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합숙(1)
페스티벌 시티 앞.
집으로 가기 위해 정진과 함께 나섰다.
“덕군아.”
“응?”
“집에 어떻게 갈 거니?”
“택시 타야지, 뭐.”
“그럼 형 차 타고 같이 가자. 가다가 내려줄게.”
“형, 차 가져왔어?”
“응~ 소속사에서 요즘 안 챙겨 줘. 나 여기 출연한 것도 모를걸?”
“아…….”
“아마 방송에 나오고 화제 좀 끌리면 관심 가질 거다.”
“너무하네. 그럼 형 신세 좀 질까?”
“하하. 그래~ 가자.”
정진을 따라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근데 너, 올 때는 어떻게 온 거야?”
정진은 스튜디오 안에서 만났다. 정동희가 태워다 주고, 소속 연예인들이 응원하려고 같이 와 줬다는 건 모를 것이다.
“응~ 그냥~”
대충 얼버무려 대답했다. 좀 전에 정진의 소속사 얘기를 들어서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정진의 마음이 괜히 불편해질 것 같았다.
부우웅―
차는 곧 출발했다.
시간이 10시가 넘었다.
새까만 밤. 영종대교를 건너며 검은 바다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을 보았다.
오늘 하루가 꿈같고, 현실감이 잘 안 느껴진다. 짜릿한 행복의 기분이랄까.
오늘 1라운드 합격자는 총 46명.
탈락한 사람들은 좀 아쉽겠지만, 어쨌든 합격한 사람들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언젠가 끝이 보이겠지만 그 끝이 최대한 늦어지기를 바란다.
“막상 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 TV고려에서 준비를 많이 했던데?”
정진은 운전을 하며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거 방영되면 화제가 꽤 될 거 같아. 오늘 하는 거 보면서 느낌이 왔어.”
“내가 말했잖아, 꼭 참가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이거 첫 방송이 1월이라고 했지?”
“응, 오 피디님이 1월 초라고 했어.”
“아직 한 달도 넘게 남았네. 벌써부터 입이 근질근질하다. 오늘 어떤 무대를 했는지 지인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하, 서약서 썼잖아. 입조심해야 해.”
영종대교를 건넌 후, 차는 인천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1라운드는 끝이 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1라운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참가자들 얘기를 계속했다.
“덕드래곤이 네 친척 동생이라고?”
“맞아. 우리 큰삼촌 본 적 있지?”
“어어, 그 체격 좋고 미끈하신 분. 기억하지.”
“둘째야.”
“아~”
정진은 뭔가 생각하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닮았네. 근데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친척 동생을 경연장에서 만나냐?”
“그러니까. 나도 깜짝 놀랐어.”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근데 도대체가 어떤 집안이냐? 덕드래곤도 너 어릴 적 못지않던데?”
“…….”
“슈퍼 유전자가 있긴 있나 봐. 이 정도면 국가에서 관리해야 하는 가문 아니냐? 어떻게 보면 동희 형도 그 영향을 받은 거잖아? 피아노 잘 치고, 곡도 잘 쓰고.”
“그렇지. 우리 큰 고모 아들이니까.”
“다음 생엔 나도 그 집안에 태어나고 싶네.”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지만, 이 말에는 맞장구칠 수 없었다. 내가 그 집안에 다시 태어난 상황이니까.
“신건 형도 괜찮지 않았어?”
“어, 맞어. 그 형 잘하더라. 나 제이스트림 팬이었는데. 한때 춤도 따라 했었어.”
“아, 진짜?”
“신건 형 잘해서 너무 좋더라.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좋아 보여서 다행이기도 했고.”
“흠…… 내가 보기엔 신건 형은 이번에 높이 갈 것 같던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노래도 수준급이고, 차별화되는 무기가 있지.”
신건은 무대에서 날아다닐 정도로 춤을 잘 춘다.
