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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12화 (212/250)

212화. 드디어 앞에 서다(2)

―덕군! 어서와~

―내가 엄청 팬이잖아!

―덕군아~ 청수 아저씨야~ 가르~ 마맨!

날 응원하는 판정단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영해 주었다.

몇몇 탐탁지 않은 표정의 판정단도 보인다. 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선입견은 알고 있으니까.

김승주는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덕군,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엇? 저는 김승주 님을 오늘 처음 뵙는 거 같은데.”

내가 너스레를 떨자 김승주는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그렇죠. 오늘 처음 뵙죠. 하지만 저는 잘 알죠~ 우리 딸이 얼마나 좋아했는데.”

“하하.”

나도 큰 소리로 웃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김승주 님 뵙고 싶었습니다. 영광입니다.”

“아주 침착하네요. 긴장 안 되시나 봐요. 어쨌든, 어떻게 지내셨나요? 시청자 여러분들이 궁금해합니다.”

“…….”

난 잠시 숨을 고른 후 말했다.

“TV에서는 인사를 못 드렸었는데요. 제가 일부러 안 나온 건 아니에요. 출연 기회가 잘 없었습니다. 가수 활동에 올인하기 위해 많은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보뉘와 이별했는데…… 어정쩡한 모습으로 TV에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난 두 손을 쫙 펼치고 말했다.

“그간 놀았던 거 아니고요, 가수 활동 열심히 했습니다. 음반도 여러 장 냈고요. 근데 아는 분들은 잘 없으시겠죠. 하하.”

김승주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해하는 얼굴이었다.

“그간 열심히 저의 길을 달려왔고, 이제 준비가 되었고, 좋은 기회가 생겨 여러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승주는 날 아래위로 훑으며 말했다.

“네, 보면 알죠. 그간 성실히 지내오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관리를 잘하셨네요.”

이래서 외모와 옷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배 나오고 피부가 안 좋으며, 눈빛이 흐리멍덩한데다가 옷도 대충 입었다면 방금 한 말들이 진심으로 안 느껴졌을 것이다.

김승주는 판정단을 향해 물었다.

“혹시 판정단 여러분 중에 질문 있습니까?”

그때, 30년 차 남성 트롯 선배가 손을 들었다.

―내가 덕군을 어릴 때부터 눈여겨봐 왔는데요.

“감사합니다.”

―주 장르가 뭔지 헷갈리더라고요. 전국민노래자랑 나올 때까지만 해도 트롯 신동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보뉘를 하지 않나…… 그리고 트롯 가수 한다더니, 솔로 데뷔곡으로 가지고 나온 곡이 복지리 총각? 그때 좀 충격을 받았거든요?

트롯 선배는 말은 젠틀하게 했지만, 뼈가 있었다.

―이건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덕군을 주시하고 있던 제 동료와 선후배들 중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가 많았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덕군을 보면…… 트롯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게 아닌가……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솔직하고 말이 좀 셌다.

김승주는 30년 차 트롯 선배와 날 번갈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약간 불편할 수는 있어도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청률을 올릴 만한 순간이기도 했고.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가라는 건 주관적인 것이다.

그 사람이 날 보고 그런 인상을 받았다면 그냥 그런 것이다.

이건 말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배님, 제 무대 실제로 보신 적 없으시죠?”

―없죠. 실물로 보는 것도 오늘 처음인데. 확실히 잘생기긴 하셨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무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트롯에 진심이라는 걸요.”

난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내 당돌한 대답에 30년 차 트롯 선배는 당혹스러워했다.

―하하, 그래요. 패기 좋네요. 어디 봅시다.

김승주는 적절한 타이밍에 인터뷰를 끊었다.

“네, 좋습니다! 그럼 덕군의 무대 입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 * *

‘1라운드에서 진이 되어야 해.’

덕군의 1라운드 목표는 올 하트가 아니라 ‘진’이다.

헬로우 트롯맨에서는 매 라운드 진, 선, 미가 정해지며 그 중 ‘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전생에 헬로우 트롯우먼의 1라운드 진은 최종 우승자가 되었고, 헬로우 트롯맨의 1라운드 진은 4위로 탑 7 안에 들었다.

