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08화 (208/250)

208화. 페스티벌 시티(1)

경연 전날 저녁.

여기 똬리를 틀어

여기 똬리를 틀어 봐~

난 예심 곡을 흥얼거리며, 내일 입고 갈 옷을 손질했다.

먼지 하나도 묻지 않도록.

혹시 어딘가에 김칫국물이라도 묻어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살폈다.

별로 긴장되지는 않는다.

심사 위원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짐작하고 있고, 그들이 분위기를 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노래 실력은 자신 있다.

분위기에 말리거나 가사를 잊어먹는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예선은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똑. 똑.”

덜컥.

고개를 돌려 보니 지아 누나가 날 향해 싱긋 웃고 있었다.

난 웃으며 영어로 아는 척했다.

“헤이~”

“와썹~ 오스틴?(오스틴, 뭐 해?)”

이름도 트롯스럽고, 예명도 트롯스럽기에 영어 이름은 내가 직접 멋지게 지어 봤다. 오스틴으로.

브라이언, 저스틴 등 멋진 이름들을 떠올려 봤지만, 다른 뮤지션과 겹치면 안 되니까.

우리 누나는 고맙게도 나와 단둘이 얘기할 때는 오스틴으로 불러 준다.

“레디 투 컴퍼티션~(경연 준비 중~)”

“너비스?(긴장되니?)”

“Not at all. I’m fine.(전혀~ 난 괜찮아.)”

난 어깨를 으쓱하고는 지아 누나에게 물었다.

“How about you? Are you having fun?(누나는 어때? 재밌게 놀고 있는 거야?)”

“I missed Korean food. I'm working hard to eat. How long do we have to speak in English?(한국 음식이 그리웠거든. 열심히 먹으러 다니고 있어. 근데 우리 언제까지 영어로 말해야 해?)”

“Ha. Ha.”

내 의도된 웃음소리에 지아 누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먼저 한국말을 했다.

“야, 웃는 것도 꼭 그렇게 해야 해? 느끼하게.”

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누나랑 이렇게 영어 쓰는 거 재밌던데.”

“근데 넌 대체 언제 영어를 배운 거니? 어릴 적에 영어 학원 다닌 적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가 영어 배울 여유는 없었던 거 같던데.”

“그냥~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삼 축제, 부대찌개 축제, 곶감 축제 이런 데서 영어를 배웠다고?”

“…….”

듣고 보니 미국에서 한의학을 배웠다는 느낌이다.

전생에서 가져온 가장 유용한 스킬이다. 해외영업부에 3년 짬에서 나오는 스피킹.

“누나…… 나 3살 때 한글 뗀 사람이야.”

“할 말 없네.”

나의 특출함을 얘기하면 우리 가족은 더 묻지 않고 넘어간다. 아기 때부터 봐 온 모습이 있으니까.

“너, 경연 언제까지 하는 거야?”

“글쎄~ 내가 얼마나 올라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내가 방청하러 갈 기회가 있을까?”

“누나, 방학이 언제까진데?”

“이제 곧 들어가야지.”

난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그럼 어렵겠는데. 아마 방청은 내년 초부터나 할 텐데.”

“아쉽네, 정진도 나오잖아.”

“응? 으응. 그렇지.”

지아 누나가 아쉬운 표정을 짓길래 내가 웃으며 말했다.

“누나, 내년에 내가 초대할 테니까 그냥 잠깐 들어와.”

“야, 비행깃값이 얼만데. 그거 잠깐 방청하러 어떻게 오니?”

“내가 방금 말했잖아. 초대한다고.”

지아 누나는 잠깐 생각하더니,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우리 동생, 통 크네~”

“그 정도 여유는 있어. 그리고 그때쯤 되면 미국 왕복 항공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우와~ 너 자신감 쩐다~”

난 지아 누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누나 앞에서만 이러는 거야. 밖에서는 겸손한 척하느라 힘들어 죽겠어~”

“호호. 하여간 웃겨~”

* * *

다음 날 아침.

회색 체크 풀 착장 정장을 입고, 불광을 먹인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이 경연을 준비하는 나의 정성이다.

인생을 걸고 기다려 온 경연.