그 외에 이찬우, 품바 아저씨 안만호, 다둥이 아빠 허경구 등 인상 깊었던 참가자들에 대해 우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 * *
“아! 맞다! 데이비드 강!”
“데이비드 강?”
“그래~ 머리 좀 길고 선이 고왔던 형 있잖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었다.
“난 모르겠는데.”
“A조 초반에 했는데. 김종근 형님 못지않은 실력자잖아. 내가 봤을 때 A조에서 김종근 형님 다음으로 잘했는데.”
“그 정도라고?”
그런 참가자를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나 개인 촬영할 때 했나 보다.”
정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나 대기실 돌아가자마자 그 형님이 노래 불렀으니까. 너 촬영이 나 다음이었잖아.”
그런 실력자의 무대를 놓쳤다니. 아쉽다. 나중에 방송으로 봐야겠네.
“형, 자세히 좀 얘기해 봐.”
“어.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정도? 어깨가 넓은데, 선이 곱다고 해야 하나? 약간 음울한 느낌도 드는데……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성이 빨려들 만한 묘한 매력이 있어.”
“흠…… 그래?”
매력 있다는 말에 바로 경계가 되었다.
“타장르부였는데, 소설가래.”
“소설가?”
“응. 근데 딱 봐도 소설가처럼 생겼어.”
“특이하다. 소설가가 음악 경연에 나오다니.”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곡 해석이 특이하더라고. 가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으로 부르는데, 낭독회 하는 느낌이랄까? 여성 판정단 분들 난리 났었잖아.”
“이름이 데이비드 강이라고 했지?”
“맞아.”
“오케이, 접수.”
다음 라운드 때 눈여겨봐야겠다. 머릿속에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계속 대화를 나누었는데, 문득 정진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보면 꽤 피곤해 보이는데, 일부러 쉴 새 없이 떠드는 듯한.
아무래도…… 내가 목표 달성 못 한 것 때문에 그런가?
“형, 근데…….”
“응?”
“나 괜찮아.”
“…….”
“김종근 아저씨가 워낙 잘했잖아.”
정진은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다. 위로를 해 주고 싶어도,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너도 잘했어.”
“그래~ ‘선’이 어디야? 만족해~”
“네가? 웃기고 있네! 내가 덕군을 모르냐? 진짜 만족해?”
역시 정진은 날 너무 잘 안다. 함께 보내온 시간이 기니까.
“여기 카메라 없다~ 솔직해도 돼~”
난 씩 웃고는 솔직함 감정대로 말했다.
“아오~ 배 아파! 엄청 배 아파! 나도 잘했는데! 여기서 그런 실력자가 나오는 건 반칙이지!”
“하하!”
난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근데, 김종근 형님이 잘하긴 했어.”
“맞아, 잘하더라. 내공이 진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임성웅과 용탁은 피했는데.
김종근 같은 괴물을 만날 줄은…….
“그래도 재밌을 거 같아.”
“…….”
“좀 경계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잘하는 사람의 무대는 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내 말에 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공감. 하지만 이기기 쉽진 않을 거야. 30년 노래한 내공을 갑자기 따라잡을 수는 없는 거니까.”
* * *
삑! 삐리리―
늦은 시간이라 도어락을 조심스럽게 누르고 들어왔는데…….
“왔냐?”
아빠가 거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아빠는 보통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그냥 일 생각 좀 하느라. 잘하고 왔냐?”
“뭐…….”
“얘기 좀 해 봐라. 궁금하다.”
오자마자 묻는 걸 보니, 일 생각 때문이 아닌 듯싶다.
날 기다린 것 같은데.
“그게…… 이게 오디션이라서 가족이라도 알려 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 그래서 예심 합격했냐?”
뭐야, 내 말 못 들었나?
“어.”
그러면서도 난 순순히 말하고 있었다. 아빠와 나 사이에 비밀은 없다.
그리고 아빠의 성향이면 비밀 유지 잘할 거라고 믿는다.
“축하한다.”
아빠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근데 표정이 왜 그러냐? 합격했다고 좋아하는 얼굴이 아닌데?”
