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페스티벌 시티(2)
양상두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트롯 현역들이 A조에 모여 있었다. 물론 정진도 함께.
내 주변에는 아이와 학생들, 회사원인지 양복 정장까지 입은 참가자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나와 같은 현역이 있긴 했는데……
“안녕하세요.”
그가 먼저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덕군 아니에요?”
“네…….”
행사장 앞에서 품바 놀이를 하던 아저씨다. 그러니까, 행사를 뛰긴 하지만 메인 무대에는 서지 못 하는 가수.
보통 행사장 입구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름은 당연히 모르고 얼굴 정도만 알고 있다.
“아이고~ 여기서 보네!”
그는 가슴팍에 커다란 명찰을 달고 있었는데.
‘현역부 B 안만호’
이름이 안만호였구나? 내가 그의 명찰을 유심히 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난 당연히 덕군도 현역부 A일 줄 알았는데.”
“…….”
“저기 앞에 가서 이름 체크하고 명찰 받아 와. 팀을 나눈 거 같더라고.”
“네, 감사합니다.”
명찰을 받으러 갔다가 정진을 만났다.
“형~ 왔어?”
“응, 지금 막 왔어. 와서 보니까 너도 A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너만 저길…….”
알려 준 사람은 없으나, 딱 봐도 현역부 A와 현역부 B로 구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본인이 소속된 부가 어디냐에 따라서 본선 1차 장르별 팀 미션을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다.
팀이 안 좋아도 개인이 뛰어나면 통과할 수 있지만, 무대가 좋지 않으면 그만큼 떨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나 또한 왜 현역 B인지 의아하긴 하지만…… 별수 있나.
“제작진 마음이지 뭐. 괜찮아.”
“……그래.”
정진은 날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고, 도리어 내가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 * *
9시가 다 되어 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 오디션에서 수상했던 사람.
개그맨, 연기자, 기성 가수 등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걸 보니 지원자가 없어서 3차 추가모집까지 한 건 아닌 것 같다.
난 무엇보다도 가장 유심히 찾는 인물이 있었는데.
임성웅과 용탁.
양상두가 예고했던 대로 임성웅은 나타나지 않았고, 용탁도…… 시간이 다 되어 갔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참가하지 않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전생보다 1년 빨리 시작해서일까?
전생의 TOP 7 중에 참가하는 사람은 딱 한 명 말고는 없다. 이미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좀 늦게 도착했다.
“덕군아~ 이야~ 이게 얼마 만이냐?”
“찬우 형~!”
이찬우. 전생에 ‘헬로우 트롯맨’ 3위 수상자.
그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내 중학교 졸업식 때 본 이후로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우리는 보자마자 와락 껴안았다.
“우와~ 키 좀 봐! 너 진짜 많이 컸구나?”
이찬우의 머리끝이 내 눈높이에 있었다.
“그럼~ 많이 컸지! 내가 여전히 꼬맹인 줄 알았어?”
“하하. 작고 이쁘던 애가…… 완전 남자가 됐네.”
그는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어깨 벌어진 거 봐.”
“뭐야? 한눈에 알아봤으면서 많이 달라진 것처럼 말하는 건?”
“야, 얼굴 보면 알지. 네가 보통 얼굴이냐?”
난 피식 웃고는 이찬우를 찬찬히 살폈다.
여전히 편안한 인상에 눈매도 곱고, 부드러움 속에 강단 있어 보이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근데 넌 별로 안 놀라는 것 같다? 나 올 줄 알았어? 혹시 나비가 얘기해 줬나?”
일부러 놀란 척했다.
“아니야~ 나도 놀랐어. 나비 누나랑은 연락도 안 하는데 뭐.”
“그래? 영원히 네 옆에 있을 것 같더니. 하하. 별일이네.”
황나비는 내가 계속 거리를 두었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멀어졌고, 지금은 어디서 뭐 하고 사는 줄도 모른다. 성격 좋고 싹싹한 사람이니 잘살고 있겠지.
