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다시 이곳에
“아우~ 선배님~ 이건 반칙이죠! 선배님이 여길 나오면 어떡해요~”
옆에서 듣던 정진이 방송 톤으로 앓는 소리를 했다.
나와 정진 또한 데뷔곡이 있는 트롯 가수이긴 하지만 이제 이십 대 초반의 젊은 가수다. 또한 본격적으로 트롯 가수로만 활동한 건 5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양상두는 트롯계에서는 레전드라고 불릴 만한 인물. 헬로우 트롯맨 심사 위원으로 발탁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나이도 올해 37세. 트롯 하기에 딱 좋은 나이다.
양상두는 웃으며 말했다.
“야, 야, 니들이 할 말은 아니지! 트롯계에서 가장 핫한 초신성들이 말이야.”
말만 이럴 뿐, 누가 봐도 결코 경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진 씨~ 왜 안 들어오시나요?]
“아, 맞다. 덕군아, 갔다 올게.”
“어, 형. 화이팅~”
양상두도 손을 흔들며 말했다.
“수고해라~”
“네~ 선배님.”
철컥.
정진이 들어간 뒤 난 물었다.
“선배님, 요즘 바쁘지 않으세요? 왜 여길 참가하시려고…….”
“하하. 거 짜식, 엄청 경계하네. 바쁘기야 하지.”
아무리 업계가 얼어붙어도, A급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양상두는 가요 무대에 고정 출연자라고 할 정도로 자주 나오고 있으며, 아침마당놀이 등에 패널로도 참여하고 있다.
각종 지방 행사와 밤무대 섭외는 말할 것도 없으며, 가장 바쁜 트롯 가수 중 한 명이다. 유명 히트곡도 많고.
“뭘 굳이 나오신다고.”
“너무 그러지 마라~ 자극과 도전이 필요한 시기야.”
당연히 경계가 되었다. 전생의 1, 2위 수상자 못지않은 실력자.
아! 문득, 궁금해졌다.
전생의 헬로우 트롯맨 1위 임성웅. 2위 용탁.
이 둘은 현역 가수지만 나와는 연이 안 닿아서 소식을 잘 몰랐다. 하지만 양상두라면 알 것이다.
전생에 헬로우 트롯맨에서 그 두 사람의 무대를 보고 웃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임성웅 무대 때문에 여러 번 울었었다.
“선배님.”
양상두는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심사를 앞두고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혹시 임성웅 선배 아세요?”
“성웅이? 알지.”
“그 선배도 여기 나온 데요?”
“응?”
양상두는 잠시 게임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런 얘기는 못 들은 거 같은데?”
그럴 리가…… 난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다.
“별로 안 친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야~ 잘 알아. 성웅이가 애가 싹싹하고 사교성이 좋아서. 여기 출연할 마음 있었으면 나한테 상의했을 거야. 근데 너, 성웅이 만난 적 없냐?”
“한번 스치기만 했어요.”
“거참 희한하네. 걔 활동 열심히 하는데. 어째 마주친 적이 없을까?”
우리나라에 행사가 수백 개며, 임성웅은 나보다 윗급이다. 서는 무대의 규모가 다르니, 마주칠 기회가 잘 없었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럼 진짜 안 나온대요?”
“생각 없는 거 같아. 모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한번 물어볼까?”
“아니요!”
“…….”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 지르고 말았다. 가장 경계가 되는 경쟁자를 굳이…… 임성웅은 자신 없다.
양상두가 이상한 눈으로 날 바라보기에 날 얼버무리며 말했다.
“그건 알아서 하는 거죠. 뭘 일부러 알려 주고 그래요. 선배님도 바쁘신데.”
“하하, 참나. 어차피 성웅이 못 해~ 걔 요즘 정신없어.”
“…….”
“이번에 신곡 낸 게 반응이 좋다더라, ‘걷지 말고 엘리베이터’.”
“아…….”
“난 딱 들으면 알거든? 차트에도 오르고 유행 탈 것 같던데? 곡 잘 뽑았어~ 곧 많이 바빠질 것 같더라.”
‘걷지 말고 엘리베이터.’