“다녀오겠습니다~”

“이제 가니?”

어머니는 손의 물기를 앞치마에 닦으며 부엌 밖으로 나오셨다.

“네~ 어머니.”

9시까지 영종도에 도착해야 한다. 이제 7시지만 좀 일찍 나섰다. 출근 시간에 차 막힐 수도 있으니깐.

“덕군아, 아빠가 데려다줄까?”

아빠도 아직 출근 전이다.

“에이~ 아빠 오늘 출근해야 하잖아.”

“괜찮다, 좀 늦게 가도.”

“아니야~ 동희 형이 데리러 온다고 했어.”

“그래? 웬일이냐? 송이수인지 뭔지 걔 챙긴다고 신경도 안 쓰더니.”

부모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송이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잘 안 돼서 챙김을 못 받은 거다.

“동희가 그럼 집 앞으로 오겠네? 마침 잘됐다. 이 하이에나 같은 자식을 그냥.”

아빠의 눈에 갑자기 핏발이 어려지고 있었다.

“아이~ 왜 그래? 동희 형 여전히 나한테 잘해 주고 있어.”

“잘해 주긴 뭘 잘해 줘? 챙겨 주는 사람 없고, 가수 혼자 행사 다니게 하는 게 잘해 주는 거냐?”

“형은 사장이잖아. 소속 아티스트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내가 워낙 멀리 다녀서 혼자 다니겠다고 한 거야.”

“됐고, 경연 잘 끝나면 소속사 바꿔.”

난 더 대꾸하지 않았다. 아빠가 필 받았을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난 재빨리 인사하고 현관을 나섰다.

“다녀올게요~”

“그래~ 우리 아들 화이팅~”

“우리 손주 화이팅~”

“오스틴! 잘하고 와~”

* * *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신식 아파트라 그런지, 지상에는 차를 댈 수 없게 되어 있다.

새까맣고 커다란 밴이 비상등을 켜고, 입구 앞에 대기 중이었다.

“오…… 웬일이야? BWM일 줄 알았는데.”

난 정동희가 당연히 개인 차를 가지고 올 줄 알았다. 회사 밴은 거의 송이수 차지니까.

삐빅.

내가 앞에 서자, 뒷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짜잔~”

“서프라이즈~”

난 차 안을 보고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장식된 차 안에서 송이수와 서연우가 날 반겨 줬다.

“뭐야? 이 시간에?”

송이수는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말했다.

“사장님이 집합시켰어. 영원엔터테인먼트 대장 아티스트가 출격하는데, 응원 가야 한다고.”

“헐…….”

서연우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

“덕군아. 어서 와. 앉어.”

“어, 그래. 너도 요즘 바쁘지 않냐?”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서연우는 중학교 졸업 후에 영입됐다. 영원에서 4인조 걸 그룹을 준비 중인데, 거기서 리더 겸 센터를 맡고 있다.

아직 데뷔는 안 했지만 2년 전부터 CF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있었고, 간간이 드라마 단역도 하고 있다.

천의 마스크라 불리며 영화계에서 러브콜도 받고 있지만, 정동희와 서연우 둘 다 가수로서 뜻이 확실했다.

영원엔터테인먼트의 근본은 음악이라며, 송이수만 예외적일 뿐이라고 했다.

―덕군 오빠~ 화이팅이요!

―피처링 필요하면 얘기해 주세요~

―꺅~ 정장 너무 멋져~

뒷자리에는 서연우와 같은 팀 멤버들이 있었다.

“와…… 진짜 다 왔네. 고마워요.”

송이수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조수석에 앉은 정동희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덕군아, 컨디션 어떠냐?”

“형~ 뭐야~ 감동이잖아. 컨디션 당연히 좋지. 이렇게 응원하러 와 줬는데 안 좋아도 좋아야 하는 거 아니야?”

“하하. 그래, 그래야지.”

정동희는 운전사에게 말했다.

“출발하세요.”

부우웅―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소속사 전체 아티스트를 만난 건 참 오랜만이었다.

무엇보다도 슈퍼스타라 불릴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송이수가 왔다는 게…….

“형, 요즘 바쁘지 않아?”

