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합숙(2)
“자~ 장르별 팀 미션은요~ 처음에 함께 시작한 팀이 있죠? 네 맞아요! 거기, 유소년부. 그래~ 너희들이 한 팀인 거야~”
븀은 어찌나 말을 맛깔스럽게 하는지, 난 다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하여 들었다.
확실히 잘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별거 아닌 얘기도 참 재밌게 한다.
“그렇게 한 팀이 되어 경연을 하는데, 올 하트를 받으면 전원합격~ 10개 이상은 일부만 합격, 9개 이하는 전원 탈락이에요~”
구체적인 미션 설명이 시작되니, 참가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앞서 얘기했죠~ 네가 잘해야 내가 산다~ 하하, 한 팀으로 잘 해내야 모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어요. 하트 개수 하나라도 부족하면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될 테니까요~”
참가자들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미션이 아니다. 옆 사람도 잘해야 하며, 팀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선곡은 어떻게 합니까?
“어~ 좋은 질문이에요~ 선곡은 당신 맘대로 하면 됩니다~ 시청자의 귀를 녹일 그런 아름다운 선곡이요~ 잘해 보자~ 으짜!”
참가자들 알아서 하라는 말이 더 어려웠다. 트롯 가수들은 주로 개인 활동을 하지, 팀으로 이뤄서 하는 경우는 잘 없다.
“아, 근데 가수는 정해 주거든요~ 가수 이름이 적힌 보더가 있는데, 제가 호명해 드린 순서대로 가서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호명 순서는 내 맘대로~”
븀은 씩 웃고는 말했다.
“가 아니겠죠~? 하하, 호명 순서 들으시면 어떤 순서일지 아실 겁니다~”
븀은 큐시트를 보고 첫 순서를 호명했다.
“김종근 씨!”
“네!”
븀은 1라운드 진을 가장 먼저 호명했다.
“선택하세요! 당신이 1번입니다.”
“알겠습니다!”
직장부 김종근은 성큼성큼 다가가 망설임 없이 가수 선택을 했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선택하시네요~ 좋습니다~ 자~ 다음이요~ 덕군!”
이로써 호명 순서는 분명해졌다.
1라운드 최고 성적을 거둔 사람 순으로 호명하는 것이다.
난 안만호를 바라봤다.
현역 B팀은 나와 안만호 단 두 명. 다 떨어지고 우리 둘만 살아남았다.
안만호는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는데, 그보다 잘한 사람들이 떨어졌는데도 살아남았다.
현역B팀 팀 미션을 나 혼자 할 수는 없으니, 뒤늦게 급하게 합격 처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에서 안만호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안만호 또한 바보가 아니기에 그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만호 형님.”
난 40대의 안만호를 불렀다.
“어, 덕군아.”
“저 중에 땡기는 가수 있으세요?”
“내가 염치가 있지.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해.”
난 안만호를 가만히 바라봤다.
“형님, 포기하시면 안 돼요. 이거 팀 미션이잖아요. 저 본선 1차 합격해서 본선 2차 진출하고 싶어요. 좀 도와주세요.”
그가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차라리 날 도와달라는 투로 얘기했다. 이렇게 하는 게 그를 움직이기 더 수월할 것 같았다.
“흠…….”
멍한 표정의 안만호는 잠시 생각하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래, 너한테 민폐 끼쳐서는 안 되지.”
“아무래도 형님이 하시는 장르가 범주가 좁잖아요. 품바가 느린 곡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형님이 가장 잘하는 것에 제가 맞춰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흠…… 그럴까?”
안만호가 미안함 때문에 망설이는 것 같아서 난 한층 더 밀어붙였다.
“행사 때 주로 부르시는 곡 있지 않아요?”
안만호의 장르는 품바다. 지방 행사장에서 몇 번 마주쳤지만, 그가 품바 외에 다른 장르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색깔이 너무 강하고 뚜렷하다. 만약 그가 정통 트롯을 한다면 정말 안 어울릴 것이다.
상의가 길어지자, 븀이 채근했다.
“자~ 현역 B팀~ 아니지. 현역 B 듀엣~”
―하하.
―그렇지. 저긴 팀이 아니지.