“…….”
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예선 합격이 목표가 아니니까.”
“그래도 과정을 잘 해냈으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우승까지 한 발짝 가까워진 거잖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빠는 내 목표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있다.
“그렇긴 한데…… 엄청난 참가자가 있더라고.”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꽤 잘하나 본데?”
“…….”
“너도 잘하잖아. 붙어서 이기면 돼지. 심각할 게 뭐 있냐?”
비밀 유지를 해야 하니 자세히 말하긴 어렵고…….
“내가 갖지 못한 거. 아니, 가질 수 없는 무기를 갖고 있더라고.”
“그래?”
더 자세히 설명하기는 껄끄러웠는데, 다행히 아빠는 더 묻지 않았다.
“근데 너한테도 너만의 무기가 있지 않겠냐? 그 사람한테는 없는.”
“응?”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네가 가진 것에 집중해.”
아빠는 파이팅 포즈를 잡고 가볍게 잽을 날리며 설명했다.
“상대방이 린치가 길고 원거리 타격 능력이 탁월하다면, 똑같은 전략으로 파고들면 되겠냐? 혹은 그것 때문에 못 이긴다며 포기할 일이냐?”
“…….”
“원거리 타격에 능한 상대면, 그래플링(레슬링) 전략으로 가는 거지. 즉 상대방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찾으면 되는 거야. 아, 물론 그만큼 고민하고, 연습을 충분히 해야겠지.”
아빠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힘주어 말했다.
“덕군아, 투쟁심을 잊지 마. 너 축제 나간 게 아니라 경연 나간 거잖아? 모두 끝난 후 상대방 실력에 탄복하며 부러워해도 늦지 않다.”
그의 말을 들으며 마음속에 장작불이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최선을 다해 싸워라.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네가 사는 게임을 시작한 거야.”
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1라운드 오디션이 끝나고 일주일 뒤. TV고려 본사에 도착했다.
본사 앞에는 관광버스 두 대가 서 있었다.
[모두 다 오셨죠?]
오늘부터 합숙에 들어간다.
합숙이 끝나는 기간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는데, 경연 결과에 따라 집에 가는 날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내받은 문자에 따라서 지정된 차량에 탑승하시면 됩니다. 목적지는 강릉의 크루즈 호텔입니다.]
―와싸라비야~!
―아싸~ 가오리!
트롯 참가자들답게 환호성도 참 구수했다.
약 3시간 후.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작진은 우리가 오자마자 우리를 숙소 앞 해변가로 안내했다.
버스에 내리는 순간부터 1라운드 때와는 다르게 일거수일투족 카메라가 따라다녔다.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바다다~ 유후~! 너무 좋아! 하하하!”
난 일부러 더 많이 웃고, 연신 밝은 표정을 지었다. 리액션을 크게 크게 했다.
2년간 보뉘를 해 온 짬이 있는데, 리액션은 자신 있다.
1라운드 ‘선’인데다가, 리액션이 좋으니 카메라가 유독 집중됐다.
참가자들은 해변가에서 합격한 기쁨을 녹화한 뒤 숙소로 들어왔다.
강당에 모인 47명의 1라운드 합격자들.
그들 앞에 연예인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븀이에요!”
―와아~
―븀이다!
판정단에도 앉아 있던 븀.
그가 나타나자 모두 반가워했다.
“음~ 합격하신 분들 정말 축하드리고요, 다음 미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죠? 음~ 긴장된 마음이 들겠지만. 살포시~ 아주 살포시~ 한번 들어 볼까요?”
―아…… 미션.
―갑자기 기분이 다운…….
“두근두근 세근 네근~ 다음 미션은요~”
‘장르별 팀 미션’
혹시나 전생과 다르진 않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븀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옆 동료와 함께 우리~ 손에 손을 맞잡고 외쳐 볼까요?”
븀은 콧소리를 섞어서 외쳤다.
“네가 잘해야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