“바쁘지~”

송이수의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눈가에 다크서클도 짙었다.

“동희 형이 너무했네. 아니, 이렇게 바쁜 사람한테. 집에서 쉬라고 해야지.”

송이수는 씩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 자면 돼. 나도 너 오랜만에 만나고 싶었어.”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거 영광인데? 슈퍼스타한테 관심받고.”

송이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슈퍼스타는 무슨.”

표정이 어딘가 어두워 보여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요즘 너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까,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어.”

“…….”

그러고 보니 송이수의 미소가 잘 안 보였다. 원래 항상 웃는 얼굴인데.

“정신적으로 좀 지쳤는데. 그래서 네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 내 정신적 지주니까.”

“에이~ 형 무슨 소리야.”

“정말이야. 난 너 얼굴만 봐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거든. 내가 나이만 더 많지, 솔직히 네가 형 같은걸? 하하.”

“하하, 참나.”

“그리고 아직 때가 안 와서 사람들이 몰라볼 뿐, 네가 얼마나 엄청난 사람인데? 난 아주 잘 알고 있지~ 너의 1차 전성기 때 내가 바로 옆에 있었잖아.”

“…….”

“참…… 성은이 망극하네.”

송이수는 내 팔짱을 끼고,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었다.

“아~ 좋다. 이러고 좀 가자.”

“남자가 이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쿠울…….”

송이수는 곧바로 눈을 감고 잠들었다.

* * *

“일어나라~ 도착했다.”

나 빼고 다 자고 있었다.

“아함~ 잘 잤다. 이거 뭐야?”

송이수는 턱에 걸린 천을 들었다.

그는 여전히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는데, 자다가 내 옷에 침을 흘릴까 봐 턱받이를 해 놨었다.

쓰읍―

송이수는 입가의 침을 닦으며 웃었다.

“역시 덕군 센스~ 하하, 실수할 뻔했네.”

“얼굴 밝아졌네?”

“하하, 충전됐어.”

나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도 충전됐어~ 응원 와 줘서 고마워, 형.”

페스티벌 시티 정문 앞에 카메라가 모여 있었다.

삐삐―

“엇.”

문이 열리자마자 누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가 먼저 내린 후 송이수가 뒤따라 내렸고.

“안녕하세요~”

―우와~ 송이수다!

―대박!

찰칵! 찰칵!

송이수에게 일제히 카메라가 집중됐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소속사 동료 응원하러 왔거든요~ 덕군입니다.”

송이수가 나섰으니, 이거 분명 기사에 실린다.

“정말 실력 좋고 잘하는 가수거든요~? 우리 덕군 많이 응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보뉘로 세웠을 때처럼, 그가 날 세워 주고 있었다.

“덕군이 높이 올라가면, 원하시면 제가 특별 출연이라도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찰칵! 찰칵!

―정말이죠?!

―공약하신 겁니다!

―여기 보고 손 좀 흔들어 주세요!

사람들이 송이수에게 집중된 사이, 정동희가 다가왔다.

“덕군아, 가서 잘해라. 뭐든 필요한 거 있으면 즉각 얘기하고.”

“알았어.”

정동희는 내 손을 꼭 잡아 준 후 차에 탔고, 송이수도 차에 올라탄 후 크게 소리 질렀다.

“덕군! 파이팅!!”

* * *

페스티벌 시티 호텔 안으로 들어가, 안내판을 따라 걸어갔다.

‘스튜디오 페스티벌’

5분여를 걸어가니 목적지가 보였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안으로 바로 들어갔다.

“우와…….”

전생에 TV로 봤던 그 원형 스튜디오 그대로다.

거대한 전광판이 무대 뒤, 양옆에 가득 채워져 있다. 올 하트를 받으면 이 전광판이 폭죽으로 가득 채워진다.

‘드디어 왔구나, 드디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 천천히 무대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보였다.

가까이 내려가 보니, ‘A’와 ‘B’의 팻말이 있었고.

[덕군 님은 B조입니다.]

어제 저녁에 받은 메시지대로 난 B조 팻말 앞에 가서 섰다.

정진은 A조 팻말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 양상두도 있었다.

또 그 옆에 다른 실력파 트롯 선배들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