그만큼 1라운드의 ‘진’이 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준비되셨죠?”

휴우―

덕군은 김승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무대 조명이 어두워졌다.

―덕군~ 가자!

―화이팅!

1라운드의 선곡 ‘똬리.’

제작진과 약속한 대로 덕군은 진남의 ‘똬리’를 선곡했다.

여기~~ 똬리를 틀어…….

피아노 솔로 선율과 함께 느리게 후렴구로 먼저 시작했다.

여기 똬리를…… 틀어 봐아악~~~~!

진짜 남자의 사자후.

스튜디오를 울렸다.

―어머…….

―이 박력 뭐야?

♬♪♩ ♬♬♬ ♬♪♩

미디엄 템포의 리드 미컬한 반주의 시작.

덕군은 몸을 살짝살짝 튕겼다.

원곡은 일렉 기타 선율과 함께 풀 밴드로 들어가며, 굉장히 신나는 느낌으로 시작한다. 똬리는 달리는 느낌의 곡인데.

편곡을 원곡과 완전히 다르게 했다. 아주 끈적~ 끈적~ 하고 질척이게…….

미끈한 너는 뱀 같은 여자.

수차례 허물을 벗은 파충류야.

아픔이 생길 때마다 벗어 버렸지.

넌 내 품에서 다시 태어났어.

단단한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목 안에 공명이 있는 듯, 울대를 세우지 않아도 목소리가 부드럽게 멀리 퍼졌다.

보통 내공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너는 더 이상! 땅을 기지 마~~

비벼 대지 마.

여기 똬리를 틀어.

다년간 행사에서 쌓은 무대매너.

덕군은 관객들의 반응을 눈으로 직접 봐 가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사실 ‘똬리’도 무대 위에서 수십 번 불러 봤다.

이런 끈적한 노래를 부를 때는 포인트 동작으로 느낌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덕군은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손끝으로 허공을 쓰다듬으며 노래를 불렀는데.

점차 허공이 아니라 스탠딩 마이크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쓸어 올렸다.

―어흑~!

―어머. 어머. 쟤 좀 봐!

여성 판정단은 난리가 났다.

움직이지 마. 자세 잡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 편하게 쉬어.

다 내가 알아서 할게. 우~!

‘우~!’에서 허리를 살짝 튕겼다.

아주 살짝, 느낌 있게.

―꺅~!

―미쳤어!

―별거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야해?!

여성 판정단은 난리가 났고, 남성 판정단은 고개를 돌렸다.

우~! 우~! 우~!

왼쪽으로 튕기고. 오른쪽으로 튕기고. 그 동작을 몇 번 반복했고.

어느 한 여성 판정단은 급하게 침을 닦았다.

그때.

곡이 갑자기 빨라졌다!

바밤~~~ 바바밤~~~!

덕군은 스탠딩에서 마이크를 빼고, 빨라진 리듬에 맞춰 원투 스텝을 밟았다.

미끈한 너는! 싸! 싸! 뱀 같은 여자~

수차례! 허물을~~ 벗은 파충류야아~!

바밤~! 바밤~!

판정단은 모두 일어났다.

1절을 끈적함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밝고 활발함으로 터트리는 편곡.

기가 막혔다.

너는 더 이상! 이휘~ 땅을 기지 마! 싸! 싸!

비벼 대지 마아~!

여기 똬리를 틀어~!

덕군을 의심했던 30년 차 트롯 선배는 언제부턴가 웃고 있었다.

현실일까 아닐까! 사실일까 아닐까! 헷갈리지 마! 우!

쓰리 스텝, 포 스텝.

덕군은 흥에 겨워서 247댄스, 콩콩이 댄스 등 막 나가고 싶었지만 최대한 자제했다.

‘이제 1라운드야! 다 보여 주면 안 돼. 정신 차리자!’

헬로우 트롯맨을 끈적한 열기가 넘치는 축제의 장으로 만든 무대.

전속력으로 달린 무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 똬리를 틀어

여기 똬리를 틀어 봐아~~~~~

덕군의 트레이드 마크. 꺾기에 들어갔다.