전생에 임성웅이 트롯맨 1위를 한 후, 유명세를 타면서 역주행한 곡이다. 나도 당연히 이 노래를 잘 알고 있다.
이번 생에는 노래가 나오면서부터 뜨는 건가?
“임성웅은 트롯맨 아니어도 이런 식으로 잘되는 건가? 역시, 될 사람은 되는 세상…….”
“뭘 혼자 중얼거리냐?”
“아, 아니에요.”
난 용탁도 궁금해졌다.
“용탁 선배님은요?”
“아~ 용탁이? 내 친구?”
* * *
“친구예요?”
“한 살 차이인데, 그냥 친구 먹고 있지~”
양상두는 82년생. 용탁은 83년생. 같은 또래다.
“친하시겠네요.”
“아주 친하지~ 나 데뷔할 때부터 알던 사이니까. 벌써 15년 다 되어 가네.”
“그 선배님은 헬로우 트롯맨 나온대요?”
“하하. 넌 대화의 귀결이 경연 참가 여부냐?”
“…….”
“아주 목적이 뚜렷해~ 아, 싫다는 건 아니고. 난 그런 거 좋아해, 대놓고 말하는 거.”
“감사합니다.”
난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양상두의 입만 바라봤다.
두근. 두근.
이번엔 바로 대답 않고 뜸 들이는 걸 보니…… 긴장된다.
“용탁이 지금 상황을 봤을 때는 참가하는 게 맞는데…… 지금 좀 고민 중이더라.”
“왜요?”
“최근에 소속사와 좀 문제가 있나 봐. 자세한 얘기는 안 해서 나도 안 물어봤지. 그런 건 물어보는 거 아니니까.”
“아…….”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인 거 같더라고. 지금 상황에 경연 나가서 제대로 집중해서 할 수 있을까 싶어서. 15년이 넘은 가수 커리어가 있고, 팬들이 보고 있는데…… 실망스러운 모습 보일 것 같으면 안 나오는 게 맞으니까.”
“아…… 그것참 안타깝네요.”
양상두는 내 표정을 살피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냐? 너, 안 나오길 바란 거 아니었냐?”
임성웅처럼 좋은 일로 안 나온다면 땡큐지만, 좋지 않은 일로 안 나오는 건 개운치 않다. 이상하게 괜히 미안한 기분마저 든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 아직 결정한 거 아니니까. 지원서까지는 제출한 걸로 알고 있어.”
“헛!”
“심사를 보러 올지 말지는 고민 중인 거지.”
“그 여부를 언제 알 수 있겠습니까.”
내 표정이 너무 진지했는지, 양상두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짜식, 재밌네.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아냐? 내가 용탁이랑 같이 사냐?”
“…….”
“나중에 녹화하러 가 보면 알게 되지 않겠냐? 참가를 했는지, 안 했는지.”
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연습을 해야겠네. 우선 양상두와 용탁까지.
철컥.
그때 정진이 핼쑥해진 얼굴로 나왔다.
“와…… 씨바, 당 딸려. 덕군아, 이런 거였어? 난 노래나 한 곡 부르고 말 줄 알았더니.”
고 CP한테 시달렸나 보다.
“이게 무슨 심사야. 나보고 첫방 때 삼바 컨셉으로 갈 수 있겠냐고 묻더라? 트롯 부르러 왔는데 웬 삼바야? 얼어 죽을. 선배님도 조심하십시오!”
난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래서? 한다고 했어?”
“미쳤냐? 못 한다고 했지!”
“오~ 진짜?”
내가 놀라서 물어보자, 정진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첫방에는.”
“아…….”
예심 통과하면 정진은 삼바 무대를 한번 하겠구나?
정진까지 끝났으니, 우리는 갈 준비를 했다.
“선배님~ 그럼 고생하십시오~”
“오냐~ 무대에서 보자!”
“네~ 너무 잘하시지 마시고요.”
“하하, 내가 할 소리다.”
TV고려 건물에서 나와서 정진과 순댓국을 먹는데.
‘예심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첫 녹화 일정은 따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합격 문자를 받았다.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심사 보는데 무대 컨셉까지 얘기했었으니까.
