
난 이 경연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죠~ 속으로는 많이 긴장했었어요.”
“훗. 그래?”
“그럼요~ 어서 들어가요. 리허설 준비해야죠.”
* * *
리허설 순서를 기다렸다.
[현역 B팀! 리허설 스탠바이하세요.]
“네~!”
바로 앞 팀의 리허설 무대를 보았는데, 잘한다.
오늘 총 9개 팀이 경연을 하며, 각 팀의 어떤 무대를 하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의상 풀 착장에 무대 장치까지 된 공연 모습은 처음 봤다.
곡, 노래, 춤이 선물이라면 의상과 무대 장치는 선물을 멋지게 포장하는 포장지와 같다.
먼저 리허설을 끝낸 현역 A팀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들은 안만호에게는 시선 한번 안 주고, 내게만 살짝 눈인사를 했다.
그러다가 정진을 마주쳤는데.
“혀엉~”
난 반가운 마음에 그를 다정하게 불렀다.
원래 항상 정진과 붙어 다녔었다. 1라운드가 시작되기 전에는 원미당에서 한 달을 넘게 함께 연습하기도 했고.
하지만 동해 크루즈 호텔에서는 서로 다른 팀으로 갈려 연습하느라 정신없었고, 합숙 2주 차부터는 거의 얼굴도 못 봤다. 팀이 다르고 경쟁하는 사이다 보니, 아는 척하기도 뭐했고.
굉장히 오랜만에 본 듯한 기분이었다.
“덕군아.”
“형~ 준비 많이 했어?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하하. 그러게. 서로 정신없었지 뭐~”
“형네 쌈바 하는 거 같던데? 아주 영리해~ 개인 무대에서 하기 싫으니까 팀 미션에서 하는 거 봐 봐~”
“쉿~!”
정진은 팀원들을 살피고 말했다.
“야, 야, 조용히 해. 그리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거든? 우리 팀에 춤 잘 추시는 분이 많더라고.”
그때 안만호가 쭈뼛거리며 옆으로 다가왔다.
“아, 맞다. 형~ 여기 만호 형님 알어?”
정진은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진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 정진 씨 팬이에요. 네바퀴 때부터 좋아했어요.”
“네? 아, 하하.”
난 옆에서 거들었다.
“진짜 팬이야. 만호 형님이 형 인사시켜 달라고 얼마나 졸랐었는데.”
안만호는 웃으며 말했다.
“시간 괜찮으시면 믹스라도 한 잔…….”
“경연 끝나고 하시죠.”
“네?”
정진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분명 선을 긋는 뉘앙스였다.
약간 분위기가 어색해지려 해서 내가 끼어들었다.
“형~ 리허설 끝나고 나면 본 경연까지 시간 꽤 남잖아~?”
정진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말했다.
“지금 우린 경쟁자야. 각자 팀에 집중해야지. 친목은 나중에 하자.”
“…….”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약간 당혹스러운데?
정진은 기다리고 있는 팀원들 눈치를 살핀 후 말했다.
“그럼 모두 파이팅하세요~!”
그리고 그는 인사도 받지 않고 가 버렸다.
* * *
“안녕하세요~”
―어~ 연정아~ 어서 와.
―어머~ 이쁘게 하고 왔네.
―선배님, 안녕하세요~!
먼저 와 있던 판정단들은 장연정을 웃으며 맞이했다.
“야! 븀!”
장연정은 븀을 불렀고.
“누님, 안녕하세요!”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누님이 뭐야.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아니요, 저에겐 영원한 누님이에요.”
븀의 능청스러운 반응에 장연정은 피식 웃고는 물었다.
“합숙 어땠어? 너, 거기 있었다며.”
이 말에 다른 판정단들도 모두 솔깃해했다.
“하하, 누님. 오늘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오~ 다들 잘해? 누가 잘해?”
“그건 말씀드릴 수 없지요.”
“야아~”
장연정은 콧소리로 물었다.
“궁금해~ 얘기 좀 해 줘 봐~”
“음~ 제가 스포일러는 하기 싫네요~”
“참나~ 곧 보게 될 텐데. 너무 비싸게 구네~”
장연정이 토라진 표정을 짓자, 븀은 눈치를 보고 말했다.