―겨우 두 명에…… 진짜 안 어울린다.
―덕군 불쌍해. 현역 B가 이럴 줄은.
―그래도 덕군은 붙겠지~
―하트 9개 이하는 전원 탈락이잖아. 모르는 거지.
주변 수군거리는 소리에 안만호가 흔들리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제안했다.
“형님, 두성 선생님 어때요?”
‘두성’
‘보릿고개 너머’, ‘태클을 걸었냐’, ‘사랑은 장난이 아닐걸.’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30년 차 가수.
“두성 선생님 노래 불러 본 적 있죠?”
“당연히 있지.”
“오케이, 그럼 바로 가시죠.”
두성의 히트곡은 많기에 그중에 결정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난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결정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더더덕군! 미안해요~ 말을 더듬었네요~ 쓰읍~ 힘차게 발걸음 내디뎌 볼까요?”
‘더덕’은 좀 거슬렸지만, 븀이니까 그 정도 드립은 넘어가 줘야 한다.
난 곧바로 걸어 나가 ‘두성’을 선택했다.
* * *
―하하~ 뭐야! 그런 춤을 추자고?
―어때요? 재밌잖아요!
―그래! 그래! 밝게 가자~
거대한 강당.
한편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연습하고 있는 6명의 현역 A팀을 보았다. 현역A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1라운드를 통과했다.
정진이 주도해서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제작진과 얘기했던 쌈바를 팀 미션에서 할 건가 보다.
정진답다. 어차피 해야 할 거 개인 무대에서는 하기 싫으니, 팀 미션으로 녹여 내는 영리함.
―반전을 줘야 해.
―그래도 잘하는 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반전에 반전을 주는 거야. 신건이 했던 것처럼.
아이돌부 또한 6명이 살아남았다. 현역A와 함께 가장 많이 살아남은 팀이다.
곡은 정통 트롯인데, 거기에 댄스 브레이크를 포함시키려는 것 같다.
다들 준비 잘하네.
우리도 이제 연습을 해야 하는데……
“덕군아, 우리 어떡해?”
“…….”
나와 안만호 단 두 사람.
안만호의 색은 너무 뚜렷하다. 그가 다른 장르를 하면 반전의 느낌이 아니라, 어색할 것 같았다. 앞니에 김 붙이고 공연하던 모습이 너무 강해서.
항상 우스꽝스러운 표정만 지어서인지 평상시에도 눈썹 한쪽이 올라가 있고, 입이 삐뚤어져 있다.
“형님, 지금 웃으시는 거 아니죠?”
“웃긴, 나 지금 엄청 진지해.”
“…….”
항상 개구쟁이가 웃는 듯한 표정. 심각하거나 긴장될 때도 이런 표정이니 헷갈린다. 품바 무대에 오래 서서 그렇다는 건 알지만, 아직 적응 안 된다.
“제 생각에는 저희 품바로 가야 할 것 같거든요. 아니, 품바로 갈 수밖에 없어요.”
“품바?!”
분명 놀란 목소리인데…….
“지금 좋아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다.
“항상 이 표정이야. 헷갈리면 안 돼, 나 지금 엄청 심각해.”
“아, 네. 품바 한다니까 좋아하시는 줄 알고.”
“안 좋아. 여기서까지 와서 품바 하고 싶진 않아.”
안만호는 본인이 가수인지, 개그맨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오로지 가수로서 무대에 서고 싶어서 ‘헬로우 트롯맨’에 지원했다고.
“형님, 품바도 엄연히 트롯 장르예요. 전 그렇게 배웠어요. 어떤 곡이든 BPM 170으로 관객들의 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마성의 장르죠.”
“…….”
“지금은 팀 미션이니까요. 여기 통과한 후에 개인 미션에서 제대로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내가 통과할 수 있을까?”
웃고 있다. 진지하게 묻는 건지, 농담인지 헷갈린다. 분위기로 봤을 때는 분명 진지한 건데…….
“그야 모르죠. 통과할지 모르는 건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자기 주무기를 써야죠.”
“흠…….”
심각한 신음 소리와 함께 안만호는 여전히 웃었다. 아무래도 그와 진지한 대화를 할 때는 얼굴을 안 보는 게 낫겠다.