아으아으아으아으~~~!

판정단이 숨넘어갈 듯 얼굴이 시뻘게졌을 때쯤.

마지막 멜로디 없는 상남자 나레이션으로 마무리했다.

똬리를 틀어 봐! 당장!

바밤~!

펑~! 펑~!

“올 하트!! 축하드립니다! 올 하트입니다!”

* * *

“와~ 대단합니다. 덕군! 대단합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현재까지 경연 중 최고의 장면이 나온 것 같은데요? 장연정 마스터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

장연정은 아직도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장연정 씨? 장연정 씨~ 정신 차리시고요.”

장연정의 반응에 판정단 모두가 웃었고, 덕군도 빙그레 따라 웃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아직도 온몸에 열기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꿀꺽.

덕군은 긴장한 눈빛으로 장연정을 입을 보았다. 그의 목표는 1라운드 ‘진.’ 마스터들의 평가가 중요하다.

“흠잡을 데 없는 무대였습니다.”

이 말에 덕군은 활짝 웃었고. 김승주는 말없이 덕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발성, 바이브레이션, 감성, 무대매너 등등 모두 너무 좋았고요. 올해 21세 아니에요? 몸에서 나오는 동작이…… 이게 보통 동작이 아니거든요. 너, 바람둥이지?”

덕군은 큰 소리로 웃으며 손사래 쳤다.

“하하, 아닙니다. 저 모태 솔로예요.”

“어머, 정말? 호호. 농담이고요. 그만큼 무대를 많이 서 봤다는 거거든요. 꾼끼리 보면 압니다. 덕군이 행사 많이 뛰었나 봐~? 살아있네~ 살아있어~”

장연정은 엄지를 치켜세운 후 박수를 보내었다.

김승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와~ 장연정 마스터님께서 극찬을 해 주셨는데요, 조용수 마스터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조용수는 안경을 올리고, 특유의 조신한 말투로 말했다.

“전 이 무대가 헬로우 트롯맨의 취지라고 봅니다. 이런 무대를 보기 위해 트롯 오디션을 하는 거거든요. 진짜 트롯이 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흥으로 모든 이들을 하나로 만들었죠. 감히 예언컨대.”

조용수는 ‘감히’라는 단어를 썼지만 표현에 망설이지 않았다.

“덕군은 탑 세븐에 무조건 들 거라고 봅니다. 차원이 다른 무대 너무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엄청난 극찬에 덕군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고, 김승주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와~ 분위기 너무 좋은데요? 우리 딸이 좋아하겠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걸로…….”

―잠깐만요.

30년 차 트롯 선배가 손을 들었다.

―저 한마디만 해도 되겠습니까?

김승주는 그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네, 물론입니다. 하시죠.”

―…….

30년차 트롯 선배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덕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덕군 또한 잠자코 그의 눈을 응시했다.

―제가 섣불리 판단했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사과는요, 무슨.”

―진짜를 몰라봤네요.

“…….”

―어디 가서 30년 트롯 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네요.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 무대를 통해 많이 깨달았습니다.

트롯 선배는 눈가가 약간 촉촉해져 있었다.

―다들 신나서 무대를 즐겼지만, 전 마냥 즐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 친구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지, 이런 수준이 되기 위해 어떤 일들을 겪어 왔을지 제가 너무 잘 아니까요. 저도 경험해 봤으니까요.

이 말에 덕군도 살짝 울컥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고, 너무 잘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축하드립니다.

30년 차 트롯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고, 덕군은 머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이상 덕군이었습니다!”

* * *

무대 뒤.

휴우―

첫 번째 무대, 100인의 오디션.

잘 끝낸 것 같다. 다행이다.

마스터들의 좋은 말씀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30년 차 대선배가 날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말에 울컥해서…….

휴우―

난 진정하기 위해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고, 출연자 대기실로 향하는데.

“덕군 님!”

스태프 한 명이 쫓아와 날 급하게 불렀다.

“네?”

“지금 바로 저 따라오세요.”

“왜요?”

“덕군 님은 A조와 함께 개인 촬영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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