* * *
산새 소리가 지저귀는 전원 속의 집. 정진과 나는 TV고려에서 예심을 본 후 며칠 뒤. 짐을 싸서 내려왔다.
그날 양상두를 만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엄청난 실력자들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진 또한 가볍게 생각했던 마음을 바꾼 것 같다.
‘원미당.’
아주 어릴 적 신바람에게 교육받았던 곳.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향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둘이 지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원미당에서 2주 정도 지냈을 즈음, 세부 안내 메시지가 왔다.
[헬로우 트롯맨. 첫 녹화 일정 안내.]
예심 참가 자격을 얻으신 걸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덕군 님은 B조입니다.
예심 : 100인의 오디션.
녹화일 : 2018. 11. 15.
장소 : 인천 영종도 페스티벌 시티<스튜디오 페스티벌>
※ 녹화일 오전 9시까지 도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난 메시지를 확인 후 정진에게 물었다.
“형, 메시지 받았어?”
“어.”
난 정진과 메시지 내용을 비교해 보았다.
“어? 다 똑같은데 조만 다르네?”
나는 B조인데 정진은 A조로 되어 있다.
“형은 왜 A조야? 난 B조고?”
“그러게 말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는데, 딱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B…… 어감상 별론데.
“전화해서 물어볼까?”
내 말에 정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이~ 됐어. 뭐 하러 그러냐. 그날 가 보면 알겠지.”
“밑지는 것 같아서~”
“얀마, 벌써부터 견제하냐?”
난 장난스럽게 미국 억양으로 말했다.
“헤이~ 디스 이즈 컴퍼티션~!”
정진은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하하. 하여간 재밌어. 보뉘를 오래 해서 그런지. 어쩌면 그렇게 오글거리는 농담을 잘하냐?”
“치. 오글거린다니. 그냥 재밌는 거지. 1:1 데스매치 선곡은 정했어?”
“어, 이 노래 어떠냐?”
우리는 선곡에 대한 상의를 했다.
원미당에서 와서, 난 정진에게 모든 걸 알려 줬다. 기억을 더듬어 기록했던 모든 것을 말이다.
헬로우 트롯맨의 미션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선곡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떻게 무대를 꾸며야 할지.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노래 실력과 라이브 무대겠지만.
“예심은 느린 곡이 좋을 거 같아. 형 본선에서 빠른 곡 불러야 하잖아. 어차피 제작진이랑 삼바를 하기로 했으니까.”
“아, 맞다 삼바! 젠장, 까먹고 있었네.”
처음엔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내게 의구심을 가졌지만.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는 내 말에 정진은 더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보내온 사이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고, 친형제보다 더 끈끈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선곡에 대해서 그와 상의했고, 무대와 퍼포먼스에 대한 고민도 함께했다.
때론 정통 트롯이어야 하고, 때로는 변형된 트롯이어야 한다.
단조로운 패턴은 관중들이 질릴 수 있고, 적절한 강약 조절은 감동을 일으킨다.
녹화 7일 전.
이른 아침에 원미당 뒷산 정상에 올랐다.
“하아~ 공기 좋다.”
정진은 큰소리로 외쳤고, 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여간 이곳은 참 희한해. 처음엔 시간이 잘 안 가는데, 지나고 나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난 것 같을까.”
“그러게 말이야. 벌써 한 달이 지나다니.”
오늘 상경한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미모도 중요하다. 남은 일주일 동안은 머리도 좀 하고, 피부 관리도 해야 한다.
“덕군아.”
“응?”
“난 널 믿거든?”
“나도 형 믿어.”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거냐? 아무리 생각해도 너한테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거든.”
피식.
역시 정진이 눈치가 있다.
큰 선물이 맞긴 하지. 이건 쪽집게 강사가 문제를 알려 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서로 주고받는 거야. 나도 형한테 큰 선물 많이 받았었어.”
“…….”
“그리고 이건 형 복이야.”
난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
“형이 날 믿으니까 받을 수 있는 복이라고.”
우리는 마주 보고 씩 웃었다.
한동안 말없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정진이 말했다.
“이제 내려갈까?”
“그래.”