안만호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품바 하자.”
“굿.”
방향을 정하니, 그다음부턴 쉽게 진행되었다. 그의 전문 분야니까.
“선곡은요?”
“두성 형님 하면, 역시 ‘울산역에서’지.”
“아하~ 그 명곡이요.”
“그래. 그 곡이 전통 장단과 유사한 전개를 갖고 있거든. BPM만 올리면 사람 미치게 하는 박자가 나와.”
“좋습니다! 바로 연습 돌입하죠!”
“그래, 너도 품바 컨셉으로 갈 거니? 그러니까 각설이 두 명이 무대에 서는 구성? 굳이 너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데.”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대답 대신 손가락 장단을 보여 줬다. 이 소리에 연습하고 있던 정진이 움찔하더니 힐끗 돌아봤다.
“형님, 저 흥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오호~”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번 배워 보죠! 시간도 많은데.”
안만호는 활짝 웃었다.
지금까지 웃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이게 진짜 웃는 거구나.’
그의 진짜 미소가 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앞으로는 헷갈리지 않을 듯.
* * *
2주가 지났다.
중간 점검의 날.
제작진은 각 팀의 컨셉과 무대 구성을 점검해 주었고, 필요한 경우 조언 또한 아끼지 않았다.
헬로우 트롯맨은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아마추어적인 ‘날것’보다는 ‘볼거리’와 ‘무대 퀄리티’에 집중한다.
시청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멋지게 해내는 걸 보고 싶어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역 A가 한 건 하겠는데요.”
현역 A의 중간 점검을 끝낸 후, 오 피디가 말했다.
음악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 잘했네요. 확실히 베테랑들이라 달라요. 쌈바를 이렇게 해석할 줄은.”
옆에 앉은 FD가 말했다.
“근데 비용이 좀…… 무용수들이랑 무대의상이…….”
오 피디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무대만 좋으면 돼.”
다음 차례 명단을 보다가…….
“아…… 문제의 팀이네.”
“네, 팀이라기보다는 듀엣이라고 해야 하는.”
“누가 현역 B가 이렇게 다 떨어질 줄 알았겠어? 안만호 씨가 예비 합격이라도 했었기에 망정이지. 진짜 애매할 뻔했어.”
참가자들이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안만호는 예비 합격이었고, 판정단은 그를 최종 합격자로 선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제작진에서 현역 B팀 미션을 덕군 솔로로 할 수 없다며 판정단을 설득했고, 결국 안만호를 최종 합격자로 올렸었다.
“잘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좀 비어 보일 거야. 다른 팀은 최소가 4명인데 여긴 겨우 두 명이니까.”
“하트 10개만 받아도 좋겠네요. 여기서 떨어지기엔 덕군이 너무 아깝잖아요.”
FD와 대화하던 오 피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앉은 음악 감독에게 말했다.
“이 팀은 각별히 잘 봐주세요. 반드시 잘해야 하는 팀입니다.”
“네.”
똑. 똑.
[현역 B팀입니다!]
“들어오세요~”
철컥.
문이 열리고.
안만호부터 모습을 드러내는데.
“뭐, 뭐야…….”
두 명의 거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요?
―중간 점검을 복장까지 하고 올 필요는 없는데.
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섰는데.
계속 히죽히죽 웃고 있다.
“바로 보여 드려도 될까요?”
덕군의 말과 분위기에 압도된 오 피디는 고개만 끄덕였고.
곧바로 안만호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야이~ 씨부럴 잡것들이 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겨! 용돈이라도 좀 쥐여 주고 시키든가!”
“…….”
“아재요.”
안만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오 피디를 불렀고.
“네?”
“참 잘생겼는데, 2%가 부족해. 2%가.”
“제가 왜요…….’
“안 웃잖아~ 씨바! 웃어 봐, 웃어! 조또 웃어, 씨바!”
“으하하하!”
옆에 선 덕군은 이빨에 김 붙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바바밤~ 바바밤~
퉁다라다랅 다라락 퉁다라라닥
‘울산역에서’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안만호와 덕군.
두 사람은 제대로 품바였다.
중간 점검은 얼어 죽을.
모두 넋 놓고 두 사람의 공연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