“음~ 그럼 제가 힌트만 좀 드릴게요~”
“현역 A팀과 타장르부 팀 기대하세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조용수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 정도는 말씀 안 해 주셔도 짐작되는데. 당연히 그 두 팀이 잘하겠죠. 실력도 좋고, 퍼포먼스도 안정된 팀이니까.”
“아~ 그런가요?”
븀은 능청스럽게 대꾸했고.
장연정은 잠시 생각하고는 물었다.
“덕군은? 그쪽 팀원이 두 명이잖아.”
―맞아. 맞아.
―덕군이 1라운드 선인데.
―현역 B팀에서 잘하는 사람 다 떨어지고…….
―실력 좋은 친구인데, 대진 운이 너무 없어.
“아하~ 역시.”
븀은 이 질문을 짐작했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긋 올리며 웃었다.
“예상했던 질문을 하시네요~?”
―잘 준비했어?
―덕군 어땠어?
달려들 듯 물어보는 판정단을 븀은 진정시키며 말했다.
“자~ 자~ 진정들 하시고요. 제가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요~.’에서 끝을 올리는 게 꼭 디제이가 말하는 것 같았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고요. 나머지는 본방에서~ 아, 아니지. 본 무대에서 확인하시길 바랄게요~”
다들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데.
뚜벅. 뚜벅.
고요하던 무대에 발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김승주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죠?”
―와아~ 김승주다!
―오빠! 오늘도 수고가 많아요~.
―승주 씨! 잘 부탁해~.
김승주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판정단 여러분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1라운드 편집 영상이 나왔는데, 아주 퀄리티가 좋다는 후문이거든요?”
―에이~ 알아서 잘하겠지.
―트롯인데 얼마나 인기가 있겠어?
―맞아~ 우리도 후배들과 트롯 발전을 위해 나온 거지.
아직 방송 전이었고, 판정단들은 ‘헬로우 트롯맨’이 성공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마이너한 오디션이기 때문에.
“글쎄요. 앞일은 모르는 거죠. 어쨌든 제작진에서는 기대 이상이라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번 라운드도 좋은 영상 나오도록 힘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겠어요~
―에이~ 우리가 뭐 중요한가? 출연자들이 잘해야지.
스태프의 마이크 음성이 공연장을 채웠다.
[헬로우 트롯맨! 본선 1차. 장르별 팀 미션 들어가겠습니다~ 김승주 씨 2번 카메라 봐 주시고요.]
공연장은 긴장감에 휩싸였고.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하려 했다.
[하이~~ 큐!]
팟! 2번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0억 트롯맨을 찾아라! 대국민 오디션 헬로우 트롯맨! 본선 1차전! 두 번째 라운드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가자! 가자!
―화이팅!
본선 1차까지는 방청객 없이 진행했고, 판정단들의 열렬한 응원 소리만 스튜디오에 가득했다.
“예선을 통과한 트롯맨들이 본선 무대를 위해 오랜 기간 합숙을 했거든요? 열정으로 준비한 무대! 첫 번째로 보여 드릴 팀입니다! 타장르부! 나와 주세요~”
―와아아~
―데이비드 강 잘생겼다~
―커먼! 데이비드!
데이비드를 따라 나온 타장르부는 다 함께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데이비드라인’입니다~!”
* * *
‘저 사람이 데이비드 강이구나.’
정진이 엄청나게 칭찬했던 사람.
1라운드 때 보진 못했기에 난 더 궁금했다. 난 모니터에 집중했다.
[출중한 참가자인 데비이드의 라인이 되고 싶다는 뜻에서 데이비드라인이라고 팀명을 지었습니다~]
팀명 설명에 김승주는 웃으며 말했다.
[아~ 팀명이 참 일차원적이군요. 하하. 근데 그런 게 기억에 잘 남죠~]
김승주는 침착한 데비이드 강과 달리 그 옆에 떨고 있는 다른 팀원들을 보았다.
[많이 긴장되시죠? 빨리 노래 먼저 듣고~ 얘기 나누겠습니다.]
이제 시작이구나. 기대된다. 김종근 못지않다던데…….
김승주는 큰 소리로 소개했다.
[데이비드라인이 부릅니다! ‘진상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