“근데 형은 나비 누나랑 연락하고 지내나 봐?”
“응? 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나비 누나한테 내 얘기는 하지 말아 줘.”
“왜?”
“그냥~”
‘신동부 이찬우’
난 그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고 물었다.
“형이 신동이야?”
“몰라~ 전국민노래자랑 준우승자라고 했더니 이렇게 해 주더라.”
“A조?”
“어, 맞어.”
역시. 잘하는 사람들을 A조로 몰았구나?
난 전국민노래자랑 우승자인데 왜 B조지?
이제 이 생각은 그만하자.
‘어차피 기회는 같아. 실력으로 보여 주면 돼.’
억울한 마음이 날려 버리고, 난 마음을 다잡았다.
“화이팅~ 이따 보자.”
“어~ 형. 화이팅~!”
이찬우는 A조라고 적혀 있는 팻말로 갔다.
* * *
[참가자분들 팻말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화장실 가신 분들도 모두 와 주세요. 5분 뒤에 시작합니다.]
마이크 소리에 여기저기 퍼져 있던 사람들이 팻말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색 후드티에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유독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묘해서 슬쩍 쳐다봤다가…….
“엇?!”
눈이 마주친 후 서로 깜짝 놀랐다. 분명 어디선가 봤던 눈이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사람 같아서,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분명 아는 사람.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친 후 시선을 피하고 몸을 바로 돌려 버렸다.
[B조 인원 체크하겠습니다! 이름 부르면 대답해 주세요.]
사회자가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고, 난 방금 그 남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남자의 대답에 난 경악했다.
[신건 군.]
“네.”
신건…… 신건!
제이스트림 신건?!
나와 보뉘 경쟁을 했던, 하뉘가 그토록 원했던 그 신건?!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춤으로만 승부 보던 아이돌 신건이 ‘헬로우 트롯맨’에는 왜……?
혹시나 앞에 붙인 명찰을 봤는데.
‘아이돌부 신건’
‘아이돌부’라고 적힌 걸 보니 그 신건이 확실한 것 같다.
놀랍기도 했지만, 난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아는 척했다.
“형!”
“…….”
“나야, 덕군. 와~ 형 진짜 오랜만이다.”
대답이 없다. 혹시 이름 때문에 못 알아보는 건가? 그와 경쟁할 때는 덕군이 아니었으니까.
“형, 나 김덕후야. 모르겠어?”
“알어, 덕군 김덕후.”
덕군 김덕후…… 이름 앞에 붙여서 말하니까 꼭 호처럼 들리네.
“흠. 어, 형. 진짜 오랜만이다.”
그는 후드를 살짝 들추고 날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게. 아는 척해 줘서 고맙다. 나 알아보는 사람은 진짜 오랜만인데.”
“…….”
후드를 걷고 드러난 그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가 17살일 때 처음 만났다. 당시는 신건의 최전성기였고, 얼굴에 자신감을 넘어 건방짐마저 어려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그의 나이는 25세. 어릴 적 봤던 날카로운 턱선은 사라졌다.
살도 좀 쪘고, 피부가 거무튀튀한 게 술, 담배도 좀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아이돌 출신이다. 여전히 잘생기긴 했다.
“당연히 알아보지. 제이스트림 신건인데.”
“제이스트림은 얼어 죽을…… 언제 적 얘기냐.”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덕군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나야말로 형을 보게 될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네.”
신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왜? 아이돌 출신이 트롯 경연에 나와서?”
“…….”
“예전 같지 않아~ 지금은 무대라면 안 가린다. 생계가 걸리니까 자존심 따위는 다 사라지더라, 야. 하하.”
몇 마디 말에서 그의 인생 굴곡이 느껴져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 경력 때문에 가장 쉽게 설 수 있는 무대가 오디션 프로그램이거든.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대중들 흥미를 일으키기 좋잖아.”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내 모습 보면서 대리만족하실 분들 많을 거야. 한순간 반짝하고 추락하는 것보다는 착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낫다는 위안을 받으면서…… 뭔 말인지 알지? 그렇게라도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된 거지 뭐. 우린 연예인이잖아.”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막힌 걸 쏟아 내듯 한참을 말했다.
난 잠자코 듣다가.
“형, 이제 겨우 25이잖아.”
“…….”
“무엇을 시작해도 충분할 나이야. 복잡한 생각은 말고, 이왕 온 거 재밌게 하고 가자.”
그 또한 B조였다. 아이돌 출신이 트롯 경연에 참여했는데 B조라……. 갈수록 A조와 B조 나눈 이유가 명확해진다.
“넌 여전하구나? 더 어른스럽네. 아, 이제 진짜 어른이지?”
“하하!”
우리의 대화 중에도 스태프의 인원 체크는 계속되고 있었다.
[김덕용 군.]
“네~!”
초등학생 아이가 힘차게 대답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이름에 ‘덕’ 자가 들어가면 어떤 이름이든 튄다.
설마……?
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덕용아!”
“형아~!”
바가지 머리의 한 아이가 내 몸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네가 여기 웬일이냐?!”
“왜긴~ 나도 여기 지원자야~!”
난 덕용이를 내려놓고, 그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았다.
‘유소년부 김덕용’
* * *
맙소사!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큰삼촌의 둘째 아들. 김덕용.
초등학교 2학년, 9세.
두 달 전 추석 때 만났던 덕용이를 헬로우 트롯맨 녹화장에서 보게 될 줄이야.
‘헬로우 트롯맨은 정말 참가자가 다이내믹하구나?’
내겐 여러 가지 의미로 정말 다이내믹하다.
“와…… 너, 음악 하니?”
“하하, 얘기했잖아~ 형이 내 벤치모델이라고.”
“벤치모델이 아니라 롤모델인데…… 어쨌든.”
날 올려다보고 해맑게 웃고 있는 덕용이를 보았다.
“조그만 게 진짜 용기가 가상하다. 여기 나올 생각을 다 하고.”
‘100인의 오디션’에 나온다는 건 적어도 기본은 한다는 것이다.
난 덕용이가 노래를 잘한다는 얘기를 큰삼촌에게 듣기는 했지만 그냥 동요나 부르는 줄 알았다.
“형은 8살 때 방송 출연했다며~ 아빠한테 다 들었는걸?”
“…….”
“형보다 1년 늦었네. 두고 봐, 형처럼 성공할 테니까. 초등학생 때 가수 데뷔 먼저 하고, 중학교 올라가자마자 보뉘가 될 거야!”
“그래……? 목표가 뚜렷한 건 좋은데, 무리는 하지 말고.”
난 인생 2회차인 사람이다. 나처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어린아이니 희망적인 말을 해 주었다.
[모두 다 오신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오승철 피디라고 합니다.]
스포츠머리를 한 젊은 남성.
마이크 소리로 안내하던 사람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TV고려에서 주체하는 ‘헬로우 트롯맨’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프로그램이 잘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앞으로 멋진 경연 보여 주시길 기대 하겠습니다.”
무대에 모인 참가자들은 오 피디의 말에 집중했다.
“간략하게 일정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저희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으신 후에 전체 촬영을 진행할 거고요, 그 후에 B조가 먼저 ‘100인의 오디션’을 진행합니다.”
아, B조가 바로 먼저 하는구나?
“A조 ‘100인의 오디션’은 오후에 진행합니다. 그러니까 전체 촬영 후에 대기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A조는 오전 중에 개인 촬영이 있으니, 호명되는 사람만 대기실 밖으로 나와 주세요!”
―B조는 개인 촬영 언제 하나요?
참가자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개인 촬영은 A조만 합니다.”
―…….
이걸로 확실해지네.
내가 B급으로 분류된 거구나?
오 피디의 짧고 명확한 대답에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유의 사항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